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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17일 13시 51분 등록

자본주의, 너는 누구냐?

  『자본주의 :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로버트L. 하일브로너・윌리엄 밀버그 지음, 홍기빈 옮김, 미지북스, 2010

  경제 입문서는 흔하다. 그중에는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경제라는 거대한 산맥을 주마간산 식으로 대충 훑고는 경제를 다 말했다고 하는 책들도 있다. 하도 사람들이 경제 경제 하니 나도 한번 ‘경제’를 이해해보겠다고 이런 책을 펼쳤다가 던져버린 사람들도 많을듯 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원제:The Making of Economic Society)는 체급부터 다르다. 뛰어난 경제사상 입문서로 꼽히는 <세속의 철학자들>로 이미 필명을 알린 미국의 경제사상가이며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주의 경제사학자인 로버트 하일브로너가 이 책의 저자다.

  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책의 탄생과 역사, 그리고 저자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책은 1962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로 현대 자본주의의 변화에 발맞추어 40년 이상의 시간을 넘기며 개정과 보증을 거친, 경제사에 있어서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12번째 개정판인 이 책은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정보 기반 사회 등도 새롭게 조명했다. 저자는 이른바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은 물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도 줄곧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자본주의는 어떠한 이론이든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이해 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를 둘러싼 정치, 사회적 맥락을 동시에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의 경제생활과 유리된 이론이나 법칙으로는 자본주의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경제학자’ 대신에 ‘경제 사회학자’로 자처한 그는 경제현상을 전체 사회의 맥락에서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역사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 그가 2005년에 숨졌을 때 여러 부음은 그에게 ‘진실을 말하는 자’란 칭호를 헌사했다.

  공저자인 뉴스쿨 경제학과의 윌리엄 밀버그 교수는 이 책의 서론에서 로버트 하일브로너 교수가 경제학에 대해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을 밝혀 놓았다. “경제학의 목적은 경제생활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는, 물질적 조달과 사회의 재생산이라는 ‘경제적 문제’를 풀기 위한 인류의 오랜 노력에 있어서 독특한 단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고유한 구조와 논리를 가지고 있지만 또한 다른 사회적 힘들에 의해 이리저리 떠밀리면서 계속 변화하는 것이라고 하일브로너는 강조했다. “경제적 충동과 경제적 제도들에서 역사의 모든 원동력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는 실패했지만 이는 경제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에서였다. 자본주의가 앞으로 성공을 거둔다면 이는 그 경제적 여러 힘들을 길들일 정치적 의지와 수단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핵심은 경제적 힘들만으로 사회적 변화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경제적 변화를 이해하려면 경제가 묻어 들어 있는 사회적 도덕적 맥락을 의식할 필요가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류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기본적인 세계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견해가 일치하는 것이 하나 있다. ‘경제’라는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스스로의 운동법칙을 내장한 채 독자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불변의 내재적 법칙을 가진 완성된 체제로 보는 셈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희소성 원리, 생산·효용 함수 등을 근거로 내세우며 초역사적인 경제법칙을 말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자본-임노동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모든 지점을 ‘자본주의’로 규정해, 역시 초역사적인 경제법칙을 발견해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애덤 스미스가 지적한대로 그간 자본주의 시장체제는 자기 조정 메커니즘을 갖고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발전돼 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대 경제사를 들여다보면 시장경제가 완결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많다. 특히 2008년 지구촌을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식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의심과 성찰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보여준다. 그는 우선 인류가 생산과 분배 즉, 경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왔는가를 통사적으로 짚어가며 시대 변화의 모습을 꼼꼼하게 그려낼 뿐 아니라 시대마다 변화의 동력이 무엇이었나를 살핀다. 인류 역사 속에 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인간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존재해온 유형을 크게 전통, 명령, 시장이라는 세 가지로 제시한다. 인류는 이 세 가지 방법 혹은 이들의 조합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왔다. 즉 자본주의의 발흥에 대해 “전통과 명령에 복속되어 있던 경제적 장치들이 각종 제약에서 풀려나 시장의 자극과 지도를 받게 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나 도덕, 기술 변화 등 여러 가지 힘들에 의해 끊임없이 진화해와, “아주 다양한 종류의 사회를 포괄할 수 있을 만큼 탄력적인 것이 됐다”고 말한다. 또 이 책은 시장 이전의 경제, 중세사회에서의 자본주의 기원, 산업혁명, 대공황, 자본주의의 황금시대, 지구화와 정보기반 사회 등 자본주의 역사의 굵직한 경제 주제를 다루면서 자본주의가 여러 개의 상충되는 이념들로 구성되며 끊임없이 진화해왔음을 설명한다. 지난 역사에서 물질적 조달과 사회의 재생산이라는 ‘경제적 문제’를 풀기 위해 인류가 맞닥뜨린 수많은 문제와 이를 어떻게 맞서며 유동적으로 변모시켜 왔는지를 서술한다. 시장 체제 혹은 근대 자본주의가 얼마나 독특한 체제이며 이렇게 독특한 체제가 발전하는 과정은 또 얼마나 엄청난 규모의 전 사회적 역동성과 맞물려 있는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 책은 ‘경제사 산책’류의 범속한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경제 체제가 어떻게 발생했고 또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수식과 통계 위주인 주류 경제학의 따분한 서술 방식 대신, 저자 특유의 ‘글발’ 넘치는 경제학 언어를 동원하여 스토리 위주로 흥미롭게 풀어쓴 일종의 역사-경제-사회학이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나온 인문사회 책 중 화제작이었던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번역한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이 번역했다. 쉽고 간결한 번역과 한국 경제상황까지 반영한 친절한 각주도 돋보인다. 번역자의 말처럼 단순히 자본주의의 ‘과거’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이라면 굳이 이 책을 보지 말고 잘 정형화된 기존의 경제사 책들을 보는 게 나을 지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 변화의 큰 ‘궤적’을 그려보고 싶고, 앞으로 인류가 나아갈 방향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딱이다. 580쪽에 달하는 책을 덮을때 쯤이면 훌륭한 석학에게 한 학기 동안 강의를 들은 것처럼 충만감이 가득찰 것이다. 특히 지난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가 어떤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요즘 같은 때 ‘지식의 십전대보탕’으로 생각하고 읽으면 든든해지는 책이다. -끝-
* 기획회의 289호 기고 (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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