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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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뉴욕 화이트 플레인스에서 출생한 조셉 캠벨은 어릴 적 부모님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 신앙을 가지게 된다. 어릴 적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원주민 신화에 관심을 갖고 인디언에 관한 책을 엄청나게 읽었다. 원주민 신화와 아서왕의 이야기에서 비슷한 맥락을 읽으면서 여러 문화권에 다양하게 산재되어 있는 신화들이 알고 보면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조셉 캠벨은 생물학, 수학, 중세영문학, 인류학, 민속학, 비교종교학, 철학,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하면서 조셉 캠벨의 의식은 더욱 크게 확장되고, 자신의 지식들을 연결하는 고리들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뉴욕에서 육상선수를 했던 경험과 색소폰 연주자였던 경험 역시 그가 신화를 자연과 예술에까지 성찰할 수 있게 큰 도움을 준 듯 하다. 뮌헨에서 유학하면서 크리슈나무르티의 영향으로 불교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그가 생각하는 이상과 가장 비슷한 것이 불교임을 알게 된다. 불교신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일상의 명상을 통해 내면을 향한 여행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더 이상 기독교도가 아니다’라고 공표를 한다. 이는 미국의 정서상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캠벨은 미국의 대공황이란 상황에서 세속을 떠나 5년간의 칩거 생활을 하면서 오로지 책과 함께 자연과 더불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것들을 정리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조셉은 신은 만물이며, 신은 ‘나’라는 것과, 40여 년간의 종교, 철학, 신화연구의 결론에서 결국 각국에 펼쳐져 있는 신화와 종교가 사람들에게 주려는 메시지는 같다는 ‘단일신화’라는 새로운 개념을 이끌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이론을 통해 조셉은 사람들에게 종교간의 화합을 강조하게 된다.
캠벨은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을 끝낸 후, 암으로 투병하다가 83세의 나이로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던 본인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조셉의 사망 후, 그의 아내인 진과 오랜 친구이자 편집자인 로버트는 조셉의 연구와 업적을 보존하고 이어나가고자 조셉캠벨 재단을 만들었다. 또한 진과 조셉캠벨재단은 그의 연구결과물, 오디오, 비디오 등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 조셉캠벨 컬렉션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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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1) 신화의 인생 책의 저자 소개
2) http://blog.daum.net/jidam55/14563587 (신화학자 조셉캠벨의 생애와 사상)
3) 작년에 썼던 신화와 인생 북리뷰
4) www.jcf.org 조셉 캠벨 재단 (http://www.jcf.org/new/images/people/joe/1938_joe-and-jean-on-honeym.jpg)
5)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Joseph_Campbell
6) 동영상 http://www.youtube.com/embed/8AG4rlGkCRU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운명은 앞서서 뜻 있는 자를 인도하지, 뜻 있는 자의 멱살을 잡아 끄는 것은 아니라오 p14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p25
나이를 먹어 나날의 삶에 대한 관심에 심드렁해지면, 사람은 내면적인 삶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 내면적인 삶이라는 게 어디에 있는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면 그것 참 곤란한 일이지요. p26
인간을 진실하게 그려내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함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것은 비인간적입니다. p28
결혼은 영적인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삶을 온당하게 산 사람이라면, 이성을 웬만큼만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마음의 소유자라면 온당한 남성 혹은 여성 상대자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제대로 된 상대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상대를 고를 수 있는 것입니까? / 가슴이 말해줍니다, 반드시. p31
결혼으로 맺은 관계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관계로 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혼을 아직 하지 못한 겁니다. p32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p33
그런데 대학에서는 작은 강의실밖에는 배정해주지 않아요. 왜 이렇게 작은 강의실을 배정해주는지 아세요? 학교 당국자들이 학생들의 내부에 충만해 있는 열기를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내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삶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p37
내가 믿던 종교와의 충돌은 훗날 학문적인 연구 같은 걸 시작하면서 생기더군요. p40
신화는 문학과 예술에 무엇이 있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 삶이 어떤 얼개로 되어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 삶을 기름지게 하는 것으로서, 한번 빠져 볼만한 것이 신화지요. 신화는 우리 삶의 단계, 말하자면 아이에서 책임 있는 어른이 되고, 미혼상태에서 기혼상태가 되는 단계의 입문 의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의례가 곧 신화적인 의례인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이런 의례를 통해 우리가 맡게 되는 새로운 역할, 옛 것을 벗어 던지고 새것, 책임 있는 새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p41
백인의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원시 미개 사회가 어떻게 되는지 많이 보아오셨을 테지요. 백인의 문명이 유입되면서 그들의 사회는 분열하고, 타락하고, 병들고 맙니다. 신화가 사라지면서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 그렇고 말고요. p42-43
그러나 자기가 어디를 향하는지 알고 있으면 전혀 다른 신비 여행이 되는 것이지요 p46
신화는 영적인 의식의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p47
인간은 외부에서 들어온 권능에 복종하지 않아요. 다스릴 따름이지요. 문제는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는 거지요. p54
옛 전통을 가꾸는 유일한 방법은 시대의 상황에 맞게 그것을 쇄신하는 길뿐입니다. p57
각기 새로운 신화가 필요하지요. 원수를 사랑하라, 열어라, 남을 평론하지 말라!
히브리 사회에서 야훼 숭배는 특수한 충동입니다. 결국 이 충동이 승리를 거두게 되기는 합니다만. 도처에서 볼 수 있던 자연 숭배 사상을 신전 중심의 신으로 밀어붙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p58-59
이런 짓을 하고 있는 자들은 종교의 관념을 저희가 사는 사회에만 적용시킬 줄 알지, 이 시대의 삶, 이 시대의 인류에게 적용시킬 줄은 모르고 있어요. p63
정치에서 열정은 곧 탐욕입니다. 탐욕은 인간을 타락하게 합니다. p71
존재의 바탕, 우주의 근본적인 구조를 고려에 넣고 무엇을 생각해야 비로소 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p73
신화를 한 사회의 질서를 일으키고 그 질서를 유효하게 합니다.
도덕률을 말하는 겁니다. 좋은 사회라면 마땅히 지켜져야 한다고 믿어지는 우리 삶의 법 같은 것 말이지요. p75
달에서 지구를 보면 국경 같은 게 안 보이잖아요? 이것은 미래 신화를 위한 대단히 중요한 상징 같습니다. 우리가 세워야 하는 나라가 이러한 나라이고, 우리가 한 겨레가 되어야 하는 나라가 바로 이러한 나라인 것이지요. p78
모든 신들, 모든 천국, 모든 세계가 다 우리 안에 있어요. p86
상상력은 우리 육신의 각 기관 에너지에서 흘러나옵니다. p90
신화가 지니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마음과, 다른 생명을 죽여 그것을 먹이로 삼는 잔혹한 삶의 전제 조건을 화해시키는 것이지요. 식물만 먹는다고 해서 이러한 전제 조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면 안됩니다. 식물 역시 살아 있는 것이니까요.
인간의 마음과 삶의 조건을 화해 시키는 일, 이것은 창조 신화의 기본 구조를 이룹니다. p92
이런 식으로 여성과 죄악, 뱀과 죄악, 결국은 삶과 죄악을 동일시하는 것은 대단한 왜곡입니다. 그런데 성서적인 신화와 타락의 교리 전반에 걸쳐 이런 왜곡이 생기고 있어요.
여자를 죄인이라고 보는 관점은 다른 신화 체계에도 있습니까?
내가 아는 한은 없어요. p97
여성은 삶을 상징하거든요. 남성은 여성을 통해야만 삶의 장으로 나올 수 있어요. 따라서 대극하는 것과 고통이 있는 이 세상으로 우리를 나오게 한 것은 여성인 셈이지요. p100
우리는 항상 대극이라는 용어 안에서 생각해요. 그러나 궁극적 실재인 하느님은 대극 너머에 존재하지요.
우리 시대 현실의 본질이 그렇습니까? / 현실 ‘체험’의 본질이지요. p102
신 혹은 창조자가 모신인 종교에서는 이 세상이 모두 이 모신의 몸입니다.
이 세상이 모신의 몸이라고 해서 남성신이 없다는 것은 아니고 어딘가에 있기는 있습니다.
생명에 성별을 두는 것은 훨씬 뒤의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남성이다, 여성이다 하는 게 참 우스꽝스러운 까닭이 여기에 있어요. 신의 권능은 성별에 우선해서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p103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금제에 불복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이지요. p106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 인간이 세계 어디에 살든 기본적으로는 같다는 설명입니다. p107
이런 인간에는 세 종류가 있어요. 즉 남성과 여성이 합쳐진 것, 남성과 남성이 합쳐진 것, 여성과 여성이 합쳐진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신들이 이것들을 각각 둘로 갈랐어요. 하지만 이렇게 둘로 갈라진 것들은 끊임없이 그 짝을 찾아서 원초적인 합일 상태를 회복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금도 원래의 반쪽을 찾아내는 일에 평생을 전력한다는 겁니다. p112
è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아!!!’ 란 탄성이 나왔다. 남성과 여성이 합쳐진 것뿐만 아니라 남성과 남성 그리고 여성과 여성이 합쳐졌던 것들이 둘로 갈라져 원래의 반쪽을 찾아내고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뭐랄까 지금껏 어떤 텍스트에서도 찾기 힘들었던 이성애자와 동성애자가 생길 수 밖에 없었던 신화(근원이나 뿌리)를 찾은 느낌이다. 책의 뒷 부분 어딘가에서 모이어스와 캠벨의 대화에서처럼 모든 사람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양성애자도 설명할 수 있다. 이 글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너무 반가웠다.
은유는 암시적 의미로 읽어야지, 명시적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p117
우리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금생을 사는 인드라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 명상에 빠질지, 속세에 남아 있을지는 우리가 선택해야 합니다. p132
우리는 사악한 일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참여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잘한다고 하는 일이 어느 누구에게는 반드시 사악한 일이 됩니다. p133
영웅이 이러한 여느 사람과 다른 점은 개인적인 원한이나 절망이나 복수로서가 아닌, 자연의 방법으로 용감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삶에 참가한다는 점입니다. p135
어린 시절에는 이 세상의 질서와 복종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 시기에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서 살지요. 그러나 성숙하면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가 책임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지요. 이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면 신경증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내 것처럼 사는 시절이 지나면, 이윽고 세상을 남에게 양보하는 때가 옵니다. p142
공부하고 활동하는 삶을, 이 신비를 즐기고 감사하고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삶으로 바꾼 것이지요. p143
그 사람들의 기록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p144
è 신화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한 캠벨의 겸손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추측하지 않고, 실제의 기록이 나타나기 전에 알 수 없다는 이 말은 왠지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때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하는 나에 대한 반성.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의 대상은 어떤 학문일수도 있고 사람일수도 있고 실로 다양하다. 앞뒤 문맥에서 이 문구의 의미보다는 이 문구 자체가 내게 던져주는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
초기 신화는 삶에 필요한 행위일 경우이면 그 일에 기꺼이 참여하게 하면서도 공포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해줍니다. 말하자면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지요. p148
그들은 짐승에게 삶의 본이 될만한 것을 요구하기도 했고, 실제로 짐승은 이들 삶의 본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p151
인디언들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불렀어요. 들소는 물론이고 심지어 나무, 돌 같은 것도 그렇게 불렀지요. p155
인간은 그런 짐승, 하늘의 해, 달, 별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p156
우리는 성당으로 들어감으로써 사실은 영적인 이미지로 가득 찬 세계로 들어갑니다. p159
소년은 사냥하는 법도 배워야겠지만, 짐승을 두렵게 여겨 존중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p160
마흔 다섯이 되었는데도 아버지에게 여전히 고분고분한 남자가 있다고 칩시다. 이 사람은 정신분석의를 찾아가볼 필요가 있습니다.
è 지난 5년간 이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캠벨의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지어지는 웃음과 완벽한 공감대를 느낄 수 있었다. 늘 나이가 들어도 어떤 결정을 하는 순간에 부모님과 상의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언제 어른이 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겉보기엔 어른인데 아직도 멀었군!’이란 생각과 함께. 그런 의미에서는 정말 우리 나라에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어른’이 되었다는 의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불행히도 영화 이야기를 쓰는 많은 사람에게는 책임 의식이 없어요. p162
문제아(말하자면 순수한 자연의 충동을 그대로 표현하는 아이들)
è 문제아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이 한 줄의 표현이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간직해온 ‘문제아’의 이미지를 한 순간에 바꿔버렸다. 말하자면 순수한 자연의 충동을 그대로 표현하는 아이들. 바꿔 이야기하면 문제아가 아닌 아이들은 순수한 자연에 순응하는 아이들? 혹은 순수한 자연의 충동을 흡수해서 밖으로 표출하지 않는 아이들? 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자연에서의 총동이라는 것은 ‘누구나’ 받게 되지만 그것을 표현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어릴 적의 나를 기억해봐도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사회에서 보기에 말썽부리지 않고 별일없이 무난하게 자라온 나이지만, 사실 나의 내면에는 문제아(당시에 그렇게 불리었던)들이 표출했던 것들이 실제 존재하고 있었다. 단지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부족사회는 늘 아슬아슬한 가장자리의 삶을 살았던 겁니다.
고대의 의례가 지닌 중요한 역할은 개인을 부족의 한 구성원으로, 한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한 모듬살이의 구성원으로 통합시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서구 문명은 개인을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분리시켜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 먼저, 개인먼저가 되어버렸지요. p165
샤면은 남자든 여자든 소년기 후반, 혹은 청년기 초반에 심각한 심리적 격동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완전히 내면화해 버린 사람입니다. p168
신은 중심은 도처에 있으나 주변은 없는 이해가 가능한(감각이 아닌, 마음으로만 이해가 가능한) 구체라고 하는 정의가 그것입니다. p175
우리에게는 여백 같은 시간, 여백 같은 날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여백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인지, 장차 무엇일 수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곳을 성소로 삼게 되는 순간부터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p179
è 예전의 나에게 여백 같은 시간은 ‘주말’뿐이었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몹시 필요했던 나에게 주말은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고, 목마르고 건조한 감성을 조금이나마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얼마 전부터 추가된 여백 같은 시간은 새벽시간이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있는 이 시간이 내게 ‘성소’가 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성소에서 다른 삶을 ‘그대’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하는 겁니다. p180
하지만 모든 땅이 다 성지가 되어야 합니다. p183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일정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붙잡은 작가, 그 작가만 물고늘어지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p190
è 그 동안 내가 책을 읽으면서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하지만 어떤 것이 부족한지 몰랐다.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저것 베스트셀러, 신간코너 등만 기웃거리다가 혹은 주변 지인에게 추천 받은 책을 한 권씩 사서 읽었다. 깊이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는데. 나는 단 한번도 한 작가만 늘고 물어진 적이 없는 것이다. 나도 나의 세상이 열리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천복여행을 하는 선상에 있는 것이라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왜 유일신입니까? /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요.
인류의 농경화로 고대 사회의 재배와 수확에서 맡게 되는 여성의 몫이 커짐에 따라 여신 숭배 종교가 대두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그런 변화가 생겨나면서부터,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여성은 사회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어요. p193-194
상실, 죽음, 탄생…. 상실, 죽음, 탄생….., 상실, 죽음, 탄생…. 삶은 이렇게 돕니다.
그러니까 다른 삶을 위해 이 삶을 버리는 행위가 곧 자살인 겁니다.
우리가 죽어야 하는 죽음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p213
è 자살이라는 단어의 또 다른 혹은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할까? 사실 내 몸이 죽어 없어진다 해도 죽기 전과 같은 내 영혼은 그대로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내 영혼이 변하지 않는데 공간이 변한다고 더 행복하고 편해질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육체의 죽음이 아닌 영적인 죽음이 필요하다고 캠벨은 말하고 있나 보다.
우리는 삶의 한 중간에 이르렀을 때 문득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p217
신비주의자가 하느님과 합일하고자 하는 자기의 욕망을 금욕과 죽음을 통하여 반영하게 하는 것, 이것이 정통 신앙 사회의 기능이다. / 오늘날 이런 경험을 차단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민주주의이지요. 민주주의가 뭡니까? 다수의 의견은 정치는 물론 사고에서도 효과적인 것이다. 이렇게 이해되는 게 민주주의 아닙니까? 그러나 사고의 경우, 다수는 항상 그릅니다.
나는 평상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살았다. 이게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천복을 좇아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p221
평생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 해보고 사는 그 따분한 인생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p222
자기 천복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이 달라지든지 낯빛이 달라지든지 하지요. 삶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서 열립니다. p224
è 흔히 ‘꿈’을 쫓아 가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서인지, 이렇게 일상적인 대화에서 눈빛이 달라지고 낯빛이 달라지는 것을 봤던 경험이 꽤 있었다. 나는 왠지 그런 순간에 희열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내게 묻는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때에 내 눈빛이나 낯빛이 달라졌을까?’, ‘나는 지금 천복을 따라 가고 있는가?’는 등의 질문들 말이다.
천복거리를 찾는 일은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하는 기술 같은 것이지요.
남들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10년이고 20년이고 기다릴 수 있겠는가? 아니면 대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자 하는가? 세상이 뭐라고 하건 자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만 붙잡고 살면 행복하겠다 싶거든 그 길로 나가게.
돈이 없다는 건 느꼈지만 가난하다는 느낌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p225
뉴욕의 우드스톡에 아주 멋진 노인이 있었어요. 이 양반에게는 방이 아주 많은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는 이방을 예술을 공부하는 가난뱅이 학생들에게 1년에 20달러 정도의 임대료로 빌려주었어요. 그런데 이 집에는 수도가 없었어요. p226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천복을 쫓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p227
영웅이라는 말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요. p229
세계의 서로 다른 모든 신화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동일한 탐색을 다루고 있어요.
바로 여기에서 영웅은 원래 살던 세계에서 의식하지 못하던 것, 혹은 의식에서 빠져 있던 것과 만납니다. p237
비틀즈는 대중 음악에다 정신적인 깊이를 더했습니다. p246
그 광명을 내적으로 체험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그것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거나 읽을 능력이 없었던 겁니다. p247
왜 첫 저서의 제목을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고 하셨습니까? / 이 세계 모든 문화권, 만은 시대의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영웅의 행동에서 하나의 전형적인 체계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p249
엄격하고 권위주의적인 사회 상황에서 자라난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을 그만큼 모르는 상태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p262
è 어릴 적의 나를 생각해보면 나는 엄격하고 권위적인 환경의 첫째로 자라서 나를 모르는 상태로 살아왔던 것 같다. 엄격하고 권위적인 환경으로 인해 느껴지는 공포와 두려움들이 나의 사고를 제한했던 것 같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고,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건 잠자는 시간뿐이었다. 다행스럽게 중학생이 되면서 엄마와 내가 각자의 삶을 갖기 시작하면서 앞에서 캠벨이 말했던 ‘여백 같은 시간’들이 내게 생기기 시작했고, 나는 조금씩 자신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코치는 선수가 달리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선수의 천성적인 동작양식만 조금 수정해줍니다. 좋은 스승은 제자가 하는 양을 가만히 보면서 그 제자에게 무엇이 가능한가를 알아냅니다. 좋은 스승은 충고를 할 뿐 명령은 하지 않습니다. p263
새로운 진실의 도전에 맞서고, 자기 삶을 여기에다 맞추어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 아니겠습니까? / 나날의 경제적 관심과 육신의 안락에 갇히지 않는, 진짜 삶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이런 능력이 있어요. p271-272
우리가 욕망하는 것, 우리가 믿으려 하는 것, 우리가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사랑하려는 것, 우리를 옥죄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 이게 바로 자아랍니다. p273
살아 있는 신화는 우리에게 우리 시대에 알맞은 본을 제시합니다. p276
서구인들은 ‘나’안에 잠재해 있는 삶의 과녁이자 이상을 살지 절대로 남의 안에 있는 가능성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구의 교수 방법은 이와 판이하게 다릅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그들 나름대로 구상하게 하고 그렇게 구상한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인도해주지요. 그러니까 학생은 자기 나름의 자기 길을 찾아야 하지요. 그러니까 그 길은 자기만의 독특한 경험을 향한 잠재력, 다른 사람은 체험해보지 못한 것, 다른 사람에 의해서는 체험될 수 없는 것일 수밖에 없지요. p277
스승 소리를 듣는 사람은 마땅히 제자에게 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를 먼저 알고 때가 되면 날게 해주어야 합니다. p285
아무리 신화라도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행복을 좇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행복을 좇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일러줄 뿐이지요. p287
신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을 직면하고, 이겨내고, 다른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가를 가르칩니다. p296
삶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돌아오는 상 또한 그만큼 큽니다. p298
‘우리’가 곧 신이에요.
처녀가 낳은 것은 정신이에요. 그건 영적인 탄생을 말하는 거지요. 처녀는 귀로 들어간 말씀으로 잉태를 한 거에요. p320
예수는 영적으로 태어난 것이지 육체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두 번째 태어남이란 중심인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p322
남성 위주의 신화가 대두되는 지역은 인구인들이 내려온 지역과 거의 일치합니다. p331
이 세상 만물의 존재가 비롯된 곳은 남성과 여성이 분화되지 않은 곳, 그러니까 성 너머에 있어요. p332
선생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겉은 남성이지만, 실제로는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고루 지니고 있는 것이군요. p333
진정한 결혼은 상대에게서 동일성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p345
è 얼마 전 아는 분이 7-8년 된 연인을 생각하면 여전히 떨린다는 얘기를 듣고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진정한 결혼이라는 것, 동일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느낌일까?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살면서 한번쯤은 꼭 알았으면 하는 감정이긴 하다.
트리스탄은 자기의 사랑은 죽음보다, 고통보다,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귀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삶의 고통을 대단히 대승적으로 바로 보는 관점이지요.
자기 천복을 따를 때는, 어떤 사람의 어떤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지 ‘내’ 삶의 행동은 나름의 가치를 지녀야 하는 겁니다. p347
이 세상에 내 세상도 하나 있어야겠다. 내 세상만 가질 수 있다면 구원을 받아도 좋고 지옥에 떨어져도 좋다. p349
è 내 세상이라는 것이 캠벨이 계속 이야기 하고 있는 바로 “여백 같은 시간, 성소, 천복” 등이 아닐까?
바로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었던 겁니다. p355
황무지 사람들은 죽은 삶을 살기 때문에 “나는 평생을 하고 싶은 일은 한번도 해보지 못하고 살았다. 나는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았다” 이런 말을 합니다. 들어봤을 겁니다. p357
따라서 삶을 삶답게 하는 것은 자연의 충동이지 초자연적인 권위에서 내려오는 율법이 아닌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배 전설의 상징적인 의미인 것이지요. p358
가장 바람직한 삶은 빛을 향하여 남을 이해함으로써 남의 고통에 동참하는 자비를 통해서 가능해지는 화합의 관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삶입니다. p359
연애는 바람직한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의 동의 아래 한동안 계속되는 두 사람의 삶을 말합니다. p366
지옥의 고통 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사랑하던 것’과 함께 할 수 없는 데서 오는 고통입니다. p371
사랑이 깊으면 괴로움도 깊은 법이지요
사랑 자체가 고통 혹은 진정하게 살아 있음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지요. p373
신은 그러니까 에너지를 나르는 수레인 것이지요. p376
이 처녀 수태는 건강, 자손, 권력, 향락 같은 물리적인 것만을 겨냥하던 인간적 동물적 삶이 영적인 삶을 잉태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p380
원수의 눈에 들어 있는 티끌을 뽑아내려 하지 말고, 내 눈에 들어 있는 들보를 뽑아내는 겁니다. p383
우리의 정신 안에는 인류의 공통되는 어떤 힘이 있다는 뜻이지요.
신화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의 영적 잠재력을 반영하고 있어요. p393
신은 인류의 종국적이고 본질적인 관념일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존재하기와 변화하기를 통하여 신에게 이르는 데 필요한 것이고, 지성은 존재가 확정된 것, 변화가 끝난 것, 말하자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알게 된 것을 이용하여 삶의 모습을 다듬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지적 탐색은 우리 내부의 발화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p394
중심의 에너지가 이 풀과 같습니다.
비교신화학 시간이 되면 우리는 한 문화권의 이미지와 다른 문화권 이미지를 비교하곤 하는데, 이렇게 하다 보면 이미지의 의미가 확연해지고는 합니다.
결국 이 두 이미지는 서로를 보완하면서 설명하는 겁니다. p395
투쟁은 위대한 창조자라고 했어요. p397
미학적 체험은 그저 그렇게 대상을 바라보는 경험이어야 합니다. p399
예술작품에는 다른 측면의 정서가 있어요. 즉 아름다움의 측면이 아닌 장엄함의 측면입니다. p401
괴물이라고 하는 것은, 조화와 질서와 윤리적인 행동에 대한 우리의 기준을 송두리째 무너뜨려버리는 무서운 존재, 혹은 무서운 도깨비를 말합니다. p402
이웃을 사랑해보면 곧 이웃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지요. p407
시의 언어는 꿰뚫는 언어입니다. 시에서 정확하게 선택된 언어는 언어 자체를 뛰어넘는 암시 효과와 함의의 효과를 지닙니다. p411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다. 여성 그 자체이다..
여행을 하고 있는데 그 목적지가 자꾸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 때, 여행의 목적지가 바로 여행임을 깨닫는 수가 있다.
이 세상의 종말은 미래의 어떤 순간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변화가 오는 순간, 세계를 보는 방법이 바뀌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p413
그래서 절정의 순간은 이 언어 밖에 있는 것, 이 한마디 “아………..” 이 한마디 밖에는 할 수 없는데 있는 것이지요. p415
빌 모이어스는 조셉 캠벨이 생전에 신화를 통해 학생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수 있게 지속적으로 가르쳤던 것을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이 책을 기획했다. 이런 목적을 염두에 두고 목차를 봤을 때 1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캠벨이 신화를 접하게 된 계기, 신화를 접하면서 가졌던 종교적 갈등 그리고 신화로 인해 본인의 삶을 변화를 보여주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신화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겪을 수 있는 갈등이나 변화를 간접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신화에서 의례가 가지는 의미, 의식이 변화해 온 과정과 점점 신화를 잃어감으로써 종교가 변화되어 온 모습, 환경에 대한 사람들 인식의 변화와 그로 인한 환경파괴, 그리고 이기심이 사회전반에 나타나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화가 다시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즉, 1장에서는 뒤에서 나올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지식과 어떤 이야기들을 다룰 것인지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조셉 캠벨이 핵심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인 현대에 사라진 신화가 다시 필요함을 얘기한다.
그리고 2장부터는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인 의례, 신화를 전해온 사람들-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일과 천복을 쫓는 삶에 대하여,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은 이미 누군가가 경험했다는 것, 여신의 존재와 의미, 사랑과 연애, 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신은 특정 존재라기 보다 나이며 만물)이다. 이 책의 흐름은 빌 모이어스가 원했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공감하기 쉽게’ 적혀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