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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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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21일 10시 56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20
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 그를 수식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나는 우선 그의 삶을 '학생으로서의 삶'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그의 삶은 모든 순간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배움과 독서로 점철되 있다.
  1904년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소년 시절 북미대륙의 원주민 신화와 아더왕 전설의 유사성을 깨닫고, 신화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학부전공이 생물학과 수학이었지만 이내 인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대학 때 영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신화를 공부할 수 있는 본격적인 토대를 닦게 된다. 그는 유럽으로 가서 고대 프랑스어 및 산스크리트어, 독일어를 놀라울만큼 단시간에 습득해 나간다. 유럽에서 돌아온 뒤 그는 중세 문학, 미술, 산스크리트어라는 방대한 분야를 공부하고자 했고, 박사학위 취득을 포기하면서까지 그의 계획을 실행해 나갔다. 그 이후 그는 일반적인 학문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주도적으로 관심분야를 정복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오년간, 매일 9시간씩 독서를 할만큼 놀라운 집중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사라 로렌스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신의 가면>, <신화의 힘> 등 지치지 않는 학문에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학문의 길을 택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나는, ‘신화의 힘이라는 책을 읽을 시기에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마침 읽고 있었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는 학자에게 필요한 내적 자질과 외적 조건을 논하고 있는데, 조셉 캠벨이야말로 이 두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적 조건으로서의 안정된 직위나 인정에 안주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비교신화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열정을 그는 모두 지니고 있었다
   <신화의 힘>은 '천복을 따라 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캠벨의 학자로서의 생애는 어린 시절 박물관 한 켠에 있던 토템 기둥에 매료된 소년의 순간을 잊지 않고 - 그것을 천복으로 여기고, 평생 그것을 좇아 살아 온 것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한다. 돈이나, 제도권의 박사 학위라는 타이틀보다, 그는 내면의 소리에 보다 정직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캠벨 자신이 천복을 따라 살았단 사람이므로, 
<신화의 힘>에서 말하는 내용들은, 걸출한 연구 성과의 응집을 너머 사람들의 마음 속에 힘을 줄 수 있는 능력을 내포하고 있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가 진정성이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신의 소신과 자신의 삶이 일치했기 때문이었고, 그런 삶을 살아온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이 저작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생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했던 훌륭한 이론가들 본인의 삶이 정작 불행하게 끝나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세상 속에서 냉소를 키워가는 사람들에게, 조셉 캠벨은 자신의 이론에 앞서 자신의 삶으로 말하고 있다. ‘천복을 따르는 삶을 살라, 나를 보아라, 나처럼 살 수 있다.

사진: 왼쪽은 유럽에서 공부할 당시 조셉 캠벨, 오른쪽은 노년기의 모습이다. 파리에서 공부하던 젊은 시절의 그의 눈빛에는 학자로서의 의지와 자신감이 묻어난다. 이미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노년의 캠벨은 한층 부드러워진 모습이고, 삶을 통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이룬 것 같은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야망보다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젊은 시절의 모습, 허망함보다는 보람이 느껴지는 노년의 모습이 - 학자로서 천복을 누렸던 그의 삶을 명쾌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Joseph_Campbell
           조셉 캠벨 재단 공식 싸이트 http://www.jcf.org/new/index.php?categoryid=11
           개인 블로그 "leopard의 무한회귀" http://leopord.egloos.com/3949547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 나남출판사, 2006.
           조셉 캠벨, <<신화의 힘>>, 이끌리오, 2002.


 

2.    2.  마음에 남는 글귀

그저 책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반쯤 이해되고, 내 심정이 공감 받는 느낌이 드는 책이 있는가 하면, 모든 구절을 힘들여 표시하고, 밑줄 긋고 곱씹어보아야 이해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후자에 해당하는 책이었고, 여러 가지 색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 습관이 있는 나는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색의 펜을 써가며 읽었다. 나는 마음에 남는 각 문단 별로 나름의 제목을 붙여가며 읽었고, 이는 페이지수 뒤에 굵은 글씨로 표시해 놓았다. 밑줄 친 부분은,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이다. 특별한 언급이 없는 구절은 모두 캠벨의 발언을 요약한 것이다.

 

 (29) 신화는 영적 잠재력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

모이어스 : 신화라는 것은 우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해온 진리에 대한 모색, 의미에 대한 모색, 의미 있음에 대한 모색을 뼈대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 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해하고, 죽음과 맞설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이 기나긴 삶의 길에서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평생 영원의 의미를 이해하고, 영원을 접하고, 신비를 이해하고, 누군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도움이 필요합니다.

캠밸: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어떤 실마리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랍니다. 신화는 인간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인 것이지요.

 

(31) 결혼은 영적인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

결혼이 무엇이냐 하면 결혼하는 두 사람 사이의 영적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결혼은 연애와는 달라요. 결혼은 경험이 지니는 신화적인 차원입니다. 오래 연애하던 사람이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결혼하고 나서는 얼마되지 않아 갈라서고 마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왜 갈라설까요? 이른바 연애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절망과 함께 끝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영적인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제대로 된 상대와 결혼해야 우리는 육화한 신의 이미지를 재건할 수 있는데, 이게 바로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89) 신화와 꿈

캠벨: 꿈은 우리 의식적인 삶을 지탱시키는 깊고 어두운 심층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반면 신화는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입니다. 그러니까 신화는 공적인 꿈이요, 꿈은 사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떤 개인이 꾸미는 사적인 신화인 꿈이 그 사회의 꿈인 신화와 일치한다면, 그 사람은 그 사회와 무난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하겠지요.

모이어스: 그러니까 개인의 사적인 꿈이 공적인 신화와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라면 좀더 건강하게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거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러나 만일 개인의 사적인 꿈이 공적인 꿈과 발맞지 않으면,

캠벨: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억지로 체제에 적응하려고 하다 보면 신경증에 걸립니다.

 

(114) 신화가 가진 힘

모이어스: 저는 신화를 읽을 때마다 신화가 지니는 신비에 경이를 느끼고는 합니다. 우리가 신화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지언정 꿰뚫어볼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캠벨: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는 궁극적인 진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린 것입니다. 중국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이 있는데,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실은 알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안다는 것은 실은 모르는 것이고 모르는 것은 아는 것이다.” (중략) 모든 신화는 특수한 문화적 상황이나 시대적 상황과 관계가 있는 삶의 지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신화는 개인을 그가 속한 동아리에, 그리고 동아리를 자연의 장으로 인도합니다. 신화는 자연의 장과 개인의 본성을 통합시킵니다. 신화는, 조화시키는 힘입니다.

 

(133) 인생의 본질

선악의 관념은 원래 조로아스터교의 관념이었는데,, 이것이 유태교와 기독교로 흘러들어 왔어요. 다른 종교의 전승에 따르면 선악은 우리의 입장에 따라서 상대적인 것입니다. 어느 한쪽에 선한 것은 그 반대쪽에는 악한 것이지요. 인생이라는 게 참혹한 것임을 알면 물러서지 않고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해낼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만 알아서는 안됩니다. 이 참혹함이 바로 신비, 무섭고도 놀라운 신비의 바탕이라는 것까지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슬픈 것이다.”이는 석가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입니다. 사실이 그렇지요. 세속성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삶을 긍정하고, 이대로도 훌륭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의도가 이러한 것이었으니까요. (중략) 제임스 조이스의 한마디가 기억납니다. 그는 역사는 내가 헤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악몽이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이 악몽에서 헤어나는 길은,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 자체가 만물을 창조한 무서운 힘의 현현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135) 인간이 느끼는 선과 악

헤라클레이토스는, 신에게는 모든 것이 선하고 옳고 의로우나 인간에게는 어떤 것은 옳아 보이고 어떤 것은 옳아 보이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할 때의 이 인간은 시간의 장, 결정의 장에 놓입니다. 삶의 여러 어려움 중 하나는 이 양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나는 중심을 알고 있다. 나는 선과 악이라는 것은 이 속세의 착각일 뿐이요, 하느님 보시기에는 아무 차이도 없음을 안다이러한 인식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141) 고대의 신화

고대의 신화는 몸과 마음을 조화시킬 목적으로 빚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헛길로 들어서서 하느작거릴 수도 있고, 몸이 바라지 않는 것을 바랄 수도 있습니다. 신화와 의례는 마음을 몸에다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 자연이 가르치는 대로 삶을 자연에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167) 예술가의 기능

인간은 환경에 반응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환경에 반응하지 않는 문화 전통이 생겼어요. 이것은 기원전 약 1000년에 다른 데서 온겁니다. 이 문화전통은 우리 현대 문화와 새 우주관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문화적 요소를 동화시키지 않아 왔어요. 신화를 살아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살아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입니다. 예술가의 기능은 환경과 세계를 신화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186) 신화는 우리를 삶의 원형과 만나게 한다

왜 우리가 새삼스럽게 신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까? 신화는 우리 삶의 요체인 영적인 삶의 원형과 만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의례를 접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질서를 온전하게 바로잡아줍니다. 옛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항상 영적인 원리를 의식하고 사는 삶이었어요.

 현대에 와서 '영적인 것'은 광신적인 것, 비이성적인 것, 두려운 것의 이미지를 내포하게 되었다. 일상의 영역에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못하고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기에, 영적 문제는 종교의 영역에만 머무르게 되었고 아무도 그것을 일상의 영역으로 불러오려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신화의 힘>을 읽은 지금도, 나는 신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두려움과 편견을 극복하지 못했다.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반쯤은 눈이 풀린 사람들이 벌이는 알 수 없는 의식'. 부끄럽게도 내가 가지고 있던 신화에 대한 이미지다.
  광기와 미신으로 연상되는 신화의 이미지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모든 영적 요소를 배제한, 우리가 소위 말하는 '이성적인 생활 영역'또한 허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안의 본성을 부인하고, 예전의 생활 방식을 죄다 '비이성적'이라는 말과 편향된 이미지로 요약해 버린 것이 우리의 이성이라면, 그래서 우리를 영적인 원리에 다가갈 수 없게 만든다면 -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이성에 대해 조금은 회의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189) 우리가 신성을 해석하려면?

모이어스: 오늘날 자연의 본성인 신성은 누가 해석합니까? 누가 우리의 샤먼입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해주는 이는 누구입니까?

캠벨: 그것은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술가들이야말로 오늘날에도 신화와 교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예술가는 신화와 인간성을 이해하는 예술가이지, 대중에게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사회학자는 아닙니다.

모이어스: 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 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 사람은 어떡합니까?

캠벨: 방에 앉아서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중략)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203) 농경문화권에서의 제물

삶의 모습 자체는 반드시 삶의 행위를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 거지요. 수렵문화권에서 공희제가 치러질 경우, 제물 자체는 거기에 임재한 신에게 바치는 선물, 혹은 뇌물에 해당합니다. 이것을 드시고 우리에게도 뭘 주십사 하는 거지요. 그러나 농경문화권에서의 제물은 곧 신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땅에 묻히고 거름이 됨으로써 거름이 되어 곡물을 기름지게 가꿈으로써 우리의 양식으로 돌아옵니다.

 

(211) 영웅의 특성

우리의 진정한 실재는 모든 생명을 동일시하고 통합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끊임없이 의식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형이상학적 진실일 것입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영웅이란 자신의 물리적인 삶을 이러한 진리 인식의 질서에다 바친 사람을 말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우리를 바로 이러한 진실에 던져넣으라는 뜻입니다.

 

(215) 살아있음을 경험하기

사람들은 살아있음의 경험을 절실하게 하기 때문에 전쟁을 좋아한다고 고백하곤 합니다. 매일 직장을 오가면서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우리는 문득, 살아 있음의 체험 안으로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삶은 고뇌로운 것, 고통스러운 것, 그리고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살아 있다. 전쟁은 이런 느낌을 경험하게 합니다.

 

(218) 열정에서 연민으로

중세 신화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은 인류의 마음이 연민의 가슴으로 열린 순간, 즉 열정이 연민으로 변모한 순간입니다. 성배 전설에 나오는, 상처 입은 성배왕에 대한 사람들의 연민이 바로 이러한 변모를 드러냅니다. 바로 여기에서 아벨라르적 관념이 태동합니다. 아벨라르는 십자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지요. 즉 인자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서이다.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연민 쪽으로 열리게 하기 위함이다. 이로써 이 세상의 물질에 대한 인간의 추잡한 관심을, 고통을 나누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인간만이 지닌 가치의 세계 쪽으로 쏠리게 하기 위함이다.

 

(220) 순종, 죄성을 뒤집어보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아야 하느님의 자비가 소용에 닿게 됩니다. 순종하면 하느님에게 찬스가 생기지 않는 거에요. 루터는,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거든 용감하게 죄를 지어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큰 죄인은 연민하는 하느님을 크게 깨달은 자인 셈입니다. 이것은 도덕의 역설과 삶의 가치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는 아주 근본적인 관념입니다.

 

(222) 천복을 좇아 사는 삶

그 사람은 자기 천복을 한번도 좇아보지 못하고 산 셈입니다. 천복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성공으로 사는 삶이 어떤 삶일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평생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해보고 사는 그 따분한 인생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는 학생들에게 늘, 너희 육신과 영혼이 가자는 대로 가거라, 이런 소리를 합니다. 일단 이런 느낌이 생기면 어느 누구도 우리 삶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226) 천국이 아닌, 현세에서 천복을 경험하기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깊이와 경험과, 존재방식이 있어요. 종교인들은 죽어서 천국에 가기 전까지는 끝내 천복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주장하지요. 그러나 나는, 살아있을 동안에도 이런 종류의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게 곧 천복이라고 생각해요. 천국에서는 하느님을 우러러보는, 생전 안 하는 경험을 하니 대단하긴 하지요. 하지만 우리 자신의 경험은 바로 이곳에서 하는 것이지, 천국에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일부 종교인들은 다소 현세탈피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 세상은 힘들 수 밖에 없어'라는 좌절감을 품고, 항상 어느 정도의 무기력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 또한 천국이 있다고 믿는 종교인이지만, 현세와 천국을 극단적으로 분리하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사람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 이 세상에서도 충분히 충만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존재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충만함, 그리고 그것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삶의 태도는 크게 변할 수 있다.


(233)
의식의 변모 - 신화의 본질적 속성

핵심은 자신을 버려서 자신을 더욱 높은 목적, 혹은 타인에게 준다는 겁니다. 이것만 알면 이 자체가 바로 궁극적인 시련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지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진정으로 참구한다면, 진정으로 자기를 보존할 방법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의식의 영웅적 변모의 과정에 든 거나 다름없습니다. 결국 모든 신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의식의 변모입니다.

 

(239) 우리에게 숨어있는 영웅의 기질

모이어스: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어쩌면 영웅의 기질이나 자격 같은 것이 우리에게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캠벨: 우리 삶이 우리 기질의 잠을 깨웁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볼 필요가 있어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모습 이상의 무엇을 촉발시킬 만한 상황으로 자신을 던져 넣을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우리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이하의 무엇으로 떨어져서는 안됩니다.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고난의 과정에 던져넣는 것은 당연히 불필요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나의 의식 속에 가둬서는 안된다는 견해에는 동의한다. 대학생활을 보내며 나는 내가 생각보다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고, 도피하지 않고 사회 생활에 부딪히며 내가 얼마나 의미를 추구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변혁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을 구하고, 업적을 이루는 것도 영웅의 면모지만 - 지속적으로 자신의 새로운 기질을 발견해가고 그 기질을 발현할 기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영웅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 나는 내 기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영웅이 되기는 한참 멀었지만, 내 안의 새로운 자질을 발견하는 데 두려움을 떨쳐버렸다는 것에 감사하다.

(262) 교육자료로서의 신화

모이어스: 우리가 아기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의 의식 아래에는 이미 어떤 기억이 분명히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군요.

캠벨: 거기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이 얼마나 어마어마한가를 알면 더 놀라게 되지요. 아기는 엄마의 젖꼭지가 입술에 닿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압니다. 아이의 기억에는 우리가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붙박이 행동체계가 있어요. 우리는 이걸 본능이라고 하지요. 이게 바로 생물학적 기반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조금 더 지나면 외부로부터 강제를 당할 때마다 거북하고 두렵고, 죄의식이 생기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 시기가 우리의 가장 까다로운 심리적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인거죠.

 신화라고 하는 것은 이런 문제를 이해하게 하는 데 필요한 기본 교육자료였어요.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우리에게 이런 신화교육을 베풀고 있지 못해요.

  집단적 행동체계의 교육자료로서의 신화는, 장기간 세대에 걸쳐 전승되면서 그 생명력이 유지될 수 있었다. 그리고 각 세대마다 경험치들이 그 속에 녹아들어가서, 살아있는 지혜로서 가치가 있었다. 
  한편, 지금 우리 사회의 집단적 행동체계의 교육자료는 대중매체가 일부 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 자체로는 사실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본다. 문제는 대중매체의 생명력은 매우 짧다는 것이고, 한 세대가 끝나기도 전에 그 생명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다음 세대는 다시 다른 매체를 통해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세대간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70) 의식을 다루는 법

자연의 힘이야말로 우리 생명의 힘이요,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인도할 궁극적인 목표인 것이지요. 우리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사고를 하되 가게를 운영하는 것처럼 사고를 해요. 하지만 의식은 우리 인간 존재의 부수적인 기관일 뿐, 의식이 우리의 존재를 통제하게 하면 안됩니다. 의식은 기가 한풀 꺾인 상태에서 우리 인간성을 섬겨야지, 우리 주인 노릇을 해도 좋은 존재는 아니지요. (중략)

이 세상에는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할지를 남의 말에 따라 결정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의식이나 이성은, 근대 철학에서 인간의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캠벨은 의식을, 우리 안의 본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해석하고 있다. 인간들이 천복을 누릴 수 없도록 억압하는 것이 의식이라면, 이에 어느 정도의 제한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한편, 내가 이분법적 사고에 머물러있기 때문인지, 의식이 기가 한풀 꺾인 상태에서 발현될 인간성에 대한 기대보다는 예기치 않은 혼돈의 상태에 대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272) 내 안에 갇힌 용 찾기

모이어스: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을 죽일 수 있습니까? 우리 개인이 반드시 해야 하는, ‘드높은 영혼의 모험은 무엇입니까?

캠벨: 그대의 천복을 따르라는 겁니다. 천복을 찾아내되, 천복 따르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모이어스: 우리의 일입니까 삶입니까?

캠벨: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면 바로 그겁니다. 만일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게 바로 우리 안에 갇힌 용입니다.

 

(273) 먼저 자신을 구하라

우리 자신을 구하면 세상도 구원됩니다. 생명력이 있는 인간의 영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여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영혼이 없는 세계는 황무지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무엇무엇을 바꾸고, 법을 바꾸고 하다 보면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천만에요!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은 나름대로 유효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여기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입니다.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선 그 생명이 우리 안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알아내야 합니다.

(중략)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혼자 해야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용은 자아에 속박된 자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용 우리에 갇혀있어요. 분석 심리학은 용을 쳐부수고 무너뜨림으로써 우리를 더 넓은 관계의 마당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대인은 저마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 모든 노력의 과정이 매순간 기쁨으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성취의 기쁨은 찰나이고, 그 성취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은 자주 좌절과 고난을 맛보게 된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러한 고난과 좌절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희생으로 여기고 당연시여기게 되었다. 자신 안의 에너지가 점점 말라가는 것도 모른 채, 목표를 위해 살다보니 어느순간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노력해야 하는 고난의 순간들보다는,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을 잠식하며 살아갈까봐 무서웠다. 은연중에 내가 세운 목표를 나의 존재이유와 동일시하면서,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나의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나에게는 이런 생각이, 내 안의 용이 아니었나 싶다. 내 안의 생명력을 잃지 않아야, 내가 세운 목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286) 행복을 찾아 그에 머물기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행복을 관찰하는 데는 약간의 자기분석기술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남이 뭐라고 하건 거기에 머물면 되는 겁니다. 내 식으로 말하면 천복을 좇으면 되는 겁니다.

 

(343) 서구 문화의 전통으로서 개인주의의 기원

모이어스: 결국 사랑을 경험하겠다는 용기가 전통에 반하는, 다시 말해서 교회 전통에 반하는 자기만의 경험에 뛰어들게 했겠군요. 그런데 이게 어째서 서구 문화에 기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까?

캠벨: 바로 그 용기 덕분에 서구 문화에서 개인이 중요해지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종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남들에게서 이어받은 체험이 아닌 자기만의 체험, 그 체험에서 우러난 신념을 중요시할 수 밖에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가치란 무엇인가. 이런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은 획일적인 체계를 무너뜨립니다. 획일적인 체계는 기계적인 체계입니다. 기계라고 하는 것은, 같은 공장에서 나온 다른 기계와 똑 같은 기능밖에는 발휘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개인주의가 대두되면서 그것이 무너지게 되는 겁니다.

 

(347) 천복을 따르는 자세

자기 천복을 따를 때는 어떤 사람의 어떤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지 내 삶과 행동은 나름의 가치를 지녀야 하는 겁니다. 사랑을 선택하는 데도 그래야 하지요.

 

(350) 개인주의의 근간

모이어스: 자기 손으로 자기만의 삶을 살고자 하는 서구식 개인주의는 이런 낭만적인 관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캠벨: 동양의 이야기에서도 이런 개인주의를 읽을 수 있긴 합니다. 그러나 동양에선 이게 사회적 시스템이 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게 서구 사회에서는 사랑의 이상적인 모습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모이어스: 자기 경험을 지혜의 원천으로 받아들이는, 자기 느낌의 경험에서 우러난 사랑이 그렇다는 뜻입니까?

캠벨: 그게 바로 개인주의입니다. 서구 선진사회는 개인을 살아있는 실재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사회의 기능은 반드시 개인을 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개인을 꽃피게 하는 것이 사회의 기능이지, 사회를 꽃피게 하는 것이 개인의 기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365) 결혼의 본질

모이어스: 청교도들은 결혼을 교회 안의 작은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결혼을 하면 날마다 사랑해야 하고 날마다 용서해야 하니까요. 말하자면 사랑과 용서의 성사(聖事)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캠벨: 더 정확하게는 시련의 성사라고 할 수 있겠군요. 결혼함으로써 사람은 자기를 그 개인보다 더 귀한 것에 복속시킵니다. 진짜 결혼 생활, 진짜 연애는 바로 이런 관계 안에 있어요. 우리도 이런 관계 안에 있어야 하는 겁니다.

 

(393) 영적 잠재력을 반영하는 신화

신화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의 영적 잠재력을 반영하고 있어요. 바로 이 신화 이미지를 명상하면 우리 내부에 있는 이 잠재력을 촉발할 수 있는 겁니다.

 

(395) 비교신화학의 발견

비교신화학 강의를 시작하면서 사실 나는 두려웠어요. 학생들의 종교적인 신앙을 허물어뜨리는 것이 아닐까 했던 거지요. 그러나 정반대가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학생들에게 종교 전통이라는 것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되었어요. 그런데 학생들은 서로 다른 문화권의 이미지를 비교하다가 종종 자기네 종교의 이미지가 지닌 전혀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고는 합니다.

(중략)

모이어스: 그러니까 다른 이들도 똑같은 앎에의 갈망을 체험하고, 인류의 언어를 초월해 있는 체험을 표현하기 위해 비슷한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것을 아는 일은 신앙을 돈독하게 할망정 신앙에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군요.

 

(412) 내 안의 잠재력을 사는 일 천복을 따르는 것

적어도 목적이 있는 인생은 완전한 인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 서로 다른 목적이 복잡하게 얽힌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나 우리가 체현하고 있는 어떤 존재에는 잠재력이 있는데, 우리 인생은 바로 그 잠재력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누가 나에게, 그럼 당신은 그 잠재력을 어떻게 사오?”라고 묻겠지요. 내 대답은 천복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안에는 우리가 중심에 이르렀을 때를 아는 어떤 것이 있어요. 우리가 바른 궤도에 들어섰는지, 혹은 궤도에서 이탈했는지를 아는 어떤 것이 있어요. 만일 돈을 벌기 위해 그 궤도를 이탈한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잃는 겁니다. 중심에 머물기 위해 돈 버는 일을 포기한다면 그 사람은 천복을 얻는 겁니다.

 

3.     내가 저자라면


1)
   
책의 형식 
  <신화의 힘>이 가진 강점이자 약점이, 대담 형식으로 쓰여졌다는 점이다. 사실 두 사람의 대화 형식이기에 시작은 편안하지만, 책 속에는 대화 형식보다는 이론적 정리가 필요한 부분도 꽤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신화의 사회적 기능이나, 여러 문화권의 신화를 비교하는 부분에서는 대화 형식보다는 일인칭 해설의 형식이 내용 전달에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핵심어라고도 할 수 있는 천복이라는 단어에 대한 개념이, 대화 형식 속에서는 귀납적으로 찾아질 뿐, 조금 더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원어로 천복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아봤더니 bliss 였고, 이 단어의 원래 뜻은 더없는 행복, 지복이다. 나는 天과 福을 조합하여 하늘에서 개개인에 내려준 복’ - 사람이 가진 고유한 달란트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때문인지 책의 초반부에는 천복을 아주 기능적인 것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내가 저자였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형식을 유지하기보다는 중간중간에 신화학적 설명이나, 이론을 첨가하는 부분을 추가했을 것 같다.

   2) 책의 구성          
     <신화의 힘>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1,2장에서는 우리에게 너무나 멀리 있는 것 같은 신화의 세계를 상기시키면서, 신화에 점점 익숙해지도록 한다. 3장부터 신화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러 원시부족들의 이야기, 실존했던 샤먼을 소 개 하면서 신화의 기원을 언급한다. 4~7장은 신화의 여러가지 모티브들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일상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소개한다. 영웅담, 각종 통과의례, 탄생신화, 그리고 결혼까지. 신화의 세계를 탈피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많은 부분이 이미 신화에서 왔다는 것과, 신화는 극복이나 탈피의 대상이 아니라 본받고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캠벨은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신화의 힘>이고, 어디까지나 신화를 설명하는 데 방점이 있으므로 우선 신화를 소개하는 데 무게를 둔 전개 방식에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다만 내가 엮은이였다면, 각종 신화를 소개하는 것 만큼이나 - 이러한 모티브들을 개인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시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천복을 따라 배우자를 구하거나, 일을 선택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천복을 따라 이러한 선택을 했던 옛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천복을 따라 사는 것이 힘든 것은 캠벨도 대담을 통해 여러 번 표현했지만,(천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 특히 변화에의 두려움, 진로에 대한 두려움이 날로 커지는 2010년의 현실을 캠벨과 모이어스가 알았다면 - 분명 이들은 현실에의 적용 부분을 훨씬 강조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책의 내용

         책에서 말하는 내용은 반복적이고도 명확하다. ‘천복을 따르는 삶을 살라는 메시지다. 조금 아쉬운 것은, ‘내면의 소리를 따라 사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나아가, 천복을 따르는 삶과 따르지 않는 삶을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셉 캠벨의 말대로라면,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는 천복을 따르는 삶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천복을 따르긴 커녕, (무엇이 되었든) 어떤 대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내하는 삶의 방식 자체가 생소하다. 그리고 천복이 아닌 다른 것을 따라 살 수 밖에 없어서 그렇게 하기로 결단한 사람에게는, ‘그 삶이 불행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오랜 시간 자신의 천복을 잊지 않고, 마침내 천복을 따라 살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의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의 메시지가 이분법적으로 들리는지도 모른다. 고백하자면 우리는 직장을 다닐 것인가 말 것인가’, ‘다시 공부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등의 극단적인 이분법적 시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런 상상력 결핍의 프레임 속에서 천복을 따르라는 그의 논리는 자못 무섭기도 하고, 적용이 어려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의의는, 잊혀진 내면의 소리를 꿈꾸고 나의 천복이 무엇인지 상상해보는 즐거움을 준다는 데 있다. 상상력의 근육을 키워서 그의 메시지가 이분법적으로 읽혀지지 않고 그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낄 때까지, 나는 몇번이고 이 책을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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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2011.02.21 13:30:52 *.236.3.241
1차 합격자 공지 글에도 댓글을 달았지만, 북리뷰에 대한 요구사항 수정을 제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합격자 공지가 나자마자 그글을 프린트해두고 그것만 봤던 터라..)특히 문제가 되는 건 1. 저자에 대한 평가 부분이네요. 말없이 수정해서 올리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절대 적절한 방법은 아니겠지요... 요구사항에 맞게 수정해서 오늘 내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댓글은 지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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