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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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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27일 15시 54분 등록

꿈의 레이스 2차 관문 둘째 주 과제

공감의 시대 (The Empathic Civilization) Jeremy Rifkin (제러미 리프킨/ 이경남 옮김 , 민음사 (2011 2 28일 낮 12시까지 제출)-Book Review

 

1. 저자에 대하여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1 페이지)

 

             저자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 체제 및 인간의 생활방식, 현대과학기술의 폐해 등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세계적인 행동주의 철학자이다. 1945년생으로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그후 워싱턴시의 경제동향연구재단(FOET)을 설립해 현재는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변화가 경제, 노동,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활발히 집필을 해왔다. (출처:http://terms.naver.com/item.nhn?dirId=708&docId=6503 )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분의 다른 저서들에 대해서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하게 되었다. 일단 공감이라는 한 주제에 대해서 사회의 다양한 면들 그리고 역사적인 시간관념까지 아우르는 그의 박식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 이전의 저작들에 대한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계속적인 주제에 대한 천착이 가져온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단 무엇을 논하던지 그것이 실천성과의 연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저자의 글들이 공중부양으로 흩어지지 않고 마음에 와 닿았다. 대개의 경우는 자신의 논리와 즉 생각과 실천이 함께가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 저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아마도 그렇기에 더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각계 각층의 리더들 및 정부의 자문을 하면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주길 바래본다. 이 분의 책에서도 나오지만 한 석학의 잘못된 주장이 얼마나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1부에서 심리학의 대부 프로이드의 영향을 참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이 전의 책들 즉, 1995년 발표하여 노동시간 삭감을 위한 사회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노동의 종말>과 그 밖에 <엔트로피>, <생명권 정치학 >, <바이오테크 시대>,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 등의 저서들을 탐독해보고 싶다. 주로 종말 시리즈인 것 같은데 모든 주제가 결국 인류와 이 세계의 관계성에 대해 풀어가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인간에 대한 탐구가 그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단 어마어마한 양에 압도되었었는데, 집필이 잘 되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주제가 흥미로워 공감이 쉬웠기에 그랬던 것인지는 몰라도 술술 잘 읽혔던 것 같다. 첫 주의 저자 캠벨을 타고난 이야기 꾼이라고 했다면 제레미 리프킨의 경우는 정리의 왕인 것 같다. 방대한 양이 하나로 꿰어져서 도서관 사서처럼 잘 정리가 되어 있는 기분이다. 마치 한 편의 재미있는 논문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이 저자를 대하면서는 몇시간이고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겠구나 싶은 느낌과 함께 통섭과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실질적으로 이렇게 느끼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서 어떠한 실천을 하고 있으며 철학과 실천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은 어떠한 것인지 직접 들어보고 싶다.

 

공감의 시대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

http://www.youtube.com/watch?v=1-7BjeHepbA


제러미 림프킨과의 인터뷰

1. http://www.youtube.com/watch?v=P2bdSV_AcVI&feature=related

2. http://www.youtube.com/watch?v=K_GzhMLnsQ0&feature=related

3. http://www.youtube.com/watch?v=ttJh9TFcdso&feature=related

 

Jeremy Rifkin - Can we prevent the end of the world in 50 years? 

1. http://www.youtube.com/watch?v=6JKWhxNoq5k&feature=related

2. http://www.youtube.com/watch?v=HsKlnS_ZT8Y&feature=related

3. http://www.youtube.com/watch?v=RniH_u3Py8Y&feature=related

 

 Speech Jeremy Rifkin at Rotterdam Global Urban Summit

1. http://www.youtube.com/watch?v=cl1DTcPVEjE&feature=related

2. http://www.youtube.com/watch?v=8josEtJ93Ok&feature=related

3. http://www.youtube.com/watch?v=8zzVWOLEjtE&feature=related

4. http://www.youtube.com/watch?v=bqfbus2dxvc&feature=related

5. http://www.youtube.com/watch?v=908gIEsyeE4&feature=related

6. http://www.youtube.com/watch?v=BKaY-5O5AKU&feature=related

7. http://www.youtube.com/watch?v=pPBZ7fafuYc&feature=related

8. http://www.youtube.com/watch?v=K-ylOXiwt9k&feature=related

 

RSA Lecture (그림)

http://fora.tv/2010/05/06/Jeremy_Rifkin_The_Empathic_Civilization_Animated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책을 읽다 마음에 들어 온 인용문을 인용 페이지와 함께 발췌하여 적을 것 (A4 10페이지 이상)

 

             공감이라는 용어는 1872년에 로베르트 피셔가 미학에서 사용한 독일어 Einfuhlung감정이입에서 유래되었다. 감정이입은 관찰자가 흠모하거나 관조하는 물체에 자신의 감성을 투사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용어로, 실제로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원리를 밝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빌헬름 ㄷ딜타이는 이 미학 용어를 빌려 와 정신 과정을 설명하는데 사용했다. 그에게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것을 의미했다. (p.19)

이 구절을 읽는데 나의 삶의 모태가 되고 있는 4자 성어 역지사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도 늘 강조하시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을 해 본 후 말하고 행동한다면 불편한 상황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이다. 그에 대해서 미학에서 나온 감정이입라는 용어는 사회 전반에 걸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의 표정만 보아도 그 심정을 이해하는 것 즉 감정이입을 통한 공감이야말로 진정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만드는 기본 바탕이 아닐까

 

             어떤 사람이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성의껏 들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장 눈가가 촉촉해진다. 다름 아닌 기쁨의 눈물이다. 그는 속으로 생각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이 다 있군요. 이 사람은 마치 내 입장에 서 본 사람 같습니다. (p.22)

회사에 입사할 때 내게 인사 담당자가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의 장점이 무엇입니까?

그 때 경청이라고 했다. 누구보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에는

탁월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집에와서 내가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장

점이라고 얘기했나해서 고민했던 적이 있는데 후에 경청이라는 책도 나오고 이런 저런 책들

을 봐도 그건 매우 큰 능력이자 소중한 나의 태도라고 생각이 들게 되었다. 사실 심리상담

의 기본도 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으로 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경

청하기만해도 우울증이 사라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음이 열리는 것이다.  내가

니 맘 다 안다 라고 얘기하며 그저 그 사람을 꼬옥 안아줄 때에 우리는 깊은 감동을 하게

된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을 정도로 진심 어리게 하나님

의 마음으로 듣는자가 그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이겠지.

 

       할로 팀은 두 개의 인조 어미 원숭이를 실험실에 놓았다. 첫 번째 것은 나무토막을 스폰지 고무로 덮어 보풀이 이는 부드러운 면으로 감싸 놓은 원숭이였다. 그리고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백열 전구를 뒤에 놓았다. 그에 비해 두 번째 어미 원숭이는 조금 불편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철망으로 만들어 방사열로 따뜻하게 만든 것이었다. 두 원숭이 모두 젖이 나왔다. 하지만 새끼 원숭이들은 천으로 만든 어미에게만 안기려 했다. 젖이 떨어졌을 때도 새끼 원숭이들은 천으로 만든 어미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철망으로 만든 어미에게 가면 젖이 나오는데도 그쪽으로는 가려 하지 않았다. 새끼 원숭이들은 배고파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러도 철망 어미에게는 가지 않았다. ... 사람이 젖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p.27~28)

이 실험 내용을 읽고서 난 눈물이 날 뻔 했다.  원숭이들이라고 그런 감정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생명체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사랑이구나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잠시 뜨거워졌다. 이렇게 뜨거운 존재 자체의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것 그것을 우리가 너무 이기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이제서라도 이러한 인간성을 재조명을 통해서 새로운 해결책이자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면 조금 더 희망적일 것 같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해 알아낸 것이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너에게서 나의 일부를 확인하고 너는 내 안에서 너의 일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p.54)

참 아름다운 말인 것 같다. 내 안에 너 있다... 드라마 대사가 떠오른다. 사실 인류애로 넘어가는 것도 대개의 경우 (성인이 아닌 이상) 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발전이 되고 그런편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가 생기면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다른 집의 아이들에게도 그 사랑이 넘어가고 내 아이를 넘어선 우리들의 아이로 확장되고, 내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넘어서 우리가 함께사는 이 지구에 대한 범 지구적인 사랑으로 커져 나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진정성이란 결국 우리가 하나임을 서로의 일부가 일부로 묶여있다는 자타불이 정신 속에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에 깊이 공감한다.

 

             아무리 기존의 권위 있는 학설과 지혜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인성은 자율, 즉 혼자만의 섬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의식과 애정과 친밀함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겨우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자율성이 확립되어야 자아 발달이나 자아 의식을 제대로 갖출 수 있다는 기존의 지혜는 권위를 읽기 시작했다. ... 자의식과 자아인식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깊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이들은 보았다. 이때 우애적 유대감을 만드는 수단이 바로 공감이다. (p.29)

우애적 유대감을 만드는 수단이 공감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유대감이라는 것은 서로간의 떨림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너와 내가 있다는 것 상대방을 인지하고 그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는 그 지점에서부터 공감이 그 거리를 이어주는 끈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의 일부가 되어 의미 있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심리적 수단이다. 그런 초월적 개념은 자아를 넘어, 보다 더 큰 공동체에 참여하고 소속되며 보다 복잡한 의미의 그물에 끼어 묻히는 것이다. (p.30)

통하였느냐? 이 질문이 바로 그 공감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한다 누군가와 통한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관계와 관계가 얽히고 섥히며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인드라망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울과 거울 사이에 서로의 모습을 비추이며 그렇게 관계 맺고 있는 구조 속에서 마음을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 그래서 실천적인 삶을 나누는 것이 바로 공감이 바탕이 된 삶이자 인간적인 삶이 아닐는지.

 

             천년만년 잘살자고 우리가 평생 착취하고 써대는 엄청난 동물과 지구 자원을 생각해 볼 때, 그런 대량 살육은 몸서리 쳐지는 현실이다. (p.31)

지금의 이 무지막지한 상황이 사실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점에 또한 흔한일이 아니라는 것에 중점을 두어서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즉 희망을 제시하고 싶은 것이다. 2030년 정도면 여름에 북극해에서 더 이상 얼음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동물들은 자신이 배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 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들의 이기심은 어떻게 된 것인지 잉여 자본이 있음에도 나와 너의 관계를 무시하고 자신 안의 자폐증 속에서 점점 썩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공감이 중요한 것이고 어쩌면 엔트로피의 증가와 공감이 함께 이야기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만큼 위급함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세계적 차원의 공감 의식에 바짝 다가선 만큼, 우리 자신의 멸종도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사실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역설이다. (p.35)

위기가 가까워져야 공감대 형성의 긴장도가 더 커지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상황인데 이것이 엔트로피 법칙과 함께 엮여서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는 것도 참 재밌는 것 같다. 촛불시위, 월드컵의 붉은 물결, 인터넷을 통한 독도 수호 운동등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는 이러한 공감의식 차원과 엔트로피 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당장 해야 할 일은 인류사의 수수께끼를 깊이 있게 검토하는 일이다. 그래야 인류사의 작동 원리와 험난한 경로를 제대로 파악하여 지금의 곤경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에겐 고립감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 없이 다른 사람과의 유대감을 추구해가며 보다 복잡한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 내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여정은 이러한 인간의 경향과 우주를 지배하는 에너지 법칙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시작한다. 인류사의 근간을 이루는 변증법은 공감을 확장하고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것 사이에 놓인 끊임 없는 피드백의 고리이다. (p.36~37)

캠벨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라 생각된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 것처럼 캠벨은 신화를 탐구했고 제레미 리프킨은 인류사의 작동 원리를 살피고 있다. 그래야 그 근원을 알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생각도 찾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단순한 전제일수록, 그와 관련된 종류는 더 다양해지고 적용범위는 더 넓어진다. 그럼 점에서 나는 고전 열역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확신컨대 기본 개념이 적용되는 테두리 안에서 결코 뒤집히지 않을 것은 우주의 총량에 대한 물리학 이론 뿐이다. (p.37)

 

             우주의 에너지는 늘 일정한 반면, 그 형태는 끊임없이 바뀐다. 그리고 그 방향은 일방적이어서 사용 가능한 것에서 사용 불가능한 쪽으로 움직인다. 열역학 제2법칙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p.37~38)

 

             추가 에너지를 사용하면 전체 엔트로피도 증가한다. (p.39)

 

            생존을 위해 환경에서 얻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사용된 에너지로 바꾸어 유지되는 조직이 바로 사회이다. (p.41)

 

             유기체가 먹이로 삼는 것은 네거티브 엔트로피이다. 끊임없이 환경에서 네거티브 엔트로피를 끌어감으로써... 유기체는 쉬지 않고 환경에서 질서를 빨아들인다 (p.42)

 

             그렇다면 진화의 사다리를 오르는 모든 유형의 생명은 비평형 질서 상태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전체 환경에서 더 큰 무질서를 초래한다는 말이 된다. 에너지는 모든 살아 있는 유기체를 통해 끊임없이 흐르며, 높은 수준에 있는 시스템으로 들어가 그 시스템을 소모하여 더 낮은 상태의 시스템으로 만든다. 한편, 유기체가 진화할수록, 평형을 피해 자신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더 많아진다. (p.43)

 

             그는 한 문화의 업적이 높은지 낮은지는 개인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의 기능은 인간의 편리를 위해 작동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이용하고 통제하는 것 이라고 화이트를 위시한 인류학자들은 거듭 강조한다. (p.45)

 

             에너지와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결합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의 방정식을 바꾸어 왔다. (p.47)

                                                  

                           비생물 시스템과 모든 생물 시스템은 분산 구조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시스템 전반에 끊임없이 흐르는 에너지로 자신의 구조를 지탱한다.  에너지의 흐름은 끊임없는 파동 상태로 시스템을 유지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 파동의 폭은 규모가 작아 음성 피드백으로 조종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 파동의 폭이 너무 커서 시스템이 적응할 수 없게 되면 양성 피드백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파동은 스스로 몸집을 키우면 증폭은 쉽게 전 시스템을 압도할 수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피크오일에 가까이 다가서고, 숨 돌릴 겨를을 주지 않는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오느라 우리 문명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이런 현상이다. (p.50)

            

             인간은 열정적으로 현실에 더 가까운 존재 속에 자신을 쏟아 붓는 개혁가이자 탐험가 (p.52)

 

             인간이 의식을 가제 된 진화적 존재라면, 그것은 분명 시간적, 공간적 관계의 현실을 열정적으로 추구하여 우주에 가담하려 애를 쓰는 그 자신의 의식 때문일 것이다. (p.52)

 

             우리는 결국 인간 여정에 어떤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엿보기 시작한다. 즉 보다 넓고 보다 포괄적인 현실 영역을 향한 자아 의식의 심화, 인간 의식의 발전, 공감의 확장은 우리가 존재의 신비를 탐험하고 새로운 의미의 영역을 발견하게 해 주는 초월적 과정이다.  (p.52)

 

             우리 각자가 주변 환경에서 개인적인 엔트로피의 빚을 늘려 가는 덕에 우리의 복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p.53)

 

             내가 나 자신에 관해 알아낸 것이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너에게서 나의 일부를 확인하고 너는 내 안에서 너의 일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p.54)

 

사회가 복잡할수록 자아의식은 더 확실해야 하고 다양한 종류의 다른 사람들과 접촉이 많아야 하며 공감이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져야 한다. 인간 본성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새로운 견해가 최근에 모습을 드러내며 위력을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앞으로 몇 세기 동안 우리의 사회적, 환경적 관계를 새로이 파악하여 적응할 방법을 논의하는 원대한 계획에도 조금씩 탄력이 붙고 있다. 이제야 우리는 우리의 모습에서 호모 엠파티쿠스 homo empathicus를 찾은 것이다. (P.54~55)

 

             근본적으로 정에 민감하고, 우애를 갈망하고, 사교적이며, 공감을 넓히려는 성향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적어도 우리는 공감-엔트로피의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내어 생물권에서 지속 가능한 균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p.55)

 

             모든 개인은 자신의 물질적 행복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를 자기 속으로 합병하려 한다는 것이다. (p.59)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에너지 복합체는 가부장적 아성을 허물었고 여성을 수백 년 동안의 노예, 농노, 하녀의 신분에서 해방시켰다. 인쇄 매체, 특히 연애 소설은 여성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때부터 여성들은 자아를 발견하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p.68)

 

             소설이 자아를 반성하는 도구였다면, 전화는 잡답을 나누며 여성의 공감대를 형성해 주는 도구였다. (p.68)

 

             공감이라는 매트릭스에서 아이를 자라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p.76)

 

             위니콧은 하나의 관계가 하나의 개인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개인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개인을 만든다. 단순한 지적이지만 이 같은 그의 관찰은 세상에서 자신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행사하려는 자족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을 강조하면서 근대성의 핵심에 반기를 들었다. (p.77~78)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어서 아기에게 한몫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하면 그 관계는 좌절되고 자아의식의 발달도 억제된다. (p.79)

 

             수타는 타고난 유대감에 대한 요구를 유아가 자기보존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보았고 그것이 인간 본성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p.80)

 

             수티는 요한 하위징가처럼 놀이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유대감을 만들고 신뢰를 쌓고 상상력과 창조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놀이는 우리의 실존적 외로움을 극복하는 수단이고, 최초의 놀이 친구였던 엄마와 함께 처음 이룩했던 유대감을 되찾는 곳이다. 수티는 하나의 인간이 될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핵심 요소가 유대감과 놀이라며 이렇게 주장한다.

 

             유아기와 성인 사이에 낀 이 기간은... 좀처럼 만족을 모르는 사회적 요구의 지배를 받으며, 이런 요구는 놀이하는 과정에서 만족을 위한 인간의 관심이라는 탄력적 에너지를 사용한다

 

             다정함을 성적 각성이 미약한 형태로 승화된 것이라고 여겼던 프로이트와 달리 수티는 다정함을 날 때부터 스스로를 표현하는 근원적힘이라고 보았다. 그의 다정함이라는 관념은 사회적 관계를 만들 때 공감으로 결합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코후트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p.81)

 

             최초의 상태는 완벽한 힘을 구비하는 것이 아니다. (p.82)

 

             얻는 것과 잃는 것을 구별하는 어떤 의식도 있을 수 없다. 엄마와 유아가 주고받는 것은 전적으로 기분 좋거나 불쾌한 것이고, 이런 관계는 두 사람에게 어떤 우월감이나 패배감도 주지 않는다 (p.82)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공생적 관계여서 애정이라는 선물을 주고 받는 행위에 적절한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 상호성이 사회성의 핵심이며 그런 상호성 위에서 관계가 수립된다. 상호성이 막히면, 자아의식과 사회성의 발달은 방해받고 정신병리학적 증세가 나타난다. (p.82)

             인간의 아이나 동물 새끼들은 유별날 정도로 호기심이 많고 묻기 좋아한다. 그래서 보통 애착 대상에서 자주 떨어지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 탐구적 행동은 애착 행동과는 정반대이다. 건강한 개인이라면 보통 이 두 가지 행동이 번갈아 나타난다.

 

             아이가 안정적인 기지를 거점 삼아 마음껏 세상을 탐구할 수 있게 격려한다 (p.90)

 

             적응을 잘하고 신뢰를 주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되려면 안전한 느낌을 갖고 독립심을 갖추고 다른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공감해주는 감성이 서툰 부모는 결코 그런 아이를 만들 수 없다. 일관된 부모상이 없는 아이는 시작부터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를 수립할 수 없다. (p.91)

 

             개인이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만든 애착 대상과 자아를 대표하는 유형은 어른이 되어서도 좀처럼 바뀌지 않고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p.92)

            

             당신이 어떤 관계에 있다면 그 관계는 당신의 일부이다. (p.97)

 

             거울신경세포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이는 개념적 추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서이다. 생각이 아니라 느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리촐라티는 말했다. (p.102)

자타불이, 인드라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하는 문장이다. 그리고 과학적 발견이다. 공감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을 통해서 우리가 흔히 생활에서 느끼는 예를들어 슬픈 영화를 보고 주

인공이 울 때 함께 슬퍼한다던가 테레사 수녀의 모습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고하는사람

들의 증언을 통해서 우리는 공감이란 그리 멀리 있는게 아닌 삶의 한 부분이라는 걸 느낀다.

 

             공진회로는 의도를 부호화할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의 공감과 정서적 공명, 즉 마음이 서로 통한 결과로 나타난다. (p.103)

 

             마르코 야코보니를 위시한 학자들의 주장은 인간에게 공감은 내재되어 있으며, 공감이 우리의 본성이고 우리를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p.104)

너와 내가 존재함으로 사회가 형성되고 자타불이 함으로 결국 사회의 완성으로 가는 것이다.

 

             고등 동물에게도 대부분 우리와 공통되는 복잡한 감정이 들어 있으며 동물도 사랑할 줄 알 뿐 아니라 사랑받고 싶어 한다 . (p.112)

 

             놀이에는 한계가 없다. 놀이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놀이는 또한 실용성과는 별개의 공간에서 일어난다. 놀이 공간은 안전한 피난처이고 현실 세계에서 독립된 장소이다. 놀이 공간은 특정인의 소유가 아니라 사람들이 임시로 공유하는 가상의 장소이다. (p.117)

 

             놀이는 다른 사람과 무언가에 몰두하는 행동이다. 놀이는 혼자만의 쾌락이기보다 하나의 공유된 즐거움이다. 순수한 놀이는 수단이기보다는 본질적 의미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다. (p.117)

 

             진정한 놀이는 항상 자발적으로 시작한다. 놀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 놀이하는 사람은놀이를 좋아하기 Eoansd;마음놓고 놀이에 빠진다. 목표는 즐거움과 생명 본능의 재확인이다.... 인간이 자신을 자유로 이해하고 그의 자유를 사용하고 싶을 때 그 때 그는 놀이를 한다 라고 말한 사람은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였다. 놀이할 때보다 더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있는가? 그 때 놀이는 시시한 장난이 아니다. 놀이는 공감 의식을 확장하여 진정한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는 수단이다. (p.119~120)

 

             하위징아는 모든 문화는 놀이에서 생겨난다고 간파한다. 그는 이런 놀이를 통해 사회는 삶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드러낸다라고 말한다. (p.118)

 

             무의식적인 흉내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느낄 때 나타나는 반사적인 과정이라고 밝힌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최초의 적응 기능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결합해 주며 공감을 키워 주는 것이다라고 차트랜드는 말한다. (p.140)

주변에서 나를 보면 방청객같다고 할 정도는 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맞장구도 잘 치고 그 사람을 잘 흉내내는 것 같다. 즉 그 순간 깊이 공감의 시선으로 상대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러한 무의식적인 반응이 나타나지 않겠지.

 

             내 삶을 한결같이 지탱해 주던 그 무엇이 내 안에서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붙들 만한 것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알 수 없었다. 삶이 두려웠다. 삶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삶에서 어떤 것을 바랐다. (p.213)

예전에 트위터에 어떤 청년이 자살하고 싶다고 썼는데 그에 대해서 사람들이 격려하고 공감하는 글들을 올려서 한 청년의 목숨을 구했던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이것을 통해서 공감이란 한 생명을 구할 정도의 아주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다.

 

             네 안에 있는 것을 열매 맺으면 그것이 너를 구원할 것이고, 네 안에 있는 것을 갖지 못하면 네 안에 갖지 못한 것이 너를 사망케 할 것이다. .... 영지 주의자들의 예수는 하나의 완성된 인간, 자기 인식을 가진 인간이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향해 공감을 갖고 모든 살아 있는 존재로 그 공감을 확대시킨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 신약의 복음서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었을 때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구세주입니다. 이와 달리, <토마의 복음서>의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너 자신을 알게 되면(그리고 네 안에 있는 신을 알게 되면), 살아 있는 아버지의 아들이 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처럼 말이다. (p.299)

요즘.. 아니 요즘이라기보다 꽤 오랫동안 이 내 안의 열매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고 지난 번 캠벨의 저서를 읽으면서도 내 안의 씨앗이 죽어 열매로 태어나는 말을 들었을 때에 이거다 싶었는데 역시 대가들은 통하는지 이 책에서도 자신 안의 열매에 대한 부분을 가지고 소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진정한 기독교는 어찌보면 불교와 비슷하고 모든 종교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잘 보면 사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난 느낀다.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안에 예수를 영접한다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내 안의 불성을 찾아라라는 말과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 예수가 계시고 그 안에 부처있는 삶. 그리하여 내 자신이 진정 내 자신이 될 수 있는 소명을 되찾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말이다. 그 열매가 나를 사망케 하기 전에 그 열매를 맺기 바라며 난 이곳 변화경영연구소를 찾았나 보다.

 

             깨달음이 과연 인간의 나약함이나 육체성을 지닌 채 세상에 적극 참여해서 얻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나약함과 육체적 존재를 제거한 다음 내면의 세계로 침잠해야 얻어지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역사적 예수는 철저히 세상에 몰두했다... 예수의 삶은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동정적인 삶을 살도록 격려하고 영감을 주었다. (p.301)

감히 예수를 닮겠다고 얘기하겠다는 것 보다 점점 세상의 에너지 자원고갈되고 환경의 문제들이 심각해지고 지구촌이 하나되는 이 때에 그 무엇보다도 공감하고 동정적인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좀 더 세상의 일원으로서 지구촌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작은 실천이지만 공감을 바탕으로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지속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될 자유가 생기면 다른 사람의 곤경을 자신의 것처럼 경험하고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세계주의적 행동의 의미이며, 그런 개방적 태도를 통해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다른 환경과 다른 장소에서 다른 역할에 편하게 적응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하고 더 많은 경험을 통해 폭넓은 생각을 갖고 새롭고 의미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정체성도 풍부해진다. 그때는 속이는 것이 아니라 초연해진다. (p.346)

세계시민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험의 폭 증가와 실체적 경험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닐는지

 

             가까운 사람과 마음 놓고 나누는 대화는 우리가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줄 목적으로 상대를 선택했을 때, 한쪽의 만족은 다른 한쪽이 그 만족을 함께 누리기 때문에 더욱 배가됩니다. (p.355)

결혼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때라서 그러지 몰라도 결혼에 대한 생각을 많이 된다. 지난 번 신화의 힘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요즘의 결혼 세태가 과연 옳은 것인가 너무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전략적 제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닌지.. 진정으로 이렇게 사랑과 공감을 바탕으로 결성된건지 의심이 된다. 왜냐면 결혼과 함께 이혼율도 높아지고 있는 요즘의 세상을 보면 다시금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고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 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산다는 것이 곧 성장하는 것이고, 자연의 풍요와 더 많이 동화하는 것이며, 인간의 본성에 깃든 무한한 가능성을 생활 환경의 배경에 더 많이 투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인간을 서로 묶어 주고 그들이 가장 고귀하게 드러나는 우주의 위대한 힘과 무한한 결속을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한마디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 높고 더 좋고 더 풍요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각자의 모든 에너지를 묶는 것이고 우주에 깃든 신을 그 자체로 깨닫는 것이다. (p.432)

산다는 것이 곧 성장하는 것! 와우! 멋지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에 걸맞는 말이라고 생각이든다. 지금의 미약함에 불안해하지 말고 지속적인 성장을 향해 내 안의 에너지를 묶어내는 것 그것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존재의 감정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곳이다. 그 공동의 장소는 모두의 것이자 나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내 안에서 그곳은 모두의 것이다. 그곳은 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존재이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보편성이다. 그것의 진가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하다. 행동을 통해 나는 일반적인 것을 고수하기 위해, 일반적이 되기 위해 나는 나의 독자성을 벗어 던진다. 누구와도 닮지 않았지만, 정확히 말해 나는 모든 사람의 체현이다. (p.456)


정체성을 만들려면 사회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찾기 위해 부모의 현실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키고, 당연시 되는 기존의 권위에 어느 정도 의문을 가져야 한다.  (p.491)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관계는 우리 생존의 핵심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잉태되어, 태어나면서 관계를 시작하고,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p.504)


모레노는 공감적 참여를 통해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대방의 느낌이나 생각을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인 것처럼 상상하고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창의성을 풀어놓는다. 하지만 모레노는 공감을 단순히 창의적 영감을 자극하는 도구적 수단으로만 보지 않았다. 오히려 모레노는 공감이야말로 의식을 가진 책임 있는 인간을 만드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식은 '창의적 기능'을 촉발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때의 창의적 기능은 '자기 개발'의 또 다른 표현이다. 공감의 폭과 깊이가 클수록 자아 개발은 더욱 탄력을 받는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곤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공감의 강도가 줄어들면서 지켜보는 재미만 남는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딱한 처지도 너무 자주 보면 둔감해지고 심지어 '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보았을 뿐'이라며 선을 긋기도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뾰족한 방법이 없다. (p.537)


공감의 물결을 타고는 있지만 지구와 대다수 인류를 가난하게 만들고 있는 선택받은 소수의 인류가 과연 그들의 탈물질주의 가치를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작전 계획에 투입시켜, 더 늦기 전에 위기를 벗어나 그들 자신과 그들 공동체를 보다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미래로 향하도록 미리 손을 쓸 수는 있는가 하는 점이다. (p.565)


글로벌 미디어는 '소외되었던' 집단의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 내어 인생을 긍정하는 관점에서 수많은 공감의 채널을 여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큰 몫을 해냈다. (p.575)


새로운 공감 정신은 개인의 꿈의 변화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개인의 기회와 물질적 성공을 강조한 아메리칸 드림을 오랫동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고 이정표로 삼은 절대 기준이었다. (p.677)


사회적 집단의식은 대가족이나 이웃을 기반으로 삼는 조직체에 참여했던 방식에서 '사회적 네트워크'로 옮겨 가며, 지리적 한꼐를 초월하여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한데 모아주고 있다. (p.713)


             내 의도는 과학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확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경험이냐 추상이냐를 놓고 선택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할 인은 이둘을 통합하는 것이다. (p.752~753)

 

             보다 민감한 관찰자가 세계의 더 많은 부분을 자아와 합치시킬 수 있다. 그는 보다 넓고 보다 포괄적인 범위의 생물이나 무생물과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p.753)

 

             결정적인 시기가 닥치면, 우리는 하나의 행성을 공유하고 있으며, 모두가 그 하나뿐인 행성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고통이 곧 우리의 고통이라는 자각이 기정사실화될 것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이전투구는 당장의 엄청난 위기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협력하여 생물권 전체와 집단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맺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물권 의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p.760)                

 

            

 

 

3. 내가 저자라면 자신이 이 책의 저자가 되어 이 책의 전체적 뼈대를 논하고,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그리고 보완점을 평설할 것 (1페이지)

 

             전체적으로 방대한 이야기를 하나의 초점 즉 공감이라는 테마에 잘 맞추어서 쓴 것 같다. 사실 너무나 방대한 양이라서 쓰면서도 상당히 힘들었을텐데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게 만드는 것은 저자의 능력이 아닌가 싶다. 어떤 면에서는 흥미로운 논문을 한 편 읽는 것 같은 정도의 딱딱한 느낌이 수반이 되긴 했지만, 일단 주제 자체의 흥미가 높았기 때문에 하나의 주제로 많은 소재들을 통섭해 나가는 설정에서 많은 이점이 보인 것 같다. 전체적인 뼈대는 1장 호모 엠파티쿠스 2장 공감과 문명 3장 공감의 시대로 이어지는데 깔끔한 정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인류 본연의 모습을 기존까지의 개념을 보완하면서 설명하고 역사속에서 발전되어 온 공감과 문명의 상관관계를 풀고 지금의 다양한 현상 속 공감의 움직임들을 살펴 본 것은 깔끔한 정리라고 생각이된다. 아마도 저자의 지금까지의 다양한 저작 활동이 이렇게 강점으로 작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난 특히 1장과 3장이 좋았는데, 1장에서는 심리학에 워낙에 관심이 많았던 나의 개이적인 관심사 때문이기도 했고 인간 자체에 대한 분석이였기 때문에 또한 흥미로웠던 것 같다. 2장은 약간 지루한 점이 없지 않았는데 이건 1장 후반에서도 드러난 점인 것 같다. 비슷한 이야기들을 다른 소재들을 가지고 동어반복처럼 하다가 보니 독자가 느끼게 되는 그런 점이 아니였던가 옥의 티처럼 생각이 된다. 3장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매우 다이나믹하게 읽혔던 것 같다. 왜 공감의 시대라고 하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정리이자 이 책의 꽃이 피는 장면이니 당연히 가장 즐겁게 읽었던 부분이다. 게다가 지금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지식인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환경과 지구촌 시민으로서의 활동에 대해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장이여서 더욱 흥미로웠다. 구성적인 면에서는 인용이나 저자가 생각하기에 주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는 부분을 볼드체로해서 문단 중간 중간에 넣어주어서 좋았던 것 같다. 좀 더 늘어질 수 있는 독서의 리듬에 쉼표처럼 들어가서 환기의 작용을 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조금 더 보완하거나 추가한다면 지금 지구촌에서 실천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들에 대해서 참조할 수 있는 사이트나 프로젝트 소개 및 기타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언급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의 오픈형 결말은 약간 책임감이 낮은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실천하는 철학자에 맞게 자신이 몸담고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독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거나 장을 열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논문 같은 이 책의 특성상 어찌보면 이렇게 결말을 맺고 그 답에 대해서는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도록 한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IP *.167.3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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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1.02.28 09:06:37 *.236.3.241
반갑습니다, 6기 연구원 박상현입니다 ㅎㅎ
북페어라는 발등의 불을 처리하느라 그간 7기 연구원
레이스에 제대로 의견을 밝히지 못했네요. 앞으로 남은 2주동안
최선을 다하셔서 좋은 결과 얻기를 기원합니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북리뷰 작성에 들이는 시간을
늘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발췌문이 300페이지대에서 700페이지대로
뛰어넘는데,  이것으로 봐서는 책을 정독했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레이스에 참여하고 있는 동료분들과  비교해 보시고 신속히 보완점을
찾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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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선
2011.02.28 10:45:10 *.167.33.109
네 선배님, 마음만큼 다 반영되지 못한 것 같아서 저도 자숙하고 있답니다. 
뼈가되고 살이되는 말씀 깊이 새겨서 남은 레이스에 더욱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어짜피 개인적인 사유가 핑계가 될 수 없기에 더 피나는 노력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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