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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27일 21시 58분 등록

1.‘저자에 대하여’

 우리 시대의 독보적인 사회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는 리프킨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 체계 및 인간의 생활방식, 현대 과학기술의 폐해 등을 날카롭게 비판해 온 세계적인 행동주의 철학자이다. 1945년생으로 펜실베이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제학을, 터프츠 대학의 풀레처 법과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그 후 워싱턴시의 경제동향연구재단(FOET)를 설립해 사회의 공공 영역 수호하기 위한 계몽 운동 및 감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 세계 지도층 인사들과 정부 관료들의 자문역을 맡고 있으며 과학 기술의 변화가 경제, 노동,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활발한 집필 작업을 해왔다. 리프킨은 미국과 세계 각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수많은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했으며 환경과 기술 분야의 많은 분야에 대해 정부의 책임 있는 정책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리프킨의 업적 역시 논쟁의 여지가 있어왔고 그가 그의 관점을 촉진시키는데 사용했던 몇 가지 방법들과 과학적 원리에 따른 그의 주장이 반대자들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1989년 Time지에 리프킨에 관해 실린 기사의 제목은 ‘과학분야 안에서 가장 증오받는 사람’이었다. Stephen Jay Gould은 리프킨의 책에 관해 “학식으로 가려진 반-지성인의 교묘하게 구성된 책”으로 묘사하였다. 그럼에도 그를 New York Times는 “다양한 학문, 종교, 정책 분야에서 칭송되는 제레미 리프킨은 기꺼이 큰 생각을 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에 뛰어들며 사회와 윤리의 대변자로서 봉사한다”고 언급하였다. 1994년부터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워튼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과학기술의 새로운 조류와 그로 인한 세계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엔트로피>, <육식의 종말>, <생명권 정치학>등의 저서가 있으며, 특히 <노동의 종말>은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노동 시간 삭감을 위한 사회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고, <바이오테크 시대>는 생명공학 연구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여 사회적 경각심을 환기시켰다. <소유의 종말>에서는 ‘소유의 시대’는 가고 ‘시간과 체험의 상품화’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으며, ‘혁명적인 수소 에너지’ 시대의 도래를 <수소 혁명>은 경제, 정치, 사회의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소 에너지 체계의 미래를 진단하고 그 방향을 제시했다.

[출처]
http://kongwin.blog.me/120118482775
http://www.yes24.com/24/goods/4274976
http://familie4.blog.me/140124216068

책 앞부분에 소개된 내용
http://en.wikipedia.org/wiki/Jeremy_Rifkin#cite_note-8


http://www.thersa.org/events/vision/animate/rsa-animate-the-empathic-civilisation

베스트셀러 작가, 정책 자문관이며 사회적, 도덕적 대변인인 제레미 리프킨은 공감의 발달과 그것이 형성되어 온 우리의 성장과 우리의 사회를 깊이 있는 방법으로 조사했다. 이 동영상은 공감의 시대라는 책을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동영상을 아무리 올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아 링크를 걸어둡니다.)

 먼저 책 전체에서 보여주고 있는 리프킨이 글을 써내려가면서 논리를 만들어 나가는 그의 방대한 지식과 인류를 종과 횡으로 관통하며 책을 전개시키고 있는 그의 통찰력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오늘날이 공감의 시대임을 역설하는 것이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방대한 분량이 필요했던 것일까? 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스스로 속한 세계가 어떻게 흘러왔고 무엇과 함께 흘러가는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야만 지금 현재 우리가 앞에 놓인 이 위기를 해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우리가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문화를 버리고 자신 안의 내재된 ‘공감 의식’을 화려하게 꽃 피울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한 그의 시선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꿈꾸는 그에게서 미래가 희망적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공감하기 위해선 먼저 대상과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통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대상에 대한 애정인데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애정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기에, 책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폭넓게 소통하기 위해 800페이지라는 방대한 양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 인류사의 감추어진 비밀

인간의 능력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이면서도 소홀이 다루어졌던 공감 능력은 사실 모든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보편적 조건이다.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은 모두 핑계이고 억지이고 거짓일 뿐이다. -p.16

공감하는 사람은 분별없이 자의식을 내던지고 다른 사람의 경험에 빠져드는 법이 없으며, 그렇다고 이기적인 목적으로 정보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려 들지도 않는가. -p.21

어떤 사람이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성의껏 들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장 눈가가 촉촉해진다. 다름 아닌 기쁨의 눈물이다. 그는 속으로 생각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다 있군요. 이 사람은 마치 내 입장에 서 본 사람 같습니다.” -p.22

인성은 자율, 즉 혼자만의 섬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의식과 애정과 친밀함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겨우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 나만의 세계에서 혼자만의 수련을 통해 잘 다듬어서 나를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 사회에 나가 좋은 관계를 맺는 지름길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수련을 하려는 것은 다른 이들과 잘 지내기 위함이기에 당연히 그 수련 또한 그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놓치고 있는 생각이었다.

자의식과 자아 인식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깊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이들은 보았다. 이때 우애적 유대감을 만다는 수단이 바로 공감이다. -p.29

기피인물이 되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곧 비인칭적 인간이 되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 연관을 맺는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이다. 반면에 공감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의 일부가 되는 의미 있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해 주는 심리적 수단이다. 그런 초월적 개념은 자아를 넘어, 보다 더 큰 공동체에 참여하고 소속되며 보다 복잡한 의미의 그물에 끼어 묻히는 것이다. -p.30

사회는 곧잘 사회적으로 건설적인 목적에 기여하도록 애정과 친밀감의 충동을 희석시켜 억누르지만, 그래도 소속되려는 충동은 여전히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본성이다. -p.30

"모든 살아있는 것은 일종의 제국주의자이다. 그들은 기능하면 많은 환경을 그 자신과 자신의 씨앗으로 바꾸려고 한다." 라고 지적했다. 자연의 분류체계에서 진화가 잘된 종일수록, 자신의 비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에너지도 많고 살아 있기 위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엔트로피도 많다. -p.42

모든 진보는 특별한 힘이 보조금으로 투입되기 때문이며 그런 보조금이 제거될 때 진보는 언제 어디서든 순식간에 증발하고 만다. 지식과 창의력은 힘의 보조금이 투입될 때 그것을 적용하는 수단이며, 지식의 개발과 보유 또한 힘의 조달에 의존한다. -.46

역사상 위대한 경제개혁은 새로운 에너지 제도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혁명과 맞물릴 때 일어났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혁명은 소위 지휘 통제 매커니즘이 되어, 문명의 에너지 흐름을 편성하고 조직하고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다.

관개시설을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 수메르인은 많은 노동력을 확보하고 관리해야 했으며 전문화된 기술자를 양성해야 했다. 노동은 점차 차별화되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전문화된 농업기술이 개발되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에너지 제도를 다루려면 그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필요했다. -p47

근대의 인쇄혁명과 집약적인 1세대 전기 통신은 다양한 종류의 의식을 낳았다. 아울러 각 단계에서 새로 나타나는 의식은 앞선 의식의 잔재를 한편에 지니면서도 보다 성숙한 공감 본능을 확대시켜 갔다. -p.49

다른 사람의 곤란한 처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가 공감하고 지지해 주려는 것은 바로 그들의 살고자 하는 의지이다. 열역학법칙, 특히 엔트로피 법칙은 살아있는 매순간이 유일한 것이며 반복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우리가 다른 존재에 공감하게 되면,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매우 허약한 존재이며, 쉬지 않고 그들 몸을 관통해 흐르는 에너지 덕분에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저절로 이해할 수 있다. -p.53

사회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역할은 더욱 차별화되고 자아의식은 더욱 뚜렷해진다. 동시에 다른 고유한 자아와 접촉하고 대면할 기회도 많아진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더 많은 공감을 하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공감이 확대되면 다른 사람의 곤경이나 형편을 ‘마치’자기 자신의 것인 양 느끼게 되고, 동시에 거기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자아의식이 강화되고 심화되는 역현상이 나타난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해 알아낸 것이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너에게서 나의 일부를 확인하고 너는 내 안에서 너의 일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 공감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의 일부임을 알게 되면 그로인해 보다 진실하게 상대방을 공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나의 자아의식도 보다 명료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공감의 확장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적 교류와 인프라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접착제이다.

사회는 사교적이어야 하고 사교적이 되려면 공감이 확대되어야 한다. -p.54

1부 호모 엠파티쿠스

2. 인성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

장엄한 최후 주자로서 프로이트는 새로 발견한 ‘무의식’이라는 넘치는 힘을 마음껏 휘두르면서 남성지배는 만물의 자연적 질서라고 우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설화는 남자주인공을 인류사의 중심인물로 못 박아 놓으려는 그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극장용 소품이었다. -p.67

부모의 공감적 반응이 미약하거나 아예 없으면, 아이의 발달은 억제된다. 이런 상태에서 충동은 "당연히 강한 유형이 되고" 파괴적 분노가 아이의 마음에 자리를 잡는다.

아이의 기분을 존중해 주고 공감해 주는 부모의 태도는 아이가 나중에 어떤 유형의 성인이 되느냐 하는 문제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코후트는 “공감이라는 매트릭스에서 아이를 자라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라고 결론 내린다. 그는 아이가 정상적으로 발달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공감해 주기만 한다면 초지 양육을 맡은 사람이 누구냐 하는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p.76

아기는 엄마의 뱃속에서 만들어지지만, 하나의 개인은 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p.77

엄마는 아기와 갖는 최초의 관계를 시작하는 방법을 통해 아기가 하나의 개인적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처음부터 관계가 개인을 만든다.

아기에게 “한몫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하면 그 관계는 좌절되고 자아의식의 발달도 억제된다. -p.79

→ 요즘아이들은 "한몫 기여"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며 살고 있다. 그저 주어지는 틀 안에서만 행동하면 되는 것이기에 관계를 통해서 성장하는 것은 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린 듯하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공생적 관계여서 애정이라는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에 적절한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 상호성이 사회성의 핵심이며 그런 상호성 위에서 관계가 수립된다. 상호성이 막히면, 자아의식과 사회성의 발달은 방해받고 정신병리학적 증세가 나타난다. -p.82

아주 좋은 부모는 아이에게 “안정적인 기지”를 마련해주고 “아이가 그 기지를 거점 삼아 마음껏 세상을 탐구할 수 있게 격려한다.

부모가 아이를 정성껏 돌보고 감싸 주고 정을 표현하고 안정감을 주면, 아이는 세상에 뛰어들어 독립적인 존재로 자란다. 하지만 부모는 동시에 아이의 탐구심과 주변 세상에 참여하려는 타고난 욕망을 한껏 부추길 필요가 있다. -p.90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에게 공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 줄 수 있을까? 공감은 가르치거나 훈계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공감해 줌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이가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는 아이가 어떤 관계를 경험하는가에 다라 결정된다. -p.97

신체적 완력이나 경쟁력 못지않게 친사회적 행동과 협동심도 적자생존에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p.100

→ 내가 우위에 서는 것, 누군가를 부릴 수 있는 위치에만 서는 것이 중요하고 그 위치를 얻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현 교육 방식에서는 아이들이 앞으로 사회를 살아가는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배우기 어렵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3. 생물학적 진화에 관한 감성적 해석

생물학자들은 동물 세계에서도 학습된 지식을 발견했다. 사회를 이루며 새끼를 기르는 포유동물들은 특히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것은 동물들에게도 적어도 초보적 형태의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동물의 세계에서도 행동하는 방법이 대대로 전수되며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p.108

“흉허물 없는 무대를 마련해 주어 넓은 세상에 적응하게 해 주는 책임감과 소속감을 발달시킨다.”라고 생각한다. 맥린은 놀이를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 유대감이 “공감의식의 발달을 촉진시킨다.”라고 말한다.

놀이는 철저히 참여적이다.

놀이는 다른 사람과 무언가에 몰두하는 행동이다. 놀이는 혼자만의 쾌락이기보다 하나의 공유된 즐거움이다. 순수한 놀이는 수단이기보다는 본질적 의미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다.

개방성과 관용은 놀이 환경의 본래적 부분이다. 행동에 따른 결과가 있기는 하지만,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 놓고 자신을 드러낸다. -p.117

놀이로 표현된 상상력은 공감 의식을 성장시키고 발달시킨다.-p.118

사회화 과정에서 놀이가 그렇게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놀이가 상상력의 고삐를 풀어 주기 때문이다. 놀이를 통해 우리는 대체 현실을 끝없이 만들어내고 정해진 시간 동안 대체 현실을 탐구한다. 우리는 거대한 타자, 즉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존재의 무한한 영역을 해치는 탐험자가 된다. 놀이를 통해 우리는 상상력이 만들어 낸 다른 현실을 우리의 것으로 만든다. 그렇게 하나가 되는 것이다. -p.119

문화적 영역에서 순수한 놀이를 경험함으로써 사람은 동료 인간과 동등하게 마음을 열고 참여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서로에게 몰입한다. 순수한 놀이에 몰입하지 못하면 결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놀이를 할 때보다 더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있는가? 그때 놀이는 시시한 장난이 아니다. 놀이는 공감 의식을 확장하여 진정한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는 수단이다. -p.120

4.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

그린스펀은 자의식을 갖춘 정체성의 발달은 전적으로 “몇 년 동안 친밀감을 통해 양육된” 아이와 부모 사이의 공감적 관계에 달려있다고 단언한다. 부모가 아이의 정서 상태를 정확히 읽고 효과적으로 반응할 줄 알아야 아이도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공감을 통해 유대감이 제대로 형성되면 아이는 주변의 정서적 세계와 사회를 향해 마음을 열게 되고, 다른 사람에 영향을 주거나 상대방이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며, 아울러 온정과 애정을 통해 신뢰감을 주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 -p.136

“배려하고 동정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느낌을 고려할 줄 아는 능력은 스스로 사랑과 보살핌을 받을 줄 아는 아이의 감각에서 비롯된다.” 정신건강은 “인간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필요로 하며” 인간성은 “잘 발달된 공감 의식”을 필요로 한다고 그린스펀은 지적한다. -p.137

사람은 다른 사람의 정서 상태를 자신의 정서적 경험에 비추어 볼 뿐 아니라 그것을 내면화함으로써 보다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상황에 적절한 반응을 드러냄으로써, 관찰자는 그가 아는 것, 관심, 지지, 위로 등의 의사를 전달한다. 흉내를 잘 내려면 상대방을 ‘ 내 마음에 두어야 하며’ 상대방의 마음 상태에 내 마음을 ‘맞추어야 한다.’ 이 두 가지 모두 공감을 표현하고 사회적 유대를 조장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p.142

우리는 “다른 사람의 정서를 우리의 정서인 것처럼 실감나게 경험하도록” 만들어졌다. -p.144

부모는 양육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당사자이며 정서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아이에겐 세상으로 통하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부모가 애정을 잠시 접어 두고 아이의 주의를 환기시켜 부모의 의지를 주장할 수 있어야 아이에게 평생 강력한 힘으로 남을 수 있다.

요즘은 그 생명줄을 리드라는 사람이 부모가 아니라 아이인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혹여나 아이가 그 생명줄을 잘 유지 못할까 안절부절하며 그 생명줄을 부모가 너무 단단히 쥐고 있는 것이, 아이 위주로 모든 것을 양육함으로 인해 우리의 아이들을 너무 나약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아이를 타이르는 순간만큼은 확실한 위엄을 갖추고 아이를 제압하여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주었던 고통에 대해 부모가 하는 말을 열린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이의 행동을 비판하지 않고 배려와 관심으로 접근한다면, 공감적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죄책감과 아울러 자기를 괴롭힌 사람과 관계를 회복하려는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p.148

죄책감은 공감적 고통과 자신이 괴롭힌 사람에게 손을 뻗어 상황을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수치심은 모욕감을 느끼게 만들어 쓸모없고 사람 축에도 못 드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p.149

모욕감을 주는 것은 그의 인간성을 빼앗는 행위이지만, 죄책감은 다른 사람과 맺어진 유대감을 상기시켜 사회적 결합을 회복할 필요를 느끼게 만드는 내면의 메커니즘이다. -p.149

제대로 된 부모라면 아이에게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 주면서도, 세심함 배려로 그가 여전히 사랑 받고 있으며 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서로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은 경솔함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다음에는 좀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전부이다. -p.150

아이가 수치심 문화 속에서 완전무결한 기준에 맞추어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 사회의 분노를 고스란히 겪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자란다면, 그 아이는 똑같이 엄격하고 완고한 기준으로 다른 모든 사람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공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이는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자신의 것처럼 느낄 수 없고, 따라서 그들의 곤경은 그들의 결함 때문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사회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수준의 완벽함에 맞추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p.152

→ 그들을 공감해 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의 완고한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기에 그 아이들의 기준에 맞는 사람은 만나기도 어렵겠지만 결국에는 스스로 고립된 섬에 갇히는 꼴이 되게 될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이끌게 되는 세상 또한 발전하지 못하고 그 결과는 서로의 탓으로 돌려버리고 말 것이다.

5. 인류 여정의 의미를 재고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공감이란 영역을 개발하여 성숙한 사회적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느낌과 감정이라는 사실이다. 감정과 느낌이 없다면, 공감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공감이 없는 세상에는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있을 수 없다. -p.179

우리 존재의 진정한 육체성을 억누르고 세계와 우리를 진정한 물리적 방법으로 묶어 주는 감정을 솎아낸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 즉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있게 하는 진정한 핵심을 잃어버리는 셈이다. -p.183

존재한다는 것은 교류한다는 뜻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위해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면의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은 없다. 그는 전적으로 향상 주변 속에 있으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의 눈을 보고,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다. -p.185

생각 그 자체의 발달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필요로 한다. 실제로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우리 자신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다른 사람과 끊임없는 교제를 통해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각자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 대해 경험한 부분에 속한 실체적 존재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된다. 우리의 관계가 만들고 우리 정체성을 결정한다.

개인의 정체성과 의식은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겪는 우리 고유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 단순히 자율적인 나는 없다. 수많은 우리라는 독특한 군집이 있을 뿐이다. -p.186

→결국 우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 다면 생각 또한 굳이 필요치 않으리라. 우리 존재의 정체성 또한 관계 안에서 찾아가는 것이므로 다른 이와의 공감을 떠나서는 우리 스스로를 세우기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은유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써먹을 수 있고 그래서 우리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준다. 왜냐하면 그들의 경험 역시 모든 인간에게 한결같이 공통적인 몸의 시간적, 방향감각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은유적 언어를 사용하면 내면의 세계를 공유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p.191

“참여적 우주에서 인간으로 있으려면 참여의 결합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결합을 인정한다면 그로 인해 공감을 인정하게 된다.” -p.192

인간이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게 좀 더 깊이 공감할수록 참여의 정도가 강해지고 넓어지며, 그럴수록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영역은 더 풍요로워지고 더 보편적이 된다. 얼마나 마음을 열고 참여하느냐에 따라 현실을 이해하는 폭도 달라진다. -p.194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보다 더 큰 그림에 우리가 속해 있는 방법과 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다.

참여라는 순수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또한 새로운 현실을 부분적으로 창조한다.

현실이 경험이고 경험이 항상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관계가 넓어질수록 현실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질 것이다. -p.195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공통의 경험적 기반을 함께 만들기 위해 모이는 틈새 영역에 존재하는 이해이다.

존재는 관계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 그것이 존재의 진리이다. -p.196

진정한 용기는 자신을 숨김없이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실체론 옹호론자들은 말한다. 용기는 자신의 삶의 가장 기본적인 세부 사항까지 상대방의 손에 맡길 의향이 있다는 말이다. 취약하다는 겉은 같은 인간을 믿겠다는 것이다. 그 믿음은 다른 사람이 당신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할 것이라는 믿음이며, 당신이 상대방의 편리를 위한 목적에 이용되거나 함부로 취급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누구도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p.199

→진정한 공감의 밑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의 취약함을 상대에게 보여줌으로써 내 상황을 이해받고 상대방은 그로 인해 자신의 일부를 보게 될 것이다. 서로의 취약함을 만나고 나면 한결 가까워진 서로를 받아들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약점이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고 뚝 떨어져서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인간을 가장 사회적인 동물로 만들어 주는 감정적 통로를 닫아 놓은 사람들이다.

자신의 취약함와 고통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의 취약함과 고통에 동감할 수 없다. 모든 감정적 요소는 가두어 놓은 상태에선 실제로 자유로울 수 없다. 스스로 영혼을 가두어 본성을 묶어 놓은 상태에선 세상에 참여하여 의미 있는 표현을 할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진정한 그의 모습을 알 수 없고, 그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고립되고 추방당한 사람과 다름없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p.200

→ 나의 나약함을 먼저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그 나약함을 다른 이들에게 공감 받음으로써 그들 또한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면 거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평등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 같은 물질적 관점으로만 편협하게 보는 한, 아무리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은 항상 ‘내 것’과 ‘네 것’이라는 대립의 관점으로 정의될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사람은 재산, 직업, 학벌에 의해 끊임없이 신분이 나뉘고 구분될 것이다.

다른 사람과 공감할 때 구별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고군분투를 자신의 것처럼 동일시하는 바로 그런 행동이 평등 의식의 궁극적 표현이다.

공감을 하는 순간에는, ‘내 것’과 ‘네 것’이 없고 오직 ‘나’와 ‘너’만 있을 뿐이다. 공감은 같은 영혼이라는 공동 의식이며, 그것은 사회적 신분의 구별을 초월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p.201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고 그들의 인생을 예찬하는 것이다. 공감의 순간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경험 가운데 가장 밀도 높은 생생한 경험이다. -p.206

인생을 구가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단단히 묶여 산다는 것이다. -p.207

공감은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초월한다. 실체적 경험이 현세적 성격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허약함을 인정하고 삶을 최대한으로 누림으로써 초월한다. 완벽함에 대한 충동은 물러나고 자아실현에 대한 탐구가 들어선다. 삶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최대화하려 한다. -p.210

'지금 여기에‘깊이 발을 들여 놓고 실체적이고 충만한 삶을 한다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먼 미래의 완벽함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꿈은 꾸지 않게 된다. -p.211

→ ‘지금 여기에’ 온전히 집중하려면 나와 그 현재와의 공감 또한 필요할 것이다. 내가 그 순간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그 안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그 순간을 공감하며 온전히 살 수 있을 것이다.

서로 공감할 때, 우리 안에서 모든 다른 살아 있는 존재와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미묘하고 놀라운 생명력을 실감한다. -p.214

경외감은 인간의 모든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경외감이 없으면 놀랄 일도 없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삶을 우리 자신의 삶인 '것처럼’ 상상할 수도 없다. 공감은 상상력 없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상상력은 경이 없이 불가능하고, 경이는 경외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공감은 경외심의 가장 깊은 표현이며, 당연히 인간의 가장 영적인 특성이다.

하지만 공감은 신뢰를 필요로 한다. 신뢰는 우주적 차원과 우리 동료 인간들과의 일상적 차원 양쪽에서 존재의 신비에 스스로 굴복하는 의지이다.

공감적 경험이 보다 깊고 보편화될수록, 우리는 존재의 신비를 더 가까이 경험하게 된다. -p.214

공감은 미묘한 균형 감각을 필요로 하는 행위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의 곤경을 자신의 일처럼 체험해야 하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독립적 존재를 만들어 주는 자아의 능력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공감에는 너와 나를 연결하는 소통의 통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두 존재의 정체성을 합치고 공통의 정신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p.217

→ 언제나 나를 열어놓되 동시에 나 자신에게 깨어있어야 공감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과 맞지 않기 때문에 비유적으로나 실제로나 ‘억지로 틀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바로 철학자들이 끊임없이 들먹이는 존재와 당위의 간극이다. 즉 인간 행동의 실제 모습과 마땅히 할 행동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실체적 경험이 부적절하고 도덕법칙과 상충하는 한, 인간 행동의 실제 모습과 그래야 되는 모습 사이의 간극은 사라지지 않는다.

공감 의식은 존재와 당위의 간극을 극복한다. 공감적 행동은 실체적이고 경외감으로 차 있으며 이성에 호소한다. 공감 의식은 설명적이면서도 동시에 규정적이다. 실제의 모습과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 사이에 어떤 구분이 없다. -p.221

인간이 선한 것은 처벌이 두렵거나 보상을 바라고 행동하기 때문이 아니라, 공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명령이나 약속에 의해 도덕적으로 적절한 행동을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곤경을 나의 곤경으로 느낌으로써 도덕적 행동을 실체화한다. 진정으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것이고, 따라서 실체적 경험 속에서 도덕적으로 적절하게 되는 것이다. -p.222

→ 인간의 선한 본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요즘, 과연 우리는 타인을 향해 얼마나 공감하며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2부 공감과 문명

6. 고대 신학적 사고와 가부장적 경제

대화를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입장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몰두할수록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나의 정체성도 더욱 확실해진다. -p.231

→ 내 입장에서만의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 나만의 일방적인 의사소통 방식은 공감을 받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삶을 경험하는 방식을 놓고 서로의 느낌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p.233

이야기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반응을 연결하고 통합해 주는 수단이자, 우리와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인생사를 의미있게 만들어 주는 수단이다. 그것은 인생을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인생을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p.234

청각은 참여적 경험이다. 청각은 사람을 삼킨다. 우리는 소리에 빠진다. 이에 비해 시각은 친밀감이 가장 떨어지는 추상적인 감각이다. -p.255

커뮤니케이션이 개성화 되고 표현적이 될수록 공감도 더욱 확장되고 보편화되기 때문에, 공감적 감수성의 진화과정에서 문자 문화의 탄생은 하나의 분수령이 된다. -p.259

공감적 고통이 공감적 표현으로 바뀌려면 자신의 고유하고 유한한 존재라는 의식, 즉 개인의 역사가 있어야 하며 아울러 다른 사람도 고유하고 유한한 존재라는 의식도 있어야 한다. -p.264

동정은 다른 사람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행위이다. -p.274

사심 없는 동정의 의식이 깨달음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을 것이다. -p.275

7. 국제 도시 로마와 기독교의 발흥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나약함을 인정하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처럼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p.294

8. 중세 말의 연 산업혁명과 휴머니즘의 탄생

인쇄된 문헌은 자율성과 불가침성을 지닌다.

인쇄 커뮤니케이션은 오래된 공동체의 결속을 해체시키는 대가를 치르면 개인의 의식을 강화했다. -p.335

인쇄는 세상을 살아가는 ‘부지런한’방법에 대한 적절한 마음가짐과 세계관을 만들어 냈다.

-p.337

북유럽 르네상스의 식자층은 인간의 조건을 기꺼이 감당하고 즐겼기에 인문 시대를 마음껏 구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삶을 불확실하고 힘들게 만드는 인간의 약점과 어리석음을 포함하여, 인간 존재의 약한 부분을 파헤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중세의 성직자들에게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길은 단 한가지뿐이었지만, 16세기의 인문주의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관점이 가능했다. -p.340

몸으로 겪는 실체적 경험은 공감의 표현을 향해 열린 창이다. 다른 사람의 곤경과 고투를 경험함으로써 그것을 자신의 어려움인 것처럼 세상에서 살고, 그들이 보다 충실하게 살 수 있도록 다가가 도와줌으로써 우리는 보다 더 충만해지고 보다 더 인간적이 되고 더 깊은 존재의 실재와 연관을 갖게 되며, 그렇게 함으로써 만물의 원대한 설계 속에서 우리가 처한 곳을 알게 된다. 공감은 전적으로 육체성을 입은 채 노래하는 삶의 예찬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감은 또한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수단이다. -p.343

→ 다른 사람의 곤경을 몸으로 직접 겪게 되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공감이 되고, 그 사람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됨으로써 그들을 도와주게 되고 그로인해 자신 스스로도 도울 수 있게 되는 경험이 될 것이다.

개인 생활의 비중이 커지면서 대외적인 페르소나는 불확실하고 성가신 것이 되었다. 본 모습과 페르소나 중 어떤 것을 내세우느냐 하는 문제도 골칫거리였다. -p.343

진실성은 중요한 것이지만 상황이나 상대하는 사람에 따라 페르소나를 바꾸게 되면 생각이 수월해지고 공감의 폭도 넓어지는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대외적인 가면은 진정한 자아를 속이거나 숨기는 데 사용하기도 하지만, 덕분에 다른 페르소나를 써 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보고 평상시 만나기 힘든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p.346

가까운 사람과 마음 놓고 나누는 대화는 우리가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입니다. -p.355

→ 마음 놓고 대화를 나눌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게 된다면 좀 더 다른 이들과 공감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고 배려해 주는 동반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공감하는 상대가 된다는 것이다. -p.356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자서전’을 이해하고, 그래서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자서전 속의 인물에 공감하고 그들과 일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개인사도 하나로 모으면 결국 우리 인간의 집단적 역사가 된다.

역사는 꾸준히 변화는 환경적 조건과 사회적 맥락에서 교차하는 우연한 만남, 우연한 환경, 그리고 개인의 특이성이 모여 만들어진 개인적 사건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p.379

괴테는 자연에서든 사회에서든 한 사람의 개별성은 그를 둘러싼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우리 각자는 고유한 개인이지만, 그 고유성을 자율성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사회적 존재다. 즉, 우리 주변을 채워 주는 특정한 관계와 만남을 통해 삶을 꾸려 간다는 사실이 우리를 고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p.386

괴테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며, 인간에게는 특별히 삶을 음미할 수 있는 고양된 의식이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자연을 들이쉬고 내쉬는 가운데 보다 큰 전체와 연결된다. -p.387

이런 관계를 심화시키려면 다른 존재의 고유한 개별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어야 한다. 아울러 다른 존재가 우리를 어떻게 경험하고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한다. 다른 존재의 눈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게 된다. -p.387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수많은 거울 속의 나를 보듯 다른 사람을 통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나 자신과 나의 내면을 좀 더 분명하게 보고 싶어서 말이다. -p.387

→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틀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언급에서 작가가 얼마나 큰 그릇을 가지고 있는 학자인지를 알 수 있는 것 같다.

상호적 과정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봄으로써, 인간적 존재의 특정한 방식을 이해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런 지속적인 공감의 과정을 통해 사람은 자신을 알고 자아를 형성하며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세계를 형성하도록 돕는다. 성찰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찰은 자연이라는 통일체를 구성하는 더 깊은 현실에 닿으려는 더 큰 목표를 향한 수단일 뿐이다.

그는 온몸으로 세상에 뛰어들기로 작정하고 이렇게 썼다. “그러나 세상을 받아들일 줄 알고 그래서 세상에 ‘말을 거는’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시인이다.” -p.388

9. 근대 시장경제의 이데올로기적 사고

감정을 공공연하게 분출하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중요한 문제였다. 사교에서 그런 감정이 정당화되었기에, 사람들은 한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그에 맞추어 행동했다. 그들은 자신의 기분을 알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탐구했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기분에도 관심을 가졌다. 결과는 다름 아닌 의미심장한 공감의 물결이었다. -p.402

→다른 사람을 공감하기에 앞서 먼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본다. 자신의 감정도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면 다른 이들의 감정을 읽는 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유리 공장 하나를 가동하는 데에만 숲 하나가 통째로 들어갔다. 공감-엔트로피 문제를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중세 유럽은 13세기에 접어들며 거울과 렌즈 생산을 위한 유리 제조 개발에 앞장섰다. 거울이 대량 생산되면서 자기반성에 관심이 모아졌다. 거울이 널리 퍼지기 전에는 불가능했던 생각이었다. ‘자기반성’이란 말은 반사 표면인 거울의 중요성을 암시해 주는 어휘이다. 유리 거울이 발명되고 대량생산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없었고, 따라서 자기라고 분명히 생각할 만한 고유한 대상으로서 자아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덜했다. 중세 말에 있었던 거울의 대량생산은 분명 자아를 의식하는 개인이 등장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p.412

낭만주의자들의 개인주의는 종류가 달랐다. 그들에게 개인은 창조적 잠재력을 부여받은 고유한 존재였다.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하고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로 활용하는 것이 진정 자유로운 삶이었다.

자아에 대한 낭만주의적 개념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대담했다. 인간의 정신이 자연에 깃든 것처럼 자연은 인간의 정신 속에 깃들어 있었다. 속박되었던 인간의 상상력을 풀어 놓음으로써, 각 개인은 만물의 자연적 도식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자연적 가치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p.427

다른 사람과 ‘상상력을 통해 하나가 되는 것’은 공감의 낭만적 표현이다. 다른 사람을 상상하는 능력이 없다면 공감도 있을 수 없고 지상의 초월을 위한 낭만적 탐구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p.429

한마디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 높고 더 좋고 더 풍요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각자의 모든 에너지를 묶는 것이고 우주에 깃든 신을 그 자체로 깨닫는 것이다. -p.432

공감 충동은 각자의 삶이 유일한 것이며,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는 것,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나약하고 고통을 피할 수 없으며 생존하고 번식하고 더 잘 살아 보려는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p.433

소유에 집착할수록 소유가 우리를 규정하고,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존재와 멀어진다. 우리의 존재는 희미해진다. -p.456

→ 소유에 집착한다는 것은 나는 사라지고 그 소유가 나를 대신하게 되어 결국에는 나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공감적 고통을 경험할 수 있는 소질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이러한 존재의 핵심은 문명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통합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만 진정한 공감 의식을 전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p.456

10. 포스트모던의 실존적 세계에 담긴 심리학적 의식

공감을 경험하는 과정은 비물질적이면서도 물질적이다. 비물질적 사고 매체를 수단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물리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p.467

전화는 고립의 벽을 허물었고,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 잠재적으로 소용되게 만들었다. -p.474

기술적 변화와 문화적 변화가 처음부터 공생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그 과정에서 초보적인 심리학적 의식을 낳았고, 그것이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에너지와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나타날 때마다 뒤따라 나온 모든 의식 혁명이 그랬듯이 심리학적 의식도 예외 없이 공감의 물결을 몰고 왔다. -p.479

개인사에 대한 관심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자아의식이 발달되었다는 것을 반영하는 증거였다. -p.480

개인사의 고유한 본성을 강조하고 현실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관용을 길렀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기꺼이 인정하면서 사람들은 각자 인간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고유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p.480

원근법은 천상을 향했던 인간의 시선을 주체와 객체가 상주하는 속세의 선적 지평으로 돌려놓았다. 시선은 더 이상 저 위의 세상으로 올라가는 환희에 찬 기대가 아니라 밑에 있는 객관적 세계의 편견 없는 질서를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p.482

마음은 고정된 시점에 머무르는 법 없이 이음새 없는 객관적 현실을 수용한다. -p.485

마사 누스바움이 지적하듯, 인생은 끝없는 장애물과 예기치 못한 우여곡절로 가득차 있다. 삶은 번잡하고 혼란스럽고 지루하기 짝이 없으며, 우주적 초월보다는 우스꽝스러운 히스테리를 드러낼 때가 많다. 그래도 모두들 참고 견딘다. -p.486

→ 우리가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처지를 깊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에게 공감할 때,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 보려는 상대방의 일상적 투쟁을 인정하고 좀 더 잘살아 보려 애를 쓰고 자신을 초월하려는 서로의 욕구를 높이 평가한다. -p.486

정체성을 만들려면 사회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찾기 위해 부모의 현실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키고, 당연시 되는 기존의 권위에 어느 정도 의문을 가져야 한다. -p.491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였던 모레노는 낭만주의자들처럼 인간의 본성은 창의성이어서 무엇보다 창의적인 삶을 살 때 인간은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역시 창의성은 고독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그런 것은 천재의 작업이다.) 사회적 교제를 통해 이루어지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p.506

→ 창의성을 함께 고민할 사회적 관계가 존재한다면 아이디어가 나옴과 동시에 피드백도 받을 수 있으니 보다 실현 가능한 것들을 통하여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롤로 메이는 누구나 핵심을 들여다보면 인생의 의미와 자신의 실존적 본질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인생을 어떤 태도를 가지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의도적으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관심이 없어질 때, 사람은 감정이 둔해지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다. -p.518

3부 공감의 시대

11. 세계적 공감의 정상을 향한 등정

세계화의 과정은 기회도 파탄의 신호도 된다.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일부는 엄청난 부를 손에 넣었다. 그런가 하면 인류의 집단적 중추신경계가 지구를 감싸면서 엄청난 희생자도 내었다. -p.533

공감적 유대감과 상업적 유대감의 관계는 복잡하면서도 위태롭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공감의 확장은 당장이나 미래에 상대방을 위한 호혜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공짜로 주어지는, 조건이 붙지 않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상업적 교환은 사회적 신뢰를 먼저 세워 주는 공감의 확장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상업적 교환의 공리적이고 도구적이고 착취적인 본성은 바로 그것의 작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킬 수 있고 또 실제로도 고갈시킨다. 글로벌 경제가 붕괴된 직후에 지금 미국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p.541

관광객과 토착민의 관계는 새로운 유형의 식민적 성격을 가진 ‘체험 상업’으로 전락하여 돈을 주고 경험을 사며, 주인 문화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고 토착민들은 돈을 받고 연기를 하는 식이 된다. -p.551

한 사람을 깊이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에 그 사람의 인생을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안다는 것이다. 즉, 그 사람만의 스토리를 안다는 것이다. -p.557

→ 스토리를 알기 위해선 그 만큼 시간을 내어주고 또한 마음도 내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이어진 관계는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선 개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고 사람들은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며 공감을 넓혀간다. 자의식이 분명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고, 사람들을 신뢰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훨씬 너그러워질 수 있다. 자신의 존재에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 것이고 외부의 존재를 두렵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p.563

생존 가치에서 물질적 가치로, 그리고 다시 삶의 질로 가치가 옮겨 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경제적 안정을 이루기 위해 지구의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자원을 착취했고 그 여파로 공감 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p.565

소외 집단을 인정하고 각양각색의 다른 사람들과 공감적 유대를 넓혀가는 새로운 현실은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세계를 배경으로 개인의식이 활성화되고 자기 표현이 두드러지는 현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p.575

'우리’라는 테두리가 넓어지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게 된다. 사회 구성원이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다양해지면서, 가족의 영역도 다문화적이고 다인종적인 공간으로 바뀌어 공통의 인간성을 발견하는 기반이 된다. -p.583

새로운 공감 의식은 첨단 기술이 발달하고 세계적으로 복잡한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관계나 네트워크에서의 연관성이 긴밀해지는 그런 사회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p.593

12. 지구촌 엔트로피의 심연

글로벌 경제의 복잡성이 가시적이고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공격받기 쉬운 반면, 위협은 대체로 보이지 않으며 가해자의 상상력만큼이나 변이가 심하다는 사실이다. 유일하고도 진정한 해결책은 다가오는 세기 동안 인간의 의식을 대폭 재조정하여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지구에서 다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길뿐이다. -p.615

최소요건의 경제적 요건이 충족되었을 때 그 이상의 재산 축적은 도리어 행복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사실도 아울러 밝혀냈다. 필요 이상의 재산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주고 우울, 걱정, 그 밖의 정신적, 신체적 질병에 걸리기 쉽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을 못 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p.620

부와 소유의 추구에 매달리는 사람은 그런 쪽에 그만큼의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보다 심리적으로 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p.620

경제적 안락을 느끼는 데 필요한 최소 수준에 도달한 이후의 평균 행복은 부의 축적이 증가할수록 오히려 내려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최소수준의 경제적 요건 이상으로 부의 추구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p.621

물질적 가치를 중시할수록 사람을 못 믿게 된다. -p.622

물질주의자는 세상을 얻지만 자신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충동, 즉 공감적 유대를 발휘하는 일에는 서툴다. -p.623

새로운 행복을 경험하게 되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일종의 쳇바퀴를 타는 셈이다. ‘쾌락’이란 쳇바퀴를, 행복을 유지하려면 계속 쳇바퀴를 굴려야 한다. -p.624

돈이 부유한 사람에게서 가난한 사람으로 옮겨가면,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 잃는 것보다 더 많은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평균 행복은 올라간다. 따라서 한 나라의 모든 사람이 평등할 수는 없겠지만 그 수입을 보다 균등하게 배분하면 행복의 수준을 올릴 수 있다. -p.625

불안한 십 대들은 부모에게 받지 못한 인정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 하고, 그들의 관심을 끌고 사람들과 쉽게 교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명성과 부 같은 물질적 가치를 쫓는 경향이 있다. -p.627

→ 불안함을 물질적 가치로 대체하려고 한다면 그 과정 안에서 십 대들은 스스로를 더 고립시키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가치를 쫓다보면 그 만큼 타인과의 공감대 형성도 어려워지게 될 것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얻게 되더라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게 될 것이다.

부유한 사회에서 행복은 평준화되고, 심지어 삶의 필수품이 확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한계 이상으로 수입이 늘어나면 행복은 오히려 줄어든다. 동시에 상대적 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소유 중독으로 빠지게 되어, 인간관계나 공동체 의식이나 공감 의식을 확장하는 쪽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p.631

→ 왜 우리는 사회 안에서의 관계보다 내 손에 쥐어지는 그 어떤 것에 더 관심을 쏟게 되는 것일까? 그 또한 그 만큼 관계 안에서 주목 받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사람들이 나를 더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사람들은 더 많은 관심을 얻기 위해 소유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3. 분산 자본주의 시대의 여명

3차 산업혁명으로 전환하려면 각국의 경제 인프라의 형태를 완전히 다시 짜야 할 것이다. 이 사업은 수백만 개의 일자리와 셀 수 없이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창출해 내고 21세기 후반까지 이어질 경제적 승수효과를 낼 것이다. 국가는 재생 가능 에너지 기술에 과감히 투자해야 할 것이다. 수백만 개의 빌딩을 다시 설계하고, 그 건물들을 발전소로 변모시키고, 국가 인프라 전반에 수소와 다른 저장 기술을 끼워 넣어야 한다. 또 자동차도 내연기관에서 전기나 연료전지 자동차로 바꾸고 지능적 유틸리티 네트워크를 설비해야 한다. -p.651

보다 분산적이고 협업적인 글로벌 경제는 인간의 시간과 공간의 방향감각을 바꾸고, 기술의 차별화를 높이고, 자아의식을 심화시키고, 연결관계를 긴밀하게 만들고, 의식을 확장시키는 쪽으로 나아간다. -p.654

경제 활동은 더 이상 파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전의를 다지고 벌이는 적대적 경쟁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통하는 선수들끼리 힘을 합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모험이다. 나의 이익은 상대방의 손해를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고전적 경제 개념은 물러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나 자신의 행복을 증폭시킨다는 개념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게임은 빛을 잃고 윈윈 시나리오가 대세를 이룬다. -p.661

현동사회에서는 비물질적 가치, 특히 자아 완성과 인격적 변화가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충만한 인생’에서 배제되지 않을 권리, 즉 접속의 권리는 가장 중요한 재산 가치가 되고 있다. -p.673

분산적이고 협동적이고 비위계적인 사회가 가장 공감적인 사회이다. -p.674

삶의 질을 강조하는 사회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집단적 참여 의식과 함께 개인의 경제적 기회를 강조하기 때문에 사회적 모델과 시장 모델을 동시에 추진시킨다. 3차 산업혁명에서 분산된 권력은 사회의 복지를 확보하기 위한 협동적 방법을 수립하는 수단인 동시에 기업의 창의력을 크게 확장시키는 기술적 수단이 된다. -p.684

정부가 생물권 세계에서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든다는 새 꿈을 향해 매진할 때, 분산적이고 협동적인 3차 산업혁명을 수용할 시장과 사회적 모델을 능률적으로 합리화하는 문제는 다음 반세기 동안 정치적 현안을 압박할 것이다. -p.685

14. 즉흥적 사회에서의 연극적 자아

준사회적 관계는 다른 사람의 관경과 처지에 대한 일정한 범위의 정서적 반응을 탐구하고 공감적 레퍼토리를 확대할 수 있는 실험실이다. -p.691

복잡하고 상호 연결적이고 속도가 빠른 문명에서 연극적 의식은 거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인생이 무수한 역할과 집단적 사회 드라마를 연기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묻혀 있는 경제적, 사회적 네트워크가 복잡할수록, 각자가 연기해야 할 역할도 더욱 다양해진다. -p.694

연극적 관점은 커뮤니케이션을 인간 활동의 핵심에 놓고, 자아를 관계적 관점에서 다시 정의하며, 경험 그 자체를 연극적인 사건으로 만들고, 재산을 사람들이 자신의 많은 연극적 역할을 연기하도록 돕는 상징으로 변형시킨다. -p.696

스타니슬라브스키는 모든 느낌에는 사연이 있다고 지적한다. 즉 느낌은 과거의 구체화된 경험의 결과이다. 따라서 심층 연기를 하려면 연기자는 자신의 잠재의식을 유도해 내어 그가 그때 어떻게 느꼈는지 기억해 내야하고 유사한 상황에서 그가 환기한 정서를 찾아내야 한다. -p.702

우리도 현실 생활에서 예외 없이 심층 연기에 몰두하지만, 다른 운용방법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준다. 실생활에서 심층연기는 실제의 결과를 낳는다. -p.703

심층 연기는 일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좀 더 배려하고, 그들에 대한 기억을 확실하게 간직하여, 잠재의식에서 그 기억을 불러내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는 문제에 대한 이론과 기법을 제공한다. 준사회적 목적으로 적절히 사용한다면 심층 연기는 공감의 느낌을 자극하는 강력한 정신적 도구가 될 수 있다. 공감은 보다 깊은 영역의 현실에 참여하는 수단이다. 현실은 우리가 시작하는 관계를 바탕으로 세계에 관해 우리가 창조해 낸 공유된 이해이기 때문이다.

그 때 심층연기는 공감적 유대를 확대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 주고, 그와 함께 현실감을 심화시켜 준다. -p.706

거겐은 갈수록 사람들이 별의별 종류의 관계에 개입해야 하는 복합적이고 글로벌한 사회를 걱정스레 바라본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과 관심을 끌려고 하는 관계성에 대한 요구가 개인의 의식과 집단의 의식을 압도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p.710

오늘날 자아는 무척이나 많은 역할을 한꺼번에 맡아 수시로 역할을 빠르게 바꿔 가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기운을 탕진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p.710

→ 더 나아가 역할 혼란이 초래하게 되는 일도 어렵지 않게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공감으로 포용하는 능력은 그 사람의 참 모습을 찾아내어 그 사람의 삶을 칭송해 주는 우리 식의 방법이다. -p.712

가상 현실일수록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고 끈끈하고 친밀한 애착을 형성하여 직접적인 현실로 가져갈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이다. -p.718

유명해지려는 욕구는 삶의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 시간이 지나도 소멸하지 않는 흔적만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 또는 수많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인정받고 축하받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p.721

심리학자들은 명성에 집착하는 심리는 대부분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p.721

문제는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특별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학생들은 대부분 타인에게 너그럽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비판도 참지 못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들은 실패를 맛보았을 때 그 실패를 쉽게 처리하거나 극복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표현하는 일에도 서툴다. -p.724

→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보다 특별해지길 원하고 사람들이 그렇게 봐주길 원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솔직히 표현해주는 사람들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새로운 인터넷 망은 인류에게 무한한 지식과 소통의 통로를 제공하지만, 인터넷이란 매체의 속성과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 때문에 이해와 의미와 공감적 유대감을 높여 깊이 있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현저하게 줄일지도 모른다. -p.729

모든 사람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지만 않다면, 어려운 시절은 시민사회를 쇄신하고 공감의 물결을 일으켜 다시 한 번 서로를 배려하고 실제로 서로 보듬고 돕고 베푸는 일에 참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p.731

15. 절정에 이른 경제의 생물권 의식

우리는 전체 유기체의 건강에 우리의 건강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아울러 그에 대한 책임도 지고 있다. 그런 책임을 떠맡고 수행한다는 것은 우리 개개의 삶을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모다 더 큰 생물권의 일반적인 복지를 증진시켜, 우리의 이웃과 공동체에서 우리 개개의 삶을 이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학자 버나드 패튼은 “생태학은 네트워크이다. ……생태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p.740

환경 과목이 아이들에게 지구의 생태적 연계성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감 과목은 지구의 정서적인 연계성게 관심을 모아준다. -p.743

상충하는 감정과 생각을 받아들이고, 다의적인 사고에 불편을 느끼지 않고, 다각적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은 비판적 사고를 포용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정서적 요소이다. -p.746

진리는 우리가 주변 사람이나 주변 세계와 공유한 경험에 부여하는 의미적 차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우리의 공유된 경험과 그 경험에서 얻은 의미를 통해 존재의 진화에서 우리의 위치뿐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한층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지식을 습득한다. 기술적 지식이나 직업적 지식은 이 같은 원대한 목적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도구에 불과하다. -p.747

우리의 생물학적 구조에 내장된 공감 성향은 우리의 인간성을 완성하게 해 주는 실패 방지용 메커니즘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류를 하나의 대가족으로 묶어 주는 기회이다. -p.757

생물권 정치는 지구가 상호의존적 관계로 맺어진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우리는 우리를 포함하는 보다 큰 공동체를 보살핌으로써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삼는다.

이 같은 아래로부터의 대륙화와 세계화로 우리는 인류를 연결하는 임무를 완수하고, 지구의 생명을 구성하는 다른 많은 종뿐만 아니라 전체로서의 인간이란 종에 대한 공감의 감수성을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p.759

3. ‘내가 저자라면’

 리프킨은 이 책에서 인간 본연의 감정인 공감에 대해 말한다. 그는 이러한 공감이 인류의 문명을 진화시켰다고 주장하며 고대 신화적 의식의 시대부터 기독교 문명의 발흥, 18세기 계몽주의, 19세기 이데올로기의 시대, 20세기 심리학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긴 여정에서 인간의 공감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제1부 호모 엠파티쿠스는 인간의 본성이 공감적 존재라는 것을 철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생물학적 관점을 동원해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거울신경세포를 발견함으로써 인간은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고, 이러한 능력이 공감 능력을 가져왔다고 말하고 있다.
제2부 공감과 문명은 공감이라는 틀로 인류문명사를 서술한다.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공감을 어떻게 발견하고 인류문명을 발전시켜 왔는지를 본다. 신화적 의식, 신학적 의식, 이데올로기적 의식, 심리학적 의식, 연극적 의식으로 인간 의식의 발달과정을 문학, 신학, 철학, 인류학, 예술, 사회학 지식을 동원하여 설명한다. 여기에서 공감의 역사가 곧 문명의 역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제3부 공감의 시대는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는 공감과 엔트로피의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바람, 태양, 지열 등 분산된 에너지원을 사용하고, 공동체를 중시하는 유럽식 자본주의로 가야하며, 공감의 확산을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과 전생물권으로 확산시키자고 말하고 있다.

좋았던 점은 이 책의 시작에 세계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영국군 사이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휴전에 관한 이야기 이다. 총부리를 겨누고 있으면서도 크리스마스트리의 불을 밝히는 것을 시작으로 양국이 아주 잠시 총부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 공감 때문이었다는 것을 얘기함으로써 공감이 어떠한 것이다라는 것을 독자의 마음에 심어준다. 이로써 공감에 대해 구체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한 독자들도 그 개념을 머릿속에 그리고 책을 읽어나갈 수 있게 된다. 처음 이 책을 접하면 방대한 양에 놀라기는 하지만 역사책처럼 느껴지는 이 책이 딱딱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렵지 않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 또한 이 책의 장점으로 보인다. 다음에 보다 자세히 다루게 될 내용은 몇 장에서 다룰 것이다라고 언급하거나, 앞부분에서 이미 다뤄졌던 부분에 대해서도 어느 부분에서 다뤄졌다고 언급해 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상기시킬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은 작가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아쉬운 부분은 인간의 본성을 보다 정확히 서술하기 위해 심리학 분야의 연구성과들을 곁들어 설명하는 게 필요하다고는 볼 수 있으나 자칫 심리학책으로 보일 만큼 너무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 듯 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이후에 이어지는 문명사 서술 부분과 관련해서도 연결성이 부드럽지 않아 글의 전체적 흐름을 헤치고 있다고 생각된다.
보완하고 싶은 부분은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면서 아이들이 공감을 받고 자라야 한다고 강하게 언급하는 부분이 자주 반복되고 있는데 미래에 위기를 보다 직접적으로 맞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아이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공감능력이 그 어느 세대보다 필요한 세대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지금 그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공감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양육해야 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을 따로 장을 만들어 설명한다면 책이 더욱 풍성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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