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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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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6일 20시 20분 등록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휴머니스트)

 

I. 저자에 대하여

◆ 구본형 (1954. 1. 15~)

변화경영 사상가,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소장

 

Biography

- 1954   충남공주 출생

- 1980   서강대학교 역사학과 졸업

- 1980~2000년 한국 IBM 근무 (영업관리 4, 경영혁신 16)

- 1991~1996IBM 본사의 말콤 볼드리지(Malcolm Baldrige) 국제 심사관

- 2000~ 구본형 변화경영 연구소

- 2005~ 연구원 제도 운영

 

저서

- 익숙한 것과의 결별 (1998)

- 낯선 곳에서의 아침 (1999)

- 월드 클래스를 향하여 (2000) 읽지 못함

- 떠남과 만남 (2000)

-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2001)

-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2001)

- 사자 같이 젊은 놈들 (2002) 읽지 못함

- 내가 직업이다 (2003)

-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2004)

- 일상의 황홀 (2004)

- 코리아니티 (2005)

- 공익을 경영하라 (2006) 읽지 못함

- 사람에게서 구하라 (2007)

- 아름다운 혁명, 공익 비즈니스 (2007) 읽지 못함

- 세월이 젊음에게 (2008)

- 더 보스 : 쿨한 동행 (2009)

- 구본형의 필살기 (2010)

 

◆ 저자를 위대함에 이르게 한 7가지의 길

1. 우연이 운명이 되다 (터닝포인트)

접혀져 있던 질서가 꿈틀거리다

"나는 새로운 원리가 작동하는 새로운 직업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변화의 현장에 있던 나는 직업의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고의 혁명을 남보다 빨리 냄새 맡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사고의 첨단에 있었던 셈이다." (본문 74p)

 

"그들은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지만 이미 나는 그곳에 없었다 나는 조직이 변하는 것보다 더 빨리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본문 76p)

 

"나는 글을 써본 적이 별로 없었지만, 언젠가 책을 한 권 내는 것은 오래된 욕망이었다.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본문 86p)

 

결정적 순간

"변화는 마흔 세 살이 되던 해 하루 동안에 일어났다. 나를 이루고 있던 '어떤 특성의 한 조각'이 우연히 밖으로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내 운명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 내게 오래도록 바라왔던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은 거대한 해일처럼 내 영혼을 덮쳐왔다. 그 파도 속에서 나의 과거는 죽었고, 그 거품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본문 352p)

 

 

2. 재능이 감응할 때 결코 망설이지 않는다 (천복)

핏줄을 타고 흐르는 변화 DNA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변화의 방법과 모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이것이 내 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본문 69p)

 

혁명이라는 단어는 내게 감동과 전율을 주었다. 그 말처럼 매력적인 단어는 없었다. 왜 그렇게 그 단어가 연인처럼 다가왔을까? (본문 71p)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매일 쓰는 것은 다행히 아주 즐거운 놀이였다. 나는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와 느낌과 생각을 내 일상 속에서 매일 조금씩 찾아내고 표현해보려고 했다. 그것은 늘 살아있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본문264p)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새벽의 두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 (본문 299p)

 

나는 책을 읽고 감동적인 곳을 골라내어 내 방식으로 걸러 재편하는 데 꽤 능숙하다. 그리고 관심이 있는 분야에서 그것들을 재결합하여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내는 작업 역시 즐긴다. (본문 302p)

 

호기심 천국, 한 칸 띠고 물음표를 쓰는 이유

"그렇구나, 나도 모르게 한 칸을 띄고 쓰는구나. 물음표가 많은 사람이라 그런 모양이구나. 내 아내는 나보고 늘 호기심 천국이라고 말하곤 하지."

- 구본형, <변경연 연구원 커뮤니티> 어떤 연구원의 질문에 남기신 댓글

 

 

3. 내가 그린 삶에 대한 뱃심,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용기)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는 무심히 반복되는 일상에 쐐기를 박아 멈추게 했다. 16년 동안 굴려오던 바퀴였다. 이제 큰 힘을 주지 않아도 바퀴가 알아서 돌아가고, 오랜 세월 가속도가 붙어 멈추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바퀴 주변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더욱 커져 있었을 것이다.  너무 익숙하여 편안해진 것을 멈추려면, 그 안락함을 뛰어넘는 가치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아직은 이 편안함과 바꿀만한 가치가 무엇인지도 확실하지 않으면서 그는 돌연  일상의 바퀴를 멈추었다. 음식이 무엇인가? 안락함과 풍요로움의 상징 아니던가? 단식을 선택함으로써 그는 기름지고 호의호식하는 생활에 제동을 걸었다."

- 한명석 연구원, 칼럼 <평범한 사람이 위대해지는 법> 중에서

 

달빛을 타고 떠오르다

"내 차는 붉은 브레이크 등을 달고 앞차를 따라 끝없이 긴 행렬 속에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 마음 속으로 들어가 물었다. 왜 나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가장 먼저 아내와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은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나도 그들을 위해서는 기꺼이 죽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때 나는 이미 죽어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주어야 할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내와 남편,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만 존재할 뿐, 그 사이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없었다.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랑은 비어 있었고, 생명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미 생명이 없었다. 책임과 의무만이 무성한 잡초처럼 내 마음의 벌판에 자리잡고 있었다. 살아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먼저 살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었다.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게 되자 새로운 방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차는 달 빛을 타고 떠올라 전혀 다른 차원의 길을 달려갔다." (본문 139p)

 

 

4. 침묵의 시간, 일만 시간의 레이스를 통과해야 한다 (수련)

20년의 유산

"20년의 세월은 내게 꽤 많은 유산을 남겨주었다. 나는 미국의 기업들이 변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변화에 대해 내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들이 찾아오면 설명해 줄 수 있었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가곤 했다. 나는 변화경영에 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오랫동안의 커리어를 가지게 되었다. 퇴직금은 적었지만 변화경영에 경도된 지난 20년 자체가 내게 남은 막대한 유산이었다." (본문 68p)

 

또 다시 1만시간, 변화경영사상가로

"나는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데, 이 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대를 선택했다. 나는 시간의 불모지를 내게 불하했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나만의 시간대로 만들었다. 마치 모두가 버린 시간의 밭을 일궈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찾아내지 못했다면 영원히 잠 속에 묻혀버릴 뻔한 보물 같은 땅이었다. 하루 시간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두 시간이 거의 변하지 않는 내 작업시간이다. 이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늘 가족과 친구들에게 우선적으로 열려있다." (본문 138p)

 

"2007년 이 책(낯선 곳에서의 아침)의 서문을 다시 쓰며 나는 더 이상 나를 변화경영전문가로 부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이제부터 스스로를 변화경영사상가로 부를 생각이다. 그리고 10년 후가 될 지 죽을 때가 될 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윽고변화경영의 시인으로 변화할 것이다."

- 구본형, <낯선 곳에서의 아침> 중에서

 

 

5.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존재를 지킬 수 없다 (철학)

끊임없는 배움과 실험, 그리고 언행일치

"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사람뿐이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 받을 자격이 있다." (본문 89p)

 

"이제 스스로의 작은 나라를 세워야 했다. 내 안에서 '군주적 본능'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나의 나라, 나의 세계, 나이 꽃을 피워야 했다. 그것은 겨울보다 더 추운 봄이었다. 그러나 꽃 터지는 봄은 왔다. 피워야 할 꽃, 만들어야 할 세계가 생긴 것이다." (본문 92p)

 

"그의 방법론은 모두 체험으로 검증된 것이라 신뢰를 준다. 언행일치가 그의 가장 큰 덕목이다. 이로서 그는 단순한 저술가에서 멘토로 거듭난다."

- 한명석 연구원,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평설' 중에서

 

영광을 해체할 것

"승리의 영광을 해체하고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라."

- 구본형, <2010년 가을 꿈벗 소풍>

 

 

6. 스승, 그 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스승)

마음의 경종, 이기백 선생님

우연히 대학 은사(이기백 교수님)에 관한 기록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몸이 좋지 않아 왠지 하시는 말씀에 비장함이 묻어난다. 평생 한국사에 신명을 바치신 선생님 역시 무덤의 작은 돌에 이렇게 써주시기를 가족에게 부탁하셨다고 한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 바쳐야 할 목숨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으며,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이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푼돈 서푼 짜리 인생이었다. (본문 63p)

 

중요한 길목마다 계시는 분, 길현모 선생님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마다 선생님은 내 곁에 현존하는 훌륭한 역할 모델이었다. 나는 그 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분은 내 우상이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대학 시절 몇 개의 장면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들곤 한다. (중략) ‘이론이 그 자체로 모두 옳은 것 같아 진위를 구별하기 어려우면, 직접 겪어 체험해 보아야한다이것은 플라톤의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두 개의 대화편, ’파이드로스크리톤에서 가르친 것을 연상시켰다. ’논리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웅변이 되지 못하는 잡담이며, 경험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부조리라는 가르침과 섞여 천둥 같이 내 가슴을 울렸다. (중략)

 

마음으로 존경할 수 있는 분을 만날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이란 얼마나 행운이었던가! 살면서 마음으로 깊이 머리 숙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야 좋은 선생님을 가진 우리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들인지 깨닫게 되었다. (중략)

 

선생님께서는 제게 달 같은 분이셨습니다. 세상을 살며 아주 어두운 때에도 그렇게 깜깜하지만은 않아서 가끔 하늘을 볼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별빛이 그렇게 쏟아져 내리나 하고 말입니다. 어두운 밤 나뭇가지에 달이 걸려있는데, 때로는 비수처럼 날카로웠고 때로는 둥글어 참으로 넉넉하고 풍요롭게 보였습니다. (중략)

 

길이 달라져서, 사느라고, 혹은 부끄러움 때문에, 가지가지 이유 때문에 자주 찾아 뵙지 못했지만 선생님께서는 늘 제 마음 속의 달빛으로, 어두운 길의 달빛으로 늘 그렇게 계셨습니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질문은 어둡고 어려울 때 저와 함께 살아온 오래된 물음이었습니다.(중략)

 

보통의 선생은 그저 말을 하고, 좋은 선생은 설명을 해주고, 훌륭한 선생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영감을 준다는 말이 있다. 나는 선생님에게서 학자의 모범을 보았고, 어두운 길 위에 뿌려진 달빛 같은 영감을 받았다. 내가 선생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나도 선생님처럼 누군가의 좋은 스승이 되고 싶다. 한없이 모자라는 사람이지만 선생님은 내게 이 열망을 품게 해 주셨다. 나이가 들어 연구원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일을 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나는 너무도 분명히 훌륭한 선생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고 만질 수 있는 행운을 가졌던 것이다.

- 구본형 칼럼, <길현모 선생님, 중요한 길목마다 그 분이 거기 서계셨다> 중에서
 

Follow Your Bliss, 조셉캠벨

"나에게는 스승이 있어. 늘 물어 보았어. 갈림길이 나타날 때 마다. 스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러면 보여주었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지 않아. 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윽한 달빛아래 앉으셨지. 스승은 명령하지 않아. 사람마다 다르니. 이건 되고 저건 안돼라고 말하지 않아. 제자가 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이따금 말을 하지. 여기에 암초가 있고 저 너머엔 해협이 있다. 여긴 바닥이 깊으니 냅다 달려라. 이 넓고 넓은 곳은 외로움이니 물결과 이야기하고, 홀로 고기를 잡아 먹고, 햇빛에 심장을 그을려야 망망대해를 지날 수 있다. 두려워 마라. 스승은 연꽃처럼 웃고 암시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뻔한 삶은 삶이 아니고, 싱싱한 모험만이 살아있게 하니 결국, 나의 삶이었고 못견디게 아름다웠다 할 것이니 네 길을 가라. 네 길을 가라."
(
조셉캠벨을 활용한 습작)

- 구본형 칼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을 만나라>

스승의 다섯 번째 저서인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의 뼈대를 이루게 한 장본인이 바로 캠벨이며, 스승이 1인 기업이 되어 나태해지지 않고 지독하고, 혹독한 수련을 할 수 있게 한 장본인도 바로 우드스톡의 캠벨이었다. 스승은 여러 저서의 인용문, 제자들의 첫 책의 추천사, 독서론, 연구원 커리큘럼 등 아주 많은 곳에 캠벨을 표시해 두었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미친놈, 니체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은 니체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는 변신의 힘이며, 가장 극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라는 단호한 유혹에 따라 늘 '떠나야 할 곳은 알지만 도착할 곳을 모르는 배'를 타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니체로 남은 적이 없다. (본문 279p)

스승은 이 책 거의 모든 장 서두에 니체의 아포리즘을 배열해 놓았다.

 

 

7.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 (아포리즘)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들을 돕습니다

We are helping people be a better person than ever before

-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슬로건

 

우연한 쏘시개 불꽃

An unexpected sparkle toward the destiny

내가 하는 일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아직 방향을 잡을 수 없을 때 잠시 '우연한 쏘시개 불꽃'이 되는 일이다. (본문 341p)

 

새로운 삶으로 내모는 자

Turning Point Sparker

지성이 인도하는 길과 열정이 내모는 길 사이에서 인간은 가장 위대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으니,

모든 조화로움은 활처럼 대립되는 힘의 긴장을 조율하는 곳에 있다.

- 구본형 칼럼, <그 곳, 로까의 곶> 중에서

 

시처럼 산다

Life as a Poem

시처럼 살고 싶다. 삶이 맑은 물 속의 작은 고기떼처럼 그 유쾌한 활력으로 가득 차기를 얼마나 바라왔던가. 삶이라는 대지 위를 내 인생은 여러 개의 시로 여울져 흐른다. 날쌘 고기처럼 도약하고, 깊고 푸른 물빛으로 잠복하고, 햇빛 쏟아지는 황홀로 새처럼 지저귀며 흐른다. 때로는 봄 꽃을 실어 나르고, 때로는 폭우 뒤의 격동으로 몸부림친다. 이내 거울 같은 평화 위에 하늘과 나무 그림자를 실어 나르고 마침내 바다로 흘러 들어 우주 속으로 사라진다. 그때 삶은 작은 강처럼 기쁨으로 흐르리라.

- 구본형 칼럼, <시처럼 산다> 중에서

 

 

※ 강연 동영상

'소시지 팩토리 (http://www.socijifactory.org/)' 주관 '서강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가가 되기 위한 길'이란 강연으로, 지난해 3월 이 강연을 듣고 너무 좋아서, 손수 내용을 받아 적어 스크립트를 만들었다. 지난해 이 자료를 토대로 부서에 들어온 신입사원 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했다.

강연스크립트_전문가가되기위한원칙(구본형).doc 
 

 

※ 사진

토끼풀당신_김주한,송영길.jpg

* "사진은 꿈 벗 봄 전체 모임 때  주한이 나도 몰래 찍어 준 것인데나는 이 사진을 좋아 한다살이 쪄서 둔해 보이지만 틀림없이 행복했을 것이다토끼풀 왕관은 양수의 첫째 딸 소미가 멋지게 만들어 준 것인데나는 그것을 사회를 보던 현주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현실을 꿈처럼 만드는 것, 이것이 내 일인 듯하다" - 구본형 (그림은 송암 홍정길 님 작품)

 

사부님싸인.jpg

* 2010년 6월 30 사부님을 처음 뵌 날,
  사부님의 저서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에 직접 받은 서명

  

 

◆ 내 마음 속의 달 빛, 구본형 (나의 언어로 평가하기)

2000년의 따뜻한 늦은 봄의 어느 날 짧은 까까머리를 한 새까만 청년이 백일 휴가를 나왔다. 그는 복귀하는 길에 고향마을에 있는 작은 서점에 들렀다. 이 서점은 이 마을에 단 하나 있는 작은 서점이다. 그는 서점 아주머니께 좋은 책 한 권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 드렸다. 아주머니께서 ‘낯선 곳에서의 아침’이란 책을 빼내 주셨다. 책 제목처럼 ‘구본형’이란 낯선 저자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휴가 복귀를 하면 다시 맞이하게 될 아직까지도 낯선 그곳(군대)에서의 아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막연했지만 이 책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스물 한 살의 어린 그에게 그 책은 낯설고 어려웠다. 단 한 구절만이 가슴 속에 각인 되었다. “변화의 시작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구본형’이란 사람과 결연(結緣) 되었다.

 

2007년 라일락 향기가 퍼지던 초여름 어느 날, 그는 절판되어 힘겹게 구해 다시 읽게 된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한 손에 들고, 읽었다가 내려 놓기를 반복하며 레몬즙을 짜고 있었다. 방 한 켠에는 미리 주문해 둔 ‘관장통’이 눈에 띈다. 7년 전에 읽은 그 책에서 ‘단식’을 통해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삶으로 도약했다는 부분이 불현듯 떠올라 다시 그 책을 구하고, 책에 나온 방법을 실천하기 위해 레몬과 포도 관장통을 구입했다. 회사에 입사한지 이제 만 1, 벌써 체중이 10kg 가까이 불었다. 레몬즙을 한 컵 마신 그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남은 레몬즙을 죄다 버리고, 관장통은 단 한 번 사용되고 잡동사니 상자에 던져졌다. 다시는 이런 괴로운 시도는 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

 

2009 6, 그는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점심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 선배로부터 한 권의 책을 추천 받는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란 제목의 책. 이미 그가 알고 있는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쓴 바로 그분의 자서전이다. 그분의 이름을 듣는 순간 어려웠던 책의 내용과 시큼한 레몬즙, 그리고 관장통이 떠올랐다. 평소 책을 천천히 읽는 편인 그는 단 사흘 만에 그 책을 다 읽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의 머리 속에서는 “너는 지난 10년간 도대체 무엇을 하면서 살았느냐?” 라는 다그침이 둥둥 떠다니며 그를 괴롭혔다.

 

그는 10년 전 그대로 제자리 걸음이었다. 아니 오히려 퇴보했다. 그는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했다. 동시에 내면에서 어떤 오기 같은 것이 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후 그는 '구본형'이란 이름으로 된 저서를 몽땅 구입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그분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에 들어가 그분과 그분의 제자라고 불리는 연구원 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곳에 들어갈 때마다 그는 불편해지고 심란해졌다. 뭔가가 가슴 속을 파고 들어와 한바탕 헤 짚어 놓은 뒤 홀연히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 정체는 '부지깽이'였다. 바로 그 '부지깽이'의 들쑤심으로 손톱보다도 더 작은 내 가슴 속의 불씨가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그는 결심(決心)했다. 자신의 가슴의 불을 지핀 '부지깽이'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기로.

 

2010 5월 초 스승의 커뮤니티에 ‘단군 프로젝트’ 라는 새벽기상과 관련된 내용의 프로그램을 100일 동안 진행한다는 내용의 공지가 떴다. 마치 그를 위해 만든 프로그램과 같았다. 이미 1년 정도 새벽기상과 함께 글쓰기 활동을 진행해 왔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어 무기력해지고 슬럼프에 빠져있었다. 보이지 않는 어떠한 힘이 아주 절묘한 시기에 맞춰 좋은 기회를 그에게 선물한 것 같았다. 그리고 지난 1년간 늘 곁눈질로 짝사랑만 해오던 이 커뮤니티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찾아와 준 것이다.

 

6월의 마지막 날, 드디어 10년의 그리움 끝에 이루어진 스승과의 조우. 삼성동 도서관에서 개최된 스승의 ‘북 콘서트’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 소중한 날을 갑작스런 회사 일이라는 변수로 망치고 싶지 않아 그는 입사 후 처음으로 반 차 휴가란 것을 내었다. 행사가 개최되는 도서관에 앉아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라는 스승의 자서전을 다시 읽었다. 편지를 썼다. “내년(2011) 초 오직 제 역사와 글로써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용맹정진(勇猛精進) 하겠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몇 시간 후 그는 인자한 미소를 띠고 차분하지만 힘 있는 저음의 목소리로 강연을 하는 스승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강연이 끝난 후 드디어 곁에서 스승과 첫 대면을 하게 된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란 책에 스승의 친필 사인을 받으며 수줍게 써 놓은 편지를 전하는 그의 손이 살짝 떨린다.

 

8월의 마지막 날, 그는 드디어 100일간의 단군프로젝트를 무사 완주했다. 평생 가져갈 좋은 습관 하나 가지려고 그 동안 시간의 낭비의 원인이 되던 익숙한 것들을 하나 둘 떨쳐냈다. 몸과 마음은 저항했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하루하루 늘어나는 새벽활동의 성공의 동그라미에 힘입어 참고 견뎌냈다. 그리고 승리했다. 100일의 완주를 축하하는 자리. 문을 열고 스승이 들어온다. 스승의 사상을 현실로 옮긴 작은 영웅들을 축하해 주기 위함이다. 그는 그 프로젝트의 첫 번째 ‘전설의 영웅’ 되었고 스승의 품에 안 길 수 있었다. 너무 떨려 다리가 휘청거린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가을의 단풍이 한껏 물들고 밤낮으로 쌀쌀해 지기 시작하는 10월의 어느 새벽. 그는 영웅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스스로 꿈의 직업과 미래의 풍광을 찾기 위해 자신에게 투자했다. 그리고 스승을 만났다. 매일 같이 새벽활동을 하던 그는 그날만큼은 예외가 허용된다고 마음을 놓았다. 감은 눈을 억지스레 뜨며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 방을 나온 그는 영웅의 뒷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만다. 그에게 존재하는 예외가 스승에겐 없었다. 말과 행동이 일치되고(言行一致), 앎과 행동이 하나 됨(知行合一)을 직접 목도한 것이다. 스승은 책을 펼치고 잠시 음미한다. 그리고 이내 책을 내려 놓고 글을 쓴다. 스승의 주변에 어떤 신령한 기운이, 신성한 에너지 장()이 느껴지는 듯 했다.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정신을 차리고 굳은 마음으로 다짐한다. ‘앞으로 나의 새벽에도 예외란 없으리라!

 

2011 3,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냈다. 간절한 그 무엇을 위해.

 

 

II. 내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범례 : ■ 특히 좋았던 글귀, ■ 나의 소감과 해석)

 

개정판서문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밖에 없던 세상에 나의 이야기(me-story)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나의 역사, 나의 문명이 존재하게 되었다. 나의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5)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끊임없이 나를 혁신시키는 일이다. 내 속에서  쉴 새 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해내는 일은 아주 훌륭한 모험이다. (5)

 

과거를 기록하면서 미래를 얻었다는 점이 이 책을 쓰면서 얻어낸 최고의 수확이다. 마흔 살 10년을 쓰면서 나는 내가 앞으로 10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냈다. 이것이 역사의 위대한 점이다. 미래는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딛고 이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5~6)

 

과거를 충분히 썩혀 소화해내지 못하면 과거가 살아서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 즉 과거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과거의 온갖 흔적, 그 영욕을 묻어 깊이 썩혀두면 우리는 지혜를 얻게 된다. 그것이 앞길을 밝히는 불빛이 된다. (6)

 

'미래에 대한 회고', 이것이 개인사를 정리하면서 내 마음을 무찔러온 생각들이다. 나는 10년 앞을 달려 나가서, 그곳에서 거꾸로 10년 동안 펼쳐지게 될 내 인생 최고의 장면들을 되돌아보았다. 시간적 도치가 주는 장점은 '계획을 이미 발생한 실천 결과'로 치환시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앞으로 10년을 잘 살게 '되었'. 과거의 기록이 건강한 미래를 계획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6)

 

나는 나의 문화사, 이 개인의 실록을 통해 내가 넘어서고 극복해야 할 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는다'는 나의 비전은 먼저 이렇게 나에게 적용되었다. 내가 내 직업의 첫 번째 고객인 것이다. (7)

 

책을 펴내며

이 책의 부제는 그래서 평범함 인간의 결코 평범치 않은 이야기라 불러 마땅하다. (8)

 

'자서전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임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내가 살았던 삶이며 동시에 내 속에 있는 그들의 삶이었다. 나는 이러한 깨달음이 바로 인간에 대한 성찰의 확대라고 믿고 있다. (9)

 

평범한 사람들의 '밑으로부터의 이야기', 이것이 위대한 인물과 힘있는 자들의 역사와 함께 또 다른 역사의 시선이 되어야 한다. 역사의 가장자리에 존재했던 무수히 작고 개별적인 인간들이 증발해서 사라져버린 역사학, '인간이 없는 인간에 대한 기술'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9)

 

역사는 기록된다.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평범한 개인에게 있어 개인사 편찬은 본인의 과제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9)

 

'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즉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을 그려보기 위한 시도이다. 자신에 대해 쓰다 보면, 해보지 못해 안타까운 일들이 밝혀지고 절실해진다. 이때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은 그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된다.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 경영'은 바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신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10)

 

평범한 개인의 미시사(微視史)는 본인이 남기지 않으면 유실된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중략)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 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사라진 문명이 되지 않는 것, 나아가 남은 시간을 찬란한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 프로젝트'가 절실한 이유다. (11)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의 가사가 떠올랐다. '의미도 없이 잊혀지기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이란 부분이 바로 이와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

 

일러두기

문화는 처음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14)

 

나는 서로를 밧줄처럼 엮어줌으로써 굴비처럼 꿰어놓는 질서정연한 상징성을 싫어한다. 규칙이 생기면 즐거움은 줄어든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멋대로 하는 재미와 기쁨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중략) 형식이 가벼워야 글쓰기도 즐겁다. (중략) '규칙과 표준이 창의성과 예술을 말살' 한다. (14) → 사부님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프롤로그

모든 좋은 것들은 웃는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

- 니체 (15)

 

기록은 곧 나를 있게 한 날들의 기억이며 사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미래를 위한 기획이다. (16)

 

과거는 늘 엄격하고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감옥이기도 했다. 과거가 날 만들었으니, 과거를 버리고 벗어나는 것이 또한 내 미래의 과제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였다. 살면서 나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나야 한다. (17)

 

1장 지난 10

막막함 속에서, 돌연 질주하는 기차가 모서리를 접어드는 순간 갑자기 내리막 길을 치 달리는데, 저 멀리에 레일이 끊기고 낭떠러지가 나타난다. 나는 볼 수 있지만 기차 속 승객 누구도 보지 못하는 듯 했다. 그들은 그저 평온하기 짝이 없다. (20) → 마흔의 심리적 불안감을 '낭떠러지로 질주하는 기차'에 비유했다. 나의 내면은 불안하지만 그것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불행한 시기에 철학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철학은 오히려 행복할 때, 용감하고 성공적인 장년기의 열렬한 명랑함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

- 니체 (21)

 

마흔 살은 오래 끓어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 바야흐로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다. 마지막 젊음이 펄펄 끓어오르고, 온갖 양념과 채소들의 진수가 고기 맛에 배고 어울리는 먹기 딱 좋은 시절이다. (21)

 

육체 역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안으로부터 비대해지고 느슨해진다. 모든 것의 궤멸은 늘 내부로부터 온다. (22)

 

비대해진 육체와 달리 정신은 알 수 없는 불안을 감지한다. (23)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내가 결코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찾아오면 싸우지 않고 돌려 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예를 들어 번잡함이 주위에서 서성거리면 나는 조용히 혼자 있는 방법을 취한다. (24) → 나 또한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잠시 모든 것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걷기 시작한다. 회사라면 뒷짐을 지고 가볍게 계단을 오르내린다. 마음이 하는 일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 하는 모든 말을 듣고 또 듣는다. 그러면 저도 모르게 차분하고 평온해진다. 맞서는 게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다.

 

고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독은 비 같은 것이다. 식물을 밤 사이에 자라게 하는 그런 것이다. (25) → 고독은 옆구리께를 스쳐가는 바람과 같다고 법정스님께서도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인간은 본래 고독한 존재이며, 자기 자신의 실존에 대해 오롯이 자신과 마주 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고독한 순간이다.

 

지식은 지식에 적용됨으로써 증식된다. 그리고 지식을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체험한다. (26) → 지식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와 내 것이 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공허한 메아리와 같다. 지난해와 지지난해 50권씩의 책을 읽었는데, 패스트푸드를 먹듯 먹어 치우는 식의 독서였다. 당연히 금새 증발해 버리고 남는 것이라고는 희미한 잔상들 뿐이었다. 천천히 느려도 좋으니 책이 전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라도 내 삶에 적용하여 내 것으로 체화시킨다. 그것이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뒤의 성취감보다 더 중요하다.

 

유혹의 나이, 마흔

바다는 검었다. 창문을 조금 열자 바다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도의 끝이 부서지는 흰 포말도 보였다. (29) '포말'이란 발견하고 어찌나 기쁘던지. 2년 신혼여행을 하와이를 다녀왔는데, 군청색 바다에 얇게 저민 듯한 손톱 같은 파도의 '흰 포말'을 보고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함을 느꼈었다.

 

검고 끊임 없이 파도 치는 내 내면의 바다 (30) → 무의식의 세계, 욕망의 원형들이 담겨 있는 세계

 

자유는 빛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확실한 것, 굳건히 서 있는 것들의 질서 안에서 자유는 끝나고 만다. 절실하게 바라지만 자유가 주어지면 우리는 자유를 두려워 한다. '이내 스스로를 함부로 던져 망가뜨리고' 만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것을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모든 만족을 얻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함께 그녀를 배신한다."라고 표현한다. → 나는 이 말의 뜻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랑은 다른 애인을 찾아냄으로써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감정으로 위장된 반복 속에서 소모될 뿐이다. 사랑은 늘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증식되는 능력이다. 그것은 영혼의 갈망 같은 것이다. 모파상은 "진실한 사랑은 영혼이 육체를 감싸 안는다." 라고 표현했다. (30~31) →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서로에게 설렘을 주는 사랑 호르몬의 유효기간은 200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면 200일이 지나면 어찌 해야 하는 것일까? 다른 짝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파충류 뇌의 속성일 뿐이다. 200일을 2000, 20000, 영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실한 사랑일 것이다. 본능을 거스르지 않고 영혼의 울림을 따르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나은 가치를 따를 수 있는 인간이다.

 

현실만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때려주고 싶다. 그들이 현실이라 부르는 것, 그것 역시 한때의 꿈보다 더 영속적이지 못하다. 인생은 결국 짧은 꿈이었다는 것을 모든 죽어가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31)

 

현실은 늘 죽음 앞에서 무력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오직 삶만이 현실의 위력에 눌려 죽어 지낸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현실적으로밖에 살지 못했던 그 초라한 현실을 후회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왜 강남의 아파트 한 채를 얻기 위해 모든 시간을 그 욕망에 다 쓰고 말았을까? 모호하고 불확실함 속에서 그것만은 가능한 성취로 보였기 때문일까? , 왜 그를 추월해 승진하는 것이 그렇게 다행스러운 일로 여겨졌을까? 그를 동정하며 비웃었던 우월감이 얼마나 부질없는 비천함이었던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자제와 절재를 현명함으로 불렀던 그 어리석음은 또 어떻게 하랴. (31) → 아.. 미치겠다. 가슴 속 응어리가 울컥하고 치밀어 오른다. 가래처럼 '카악'하고 내 뱉는 듯한 시늉을 해 본다. 함께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단상이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난 저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잘 살고 싶었다. 정말 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이 길을 선택한 것이다.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자재와 절제를 현명함으로 부르던 그 어리석음에 울트라 같은 펀치를 한방 날린다.

 

절정을 지난 꽃의 아름다움

'이 꽃들처럼 싱싱함은 사라졌어도, 아니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쓰라리고 자극적인 향기를 풍겼다. 분명 지나쳐갔을 불행이 잠잘 때도 그 입가에 남겨 놓은 비탄만큼 그녀를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낮이라면 머리카락을 내려 감추었을 목에 난 두 줄기의 주름이 그녀를 더 아름답게 했다.'

- 플로베르 (36) → 나중에 사랑하는 내 아내가 함께 늙어가며 깊어지는 주름과 함께 지금의 아름다움의 빛 바램에 슬퍼할 때 이 글로 위로를 해주고 싶다. 당신의 영혼은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고 이야기해주며

 

아름다움이란 여러 가지 깊이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긴 인생이 빛깔이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36)

 

나는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 곧잘 낙관적인 정신적 전환에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중략) 문제가 던져주는 여러 상징을 해석하고 가능한 여러 해결 방법 가운데서 내게 적합한 방법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36) → 사부님의 강점

 

가장 정력적인 나이에 버려지다

그러나 마흔이 넘으면 그것(먹고 사는 것)이 모든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40대의 최대의 위기를 불러온다. 과거가 사라진 상태에서 미래조차 만들어낼 수 없다면 갈 곳이 없다. (37)

 

나는 이미 마흔을 넘어서고 있었고, 직장 속에서 나는 이미 지나간 세대에 편입되었다. 아무도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나의 과거는 거대한 사회적 방망이에 의해 가슴을 강타 당했다. 배반 같기도 하고, 비애 같기도 하며, 무력감 같기도 하고, 허무 같기도 한 통증으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뒷방 노인이 된 마흔이여. (38) → 아.. 이것이 내 미래의 한 장면이 되지 않길 소망한다. 함께 일하는 상사들이 대부분 이렇게 지친 낙타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기 위해 지금 이 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2장 마흔 살

숨조차 쉴 수 없는 무력함 속에서 마냥 기다린다는 것은 암흑보다도 더 어두운 일이었다. (42)

 

아직 밟아보지 못한 천 개의 길이 있다. 천 개의 숨겨진 삶의 섬들이 있다.

- 니체 (43)

 

나는 그를 혐오했다. 그는 늘 과거를 과장했다. "이봐, 너희는 행복한 줄 알아. 난 왕년에 너희처럼 시시하게 일하진 않았어. 밤을 샜지. 토요일도 일요일도 나왔어. 너희처럼 토요일에 놀고 일요일은 퍼져서 쉬는 세대가 아니었지. 모든 것을 회사에 바쳤단 말이야. 청춘을 바치고 개인을 바치고 열정을 바쳤지. 너희가 다니는 이 회사는 그런 땀 속에서 만들어졌단 말이다. 그러면 요새 건방진 젊은 것들은 싫은 표정을 짓곤 하지. 저희끼리 수근 거리는 것을 나도 알고 있어." 그가 취중에 중얼거린다. 아부도 들을 수 없는 독백이 이어진다. "바쁘게 지낸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말았지. 지금 의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해 공허한 한 남자를 말이야.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이 벌어진 위대한 젊은 날을 과장하지 못한다면, 지금 이 허무를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너희는 모르지. 지나간 과거에서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할 때 마흔 살 남자는 낙엽처럼 부서지는 허망함 속에 서 있게 된다는 것을 너희처럼 새파란 것들은 알 수가 없는 거야." (43~44) → 나의 아버지, 나의 상사들의 삶의 슬픈 단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 또한 지금 이대로 살아 간다면 뭐가 달라지겠는가?

 

또 다른 그는 일속으로 도망간다. 일밖에 없는 일꾼은 성공한 실패자가 되고, 부유한 노예가 되고, 가족에게 미안한 가장이 되고, 늘 바쁜 아비가 되어 무자비한 사다리의 꼭대기를 향해 질주한다.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부자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정한 기준을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공허한 인생을 위로 받기 위해 지나치게 돈에 집착한다. (45)

 

미루나무가 서 있는 강 길을 걷는다.

강 건너 마을에 하나 둘 흔들리며 내걸리는 불빛들.

흔들리는 것들도 저렇게 반짝일 수 있구나.

그래 불빛, 흘러온 길들은 늘 그렇게 아득하다.

어제였던가. 그제였던가. 그토록 나는 저 강 건너의 불빛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왔던 것이구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흔들리며 손짓하는 그 나무들의 숲에 다가갔다.

숲을 건너기에는 내 몸은 너무 많은 것들을 버리지 못했다.

지나간 세상의 일을 떠올렸다.

 

내 안에 들어와 나를 들끓게 하였던 것들, 끝없는 벼랑으로 내몰고 갔던 것들, 신성과 욕망과 내달림과 쓰러짐과 그리움의 불멸들.

 

굽이굽이 흘러온 길도 어느 한 굽이에서 끝난다.

폭포, 여기까지 흘러온 것들이 그 질긴 숨의 끈을 한꺼번에 탁 놓아 버린다.

다시 네게 묻는다. 너도 이렇게 수직의 정신으로 내리 꽂힐 수 있느냐.

내리 꽂힌 그 삶이 깊은 물을 이루어 흐르므로, 고이지 않고 비워내므로 껴안을 수 있는 것이냐.

그리하여 거기 은빛 비늘의 물고기떼, 비바람을 몰고 오던 구름과 시린 별과 달과 크고 작은 이끼들

산그늘마저 담아내는 것이냐

 

- 박남준 <나무, 폭포, 그리고 숲> 중에서 (46)

 

→ 이 책을 다섯 번째 읽는 지금 이 시가 가슴에 와 사무친다. 저기 저 강 건너의 깨달음의 불 빛. 나를 가로 막고 있는 익숙한 세계의 숲. 그리고 내리 꽂히는 폭포. 나는 그렇게 내리 꽂힐 수 있겠는가? 내 나이 마흔이 넘으면 이 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마흔에 관한 이야기들

<마법의 책에 나오는 마흔 살에 대한 이야기>

마흔 살은 늙지도 젊지도 않다.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수용한다. 따라서 개념의 깊이를 희생하는 대신 명료하고 구체적인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마흔 살의 이야기는 일상의 거울 같은 것이다. 매일의 경험들이 마흔 살의 이야기의 주류를 이룬다. (47~48)

 

마흔 살이 되면 인생의 마법을 떠나 보낸다. 일 때문에 놀이를 포기하고 책임 때문에 순수한 장유를 반환하게 되는 일상적 경험을 통해, 마흔 살은 개인을 군중과 대중 속의 이름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넘어, 자유와 전통적 권위 사이의 힘 겨루기를 넘어, 진정한 사회화를 겪게 되면서 보수화 된다. (48~49)

 

마흔 살은 당나귀의 삶이다. 마흔 살이 되면 사람들은 밀려드는 피로감 때문에, 자신에 대한 다소의 실망감 때문에, 또는 그 동안의 실패의 전력 때문에,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저만치 물러앉는다. 노력이란 얼마나 지루한 가시밭 길인가! "이제 마흔이 되었다. 그러나 해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에 내가 다녀간 자취는 어디에도 없다. , 나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고 누구의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저물었다. 우리의 세대도 끝났다." 마흔 살의 중년은 이런 비탄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50~51)

 

마흔이 넘으면 사람들은 외부를 변화시키는 것에 무력해진다. 그들은 자신을 믿는 대신 더 힘이 센 다른 사람과 제도의 힘에 의존하게 된다. 타인에게 의존함으로써 노예가 된다. (52)

 

마흔 살은 남녀 모두에게 운명이나 숙명의 힘을 깨닫게 해준다.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속수무책이거나 극히 제한적인 통제력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53)

 

마흔이 넘으면 불운과 실수에 대하여 스스로를 용서하게 된다. (54)

 

마흔 살은 융통성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회에 대한 분노와 강한 자에 대한 비난은 탄식과 슬픔이 된다. 겸손과 동정과 베풂은 이런 비극적 통찰에서 나온 변환이다. 이러한 자기수용은 자아통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54)

 

마흔 살이 되면 이성은 서서히 죽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칼날은 빛을 감추고 무뎌지기 시작한다.  마흔이 넘어 나타나는 창조성은 '발작적 불꽃'이 진화하고 성숙하여 하나의 습관과 태도로 변한 일종의 믿음직한 기술로 바뀌게 된다. 마흔 살 너머의 창조는 학습과 훈련과 가벼운 정신적 태도의 산물이다. 40대는 실리적인 나이다. 마흔의 나이에는 철학조차 실용적인 것이 된다. 이때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삶의 지혜다. 지혜란 '숭고하고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삶을 위해 필요한 실제적인 통찰력을 의미한다. (55)

 

마흔이 되면 악에 대해서조차 관용적이 된다. 그들은 쉽게 도덕적 모호함에 관대해진다. 선과 악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가지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더 관용적이 되는 반면 덜 도덕적이 된다. 그리하여 도덕적 상대주의를 옹호한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젊은 시절에 정체성을 찾기 위해 사용했던 이분법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삶의 모습을 해석할 유연하고 더욱 복잡한 새로운 지혜를 모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귀하고 능숙하게 비껴가는 방법 가운데 최고의 것은 유머이다. 유머는 일종의 여유와 휴식이다. 유머는 적개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유머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치료란 역경과 비극을 극복하는 것이다. (56~57)

 

융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이 쓰고 있던 사회적 가면, 즉 페르소나는 중년이 되면 붕괴한다. 그리고 내면을 향해 들어가도록 강요한다. 중년의 과제는 각 개인의 내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치료이며 재생을 위한 내적인 힘이다. 대체로 이러한 갱생의 힘은 절망과 고통 속에 감추어져 있다. (57~58) → 내면 탐색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있는 그림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내면의 여성성인 아니마, 혹은 남성성인 아니무를 통찰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의 중심인 자기에 이른다. 그러한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해 한 인간은 새롭게 거듭난다. 바로 이 시기가 중년에 일어나고는 한다.

 

⑩ 마흔이 되면 한계에 대한 자각이 젊은 시절의 끝없는 희망을 대신한다. 두 개의 시선, 자신을 바깥에서 보는 시선과 안에서 보는 시선을 공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쓰임을 받으면 애써 일하고, 버림을 받으면 스스로 즐기면 된다. 부름을 받으면 신명을 다하는 것이고, 그들이 잊으면 일상을 즐기며 스스로 벌어 궁색하지 않게 먹고 살면 되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사이, 3의 지점,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자리, 스스로를 놀릴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혁은 마음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마흔 살의 문제는 결국 가슴과 영혼의 문제다. (58)

 

 

나는 삶을 연극에 비유하는 것을 싫어한다. 삶은 연극이 아니다. 우리는 극장 안의 배우도 관객도 아니다. 배우란 짜여진 배역에 따를 뿐이다.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배역은 결국 내가 아니다. 극본과 연출, 그리고 배역까지 맡아야 비로소 삶으로 비유될 수 있다.  (중략) 우리는 극장 밖으로 나와야 한다. 삶을 연극에 비유하는 것을 미워하는 이유는 삶을 극장 안으로 몰아넣고 짜여진 연극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진짜를 원한다. (60)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나이

 40대는 사회적 폐기물이 된 자신을 구해내어 빛나는 삶으로 창조하는 시간이다.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이 가능한 시기다. 어쩌면 반전만이 이 시기를 사는 교훈일지 모른다. 전환과 변곡, 이 두 단어야 말로 40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이다. (61)

 

나는 사람들이 복권을 사듯 살아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푼돈을 들여 복권을 사면서 허망한 기대 속에서, 실제로는 복권의 당첨금보다 더 많은 돈을 쪼개어 평생을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위험부담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잃어도 좋은 푼돈만 투자했다.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 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 (62) → 아.. 가슴을 관통한듯하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우리네 가까운 많은 이웃들이 이러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복권의 당첨금보다 더 많은 돈을 쪼개어' 라는 말이 와 닿는다. 우리의 푼돈과 우리의 하루는 이런 식으로 낭비되어 지고 있다.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다만 내가 거는 것은 돈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건다. 나는 이 길을 택했다. 내가 도박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길 밖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62)

 

우연히 대학 은사에 관한 기록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몸이 좋지 않아 왠지 하시는 말씀에 비장함이 묻어난다. 평생 한국사에 신명을 바치신 선생님 역시 무덤의 작은 돌에 이렇게 써주시기를 가족에게 부탁하셨다고 한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 바쳐야 할 목숨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으며,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이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푼돈 서푼 짜리 인생이었다. (63) → 이제는 고인이 되신 '이기백'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다. 가슴에 경종을 울리는 스승이 있다는 것, 삶의 깨달음을 나눌 수 있는 어른이 계시다는 사실은 한 사람의 성장에 아주 중요한 요소다. 나 또한 그런 스승을 모시기 위해 즐거운 지적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자리가 내가 죽어야 하는 자리라는 점이었다. 한 세상이 어둠에 싸이게 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빛난다. (63)

 

3장 직장생활

나는 수직적인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성격) 20년의 세월은 내게 꽤 많은 유산을 남겨주었다. 나는 미국의 기업들이 변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변화에 대해 내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들이 찾아오면 설명해 줄 수 있었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가곤 했다. 나는 변화경영에 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오랫동안의 커리어를 가지게 되었다. 퇴직금은 적었지만 변화경영에 경도된 지난 20년 자체가 내게 남은 막대한 유산이었다. (1만시간) 그리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변화의 방법과 모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이것이 내 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천복) (68~69)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가지고 평가하게 마련이다. (70)

 

혁명이라는 단어는 내게 감동과 전율을 주었다. 그 말처럼 매력적인 단어는 없었다. 왜 그렇게 그 단어가 연인처럼 다가왔을까? (71)

 

에게 해에는 꽃과 바위만 있는 섬이 있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잠깐 피었다 지고 말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꽃들이 그곳에서는 한 해에 두 번이나 크고 화려하게 만발한다고 한다. 옹색한 땅과 준엄한 바위가 오히려 개화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결핍이 꽃을 아름다운 꿈 안으로 몰아넣어 준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72)

 

홀로그램의 세계 속에서

나는 새로운 원리가 작동하는 새로운 직업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변화의 현장에 있던 나는 직업의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고의 혁명을 남보다 빨리 냄새 맡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사고의 첨단에 있었던 셈이다. (74)

 

그들은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지만 이미 나는 그곳에 없었다 나는 조직이 변하는 것보다 더 빨리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76)

 

필요한 사람들

지금의 하기 싫은 일을 버리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일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직장 속에는 그런 사람들이 적어도 80퍼센트는 되 보였다. (77)

 

진지하고 소극적이며 전통적인 사람들은 여전히 한 직장에서 옛사람들과 함께 오래도록 지내고 싶어했다. 그들은 회사를 사랑했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성실하고 책임감 깊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회사의 부담이 되고 있었다. 회사는 이들보다 더 빨리 변해야 했기 때문이다. (77~78) → 지금 내가 속한 회사의 조직문화가 이러하다. 얼마 전 다녀온 정신교육과 갖은 가치교육 과정에서 교육을 하러 온 한 임원은 우리 조직의 가치는 '다 함께 오래 가자' 라고 했다. 좋다. 그러나 과연 이 조직은 나를 책임져 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들을 믿지 못하겠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에게서 나온 것뿐이다.

 

어느 조직도 필요한 사람은 떠나 보내지 않는다. 어려울 때일수록 잡아두고 싶은 사람은 떠나 보내지 않는다. 이것이 '필요의 원칙'이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이다. 자신의 특별함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고 일을 처리하는 자신만의 좋은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유능하다고 할 수 있다. (79)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열린 관계가 유지되도록 적과 동지 사이에 제3의 꼭지점을 찾아내어 그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이들은 '누구의 사람'이라는 폐쇄적 소속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한 때 권력에 줄을 대서 급부상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늘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처럼 빼내기 어려운 자리에 있다. (79) → 여기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까지 나는 여기에 합당한 사람에서 '누구의 사람'에 조금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단군프로젝트를 시작함과 동시에 그런 열린 관계를 의도적으로 닫았다. '누구'로부터 독립하기 위함이었고, 주류라고 불리는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고립이었다. 그 고립의 시간 동안 나는 내적으로 나를 다졌다. 새벽의 2시간의 내 시간을 찾을 수 있었다. 술자리를 피하고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15kg 이상 감량 했다. 갑상선 기능항진증도 정상수치로 회복했다. 그리고 비 주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조직을 바라보는 균형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지 희미하게 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립은 나를 다루기 힘든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안겨주었다. 앞으로 개인의 존재와 밥벌이 사이에서의 위험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어느 하나도 소홀할 수는 없다. 이게 향후 5년간 내게 주어진 Big Project.

 

그들은 늘 학습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전문성이 자격증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식은 변하고 늘 다르게 적용된다. 자신의 소질을 이해하고 잠재력을 계발한다. 이들은 대체로 겸손하지만 자신이 일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애정 없이는 자신을 불태울 수가 없다. 어떤 분여든 자신을 불사르지 않고서는 핵심에 다가갈 수 없다. (80) → 아.. 스스로 선택한 고립이 이 앙꼬를 빠뜨린 것은 아닐는지.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고 있다. 또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단추를 끼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요한 사람들은 떠남을 늘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떠남으로써 남겨진 조직이 힘이 격감되는 사람들. 니체는 가장 위험한 조직원을 '그의 이탈로 조직 자체가 파괴되는 조직원'이라고 불렀다. (80)

 

돌연한 출발

'나는 내 말들을 마구간에서 끌어내 오라고 명했다. 하인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몸소 마구간으로 들어가 말에 안장을 얹고 올라탔다. 먼 데서 트럼펫 소리가 들여오기에 하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영문을 몰랐다. 그는 그 소리조차 듣지 못했던 것이다. 대문에서 그는 나를 가로 막으며 물었다. '어딜 가십니까, 주인어른.' '모른다.' 내가 대답했다. '그냥 여기를 떠난다. 그냥 여기를 떠난다. 그냥 여기를 떠나 내처 간다. 그래야 나의 목표에 다다를 수 있노라.' '그렇다면 나리의 목표를 알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가 물었다. '그렇다.' 내가 대답했다. '내가 여기를 떠난다고 하지 않았느냐? 떠남이 나의 목표니라.' '주인어른께서는 양식도 준비하지 않으셨는데요.' 그가 말했다. '나에게는 그 따위 것은 필요 없다.' 내가 말했다. '여행이 워낙 길 터이니 도중에 무얼 얻지 못하면 나는 필경 굶어 죽고 말 것이다. 양식을 마련해 가봐야 양식이 이 몸을 구하지 못하지.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야말로 다시없는 정말 굉장한 여행이라는 것이다.'

- 카프카, <돌연한 출발> 전문 (82)

 

나를 마케팅 하다

나는 사람의 관계는 가능하면 순수한 것이 좋다고 신봉하는 축에 속하는 숙맥이다. 나는 이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변하지 않는 속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실패한 곳에서 성공할 수 없다면 내 비즈니스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4)

 

나는 내가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과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설득했다. (84)

 

적극적 수동성, 즉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경영학은 '유혹'이라는 싱싱한 단어를 죽은 단어, 즉 마케팅이라고 불러왔다. (85)

 

세일즈가 도망치는 고객에게 달려들어 창을 꽂는 것이라면, 마케팅은 짐승이 다니는 길에 온갖 화려한 미끼를 주렁주렁 단 덫과 올가미를 놓아두는 것이다. (85)

 

유혹은 설득 이전에 이미 설득 당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설득이란 언제나 스스로 이미 설득 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설득할 수 있다. 이것이 설득의 제1의 법칙이다. 설득은 늘 미리 이루어진다. 미리 이루어진 설득, 무너진 자기방어를 유혹이라고 부른다. (85) → 모든 것을 갖추고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내가 돕고 싶은 사람들도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다. 나도 세일즈가 아닌 마케팅을 하고 싶다. 싸구려가 아닌 비싼 값어치를 하는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유명한 사람으로써가 아닌 그 깊이 때문에 말이다. 마치 스승님과 법정스님처럼 말이다.

 

모든 위대한 리더는 유혹에 능한 사람들이다. (중략) 매력 없는 리더란 없다. 리더는 반드시 자신의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 잡는다. 유혹은 매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력은 가장 자기다운 것에서 발산되는 페로몬이다. (86) → 바로 여기서 세 번째 칼럼이 도출된다. '나는 무엇으로 특별해지고 싶은가?' 다시 말해 나는 무엇으로 고객을 유혹할 것인가? 과연 무엇으로 나의 팬들을 열광시킬 것인가? 가장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지금 생각나는 것은 '새벽, 독서, 글쓰기, 리더십, NLP, 커뮤니케이션' 등이 떠오른다. 모호하다. 명확하지 못하다. 이미 어디서 누군가가 먼저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글을 써본 적이 별로 없었지만, 언젠가 책을 한 권 내는 것은 오래된 욕망이었다.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86) → 접혀있던 질서가 꿈틀거리다.

 

1997, 마흔 세 살이 되는 여름 어느 날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한 달 동안 포도 단식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새벽에 깨어 일어나 앉았다. (중략) 하루는 아무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나를 찾아왔다.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있었다.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었다. 나는 좌절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오랫동안 바라왔던 것, 즉 변화경영에 대한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나는 기뻤다. 내게 천둥처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갑자기 나는 내가 기획하는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기획하고 연출하며 배역을 맡는 이 훌륭한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 달쯤 지나 책이 나왔다.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독자에게 가는 선물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주는 메시지였다. 책은 잘 팔렸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잡지들은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을 광고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변화경영 전문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87) → 사부님의 터닝포인트

 

새로운 시작

나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도 역사학을 공부하다 1980년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은사가 강압에 의해 학교를 떠나게 되었을 때 학업을 포기하고 취업했다. 그리고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88)

 

나는 내 것을 가지고 싶었다. 박사라는 사회적 인증의 과정과 틀은 내게 아무런 흥분도 주지 못했다. 전문가는 학위와 자격증에 의해 증명되지 않는다. 전문가는 과거에 의해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며, 오직 끊임없는 자기학습에 의해 날마다 새로워질 뿐이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88~89) → 나도 이것과 같은 이유로 자격증에 연연하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사람뿐이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 받을 자격이 있다. (89)

 

나는 사는 듯 싶게 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다 바칠만한 것을 찾고 싶었다. 관성에 따라 굴러가는 하루 말고, 전혀 새로운 뜨거운 하루를 가지고 싶었다. (91)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78 4월 어느 날 오후에 야구를 보러 갔다. 외야 쪽 스탠드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타자가 첫 볼을 외야 2루타로 쳐냈다. 그때 문득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갑작스런 계시 같은 것이었다. 이유도 설명할 방법도 없다." (91)

 

이유도 없는 우연한 흐름이 곧잘 필연적 운명으로 이어지곤 했다. (91) → 우연이 운명이 되다. 그러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게 이런 순간은 2002년 봄 제대 후 복학하여 CPA(공인회계사) 준비를 시작하며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중 답답한 마음이 치솟아 올라 도서관 바깥으로 나왔다. 캠퍼스 내에 아름다운 봄 꽃들과 싱그러운 봄 내음이 나를 심난하게 했다. 내가 이 화창한 봄날에 감옥 같은 곳에 갇혀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가? 이거 아니면 난 안 되는 건가? 그건 아니었다. 그럼 나는 뭘 하며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잘 하는가? 그 순간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떠올랐다. 맞아! 그거 하나만큼은 내가 도서관에 앉아 있는 사람보다는 더 잘 알지.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나 스스로도 변화하고, 간절히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 돕는 일' 이 일을 하면서 사는 거야! 나는 쾌재를 불렀다. 우연한 흐름이 필연적 운명으로 내게 찾아와 주었다. 그러나 나는 애석하게도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이끌어줄 어른이 단 한 사람도 곁에 없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10년 후 나는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중무장을 했고, 이미 큰 깨달음을 얻은 스승도 곁에 계시다. 앞으로 내가 갈 길을 생각하니 가슴이 떨리고 설렌다.

 

나무들은 가장 추울 때 그렇게 서 있다. 죽지 않고 새로워지는 것은 없다. 죽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새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91)

 

이제 스스로의 작은 나라를 세워야 했다. 내 안에서 '군주적 본능'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나의 나라, 나의 세계, 나이 꽃을 피워야 했다. 그것은 겨울보다 더 추운 봄이었다. 그러나 꽃 터지는 봄은 왔다. 피워야 할 꽃, 만들어야 할 세계가 생긴 것이다. (92) 2002 '김경인 닷컴'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프로필에 나온 나의 비전에 '나의 제국을 만들어 그곳에서 자신과 세상의 발전에 공헌할 것이다'라고 쓴 기억이 났다.

 

4장 얼굴 - 페르소나

어둠에 익숙해졌고 도랑 속의 시체는 점점 더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나였다. 내가 죽은 것이다. 브라보! (96) → 단절, 과거와의 결별,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상징한다. 서태지 '죽음의 늪'이란 노래에 나오는 가사가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새벽거리에서 쓰러져 있는 그를 보고 있네. 그는 바로 나였지'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방황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 메이 사턴,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중에서 (97)

 

'초상화를 그릴 때 몇 가지 공통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우선은 초상화가 실제 인물과 달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쳐버려야 한다. 실제 인물과 비슷해 보이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생명력이 없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내면을 그려내는 것이다. 초상화의 생명은 정밀묘사보다 그 인물이 풍기는 분위기와 느낌을 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초상화의 매력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초상화 그리는 것을 가르쳐주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그리는 선 하나하나가 실물과 닮기를 원한다. 그들은 주로 윤곽부터 그린 다음 그 안을 채운다. , 밖에서부터 안으로 그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초상화는 그 반대로 그려야 한다. 즉 안에서부터 밖으로 그러야 한다. 왜냐하면 안만 제대로 그려지면 밖은 저절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 노마 밀러 <타임>지의 표지 그림을 그렸던 초상화가

→ 중요한 것은 바깥에 있지 않고 내면에 있으며, 바로 그 내면에서 우러나온 것이야 말로 그 사람의 진수임을 드러내는 인용문으로 활용할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한 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거야" 가 떠올랐다.

 

머리카락, 약간의 콤플렉스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길들게 마련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서로에게'라는 말이다. '나에게 길들게' 하면, 그것이 목적이 되면, 함께 살 수 없다. (103) → 나는 아내의 차갑고 냉랭한 말투에, 아내는 나의 그로 인한 과격한 반응을 싫어했다. 그러나 아내의 어린 시절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말투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나의 반응이 사라지자 아내의 말투가 다정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길들여지게 마련인 것 같다.

 

, 나의 자부심

편협하거나 유별나게 고집스럽지 않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죽을 듯 덤벼드는 고집불통은 아니다. 아마 콧날이 굴곡 없이 반듯하기 때문에 글줄이나 쓰면서 남들에게 교양과 지성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며 살게 되었나 보다. (106)

 

참고로 나는 좀 다혈질이기 때문에 교양이 있는 사람처럼 처신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107)

 

나는 절대로 아부 같은 것을 못한다. (107)

 

쓸데없는 치장은 야심한 밤 피곤에 지쳐 집에 돌아온 여자들이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지워내야 하는 화장 같은 것이다. (108) →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말 것

 

인형에서 자유인으로

약간 돈 것은 아주 재미있다. 기존의 존재방식에 대한 파격이 아니라 그 편견에 대한 비웃음이 재미있었다. (111)

 

내 얼굴은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의 한계 속에 머물면서 겨우 몇 가지의 모습으로 고착되어 있었다. 고착의 패악은 정신을 경직시킨다는 점이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마음대로 변형시켜본다는 것은 내게도 익숙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 나도 날 무서워했고, 밀실에서도 내 의식은 갇혀 있었다. 사회적 기준은 나의 몸을 짜부라뜨린 후 침투했고, 나에게 허용된 개인적 밀실은 끊임없이 감시 받고 있었다. 나는 내 속에서조차 옷을 벗고 편하게 쉬기 어려웠다. (112)

 

미셀 푸코의 말들이 생각났다. 인간은 권력에 오염되어 있다. 물질적 권력이 아니라 지식을 통한 훈육권력에 매여있다. 건강한 개인과 부강한 국가라는 거부하기 어려운 모토를 앞세워 개인의 삶을 규격화하고 통제하려는 권력이 우리를 묶어두고 있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만들어지고 조작되며 인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112)

 

내 의식을 감옥에서 풀어주고 싶었다. 문학이 우리에게 숨쉴 곳을 제공하는 이유는 김수영의 표현대로 '기본적으로 불온'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우리의 정신은 조금 미칠 수 있다. 자유에 대한 욕망은 늘 밖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밖으로, 사회 속으로 자신의 밀실을 확장해가려 한다. 그리하여 사회적 자유의 공간을 넓히려고 한다. 욕망이 자신을 충족해가는 것은 개인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욕망은 부숴 뜨려 땅에 묻어야 하는 끔찍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힘과 에너지다. (113) → 욕망, 그것은 에너지다.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순수한 에너지다. 그것은 살아있음을 위한 에너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꿈의 원형'이기도 하다.

 

내 속에는 불꽃이 있었다. 불꽃은 너무 작아서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어둠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두려움이 결국 불꽃으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하게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불꽃은 더 이상 숨어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주 적게 먹고도 살 수 있다. 요만큼만 먹고 살 수 있다." 그 후 내 불꽃은 갑자기 전혀 예기치 않게 다시 훨훨 춤추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한 순간 '이렇게 계속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113~114)

 

단식이라는 상징은 내게 참으로 적절한 출발점이었다. 그것은 나를 가볍게 해주었다. 모든 속박은 '먹고 사는 것'으로부터 왔다. (114) → 스승에게 배운 이 상징적 의식을 나 또한 내 삶으로 끌어 왔다. 매주 월요일을 '자발적 빈곤'의 날로 정하여 일일 단식을 실천한다. 6개의 레몬으로 만든 4리터의 물로 하루를 연명한다. 일주일을 단위로 한 단절의 연습이기도 하고, 내가 나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기도 했으며, 힘겹게 조절한 체중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범상치 않은 이야기, 나는 이것을 인류의 미시적 역사라고 생각한다. 개인은 각자 그 안에 자신의 역사를 안고 산다. 부끄러움도 있고 후회도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도 있고 당당하고 장엄한 순간도 있게 마련이다. (115)

 

'오동은 천 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115)

 

생명은 내면에 있다. 우리의 내면은 늘 신과 만나는 장소이다. 신은 복잡한 곳에 있지 않다. (116)

 

사회적 기대가 존재하는 곳에는 늘 인형을 움직이는 끈으로 가득하다. '어떤 행위가 칭찬받게 될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그 무엇이라도 성취해낼 수' 있을 것이다. (116) → 기대라는 속박 없이 자유로운 환경에 놓여지면 삶은 놀이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삶과 일이 놀이가 되면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모든 것을 해낼 것이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다운 것에 천착하고 매달렸다. 니체가 말한 '거리의 파토스'를 추구했다. 이것은 차이에 대한 열정이었다. 차이는 다름이다. 그것은 다른 것, 다른 사람의 것을 자신의 것과 구별 짓는 다름에 대한 열정이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어설픔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움과 긍정의 표상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더 다르게 만들려는 열정이다. 더 많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 차이를 끊임없이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117)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오랜 세월과 수많은 공간'을 지나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도 되고 저런 사람도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기에 왔다. (118) → 이미 나는 하나의 완성된 씨앗의 모습을 가지고 이 세상에 왔다. 개나리가 벚꽃이 될 수 없듯이 나 또한 이미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본래의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 그것이 인생이다.

 

5장 가족

잡아야 할 손이 필요할 때, 따뜻한 손을 가진 그녀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122)

 

진정으로 사랑했던 그 마음은 결코 그 사랑을 잊지 않는다.

- 토마스 무어 (123)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 이탁오(李卓吾)

→ 사우(師友)의 개념은 변경연을 비롯하여, 사부님께 영향을 받아 파생된 모임에서 핵심적인 관계의 모토가 되었다.

 

아름다운 가정이라는 것이 갈등이 없는 가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싸우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어울려 밤낮을 함께 하니 갈등도 없고 싸움도 없이 지낼 수는 없다. 나는 갈등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갈등은 마음이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나침반이 북쪽을 찾고, 그곳을 가리키는 순간 부르르 떨리는 것, 이것을 나는 갈등이라고 부른다. (125)

 

모든 새로운 것에는 갈등이 따라 다닌다. 흥분과 두려움 속에서, 세상의 기대와 자신의 기대 사이에서, 이익과 마땅함 사이에서, 꿈과 현실 사이에서,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편함과 배려 사이에서 우리는 늘 잠시 망설이게 된다. (126)

 

나를 닮은 아이

작은 아이는 나를 빼 닮았다. 약간 느린 것도 그렇고, 시험 운이 없는 것까지 닮았다. 지식에 대한 허영이 있는 것도 그렇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민감한 점도 그렇고, 소심하여 마음의 상처를 잘 받는 점도 그렇다. 이 아이는 늘 가슴에 정을 담고 있다. 아 아이를 볼 때마다 나를 보는 것 같았다. (128) → 둘째 따님에 대한 설명을 통해 사부님에 대해 알 수가 있다.

 

이 아이의 가장 큰 특성은 숯불처럼 늘 불씨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아이의 불길은 늘 살아난다. 지치고 지쳐 있다가도 늘 다시 살아난다. 이 아이는 자신을 그렸다가 지우고 또 다시 그리면서 자신을 키워간다. 실수도 많고 실패도 많지만 자신의 길을 찾아 장대한 모험을 온몸을 다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아이의 운명적인 장점이다. (129)

 

함께 먹는다는 것은 감정을 공유하게 만든다. 쉽게 친해지기 위해서는 밥을 같이 먹는 것이 꽤 중요한 일이다. (130) → 회사 사람들과 밥을 함께 먹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그들과의 잠정적인, 심리적인 결별을 선언한 것과 같다.

 

인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늘 섞여 있었다. (130) 변경연 홈페이지의 메인 글귀이기도 하다. 나와 너 우리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것 바로 이것이 인생을 사는 이유이다.

 

아이의 지적 성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야 말로 가장 훌륭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일 것 같이다. (131)

 

나의 별명은 '미숙이'

나는 비교적 무난한 사람이다. 말은 없지만 정이 많고 남을 배려하는 축에 속한다. 그러나 내 속에도 불 같은 것이 들어 있다. 나도 잘 모르고 있던 불길이 있어 나를 타오르게 하고, 저항하게 하며, 화내게 하고, 불만을 터뜨리게 한다. 뜨거운 기질은 옆에 있는 사람들을 가끔 괴롭히기도 한다. (132) → 그 불 같은 것이 내게도 있다. 그것이 나의 로켓을 폭발시켜 추진력을 갖고 돌파를 하게끔 만든다. 내 안의 뜨거운 것을 마음껏 발휘하며 살 수 있는 일. 그게 바로 내가 찾고 있는 일이다.

 

난 밖을 즐기며 사는 사람이며, 한 곳을 향해 앞만 보고 가는 것을 멋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통해 나를 투영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어떤 것을 보고 과거의 이미지를 연상하거나 지나간 사건들을 떠올리고 그것이 내게 무엇이었나를 물어보고 즐기는 사람이다. 나는 의미를 찾는 사람이고 나의 세계를 즐기는 사람이다. 어쩌면 이 조급한 세상에서 가장 먼 그림을 그려보려고 하는 자인지도 모른다. 나는 멀리 보는 것을 좋아한다. (133)

 

작은 딸과 나는 같은 부류이기 때문에 둘 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처세술과는 거리가 먼 족속이다. 우린 세상을 바꾸려는 축이고, 아내와 큰딸은 세상을 즐기고 거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녀들은 '다윈적 적자'이고 우리는 '돌연한 변종'들이다. (134)

 

늘 옆에 있는 그녀

그러나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녀는 늘 내 옆에 있었다. 내 고민의 옆에, 내 실패의 옆에, 그리고 내 성공의 옆에는 늘 그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죽음 옆에도 있어줄 것이다. 그녀는 늘 내 옆에 있다. (135) → 아내가 생각나 코 끝이 시큰거렸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아름다운 나의 아내를 묘사할 날이 오길 소망한다. 이렇게 소망의 씨앗을 뿌렸으므로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오래 살다 보니 서로 알 만큼 알게 되었다. 적어도 무심코 던진 말이나 행동으로 곡해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아내가 송곳 같은 때를 만나면, 그저 '또 뭔가에 화가 나 있군' 정도로 넘어가고, 그게 터지지 않을 만큼 잠시 피해 있으면 된다. 심심하면 그걸 일부러 건드려 터트리기도 한다. 살면서 우리는 무척 가까워졌다. 특히 회사를 그만둔 최근 2, 3년 사이에 더욱 그렇게 되었다. 우리는 법도를 지키는 남편과 아내라기 보다는 허물없는 친구같이 되었다. (136) → 심심하면 그걸 일부러 건드려 터트리기도 한다는 말에 눈물 날 만큼 웃었다. 아내에게 이 부분을 보여주며 함께 웃었다. 나도 아내와 이런 좋은 친구가 되길 소망한다.

 

다행스럽게 아이들은 나를 좋아해준다. (136)

 

삶의 우선 순위

나는 마음껏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일하는 시간은 얼마든지 뒤로 배정한다. 일은 언제고 하면 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남은 시간에 하면 된다. (138)

 

나는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데, 이 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대를 선택했다. 나는 시간의 불모지를 내게 불하했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나만의 시간대로 만들었다. 마치 모두가 버린 시간의 밭을 일궈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찾아내지 못했다면 영원히 잠 속에 묻혀버릴 뻔한 보물 같은 땅이었다. 하루 시간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두 시간이 거의 변하지 않는 내 작업시간이다. 이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늘 가족과 친구들에게 우선적으로 열려있다. (138)

 

나는 내 마음속으로 들어가 물었다. 왜 나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장 먼저 아내와 아이들이 떠올랐다. 가장 소중한 그들이 바로 나의 구속이 된 것이다. 그들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은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139) → 아.. 눈물이 날 것 같다. 나에겐 가족 콤플렉스가 있다. 사실 5년 전 지금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결국 단념하고 지금의 길로 왔다.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가족이다. 아내 또한 모험지향적이라기 보다 안정지향적이라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로 접어들기 전에 어찌 보면 가장 험난한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가장 소중한 것들이 구속이라는 생각은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책임과 의무만이 무성한 잡초처럼 내 마음의 벌판에 자리잡고 있었다. 살아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먼저 살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었다.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게 되자 새로운 방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차는 달빛을 타고 떠올라 전혀 다른 차원의 길을 달려갔다. 그리고 아주 다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140)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길이 있다. 현실이란 그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남들의 생각', 즉 다른 사람들의 견해일 뿐이다. 나는 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에머슨의 말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관이 그 사람의 성격임을 종종 잊고 지내는 것' 같다. 누구의 삶이든 그것은 늘 그 주인을 닮게 마련이다. (140)

 

아내와 함께 떠나는 여행

여행은 우리가 서로 싸우는 것보다는 서로 인생을 즐기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143) → 하와이로의 신혼여행, 그리고 지난해 가을 제주도 여행, 겨울의 강원도 여행. 아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우리의 작은 신화를 영웅의 여정이다. 매일 되풀이 되는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함께 계획을 하고 함께 탐험을 한다. 때론 다투기도 하지만 그것은 영웅의 여정의 빠뜨릴 수 없는 감초다. 그렇게 여행에서 귀환하게 되면 우리는 더욱 더 가까워지고 공유하는 영토를 더 넓히게 된다. 그렇게 여행을 통해 우리는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닌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손잡고 걷는다. 이것이 함께 하는 여행의 묘미다.

 

늘 반갑고 그리운 친구

친구들은 외로움을 견디게 해준다. 우린 함께 술을 마시거나 함께 여행하거나 함께 산에 간다. 차를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허전하다. 역시 술을 마셔야 좋다. (145)

 

난 친구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사람에게 가는 정이 적어서가 아니라, 수줍어하고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내성적 성격 때문이다. 친구는 생활의 일탈을 서로 돕기도 한다. 나는 목적을 가지고 친구들과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친구는 말 그대로 함께 놀기 위함이다. 오직 인생을 같이 가기 위함이다. 친구들 사이에는 이해가 끼면 안 된다. 비즈니스는 그저 전문성을 나눌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하면 된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이다. 나이가 들어 돈벌이를 하게 되면 친구들에게는 결코 아쉬운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잘난 척 해서도 안 된다. 친구의 성공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순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친구의 성공 속에는 늘 '그 동안 나는 뭘 했나' 하는 자신에 대한 문책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147)

 

삶의 어둠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대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147)

 

즐거움 역시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한다. 즐거움은 그래야 커진다. 즐거움에는 무게가 없다. 그것은 깃털 같아서 하늘을 날 수 있다. 즐거움은 우리가 가지로 있는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 (147)

 

평생 가고 싶으면 늘 반갑고 그리운 관계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 따질 것도 없고 계산할 것도 없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함께 가는 것이 친구들이다. 친구란 함께 어울림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 없이는 그 어울림이 빛날 수 없다. (148)

 

6장 자연

그녀가 있으면 안심이 된다. 그 안심이 다시 내가 그녀를 안심시키는 힘이 되었다. (152)

 

오래 살아 인생의 지혜를 가지게 된 사람,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 자연의 마음을 가지게 된, 자연을 닮게 된 사람, 그리고 머지 않아 자연 속으로 돌아갈 사람, 그것이 할머니였다 (152)

 

자연과 신, 그 어느 쪽도 나는 알지 못했으나 그 둘은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 본성의 집행관이었다.

- 에밀리 디킨슨 (153)

 

라일락이라고 알려진 수수꽃다리가 향기를 품고, 운이 좋으면 천리향의 향기도 맡을 수 있다. 꽃은 작고 소박하지만 향기는 끝없는 유혹이다. (155) → 라일락은 내게 있어 초여름의 싱그러움이다. 예전 집 근처 작은 구멍 가게 앞에 라일락 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꽃 향기에 대한 처음의 각성을 라일락으로부터 얻은 것 같다. 서울로 올라와 살게 된 후도 5월초가 되면 라일락 나무의 양해를 구해 약간의 꽃을 꺾어다 거실에 있는 화병에 꽂아 놓곤 한다. 두 달만 기다리면 라일락 향기를 들을 수 있겠구나.

 

신과 가까워지는 공간

마흔이 되면서 산에 더 자주 가게 되었다. 언젠가 북한산의 노적봉이 마음에 들어 주말마다 그 봉우리를 찾았던 때가 있다. (156) → 언젠가 사부님을 따라 함께 올라보고 싶은 곳이다. 지난해 늦가을 꿈 벗 30기 꿈서리와 사부님을 모시고 북한산에 오른 적이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가을의 풍광을 함께 나누었다.

 

홀로 산에 있으면 아름다움에 취하게 마련이다. 홀로 있음에 취하고, 바로 그 때문에 고독 너머에 있는 연결 끈을 더듬더듬 찾아내게 된다. 언어의 표현 방식을 넘어 교류되는 정신적인 교감은 자연이 우리의 마음을 여는 방식이다. (157)

 

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 상상 너머의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을 굴복시키고 무릎 꿇게 한 후 신의 음성을 불어넣는다. 이 아름다움이 보이느냐? 너의 초라함이 보이느냐? 네 마음 속에 서식하는 그 벌레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느냐? 어째서 그런 짓을 하였느냐? 이 어리석은 것아. 우매한 미망의 어둠에서 나와 가고 싶은 길을 가거라. 숟가락으로 먹은 모든 것은 결국 똥이 아니더냐. 마흔이 넘게 살아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이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157)

 

살아 있다는 것은 이렇게 떠나기 전 입었던 옷을 입고 깨어나는 것이다. 언젠가 깨어날 수 없다면 그러게 사라지는 것이다.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않으면 가족은 우리가 입었던 옷을 바꿔 입혀준다. (158) → 마지막 장절, 가족은 우리가 입었던 옷을 바꿔 입혀준다. 저 세상 갈 때 입는 수의를 뜻하는 것이겠지. 섬뜩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슬퍼지려 한다.

 

변화의 이유

우리가 당황할 만하면 아이들은 벌써 답을 알아차리고 팔랑팔랑 사라진다. 알량한 지식으로 무장한 우리는 무식한 채로 얼어붙고, 아이들은 질문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놀러 가버린다. (159)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 이오덕 (160)

 

우리가 왜 변화해야 하느냐고?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작은 세포가 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그리고 죽는 것이 삶이다. 순수한 아이의 생각이 야망으로 가득한 젊은이의 생각이 되고, 이내 세상의 한계에 지쳐버린 장년이 되고, 노회한 노인이 되고, 이윽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변화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다. 생명이 주어진 순간 삶은 시작되고, 삶이 주어진 순간 죽음의 시계도 카운트 되기 시작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160)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모습이 늘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간혹 사랑은 바위처럼 단단하고 믿을 만한 것이기도 하지만, 단 한번의 미풍에 녹아 내릴 수 있을 만큼 불안한 것임을 예감하기도 한다. 포도주 빛처럼 매혹적이다가 지독히 역겨운 상황으로 반전하기도 하고, 평화로운 푸른 바다 같다가 폭우가 쏟아지는 해일로 돌변하기도 한다. 부드러운 동반이기도 하고, 함께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사랑은 가장 극적이고 가장 드라마틱하며 가장 빠져들기 쉽고 가장 상처받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그게 사랑의 매력이다. 사랑의 개념은 불변하는 것이지만, 그 구체적 모습은 천변만화의 격정이다. (160~161)

 

사랑 자체가 온갖 변화를 다 껴안고 있는 복잡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변하지 낳은 것과 변하는 것이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삶이다. 왜 변해야 하느냐고? 흐르는 강물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하늘의 구름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바다의 물결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존재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161)

 

밀린다왕 : 윤회가 사실이라면 죽어 없어진 자와 다시 태어난 자는 같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나가세나 : 같지도 다르지도 않습니다.

밀린다왕 :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나가세나 : 왕이시여, 어릴 때의 그대와 지금의 그대는 같은 사람입니까?

밀린다왕 : 그렇지 않습니다.

나가세나 : 만일 그대가 그 어린이가 아니라면 그대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선생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밀린다왕 : 다른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나가세나 : 여기 어떤 사람이 등불을 켭니다. 그 등불은 밤새도록 탈 것입니다. 왕이시여, 초저녁에 타는 불꽃과 한밤중에 타는 불꽃은 같은 것입니까?

밀린다왕 : 그렇지 않습니다.

나가세나 : 그러면 초저녁의 불꽃과 한밤중의 불꽃은 다른 불꽃입니까?

밀린다왕 : 그렇지도 않습니다. 불꽃은 같은 등불에서 밤새도록 탈 것입니다.

나가세나 : 왕이시여, 인간이나 사물의 연속도 꼭 이와 같은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과 생기는 것은 별개로 보이지만 지속되는 것입니다.

 

→ 어려운 선문답이다. 변화가 이와 같다. 변화는 늘 새롭다.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새롭다. 흐르는 강물은 어제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제와 같은 강물이 아니다. 변화는 그렇게 늘 같은 모습이지만 늘 새롭게 흐르는 강물과 같은 것이다.

 

곽박의 시에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냇물에는 멈춰선 물결이 없다." 라고 했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변화에 대한 묘사는 찾기 어렵다. 밖으로 자연의 조화를 본받고, 안으로 마음의 근원을 체득해야 한다."는 것은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둘 충고이다. (163)

 

나는 나무다

때때로 나는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그때가 가장 마음이 편안 때다. 어떤 조화로움이 나를 밀고 여울처럼 가슴으로 퍼져오는데, 그때 평화를 느끼게 된다.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노자의 말은 곧 나의 말이다. (164)

 

우리는 아름다움에 지치고 그 아름다움에 터져 죽을 때까지 즐기는 그 꽃들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바보들이기도 하다. 모든 꽃은 '그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피어난다. (164) → 앞서 나온 표현이기도 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자제와 절재를 현명함으로 불렀던 그 어리석음은 또 어떻게 하랴!" 그렇게 삶을 두려워 시작도 하지 못하는 내 삶의 어리석음을 어떻게 하겠느냔 말이다!

 

G.K. 체스터턴의 말대로 참으로 이 세상에서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감탄이다. 기쁨은 도처에 있고, '늘 활동중'이다. 그들에게 좋은 일이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참새에게 좋은 일이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풀들에게 좋은 일이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가 "나는 스며든다. 초록빛 풀 밭에, 꽃들에게, 그리고 살아있는 물살에, 나는 깃든다. 죽지 않는 모든 것에. 나는 생명이므로."라고 말할 때, 그녀는 바로 나였다. (165)

 

내가 회사를 나와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실행하려 할 때, 나를 위로해준 것은 자연이었다. (165)

 

나는 자연의 방식을 추구했다. 자연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방식을 나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데려왔다. 나는 다시 사람들의 세계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미 나는 자연으로부터, 특히 나무로부터 위대한 교훈을 사사 받았다. 내가 식물에 대하여 과학자의 시선이 아라 그저 유유한 산책자의 시선으로 알아낸 몇 가지 생존과 번영의 비결은 대단한 위안을 주었다. (166)

 

결국 믿음이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167)

 

나는 나무다. 스스로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땅이지만 가야 할 곳은 하늘이다. 나는 땅에서 하늘로 간다. 몸이 땅에서 나와 영혼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듯, 땅을 움켜쥐고 온몸을 던져 하늘을 향해 자란다. 나이 모든 힘은 어두운 내면으로부터 온다. 어두운 곳은 언제나 비옥한 토지였다. (167) → 어두운 내면, 에너지의 근원인 무의식, 그곳은 선악이 없다. 오로지 순수한 힘, 생명을 위한 생명을 향한 힘이 있을 뿐

 

나의 내면은 땅과 같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두렵고 위대한 힘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가치가 뒤섞여 있고 뜨거운 용암으로 가득하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하고 무궁무진한 자산은 땅이다. 나는 땅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나는 나를 이용하고 활용한다. 가장 먼저 나의 가능성을 탐사하고 이용해야 한다. 내 내면을 뒤지고 곳곳에서 흐르는 에너지의 샘들에 깊고 굵으며 튼튼한 뿌리를 견실하게 박아두어야 한다. 이 힘들만이 나를 키울 수 있다. 이것이 첫 번째 교훈이었다. (168)

 

내가 가장 되고 싶은 나무는 깊은 산속의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한 탁 트인 아름다운 곳에서 오래 자란 줄기 붉은 소나무이다. 그 그윽하고 향기로운 모습이라니. 그 밑에서 땀을 닦으면 나도 잠시 그 정정함이 된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사람들이 종종 찾아주는 너무 깊지 않은 산 맑은 계류 옆의 커다란 벚나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68) → 수유역 쪽이던가, 화개사 쪽이던가, 그쪽 방향에서 오르는 입구에 냇가 옆에 왕벚 한 그루가 정정하게 서 있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나무가 그 나무가 아닐까

 

나만의 씨앗

사는 법은 죽는 법에 있다. 자라는 방법은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탄생하는 과정이다. 죽지 못하면 다시 태어남도 없다.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것이다. 파괴와 생성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이다. 이것이 나이테이다. 그 외의 방법은 없다. 늘 자신의 시체를 내다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무는 그 일을 아주 아름답게 해내고 있다. (중략) 나무는 매년 죽는다. 이 상징적 의식이 나무가 자라는 방법이다. (169)

 

나도 죽어야 한다. 적어도 일년에 한 번은 죽어야 한다. 나무가 죽을 때 나도 죽어야 한다. 나에게 낙엽은 내 책이다. 꽃과 나뭇잎, 그리고 열매는 나무의 일 년의 삶이다. 내 책도 내 일 년의 삶의 기록이다. (170)

 

나무는 한 곳에서 서서 점점 더 멀리 본다. 발이 없는 대신 세상을 떠돌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낸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좋지만, 그 생각이 한 곳에 갇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만들어낸다. (170)

 

식물에게서 배운 또 다른 교훈은 바로 번영하는 방법이다. 곳곳에 수 없이 많은 자신의 복제를 만들어내는 것이 번영의 상징성이다. 수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는 영화배우나 가수들은 사람들 마음속에 그들의 씨앗을 뿌려 사람들이 그들을 잊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는다. (172)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하나의 씨앗처럼 날려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생각인지, 나의 생각을 가장한 다른 사람의 생각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오리진이 어디에 있든지, 분명한 진실은 나의 것이 된 생각들, 즉 이미 '내게 귀화한 생각'들이라는 점이다. (173)

 

나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나는 날마다 내게 귀화한 생각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육에 담아 수천 개씩, 수만 개씩, 수백만 개씩 퍼뜨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들은 그 씨앗을 마음 속에 키우면서 '자신의 생각으로 귀화한 생각'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도처에서 번영할 수 있는 전략이다. (173)

 

인간의 진보는 '사고의 혁명'에 의해 이루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변화에 대한 생각들'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날려보내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들 역시 아주 특별한 인간으로 스스로를 탄생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173) → 나 또한 이 '변화에 대한 생각들'로 특별해지고 싶다. 아류로 시작해서 일류가 되고 싶은 것이다.

 

<사부님의 식물과 같은 고도의 전략>

"스스로 정정한 나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쉬고 그 나무를 부러워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무의 열매를 가져다 심고 싶어할 것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며,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로댕의 말을 잊지 말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 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아주 많은 씨앗을 날려야 한다. 어떤 것은 실종되고, 어떤 것은 시멘트 같은 마음 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갈 것이다. 자연은 아주 많은 낭비를 즐긴다. 이것이 자연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일 년에 적어도 책 한 권은 써라. 이것이 열심히 일을 한 기준이다. 세상을 향해 많은 시그널을 보내야 누군가가 대답하게 된다.

 

씨앗이 적절한 곳에서 쉽게 발아할 수 있도록 늘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라. 사람의 마음 속에서 싹이 나고 푸른 잎을 단 아름다운 줄기로 자라나도록 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라. 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행동할 수 있게 하며, 그들이 실천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과 색깔과 맛을 담은 향기로운 과육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유행에 따르지 말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 내라." (174~175)

 

→ 사부님의 사상의 정수가 여기 담겨져 있다. 이처럼 '깊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나는 오늘 무엇을 해야 할까? 언젠가 나도 저 나이가 되어 저런 경지에 오르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내게 많은 시간을 줄 수록 그곳에 이르는 시간이 빨라질 것이다. 그러기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다. 조금 더 박차를 가해 떠나올 준비를 해야겠다.

 

7장 건강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얼굴을 바꿔 달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아주 창백했다가 지금은 정상으로 돌아온 셈이니까. 내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도, 내 시체가 도랑에 버려졌다는 것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 (179)

 

의학기술이란 자연이 질병을 치료해주는 동안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 볼테르 (180)

 

탄생과 함께 시작되는 죽음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제자가 스승을 어떻게 빛나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영원히 스승의 빛에 가려진 제자는 결국 스승을 욕보이게 한다. 뒷물이 앞을 뛰어넘으려고 해야 비로소 강물이 힘차게 흐를 수 있다. 제자가 잘나야 스승이 위대해 진다. (183)

 

죽음은 생명과 함께 시작된다. 또한 생명은 죽음과 함께 다시 시작한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이다. 죽음 없이는 생명도 없다. 마치 변하지 않는 것 없이는 변하는 것도 없고, 어둠 없이는 밝음도 없는 것과 같다. 어둠은 늘 생명이 자신을 준비하는 참으로 비옥한 토양이다.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니며 썩는 것들만이 자신을 땅에 버릴 수 있다. 땅에 버려져야 '무엇'이 될 수 있다. (184)

 

죽음은 성장을 보호한다. 죽음은 무분별하고 과다한 욕망을 제거해줌으로써 생명체의 조화로운 성장을 도와준다. 이런 생물학적인 자연의 비밀은 인류의 역사를 움직여온 원칙이기도 하다. 제퍼슨이 존 애덤스에게 보낸 편지 속에는 우리가 죽어야 할 이유가 잘 나타나 있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무르익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으로써 또 다른 성장을 이루어야 할 바로 그때가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쓴 후에 남의 것을 탐할 수는 없겠지요."이러한 죽음에 대한 통찰이 의사나 과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학자나 문학자 또는 역사학자, 그리고 치열한 삶을 살아본 위대한 인물들에 의해 훨씬 더 잘 해석되고 이해되는 것은 이런 동질성 때문인 것 같다. 철학은 의학을 선도한다. 생각이 늘 기술을 선도한다. (187)

 

욕심이라는 이름의 암세포

문명의 본질은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냥꾼의 습성과 겨우 최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188)

 

'멋대로 하지 말라'고 하는 인간의 재갈, 즉 문명은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는 최초로 만나는 문명이다. 거역하면 패륜이 된다. 학교와 종교는 그 다음에 만나는 문명이다. 사회적 가치관을 만들어 정신을 지배하게 된다. 여론, 그리고 법은 문명이 정한 행동을 넘어서는 것을 제약하는 통제선이다. (189)

 

개인의 삶은 다양하지만 개인의 역사는 늘 자연과 문명의 갈등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189)

 

유가의 사상은 바라건대 스스로를 닦아 세상에 나가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나 노자의 도는 버리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고, 형태를 떠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 자연과 함께 자연을 따라 떠나는 것이다. 나이와 함께 현명함이 자라, 이윽고 극치에 달해 현명함이라는 언어적 속박을 벗어나 용처럼 구름 속에서 노니는 것이다. (190~191)

 

결국 시작한 생명은 그 시작부터 끝을 포함하고 있다. 죽음은 모든 생명이 시작과 더불어 반드시 치러야 할 빚이다. 이것은 어떠한 예외도 없었다. 그러므로 여전히 욕심스러운 '나이 듦'은 과다한 욕망에 차 여전히 '두 개'가 되고 싶은 세포, 즉 암과 같다. 생명을 길게 연장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순간 순간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191)

 

나이 든다는 것의 의미

자연은 우리가 자연적 힘을 발휘하여 자신이 내린 시련을 극복하게 도와준다. (198)

 

마흔은 죽음이 삶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적인 나이의 시작이다. 인과관계를 따르지 않는 또 다른 방식의 이해력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게 되는 시기라는 뜻이다. (199)

 

삶은 죽음을 향해 달리는 시계의 초침을 뒤로 돌리려는 부질없는 노력이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천천히 삶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이다. 두루마리의 앞부분, 즉 젊은 시절의 그림이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싱싱하고 발랄하며 모험적인 것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짜놓은 인생의 직물은 은은하고 통찰력에 차 있으며 완숙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의 부름에 따라 모두 놓아두고 낡은 껍데기만 남기고 떠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기도한다. (200)

 

아름다운 봄날은 빨리 지나간다. 모두 그리워하고 섭섭해 한다. 그러나 가을 또한 곱게 온다. 나이 먹음은 가을을 즐기는 것이다.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릴케처럼 말한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신이여, 우리 각자에게 합당한 삶을 주소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 삶에 걸맞은 '합당한 죽음'을 주소서." (201)

 

8장 길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 아름다움은 사라질 것이기에. 비 내리는 오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불멸을 꿈꾸니. 이 오후 시간을 즐겨라. 어차피 가져갈 수도 없는 시간이니. 하루의 질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예술. (205)

 

추억과 꿈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실제로 일어난 것과 상상 속에 존재했던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모두 한 줌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206)

 

마지막 숨은 이런 모든 것 역시 한 순간에 일어난 찰나의 것들임을 증명해줄 것이다. 원인도 결과도 없이, 느닷없는 장면들의 중첩으로 떠오를 것이다. (207)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모든 일 역시 과거만큼 분명한 꿈이다.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비현실이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일 뿐이다. 나는 꿈을 또 다른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207) →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꿈꾸었기 때문에 언젠가 그 절실함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은 아니다. 열심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성공학자들의 말을 나는 조롱한다. 그들은 대부분 신통치 않은 예언가 들이다. 근거 없는 이야기, 뿌리를 알 수 없는 낙관, 유치한 전개, 더덕더덕 기운 미덕과 잠언의 누더기로 치유가 아닌 잠시의 진통효과를 과장하는 시시한 돌팔이들의 이야기를 싫어한다. 내 말은 미래의 꿈 그 자체가 믿음을 통해 추억만큼 분명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갇히는 것만큼 미래에 갇힌다. 추억으로서의 역사와 꿈이라는 소설은 둘 다 인생에 중요한 것이다. (207)

 

정신적 여행자

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과거시제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일을 과거시제로 쓰는 순간 내게 이미 일어난 일이 된다. 미래를 과거로 인식하는 것은 정신적 작업의 하나이다. 나는 나를 '정신적 여행자'라는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날개 같은 것이다. 시간이라는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활동한다. 모든 것이 꿈으로 판명되는 마지막 날에 느끼는 그 아득한 자유를 지금부터 즐기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지금 이 책을 쓰고 있는 이유도 과거에 갇혀 있는 나를 미래의 빛을 따라 아름답고 화려하며 자유로운 이야기 속으로 데려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결말, 그것은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다. 그것이 무엇이든 꿈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꿈꾸지 못한 것들만이 내 인생이 아니다. 꿈꾸지 못한 것 가운데 더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된다. (209)

 

가끔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바라는 그 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회의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내 꿈에 대한 믿음이 있다. 다만 훌륭한 상상과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지금의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종종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을 때가 있다. 모르기 때문에 그 일을 지금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이런 생각들이 내게 지금 무엇인가를 하게 한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한다. 담배를 끊고 일찍 자고 먹는 양을 줄이고 더 많은 운동을 하라고 내게 명령하기도 한다.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자신에게 시간을 쏟고 더 고독해지라고 말한다. 더 많이 아이들과 생활을 나누고 더 많은 시간을 아내와 즐기고 일 때문에 바쁜 척하지 말라고 말한다.

 

추억과 꿈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일어났다고 믿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꿈이다. 하나는 이미 개어난 꿈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꿀 꿈이다. 둘 다 지금이라는 현실을 속박한다. 또는 지금을 구원해준다. 때대로 그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209~211)

 

길을 찾아서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그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산다. 그것이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는 책을 쓴다. 말하자면 나의 이야기를 하며 산다. 글쓰기는 꿈을 현실로 데리고 오는 나의 방식이다. 나에게 책이란 꿈과 현실을 잇는 통로이다. 저술가에게 생각과 상상은 이미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분명한 현실이다. (211~212)

 

꿈은 또한 목적지다. '지금'이란 늘 그곳에 가는 길 위의 어느 지점이다. 정신적 여행자에게 현재란 과거(추억)를 떠나 미래()로 가는 길 위의 어느 곳이다. 구도(求道)라는 말이 생각났다. 길을 찾는다는 말이다. 나 역시 길을 찾고 있다. 한 현실에서 또 다른 현실로 이어지는 길, 지금의 나에서 미래의 나로 가는 길, 추억에서 꿈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그 길은 시간의 통로이다. 나는 길에 대한 내 이야기를 더 잘 사유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내 생각이 된 귀화사상을 몇 개 데리고 와야겠다. (212)

 

'내 속에 들어 앉은 그들

그들 속에 섞인 나를 증오하다가 다시 그리워하며,

그러다가 아예 이쯤에서 길을 잃어야겠다.

아마도 이곳이 내가 살고 싶은 땅일 것이다.'

- 신경림 <내가 살고 싶은 땅에 가서>

 

'길을 나서자마자 길이 천 갈래 만 갈래나, 만약 자기 자신에게 주제(主帝)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바른 길을 갈 수 있겠는가?'

- 주자 <선인들의 공부법>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길을 가게 된다. 갈림길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선택한다. 우리 마음속에 그 드물게 굳고 정한 갈매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며 자신의 처음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 백석

 

'내 앞에 길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네. 그 대신 내 뒤에서 수많은 길이 닫히는 것을 보았네. 이 역시 삶이 나를 미리 준비된 길로 인도하는 방법이라네.'

- 파커파머 <루스의 이야기>

 

지상의 모든 갈림길을 잊고, 그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나 달로 가고 싶었다. 그 모든 갈림길 가운데 하나가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선택을 넘어 그저 내 앞에 굽이굽이 펼쳐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내 길을 걷고 있다는 축복에 싸이고 싶었다. 나는 달빛을 따라 아름다운 꿈길로 접어들고 싶었다.

 

그때 나는 한 마리의 늑대였다. 절벽의 끝에 서서 달을 보고 울부짖는 울음소리였다. 대상이 없는 분노 때문에 그저 달을 보고 길게 우는 울음소리 속의 외로움이었다. 달에 가고 싶었는데 그것은 차가운 얼굴로 멀리 떠 있었다. 그곳에 갈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달에 대한 그리움은 그저 울부짖음이었다. 외침은 그래서 가슴을 거쳐 목구멍으로 오르는 동안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바뀌었다. 표독스러운 짖음도, 대상을 포획하기 위한 적의에 찬 침묵도, 우렁찬 포효도 아니었다. 그저 길게 뱉어내는 늑대의 울음이었다. 그것은 슬픔과 가장 닮았다. (214) → 지난해 꿈 벗 가을 소풍 때 사부님과 함께 자자산방에서의 달맞이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나 또한 한 마리의 늑대가 되어 달을 향해 울부짖고 싶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태초의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깨달음

그러나 나는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10년 동안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었다. 길 위에서 죽은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215)

 

걸어온 것에도 길은 없고

걸어야 할 것에도 길은 없다.

그렇지만

걸어온 것과 걸어야 할 것 없이는

길 또한 없다.

- 나가르주나 (216)

 

나의 영혼이여,

그대의 항해는 그대가 태어난 땅이니라.

- 니코스카잔차키스 <오디세이아> (216)

 

항해 자체가 인생이다. 그것이야 말로 비옥한 정신적 토양이다. 사는 동안 생명을 모두 소모하므로 죽임이 찾아왔을 때 완전히 비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216)

 

나는 책을 쓰는 것이 좋다. 글쓰기가 무엇보다 즐거운 취미인 셈이다. (217)

 

그러나 정말 내 인생은 그 책들이 아니라 그 책에서 표현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내 하루하루였다. 나의 하루들은 책으로 표현되기도 했지만, 대개는 물처럼 흘러갔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생각하고 낭비되면서 그렇게 지나갔다. 지나간 것들 속에서 내 인생이 담겨있다. 나는 그 위대한 순간들의 주인이며, 또한 그 초라한 순간들의 책임자였다. 이것이 정말 하루하루의 진짜 인생이었다. (217)

 

삶은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잠시 즐기고 다시 깨끗하게 복원하여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218)

 

나는 정확한 성격이 아니다. 이야기를 시간 별로 차곡차곡 정리하고 쌓아두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산만하고, 꿈과 현실을 혼동하며, 모호한 은유 속에 나와 인생을 놓아 두는 것을 즐기는 취향이다. (218)

 

깨달음의 내용은 없고 그저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깨달음 정도가 50년을 산 나의 깨달음이다. (219)

 

여든이 되어 물어보자. '삶이 나에게 요구한 것', 즉 내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었을까? (219)

 

행복해지는 법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만든 것일 뿐이다.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듣지도 못한 헬렌켈러가 "난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라고 말할 때, 모든 것이 멀쩡한 우리는 돈을 벌지 못해서 불행하고, 약간의 손해를 보아 불행하고,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행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 불행하다.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참지 못하고 그리하여 세상을 원망한다. (220) → 그렇다. 정말 불행은 내 마음이 만든 것이다. 비교하고 비교하고 또 비교하고. 그렇게 우리의 행복은 밖에 있어왔다.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문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20)

 

맑은 날 들판을 산책하듯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어려운 일을 당하여 그 일의 밝은 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과거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늘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과일과 채소, 그리고 여러 곡물이 섞인 밥을 먹고 하루에 30분식 운동하고 한 시간씩 햇빛을 쪼일 수 있다면 행복하다. 무엇인가를 할 때 다른 것을 계획하지 않고, 어떤 것을 계획할 때 다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몰입한 순간 순간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 (221)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란 결국 왜곡된 거울에 불과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는 사람은 행복하다. 일년에 한 번쯤 흔들의자에 앉아 마치 다 산 것처럼 인생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 '나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이 질문의 답이 찾아지면 인생은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길을 갈 것이니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221)

 

사소한 일이 주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면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 인생의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자신을 용서하고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증오로부터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많이 얻으면 그만큼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 베풀 수 있는 만큼 행복하다. 베풂은 씨앗 같은 것이라 주위에 뿌리면 수많은 결실과 함께 되돌아온다. 더 많은 씨앗을 얻게 된다. (222)

 

, 내가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은 세월이 지나면 희미해질 내 삶의 발자국이고, 내가 가지고 가는 것은 꿈과 추억이다. 누구에게나 맞는 객관적인 삶이 의미란 없다. 나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삶, 이 유일무이한 구체성이 바로 내 삶이고, 따라서 그 의미 역시 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것이다. (222)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 안에서 죽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 속에서 죽는다.

- 플루타르크 (222)

 

길은 없다. 이것이 길이다. 하루가 길이다. 하루가 늘 새로운 여정이다. 오늘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변화란 불행한 자의 행복 찾기 아니겠는가. (223)

 

9장 집, 공간

좋아하는 일들이 바로 내 일이 되어 있는 세계 속으로 왔다. 집은 내가 주로 머무는 세상이고, 내 하루는 이 속에서 깨어나고 이 속에서 잠든다. (226) →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집은 따뜻하고 훈기가 도는 가정이 아니라 차디찬 가옥이 되어가고 있다. - 법정스님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그 주인을 닮는다.

- 칭기즈칸 (227)

 

내 마음의 집

나는 늘 책이 가득한 서가가 있는 서재 속에 앉아 있는 나를 그리워했다. (229)

 

다만 그때 그 시간의 아련함이 다가와 잠시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되기도 한다. 시간의 나그네가 되어 가벼운 투명외투를 걸치고 젊고 푸른 청년의 옆으로 기척도 없이 다가가 그때의 나를 지켜보기도 한다. (229) → 마치 '클래식'이란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하다. 또 코 끝이 시큰거린다.

 

졸음과 잠은 내가 책을 읽으면서 하는 아름다운 여행이다. (230)

 

서재는 꿈을 꾸기에 좋은 곳이다. 그 속에서 동서고금의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 (231)

 

내게 독서와 꿈과 쓰기는 책 속의 경험을 배워 원래 내 마음 속에 갖추어져 있던 근본을 이해하는 학습이다. (231) →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일이자, 접혀진 질서를 펼치는 일이다.

 

산을 품은 집, 집을 품은 산

내가 배운 최고의 교훈은 집은 다시 지을 수 있지만 터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터를 잘 잡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233)

 

꽃은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는다. 참다 참다 참지 못하고 터지는 것이 바로 꽃이다. 민감한 시인들은 그래서 꽃 터지는 밤에는 잠을 이를 수 없는 것이다. (237)

 

욕망이 자라는 공간

가면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사이비들의 특성은 위선을 가장 한다는 것이다. 위선은 '악덕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숨기는 악덕'이다. (241)

 

유사한 욕망들로 점령된 밭을 묵정밭이라고 하고, 그 밭의 소유자를 게으른 농부라고 말한다. 키우려고 한 것 외에는 모두 잡초이다. 이것이 기준이다. 나는 왜 하나의 욕망이 그렇게 중요한지, 동시에 왜 다른 욕망들은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지, 뜨거운 날 잡초를 뽑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241)

 

오직 하나의 욕망이 자랄 수 있도록, 하나의 욕망. 가장 나다운 내가 되는 것, 그저 생긴 대로 자라 가장 아름다운 내가 되는 것, 내가 만일 소나무라면 아름다운 소나무로 자라는 것, 만일 느티나무라면 아주 정정한 느티나무가 되는 것. 이것이 내 욕망이었다. (242)

 

어떤 경우든 식물은 한 번은 전성기에 이르는 것 같다. 일찍 시작한 놈은 봄, 여름에 빛을 내고, 조금 늦게 시작한 놈은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남아 멋을 부린다. 다 제 때가 있다. (243) → 언젠가 나도 한 번은 내 꽃으로 필 날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때가 천천히 와 주었으면 좋겠다. 뚝배기처럼 천천히 달구어져서 식을 때도 아주 천천히 식을 수 있도록 말이다. 아니, 식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절대로 경계하는 것은 냄비 근성이다. 쉽게 끓어올랐다 확 식어버리는 것. 아마도 과거에 내가 냄비근성이 있었기 때문에 냄비를 혐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용두사미, 초심을 잃고 방종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경계하는 것들이다. 나는 천천히 한 걸음씩 오래 오래 걸어가고 싶다. 그래서 성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다. 나의 스승처럼 말이다.

 

나도 잎만 가지고는 내가 어떤 나무인지 판별하기 어려웠다. 이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부리지 않는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도 내가 아니다. 유일함이라니, 얼마나 황홀한 이야기인가! (243)

 

정원 손질

멀리 그들이 있고, 먼 자태는 가까이 있는 이 모습에 의해 생생해진다. (244)

 

온천지가 파스텔 톤의 흰 꽃잎들의 하늘거림으로 일렁인다. 벚꽃은 분 바른 여인같이 좋다. 벚 꽃은 난한 계집 같기도 하고, 화사하고 아른대는 고운 여인 같기도 하며, 까르륵 거리는 밝은 성격의 소녀 같기도 하다. 나는 벚꽃을 아주 좋아한다. (245) → 나도 벚꽃을 아주 좋아한다. 벚 꽃의 그 파스텔 톤의 연분홍 빛깔은 언제나 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그 색깔은 세상 어떤 색깔보다 수수하기도 하고, 화사하기도 하고,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벚꽃비가 내리는 윤중로를 걸으면 내 마음은 내리는 꽃 비에 흠뻑 젖는다. 그리고  몇 날 며칠이고 가슴앓이를 한다. 벚꽃은 내게 그런 꽃이다.

 

노동은 노동 안으로 우리를 불러 들인다. 노동 자체가 참선이고 수련이다. 다만 전혀 수련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게 하는 정신적 수련이다. 나는 빠져들고 몰두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노동처럼 그 성과가 눈에 잘 나타나는 것도 없다. (249) → 나에겐 빨래와 청소, 마당 쓸기 등이 정신을 성성하게 해준다.

 

일상의 작은 쉼터

숱한 상처들을 치유하고 고달픈 일에서 벗어나 몸을 눕혀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어느 경우든 집은 우리의 아늑한 밀실이다. 특히 나처럼 홀로 1인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에게 집은 작업장이고, 직장이며, 사무실이고, 일상이 이루어지는 훌륭한 세계이기도 하다. (254)

 

명상은 나를 즐기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괴로움으로 가득 찬 현실에 갇힌 내가 아니라, 원래 있었던 아름다운 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명상은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평화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평화를 건져내는 것이다. (254) → 나에게 명상은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그 순간 만큼은 가족, , 사랑 등 내가 두 손에 움켜쥐고, 어깨 위에 한 아름 쌓아 놓은 짐을 내려 놓는다. 심지어는 내 이름, 내 존재마저 내려놓는다. 그 순간 나는 뻥 뚫리고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내겐 그렇게 내려 놓음의 순간이 명상이다. 그렇게 내려 놓음으로써 나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허물어지고 온전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나는 세상 속의 수 많은 페르소나를 끌어 안고 사는 내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된다.

 

10장 학습

상처는 치유를 위해 시간을 원했다. 그 시간은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중략) 고통은 훌륭한 선생이었다. 그것은 내 일상으로 쳐들어와 점령하고 기승을 부렸다. 나는 때때로 싸우고, 욕하고, 화해하고, 다시 싸웠다. 그리고 읽고 생각하고 썼다. (258)

 

책을 통해서만 사상을 더듬는 일당들. 책을 짓눌러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일당들. 머리를 종이 위에 처박고 있는 일당들. 부디 '문 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시라. 그리하여 '진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지혜의 친구'가 되시라.

- 니체 (259) → 세상과 기쁨과 슬픔에 온 마음으로 참여하라.

 

"두려움은 곧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 라는 칼릴 지브란의 글을 발견했다. '씨팔.' 어쩌면 말을 이렇게 잘한단 말인가? ! 그거 참 좋은 것이다. 속에 콱 막혀 있다가 가래처럼 올라오는 데 뱉고 나면 후련하다. (260)

 

두려움은 서서히 옥죄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또한 강렬한 힘으로 작동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금 열심히 일하도록 했다. 계속 책을 쓰도록 했고, 계속 읽게 했으며, 그저 빈둥거리며 사는 것을 불편하게 했다. (261)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나는 공부하고 생각하고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훨씬 더 창조적이어야 했고, 더 열심히 학습해야 했다. 나 이외의 다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나를 보호해줄 아무런 울타리도 없었다. (262) → 이것이 나의 3년 혹은 5년 후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맞설 수 있겠는가? 그렇다! 당당히 맞서보겠다!

 

놀이로서의 학습

사람들은 내 책을 사보고, 내 강연을 듣고 싶어한다. 그것이 훨씬 더 나를 두렵게 했다. 성공에서 물러나는 것에 대한 무서움 때문일 수도 있다.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성공은 채찍이다. 쉬지 못하게 날카롭게 살을 파고들어 찢어놓는 주마가편의 바로 그 채찍이다. 채찍을 잊은 성공은 반복과 진부함 속에서 퇴락하게 된다. (262~263)

 

나는 사라지는 것들에 내 성공을 의존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기란 사라지게 마련이다. 사라지는 것 위에 성공을 쌓아 올려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이다. (263)

 

학습은 성공을 오랫동안 빛나게 해준다. 나는 학습이 의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의무이다. 이 짐을 견디지 못하면 더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짐을 견딘다고 해서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무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의무란 재미없는 것이다. 의무감이란 일상화되는 것이고, 지겨운 것이며, 반복되는 것이고,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무덤이기 때문이다. (263)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취미가 여전히 취미일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면서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를 잃어버린 전문가들을 너무 많이 봐 왔기 때문에 경계해야 했다. (263~264)

 

나는 한 가지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을 자제했다. 읽기 싫으면 읽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썼다. 매일 쓰는 것은 다행히 아주 즐거운 놀이였다. 나는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와 느낌과 생각을 내 일상 속에서 매일 조금씩 찾아내고 표현해보려고 했다. 그것은 늘 살아있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나는 놀이가 가진 위대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논다는 것은 순수하며 아무런 이해를 따지지 않는다. 경제적 계산을 넘어 빠져들게 한다. (264)

 

내 속에서 일어나는 조급함에 그 이유 없음을 질타하곤 했다. 이유 없는 조급함에 대해서는 늘 한 호흡을 더 쉬곤 했다. (264)

 

바쁘다는 것은 지우개와 같다. 도든 기억을 지우고 그리움을 지우며 의미를 지우고 생각을 지운다. 바쁘다는 것은 사람을 그저 움직이게 한다. 먹이를 나르는 개미처럼 한 없이 움직이게 한다. 경제라는 본능에 따라 프로그램이 된 것처럼 낮도 밤도 없이 움직이기만 한다. 똑같이. 이 지겨운 반복적 소모를 '일한다'라고 부른다. (265)

 

니체는 '노동은 최고의 경찰'이라고 말했다. 노동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억제하고, 열망을 줄이며, 독립의 욕망을 피하는 현명한 자제의 방법이었다. 그래서 사회는 노동을 통해 안전해지곤 했다. 우리는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다가 죽는다. 한번도 살기 위해 일을 버린 적이 없다. 놀기 위해 산 적도 없다. 그래서 살기 위해 산적이 없는 것이다. (266) → 이런 류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보다 내 부모님의 서글픈 눈매가 떠오르며 눈가가 촉촉해 짐을 느낀다. 그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는 이런 류의 풍족한 행복을 누릴 수 없었으리라.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것,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267)

 

나침반 하나 들고 떠나는 탐험

미래는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세계다. 그저 내적으로 감응하는 나침반 하나 달랑 들고 떠난다 .이때는 내 발자국이 곧 지도이다. 완성될 수 없는 지도, 때때로 잘못된 지도, 방황과 위험이 도처에 숨어 있는 지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269)

 

이성 뒤에 숨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나를 잡아 끄는 다른 힘들을 느끼곤 한다. 간혹 어떤 직관이 나를 나아가게 하고 어떤 감정이 나를 휩싸기도 한다. 그리고 그 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해준다. 학습은 온몸으로 이루어진다. 온몸이 다 배움을 위한 촉수이며 성감대다. 나는 천천히 배워갔다. 한 번에 조금밖에 배우지 못하는 더딘 깨달음이 이제 부끄럽지 않았다. 어쨌든 나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는가! (269)

 

책을 쓰는 일은 내가 가장 잘 배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재능이 있겠지만, 이 방법이 내 스타일이다. 나는 내가 읽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들의 지식은 나라는 특별한 여과기를 거쳐 새로운 표현법을 얻게 된다. (270) → 게슈탈트와 같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조각으로 조각의 합 이상의 전체성을 가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독자는 작가와 같다. 그들 역시 책을 읽으면서 자신들의 책을 쓴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험과 사유의 한계 속에서만 저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 권의 책이 읽힐 때마다 다시 한 권의 책이 독자에 의해 쓰여'진다. 책은 그 독자 수만큼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모든 독자는 자신이 읽은 책의 또 다른 저자이기도 하다. (270)

 

책과 학습은 우리를 같은 생각을 하는 동지로 만든다. 학습을 통해 우리는 늘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돌연 자신이 속했던 사유의 세계를 떠나 전혀 이질적인 사유의 쾌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271)

 

경제적으로 학습은 자신을 '자본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교육과 훈련, 그리고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서만 포인트가 누적되는 자본이 바로 '인적 자본'이다. (271)

 

학습은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이란 '어떻게 배우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학습의 핵심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 답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답은 이 탐험의 끝에 나타나는 보물이다. (271)

 

마음이 가는 대로

나는 살고 싶다. 삶만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내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삶을 사랑하는 것은 건강한 변모의 예술이다. 학습은 지식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획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늘 버리고 늘 떠나는 것이기도 하다. (273) → 그렇기 때문에 자만과 방종이 있어서는 안 된다. 늘 겸손한 마음으로 반복하고 복습하고, 또 복습하며 내 몸에 체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분이 그 놈이 되고, 그 놈이 드디어 내가 되는 신비로움을 느끼고 싶다.

 

나는 배움이란 이해와 인식으로부터 시작할지 모르지만,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73) → 그 너머에 있는 세계, 나는 그것을 나의 내면의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라고 부르고 싶다.

 

배우고 또한 익히다가 결국 자신을 그 바람결에 실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하늘을 날 수 있다. 학습은 어느 순간 이질적인 삶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매움은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고 가슴에 아는 것이다. '우리가 결국 한 작품 속에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가능성'이라는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지적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274)

 

좋아하는 일이 즐거움이 되려면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보기 싫은 책은 보지 않는다. 독후감 숙제를 하기 위한 독서 같은 것은 없다. 오직 마음이 가는 대로 읽는다. 글을 쓰는 스타일도 자유롭다. 문처럼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글쓰기를 싫어한다. (275)

 

사회적 필요성과 자격의 취득이 목적인 경우는 그들의 위엄과 전통을 따라야 할 것이다. 힘은 그들에게서 오니까. (275)

 

깨달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야(aletheia)'의 어원은 '촛불을 끈다'라는 뜻이다. (275)

 

이성의 작은 촛불을 끄지 않고는 대우주의 별빛을 볼 수가 없다. 가까운 작은 산이 먼 큰 산을 가리고 있듯이 작은 지식은 늘 큰 지혜를 가리고 있다. (276)

 

어둠이 가장 짙을 때 깨달음의 길이 열려 있다. (276) →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둡다.

 

제자가 자신의 마음 속에 별빛을 보게 하는 스승만이 위대한 스승이다. '스승을 욕보이는 제자는 바로 영원히 스승을 빛나게 하는 자'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허물을 벗을 줄 모르는 뱀은 죽어버린다. 생각을 바꿀 수 없도록 방해하는 인간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정신들은 이미 정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는 가장 자유로운 미친놈이었다. (277)

 

'자기처형' 없이는 새로운 자기가 있을 수 없다. 단순한 자기변화로부터 스스로에게 반대하고 자신의 적이 되려는 데서 그의 기쁨이 생겨났다. (277)

 

노마드

들뢰즈는 철학이란 '개념을 만들어내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사유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 아마 새로운 '배치'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기 위한 모색과 실험이 될 것이다.

 

나는 그가 이질적인 것들, 다른 삶들을 받아들여 자신이 뒤에서 덮친 모든 사람의 삶을 자신 속에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사생아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들 속으로 확장해가고, 동시에 자신 속에 있는 그들을 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 속에 여러 명이 있는 것이고, 그들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삶은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접속되고 연결되며 내재화 되고 확장되는 것이다. 이것이 학습의 즐거움이 아닐까? (279)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은 니체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는 변신의 힘이며, 가장 극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라는 단호한 유혹에 따라 늘 '떠나야 할 곳은 알지만 도착할 곳을 모르는 배'를 타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니체로 남은 적이 없다. 그는 유목민이었으며, 떠나는 사람이었으며,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자신을 찾는 일은 '항상 자신을 잃어버리고 부정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계속되는 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써 자기를 생성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니체라는 이름은 어떤 정체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니체는 그러므로 '미래의 아들'이었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에 이어지는 다음 시간이 아니라, 이미 와서 우리 곁에 있지만 감지되지 않거나 오해 받고 있는 시간'이다. , 니체의 미래는 어느 시대이든 '적절한 때가 아닌 것'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그는 늘 '너무 일찍 와서' 이해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대의 아들'이 되지 못하고, 시대에 적응한 모든 사람들에 의해 '광인'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279) → 그런 의미에서 니체는 나의 스승의 위대한 스승 중 한 사람이다.

 

배움은 결국 삶의 실천에 의해 가장 잘 얻어진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281)

 

인디언이 되었으면! 질주하는 말에 잽싸게 올라타, 비스듬한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는 대지 위에서 거듭거듭 짧게 전율해보았으면, 마침내 박차를 내던질 때까지, 실은 박차가 없었으니깐, 마침내는 고삐를 집어 던질 때까지, 실은 고삐가 없었으니까, 그리하여 눈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풀이 깎인 광야뿐일 때까지, 그리하여 말 모가지도 말 대가리도 없이.

- 프란츠 카프가, <인디언이 되려는 소망> 전문 (281)

 

삶을 살면서 삶 속에 녹아버렸으면, 탐닉하고 오직 삶이 되어 삶 속에서 노닐 수 있었으면, 조금씩 조금씩 빠져들어 마침내 삶이 되었으면. (281)

 

삶의 방식을 바꾸는 혁명

내게 배움이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로서의 철학 또는 자기경영은 가능할까?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경영 철학은 가능할까? 언젠가 책을 읽으며 메모해둔 구절이 보인다. 두 개의 다른 구절이 이상하게 딱 부러지게 맞아떨어진다.

 

20년이 흘렀건만 나는 아직도 길 위에 있다네

내가 허비한 20,

그렇게 애를 썼건만

내 노력은 매번 전혀 새로운 시작이 되고

매번 전혀 다른 실패였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하여,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떠나야 할 곳에서 떠나기 위하여,

황홀함이 없는 곳을 지나야 한다.

- T. S. 엘리엇 (282)

→ 침묵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1만 시간을 지나가야 한다.

 

학습이란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282)

 

초심을 지키는 발심의 끊임없는 자기개혁이 구도자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은 암자에 앉아 참선에 빠지는 일상의 의무적 반복에 의해 영혼이 해탈하는 것이 아님을 뼈아프게 느끼곤 한다. 깨달음이 하루의 일상으로 쳐들어 와 하루를 바꾸어놓지 못하면 실천되지 않은 것이다. (283)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만일 하루를 춤추듯 보낼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매일 그럴 수 있으면 자신의 행복을 찾은 것이다. (283)

 

'새로운 장르의 일상적 삶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실천적 개혁이고 혁명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의미 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으려면,내가 새로운 일상을 하나 만들어냈다는 사실 때문이어야 한다. 그 새로운 일상이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때, 내 삶은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 (283~284)

 

나는 늘 새벽에 일어난다. 그리고 새벽에 쓴다. 두 시간쯤 쓰면 지친다. 이 피곤이 나를 살게 해준다. (284)

→ 내가 따르고자 하는 스승의 삶이다. 나도 이렇게 살고 있으며, 더욱 더 이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제 읽던 책을 끝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보게 되면 보는 것이고, 오늘 못 보면 언젠가 보면 되는 것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방식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새로 받은 하루이다. (284)

 

청중을 통과한 것들은 살아남는다. 그러나 청중의 반응을 얻지 못한 것들은 새로운 언어로 고치거나 버려진다. 책을 내는 것, 다른 사람에게 강연하는 것은 음악가들의 릭사이틀이고 화가의 전시회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자체로 소중한 학습의 도구와 방편이 된다. (285)

 

하루는 실험장이다. 실험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실험장. 실험이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린 실험. 이것이 내 하루이다. (285)

 

학습의 문화 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좋은 전문가의 필수적인 수련과정이다. (285)

 

나는 경영학과 인문학을 하나의 공간에 배치시킴으로써 훌륭한 휴식과 에너지를 제공하는 목욕탕을 만들고 싶다. 냉장하고 가혹한 경영 속으로 뜨거운 김이 솟구치는 인문학적 유산을 배치시킴으로써 돈으로 피폐한 영혼과 벌거벗은 몸을 돌아볼 수 있는 정신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나의 학문적 관심사이다. 그것은 '현실세계 속으로 꿈을 침투' 시키는 작업이었다. (286)

 

나는 나에 대한 꿈을 꾸었다.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 이 표현을 학교 다닐 때 소설가 최인훈의 글에 서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늘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선비의 섬세함이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눈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무사처럼 선이 굵다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 속에 두려움에 지지 않으면 선이 굵다고 할 수 있다.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때때로 무리 속에 있지만 그들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면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286~2877)

 

<스승에게 있어서 학습의 중요한 테마>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아경영 철학

변화의 기술

 

도전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번 다른 실패를 딛고 나일 수 밖에 없는 길로 운명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를 이기는 것이다. 두 번째 도전은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도전은 매일 실험을 즐기는 것이다. 이때는 이미 실패도 성공도 사라진다. 여행을 즐기는 자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탐닉한다. 그들은 춤추듯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289)

 

11장 일

옆구리를 찌른 창 자국처럼 그것은 내가 과거의 어떤 순간들로부터 결별하고 빠져 나온 유적 같았다. 배꼽이 첫 번째 탄생의 명백한 증거라면 이 멍의 흔적은 두 번째 탄생을 나타내는 증거물이었다. (292)

 

나는 강연을 하러 간다. 첫 출근을 하던 날의 기분을 상상해보라. 새로운 책을 한 권 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강연을 하러 가는 날마다 나는 그런 기분에 젖곤 한다. 새로운 책, 새로운 대상, 새로운 내용, 새로운 날은 나를 춤추게 한다. (293)

 

어느 날 악마가 속삭였다. "네가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이 다시 한 번, 나아가 수없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거기에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을 것이다. 일체의 고통과 기쁨, 일체의 사념과 탄식, 너의 생애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크고 작은 일이 다시금 되풀이 될 것이다. 모조리 그대로의 순서로 되돌아온다. 너는 다시 한 번, 수 없이 계속 이 삶이 반복되기를 원하느냐?

- 니체 (294)

 

내가 하는 일의 첫 번째 고객은 나이다. 내가 내일의 가장 최우선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내 일은 반드시 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294)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소명은 ① 나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② 나를 깨워 스스로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자아 경영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294)

 

하루가 내 연구의 기본 단위다. 나는 날마다 무수한 반복보다 무수한 변화를 원한다. 그러므로 내 일은 반복을 거부하는 것이다. 수 없는 반복을 통한 훈련이 아니라 수 없는 변화를 통한 훈련이 내 방식이다. 나는 물결에게서 이 방식을 배웠다 .물결은 무수한 반복이 아니라 무수한 변화이다. (295)

 

일은 삶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일이 품삯이어서도 안 되고, 삶의 다른 요소들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는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가는 무의미한 질문이다. 눈부신 삶을 살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 (297)

 

내가 일하는 방법

어떤 이론도 어떤 조언도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설득하기는 어려다. 변화는 오직 스스로 시작할 때만 효과적이며 그때에만 비로소 행복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변화경영이라는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스스로의 변화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자격요건이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통렬한 아픔이었다.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나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규율을 만들었다

먼저 나에게 적용할 것. 반드시 성공할 것

상이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할 것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을 것을 나누어주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 것

이것이 내가 요구하는 품질기준이다. 지식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내 원칙이다..(297~298) → 이 규율을 따르기 위해 지난해 담배를 끊고, 체중을 감량했다. 입에서 술과 담배 냄새가 가득하고, 비대한 몸으로 뒤뚱거리며 조금만 움직여도 땀을 삐질 삐질 흘리는 사람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 자신에게 적용하고 성공하는 것은 변화경영전문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나를 변화시켰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내 하루가 바뀌었는지를 물으면 확실해진다. 오늘을 놓치면 삶을 놓치는 것이다. 하루를 즐길 수 있으면 훌륭한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의 물결로서,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가 나에게 바라는 목적이다. (298)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새벽의 두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 (299)

 

(1) 글쓰기는 우선 모방이다. 많은 글을 읽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이 모방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감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사업이든 글쓰기든 가슴이 설득 당하지 않고는 자신의 철학이나 깨달음으로 전환하기가 어렵다. 열정과 가슴의 힘 없이는 현장의 바람에 대항할 수 없다. 설득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설득은 감정의 폭우를 필요로 한다. 감정을 담지 못하면 설득에 성공하기 어렵다. 열정을 가진 사람처럼 믿어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한 작품을 모방하면 표절이고, 여러 작품을 모방하면 연구이다.'라는 노회한 충고를 기억하는 것이다. 많이 보고 많이 감동하는 것은 사업이든 글쓰기든 훌륭한 성과를 내기 위한 근면한 배움의 요결이다.

 

(2) 글쓰기는 또한 혁명이다.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리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연결해야 한다. 창조성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창의적 발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었다. 죽어 있는 정신을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흥미가 살아나고 열정이 살아나며 삶이 살아난다. 그리고 끊임없이 실험하게 된다. 실험이 곧 창의성이다. (300)

 

지금 돈을 벌었다고 훌륭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듯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다 훌륭한 작가는 아니다. 이것 역시 돈과 관련하여 사업과 글쓰기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다. 인간이 하는 일들은 바로 그 인간이라는 주체 때문에 종류와 관계없이 서로 닮았다. (301)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

세상을 살며 그것이 보내는 신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 사회가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그 안에 키워내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훌륭한 사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움과 학습은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자아경영'은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나를 위해서 먼저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나아지는 수련이다. 그 다음에 비로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302)

 

내가 배우는 방법으로 가장 그럴듯한 것이 배운 것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여 책을 쓰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 나는 책을 읽고 감동적인 곳을 골라내어 내 방식으로 걸러 재편하는 데 꽤 능숙하다. 그리고 관심이 있는 분야에서 그것들을 재결합하여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내는 작업 역시 즐긴다. (302)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분야를 대중이 즐겨 읽고 실천할 수 있도록 된장 풀고 고추장 넣어 먹을만하게 끓여준다는 생각은 시도할 만한 일이었다. 처음 해본다는 것은 기회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선점만큼 강력한 브랜드 전략은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재능과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경력을 결합시켜 이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303) →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유명해지길 원하는가? 나 또한 '변화'라는 화두로 유명해지고 싶다. 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 화두를 구체화 시키고 세분화 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2011김경인 Mega Project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304)

 

① 강점은 꿈을 이루는 도구와 같은 것이다. 어떤 꿈이든 그것을 현실의 세계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적절한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304)

 

② 자신의 강점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기질이다.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재능의 배합을 가지고 있듯이 기질 역시 다르다. 이것도 타고난다. (304)

 

<사부님의 기질>

I (내향적), N (직관적), F (감정), P (인식)

- 의미와 내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경향

-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며 믿음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진력을 다한다.

- 감수성이 강하고 사려가 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데 능란하다.

-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냉담하고 무관심해 보인다.

- 느끼는 기능이 강하기 때문에 한 발짝 물러나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 모든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일이 많다.

- 공격을 받으면 반격하기 보다는 마음 속에 깊이 분노를 간직하는 기질이다.

- 창의성과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평범한 것에서 벗어난 새로운 표현방식을 높이 평가한다.

- 일 처리에도 전통적인 방법에 매이지 않는다. 따라서 종종 시대를 벗어난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 현실적이거나 실리적이지 못하다.

-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겨 한다.

-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에 몰입할 때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

- 저술가, 대학교수, 예술인, 카운슬링, 컨설팅이 적합한 직업이다.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은 바로 지금의 나처럼 사는 것이다. (306)

 

나는 개인에게 있어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본래의 자기란 무엇일까?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 강점을 계발하여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다움으로 돌아가는 좋은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깨우는 일에 능숙해지면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자기를 깨우고 난 후에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수신(修身)이 이윽고 가정과 공동체로 스스로를 확장하게 된다. (306)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 (We are helping people be a better than ever before)' 이것이 내 비즈니스의 정의다.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자신의 특성을 강점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306)

 

성공의 비결

자신의 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307)

 

나를 키워준 것은 오히려 약한 마음이 늘 얻어오는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치유력이었다. 갈등이 나를 키워주었다. 마음 속의 싸움을 통해, 비록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내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싸움은 생각보다 나쁜 것이 아니었다. (307)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비결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싶어한다. 그 비밀은 '아곤(agon)적 행동'이라고 말한 경쟁의 행동에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선조들과 경쟁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과 경쟁한다. 그리스인들은 이 경쟁의 힘을 ''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기독교적이거나 윤리적인 '금지의 미덕'이 아니라 '남성다움, 또는 정력적 힘'을 상징했다. (309)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에 적힌 대로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손에 익고 머리와 가슴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이 자연스러운 강줄기가 흘러갈 때 우리의 것이 된다. 그때 성공은 우리의 특징이 된다. (311)

 

성공 뒤에는 성공을 향한 탐욕이 있었다. 경쟁에 대한 에너지, 시기와 질투와 원망이 있었다. 그것들이 끊임없이 모방하게 하고 배우게 하며 연습하게 하고 익히게 했다. (311) → 바로 내가 스승을 바라보며 느끼고 행동하고 있는 바다. 탐욕? 그게 탐욕인지 모르겠다. 경쟁? 그것도 잘 모르겠다. 질투와 원망? 그것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나보다 더 낫기 때문에, 더 높은 경지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 이르고 싶을 뿐이다. 저기 산이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르고자 하는 것이다.

 

유일한 사람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이것은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유일한 자만이 초고로서 칭송 받을 자격이 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은 늘 한 길로 간 사람들의 것이다. 적어도 나는 이 한 길을 가기에도 숨이 차다. 다른 것들을 넘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나는 그저 내 일만 해도 저녁에 이미 탈진한다." (311~312) → 세 번째 칼럼의 주제 '나는 무엇으로 특별해지고 싶은가'의 답이 여기에 있다. 나는 무엇에 내 인생을 오롯이 바치고 싶은가?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 나의 내면의 중심에 이르렀을 때 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찾는 것이 내가 하고 있는 평생 프로젝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목적지이다.

 

유일한 사람이 되는 길은 신의 쪽지, '자신에 대한 기록'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자신만이 유일함의 원천이다. 자신을 활용하지 않고는 유일함에 도달할 수 없다. 유일함을 수련하는 방식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깊숙한 곳에서 잠에 취해 있는 자신을 깨워내는 것이다. 그것은 대게 아주 깊은 산중에서 잠에 빠져있기 십상이다. 게으르고 잠을 즐기며 눈치를 보고 비겁하고 교활하지만, 아직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견하지도 못하고 발휘할 줄도 모르는 미숙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이 내면의 영웅이 스스로 일어나 초려에서 나오도록 설득해야 한다. (312)

 

스스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내면의 구곡양장의 길을 따라 여러 번 '삼고초려'의 극진함을 보여야 한다. 인물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 만에 하나 '자기 스스로를 얻을 수 있다면' 천하에 자신을 표현하기 어렵지 않다. (312)

 

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살려내지 않고는 내면에 숨어 있는 영웅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다. (313)

 

나는 나를 찾아내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찾아내어 더러운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나는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나는 마음이 여리고 소심하다.

나는 글을 통해 내 생각과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책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것, 그렇게 예정된 바로 그 사람밖에는 될 수 없다. (316) → 느티나무 씨앗이 느티나무가 아닌 벚나무가 될 수 없듯이

 

다른 사람의 영웅이 되기를 거부하는 영웅, 자기 자신의 영웅은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지키며 이끌어 간다.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영웅, 이들이 바로 '유일한 자'들이다. 우리는 유일함을 통해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비범한 사람으로 자신을 안내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치 않은 위대한 이야기'로 전환된다. (316)

 

'유일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숙달해야 한다. 손과 머리 상이에 자연스러운 교감과 조화가 이루어지면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나 최고는 늘 기계적인 익숙함에 다시 한 번 저항한다. 일단 숙달하면 일탈한다. '불온한 재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다른 방식을 찾아보고 새로운 방식을 다시 익힌다. 다시 배우는 불편과 새로 배우는 흥미를 반죽하면 일상은 다시 깨어나고, 일은 같은 일이지만 새로운 얼굴로 다가온다. 애인이 아내가 되고 아내가 다시 애인이 된다. (317)

 

그러므로 늘 새롭게 사랑하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317)

 

나는 글을 쓸 때 나에게 주술을 건다

"내가 쓰는 글은 짧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감동이라는 껍질에 사여 있는 씨앗이다. 그것은 적대감이라는 위액과 소화액에 녹아 없어지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발아할 수 있는 장소까지 이동해야 한다. 피와 영혼과 정신의 어느 부분을 건드려 그들 역시 알 수 없는 환상과 내면의 열정 속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 열정이란 심장과 감정과 창자로부터 생겨난다. 참다운 자신이 되는 자유는 '자유로운 공기를 들이켠 허파의 외침'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감동이며 환상인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 속에서 위대한 힘을 감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 속에서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주는 터무니 없는 위로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자신이 희망적 현실주의자로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어야 한다.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는 가능한 꿈을 꾸어야 한다. 가능한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 나는 이것을 희망적 현실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꿈으로 가는 길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내 앞에 놓은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글을 통해 사람들이 지루한 일상을 하염없이 반복하는 무료와 절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인생의 재료로 삼는 것을 도와야 한다. 자신을 반죽하고 주무르며 떼어내고 빚어낸 후 색칠하여 다시 세상에 내놓게 도와야 한다. 새로 만들어진 그들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으로 가득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생성되는 사람들이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자신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불임을 극복하는 사람들이며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

 

내 글은 강력한 유혹이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삶에 대한 하나의 사례로서 나는 내 삶 자체가 매혹적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나는 매혹적인 삶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즐거운 여행, 이것이 내가 그리는 삶이다." (317~319) → 나 또한 글을 쓰기 전에 이 글을 언제나 두고두고 읽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주술을 초월할 수 있는 나만의 주술을 빚어내고야 말 것이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생각하고 버리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또 모든 생각을 한다. (319)

 

청중이 듣고 싶은 강연

강연은 쏟아내는 작업이다. 쏟아내는 것이 들어오는 것보다 많으면 이내 밑천이 딸리게 마련이다. 이것은 치명적 결함이다. 지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너무 바쁘면 안 된다. (319)

 

지식은 늘 새로운 지식으로 전환되며 새로운 체계로 진화한다. 새로운 연합을 모색하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강연은 이런 지적 프로세스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늘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텍스트를 창조할 수 없다면 강연자는 스스로를 교살하는 셈이다. 자신의 목에 감긴 밧줄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당기는 행위가 바로 쏟아냄이 들어옴을 초과하는 지식의 유출을 방관하는 행위다. 일 년이 되지 못해 그의 지식은 낡은 것이 된다. 그리고 충전이 불가능한 배터리처럼 폐기된다. 이를 경계해야 한다. (320)

 

책을 쓰는 것의 장점은 그 내용의 핵심이 언제나 머릿속에서 꺼내 쓸 수 있을 만큼 정리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때그때 대상과 상황에 따라 적합하게 사용할 만한 내용을 스토리 보드 위에 간단히 정돈한다. 그것은 마치 레고 놀이처럼 필요한 뭉치를 서로 잘 짜맞추어 논리적 결합체가 되게 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321) 서태지의 연주곡 중에 'LEGO' 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의 글쓰기 버전이 바로 위의 장절이라 할 수 있다. 그 곡은 서태지가 작곡을 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연주 곡인데, 처음에 한 악기로 연주를 시작하고, 그 다음 악기가 들어오고, 또 그 다음 악기가 들어와 하모니를 이루는 형태를 보여준다. 곡의 제목처럼 각 악기를 레고조각 맞추듯 조합해서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설명해 주는 곡이다. 요새 계속해서 게슈탈트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게 탄생한 한 곡은 각 악기가 내는 소리의 합을 초월하는 전혀 새로운 하나의 작품으로 거듭난다. 서태지의 음반같이 멋진 나의 책을 한 권 저술하고 싶다. 그렇다. 나는 자기 계발분야의 서태지가 되고 싶다. 자기계발 분야의 문화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좋은 내용이었지만 내 강연은 고작 그 강연장 안에서만 생명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들은 강연장을 벗어나는 순간 모든 것을 잊었다. 이것이 좋은 말의 한계였다. '좋은 말'은 강연장이라는 무균실에서만 살아 있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것에 불과했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지없이 부서지며 다시 어제의 관성으로 합류되는 사람들을 보며 자괴감이 많았다. (321)

 

청중이 듣고 싶은 강연이 좋은 강연이다. 나는 담당자들에게 사전에 청중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를 서너 개 알려주기를 요청했다. 그리고 청중의 문제로부터 강연을 시작하곤 했다. (322)

 

강연은 하나의 지적 퍼포먼스이다. 내가 먼저 그 내용에 만족해야 하고, 청중의 개인적 관심사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이 관심을 갖는 주제 속에 스스로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사례들을 잘 포진시키는 것이 흡착력 있는 내용을 이루는 기본적 구성이다. (322)

 

강연은 결국 전달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장 나다운 방법으로 이를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도 예술가가 자신을 표현할 때의 자세와 유사한 몰입이 있어야 한다. 강연자가 몰입하지 못하는 강연은 좋은 강연이 아니다. 잘해야 말만 난무하고 정신은 결여된 '좋은 이야기'에 불과해진다. 느낌을 전달하지 못하는 강연은 죽은 것이다. (322)

 

어떤 싸움이든 청중에 대한 애정이 깊어야 한다. (322)

 

<청중의 부류>

열심히 들으려는 사람들 = 모범집단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 = 휴면집단

까다로운 집단 = 놀이집단

 

지지자들로 둘러싸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리를 이루는 것이고, 그 무리 속에 휩싸이는 것을 즐긴다. 위로 받고, 격려 받고, 무언가 된 듯한 짜릿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속에는 늘 불안이 있다. 인기라는 것은 덧없는 것이며 언젠가 떠나는 것이다. 떠나는 것에 의지한 자는 불안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늘 변하고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기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인기를 추구하는 자는 인기를 잃음으로 결국 불행해지거나 스스로의 왜곡에 빠지기 쉽다. 지지자로 둘러싸인다는 것이 위험한 이유이다. 모든 화려한 자들은 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근신할 줄 알아야 한다. 인기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은 것이다. (325) → 내게 찾아온 영광을 과감하게 해체하고 새로운 길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수행자의 기개가 필요하다. 이런 자기 관리가 가장 잘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나는 서태지라고 생각한다.

 

나의 역할

"모든 예술가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특별한 예술가이다."라는 영국의 삽화가인 에릭 길의 말은 횟수가 많아지면 판박이가 되기 십상인 강연의 세계에서도 특별한 자신의 표현법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328)

 

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갈채하는 강연을 하고 싶었다.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으면 좋은 강연을 한 셈이다. 나와 관중은 호흡을 같이한다. 그들은 나를 응시하고 내가 하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고, 내 마음은 고조된다. 강연은 콘서트가 되고 리사이틀이 된다. 우리는 쉽게 하나가 된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강연이다. (328)

 

"아티스트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아요. 내 음악으로 관객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 그런 허영 없이는 무엇으로 움직이겠어요? 팬들의 사랑이 없으면 끝이에요. 부인할 수 없어요. 관객의 갈채를 받지 못하는 나를 상상할 수 없어요. 아티스트들은 그래서 항상 젊어야 하고 섹시해야 하고 신선해야 해요. 시들지 않는 에버그린 같은 것이지요. 무대에 설 때마다 떨리고 흥분돼요. 연애하는 것과 비슷해요. 관객과의 데이트 말이에요. 거기서 나는 가장 아름다움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누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싫어요. 귀뿐만 아니라 눈까지 나를 응시해주기를 바라요. 무대에서만 나는 살아 있어요. 무대에서 나는 가장 아름답고 당당해요. 나는 노래를 위해 태어났고 노래로만 나를 증명할 수 있어요."

- 조수미 (329)

 

매우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이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해주었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목표여서는 안 된다. 내 목표는 그 이상이다.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 그것은 반드시 청중 속의 누군가를 움직여 스스로 자신의 고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적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강연장을 떠나 그들이 일상 속에서 변화를 실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하루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다.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강연은 실패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좋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331~332)

 

내 일이 매우 위험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짝 덮고 있는 행복의 껍질을 뜯어내는 것은 매우 적대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의 불행은 행복이라는 초콜릿으로 살짝 덮여 있었다. 그들은 그 초콜릿 덮개가 벗겨지는 것에 분개한다. 그리고 적대적이 된다. 솔직한 것이 위험한 이유이다. 내 일은 예민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의무를 주며 할 일을 주고 숙제를 내줌으로써 그들을 못 견디게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333)

 

적절한 적대감은 결국 본인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사용하게 한다.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공격하지 않고는 과거를 떠날 수 없다. 자기의 창조와 생성은 어쨌든 스스로를 공격해야 한다. 씨앗을 쪼개야 싹이 나올 수 있다. (334)

 

불행한 사람들만이 변화에 관심이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지금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행복을 가장한 사람들 역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도 때때로 변화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뼛속 깊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이 지루하고 반복적이며 별 의미와 보람도 없는 불안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일상이라고 엄살을 떠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인생은 그런 것이려니 하는 사람들이다. 변화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과 당위성을 찾아냄으로써 그들은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변화를 꿈꾸지만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 나는 그들 속에서 불행을 감지한 치열한 사람들을 찾아내야 했다. (334) → 이보다 더 훌륭한 표현이 있을 수가 있을까? 무릇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준답시고 강연이란 것을 하는 사람들이 이 말을 가슴 속에 깊이 새기고, 꺼내러 읽고 새기고, 또 읽고 새기고 해야 할 것이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오늘 강연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어디에고 하루를 바꾸고 일상을 바꾸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에게 우연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내 역할이다. (335) → 나 또한 이러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그들의 시시한 삶, 평범한 일상에 대한 분노의 불길을 부추기고 타오르게 하는 묘한 입김으로 속삭이는 자여야 한다. (336) → 새로운 삶으로 내모는 자, Turning Point Sparker

 

변화의 주체가 되는 길

내가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만 깨달아도 우리는 금방 불행해진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며, 그런 모든 인생의 재미를 희생한 대가로 받은 보상이라는 것이 시시할 정도로 쪼들리는 월급이라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불행해진다. (336)

 

변화는 달콤한 과정만으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화 속에는 늘 피의 냄새가 난다. (336)

 

혁명은 언제나 기존의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당황스럽고 길을 잃게 하며 용기를 필요로 한다. (336)

 

진정한 변화는 자신에 대한 치열한 사랑이다. 치열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337)

 

나는 사람들이 가장 자기다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337)

 

변화의 주체가 되는 것, 상황의 먹이가 되어 쫓기기 전에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는 주인이 된다는 것이 변화의 요결임을 강조한다. 그 길은 어려운 길이다. 그 길은 껍데기를 버리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붙잡고 일어서야만 하는 자기존중과 애정이 필요한 대장정이다. (337)

 

나는 청중 모두를 위해 강연하는 것이지만, 그 강연은 결국 그들 가운데 누군가를 위한 강연일 뿐이다. 그 강연은 우연한 만남, 우연히 듣게 된 소리에 불과하지만, 마음의 문고리를 벗기는 운명적 순간이 되어주어야만 한다. (338)

 

강연은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 그들이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들이 그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강연이 끝나더라도 그들 자신으로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내 강연의 목적은 자기 자신이 되어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338)

 

그들이 시작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내 비즈니스의 또 다른 목적이다. 이때 내 비즈니스는 나를 변화시키는 최초의 목적에서부터 다른 사람의 변화를 돕는 비즈니스로 확대된다. (339)

 

나는 내 강연의 품질에 책임이 있다. 만족스러운 거래가 또 다른 거래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나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은 쇼 비즈니스가 아니다. (339)

 

정신적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늘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정신을 새롭게 닦아놓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인간은 모두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밀리면 정신적 타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다른 것을 잘하지 못할 때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실수하거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매우 불쾌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때 자신의 분야가 나를 찌르는 비수가 된다. 그러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340) →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순례자에서 안내자 페트루스는적은 우리에 대한 승리를 점칠 수 있을 때 비로소 싸움을 시작합니다. 자만심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무적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그때지요. 싸움을 할 때 우리는 항상 자신의 약한 면만을 방어하려고 하지만, 막상 적이 공격하는 곳은 우리가 방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가장 믿고 있는 곳 말이죠.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패배하고 마는 겁니다. 패인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적에게 싸움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죠.” 라고 이야기 하며 자만과 방심을 경계한다.  

 

어제의 진실은 오늘의 진실이 아니다. 늘 새롭게 태어나지 못하는 정신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전문 분야의 적절한 대우를 늘 요구한다. 내가 나아졌을 때 그 가격을 올린다. 어제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정직한 거래라고 생각한다. (340)

 

꽃씨와 불씨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전보다 훨씬 자유롭다. 자신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처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나이가 들면 자신을 넘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일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된다. (341)

 

우연한 쏘시개 불꽃

an unexpected sparkle toward the destiny

 

내가 하는 일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아직 방향을 잡을 수 없을 때 잠시 '우연한 쏘시개 불꽃'이 되는 일이다. (341~342)

 

누구든 자신의 길을 갈 때는 내면의 등불을 밝히고 가야 한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등불이나 등대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가는 여행은 우리 속으로의 여행이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수록 오직 자신을 태우는 등불로 길을 밝혀야 한다.

 

막막할 때, 주저 않아 있을 때, 우연히, 자신의 안에서 스스로 불을 켤 수 있도록 잠시 불을 빌려주는 예기치 않은 쏘시개 불꽃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무수한 군중이 있지만, 내 말을 듣고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속에서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나는 그저 그 속에 불씨 하나를 던져 넣는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타오르는 것을 보며 즐긴다. (342)

 

내가 하는 일은 또한 어느 날 문득 누군가의 마음이 자신의 꽃씨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미세하여 대수롭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작고 연약하며 보잘것없는 것이 싹을 틔우면 이내 자라고 꽃을 피운다. (342)

 

자신의 꽃씨를 뿌리게 하는 것,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심어주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조용한 선동가이다. 모든 씨앗에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 꽃이 무슨 꽃인지는 피기 전에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꽃이 다른 꽃들과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선동한다. 그리고 그 꽃을 피워내 이 세상에 그 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선동한다. (343)

 

꽃씨와 불씨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는 비즈니스이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배운 방식이다. (343)

 

 

세 개의 에필로그

구급차가 오고, 사람이 실려가고, 사람들이 모여 도랑에 사람이 빠져 많이 다쳤다는 것을 수군대고 있을 때조차 여전히 그 도랑을 찾아가 스스로 빠진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와 내 아내는 무척 웃었다. (346) → 수많은 격변이 일어나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저 자신의 고집, 아집에 갇혀 살고 만다. 그래서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고 쓰러져 나가더라도, 누군가 새롭게 거듭나게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들 눈에는 그저 앞만 보이고 현실만 보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바로 옆에서 누군가 저지른 실수를 다시금 되풀이 하고 만다.

 

네 자신의 등불이 되고 피난처가 되라. 다른 피할 곳을 찾지 말라. 내면의 빛에 최대한 다가서라.

 

하나

하루는 물결처럼 사라지고 물결처럼 다시 생성된다. 모든 하루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상징이다. 이 속절없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물결은 부침하지만 바다는 여전히 바다로 남는다. 질서와 변화는 바다와 물결처럼 공존한다. 이것이 바로 그것들의 존재 방식이다. 또한 우리의 존재방식이다. (348)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임무는 '나를 탄생시키는 일'이었다. 그것이 물결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창조는 바로 그 물결처럼 내 발로 일어서는 것이었다. 나의 하루, 나의 역사, 이것이 바로 그 물결이었다. 이제 누구도 내게 명령하지 못하게 하리라. 다시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이것이 내 첫 번째 계획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계획이었다. (348)

 

내 방법은 삶의 모든 전선에 퍼져 있는 실핏줄 같은 시간을 불러모아 커다란 주류를 가진 시간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349)
 

<세 가지 종류의 시간의 강줄기>

하나는 나를 위해 흐르는 시간의 강이다.

이 시간의 강물 위에서 나는 읽고 생각하며 자연과 만나고 쓴다. 이것은 고독한 시간이다. 알지 못하는 것들의 시간이며, 그들의 정체를 눈치 채는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날마다 추측한다. 상상한다. 생각한다.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나는 그 세계가 움직이는 법칙을 깨닫게 된다. 이 시간의 강물 위에서는 내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 이 흐름 속에서 나는 나의 세계를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며 즐긴다. (349)

 

나는 새벽을 가장 많이 활용했다. 내 책들은 모두 새벽이 만들어낸 생각의 세계였다. 밤의 생각은 지나치게 자유롭고 낮의 생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나는 새벽의 생각을 좋아한다. 새벽의 생각은 밤의 이상주의가 꿈으로 빚어낸 생각이고, 앞으로 다가올 낮 동안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다.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꿈. 나는 이 달콤함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350)

 

또 하나의 시간의 강줄기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350)

 

세 번째 시간의 강줄기는 세상과 내가 만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대체로 책과 강연과 홈페이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다. (350)

 

변화는 마흔 세 살이 되던 해 하루 동안에 일어났다. 나를 이루고 있던 '어떤 특성의 한 조각'이 우연히 밖으로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내 운명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 내게 오래도록 바라왔던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은 거대한 해일처럼 내 영혼을 덮쳐왔다. 그 파도 속에서 나의 과거는 죽었고, 그 거품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352) → 우연이 운명이 되다. 터닝포인트

 

나로부터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삶을 방기한 것이다.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 자신이야 말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며 유일한 미래였다. (352)

 

나는 내 삶에 대하여 직접 극본을 쓰고 감독을 맡았다. 직접 연출하고 직접 출연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는 바로 나였다. (352)

 

나는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나왔다. 이것이 지난 10년 사이에 내게 일어난 '굉장한 일'이었다. 그날은 '나의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날이었다. (353)

 

나는 더 이상 선택하지 않는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는 이미 죽어버린 고민이다. 나는 배치하고 연결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본다. 또는 이것과 저것을 함께 접속하여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모든 것은 실험이다. 나를 실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험이고 탐험이다. 실패도 성공도 없다. 어쩌면 그 단어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끝없는 새로움으로 아침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내 목적이기 때문이다. 내 하루는 한 개의 꽃이다. 새벽에 망울을 달고 이내 만개하여 밤이 되면 떨어지는 하루 꽃, 아주 새로운 하나의 유혹. (353~354)

 

하루는 그 실험을 하기에 적합한 시간이다. 내 하루들은 바로 그 거북의 새끼들이었다. 어느 하루도 무의미한 하루는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시도 자체가 삶이기 때문이다. (354)

 

'시간은 돈'이 아니다. 시간 자체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삶이다. 내게는 팔아야 할 시간이 더 이상 없다. 나는 내 마음대로 내 시간을 쓴다. 하루에 몇 시간은 책을 볼 수 있고 적어도 두 시간은 쓴다. 나는 정신적 여행자이다. (355)

 

나는 이 여행을 늘 글로 옮겨 적는다. 그것이 바로 일 년에 한 권 정도 출간되는 내 책들이다. (356)

 

지칠 때까지 일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일에 대해 늘 '아니오'라고 말할 자세가 되어 있다. 일은 늘 내일 해도 좋은 것이다. 일이란 놓치면 '다시 튀어 오르는 공'같은 것이다. 나는 삶이 일종의 예술이 길 바란다. 나의 일상은 안정과 질서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미래를 정하고 계획에 따라 엄격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나는 그 일을 아주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나를 실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56)

 

올라선 봉우리에서 땀을 식히며 저 멀리 펼쳐지는 아스라한 또 다른 산들에 대한 동경과 의욕을 마시는 오후, 이윽고 햇빛 속으로, 또 다른 산으로 오르고 있는 나. 지구를 떠나 달로 가는 여행자. 천 길 깊은 낭떠러지를 수직으로 꽂혀 떨어지는 폭포, 하루 속의 두 개의 아침, 이런 것들이 변화의 상징이 되었다. (358)

 

나는 피폐한 시선을 미워한다. 우리의 세대가 끝난 것처럼 조로한 시선을 미워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준 세계 속에서 그 세계의 끝을 예견하는 참담한 현실주의를 증오한다. 현실이란 결국 '주어진 상황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다. 나의 의견을 말하라. 나의 의견,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라. (358)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은 채, 든든한 밥그릇 하나 챙겨두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그 쩨쩨함의 끝을 묻고 싶었다. 새로운 인생을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서 여전히 망설이기만 하는 나에게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360)

 

나는 바쁜 것이 싫다. 후회도 싫다. 그래서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대신 오늘을 새로 받은 또 한번의 아름다운 선물로 여기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361)

 

나는 사업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다. 내 인생은 다른 것이다. 나는 무엇을 크게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가끔 이룸에 대한 집착이 내 삶을 깨는 것을 보곤 했다. 예를 들어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쓰는 것은 내 목표가 아니었다. 그건 그저 즐거움의 결과였다. 목적을 가진 야심작이 아니라 내가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내 생각들을 내 언어로 옮기고 정리한 것들이 내 책이다. 그러니까 하루의 흔적이다. (361)

 

결과와 목적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그러나 정말 나의 목적은 하루를 잘 사는 것이다. 하루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각성과 준비의 제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하루답게 사는 것이다. 어떤 하루도 목적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하루를 무언가를 빛냄으로써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이것이 목적이다. 내겐 좋은 하루 그 자체가 목적이다. (361)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다가 생각이 적절한 깊이의 표현을 만나면 흥분한다. 홀연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으면 입이 벌어진다. 운 좋은 날이다. 느닷없는 이런 날이 감사하는 마음을 키워준다. (362)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늘 가난과 부유함이 같이 있곤 했다. 가난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그저 누가 부유하고 누가 가난한가의 문제에서 내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가 개인적 관심사였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내 시간을 돈벌이에 더 많이 쏟아 붓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가난하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아주 평범한 진리, 한 달에 3천만 원을 가지고도 못 사는 사람이 있고 300만 원을 가지고도 잘 사는 사람이 있다. 나는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일을 가지고, 내 일의 특성으로, 다른 사람이 스스로 삶을 불지를 수 있도록 잠시 '쏘시개 불꽃' 역할을 할 수 있다. (363)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세상은 즐길만한 곳이다. (364)

 

언젠가 한 번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스스로 설계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깨끗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햇빛 가득한 산을 넘고 들을 건너 아름다운 인생 하나를 건설해야 했다. 아름다운 그날 하루를 내 삶의 국경일로 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결국 자신의 주인을 닮게 되어 있다. (364)

 

평설

'애정이 있는 객관성' 나는 이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 구본형 (366)

 

그는 '체험해 보지 않는 자기계발론은 사기다.'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 (370)

 

구본형이 한때 우리처럼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그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전범이 될 수 있는 요인이다. 그의 방법론은 모두 체험으로 검증된 것이라 신뢰를 준다. 언행일치가 그의 가장 큰 덕목이다. 이로서 그는 단순한 저술가에서 멘토로 거듭난다. (370)

 

"10년의 기록과 10년의 기획을 통해 내가 알아낸 것은 삶이 이야기라는 점이다. 자신의 삶을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리하여 누군가가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 나는 이것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 내가 내 손 안에 가지고 있는,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들에 대하여 열광한다." (371)

 

아직 내가 살아있는 당대가 더욱 중요하다. 나의 이야기를 고쳐 쓸 시간이 남아 있을 때 나의 이야기를 써라 (373)

 

"너 자신을 위해서 하루 두 시간을 써라. 그 두 시간 동안 온전히 너 자신을 위해 집중하라. 10권의 책을 너의 이론으로 정리하고, 10명의 사우를 만들어라. 너의 책을 써라. 무엇을 알기 때문에 책을 쓰는 것이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쓴다는 것은 배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책을 통해 지금의 너를 구원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을 구원하라. 10년 후 너의 생업이 되게 하라." (375)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을 정확하게 일치시킨 사람의 이야기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377)

 

"누군가에게 우연한 불꽃이 되려면, 스스로 운명의 길을 걸어가는데 성공해야 한다. 먼저 자신을 실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불이 되는 것, 이것이 불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이다. 스스로 변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 스스로 사례가 되는 것, 스스로 자신의 이론의 증거가 되는 것이 바로 훌륭한 변화경영 전문가가 되는 초석이다." (377)

 

 

III. 내가 저자라면

◆ 전체적 구성에 대하여

이 책은 나무와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저자의 삶'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된 11개의 삶의 영역이 가지처럼 뻗어 나온 병렬식 구조다. 가족, 자연, 학습, 일 등 저자의 삶을 구성하는 굵은 테마에 대한 저자의 경험, 철학, 단상 등을 생각의 흐름에 따라 저자 특유의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필치로 이끌어 간다. 하나의 가지 아래에는 6~7개의 각기 다른 주제의 꼭지 글로 구성되어 있다. 독자들이 읽기 부담스럽지 않은 적당한 분량이다. 저자의 삶을 담은 열매를 독자들이 쉽게 따먹을 수 있게 한 저자의 배려가 엿보인다.

 

다만 11개의 주제들이 병렬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서전의 특징인 서사적인 시간의 흐름이나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지 못하고 단절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는 이런 병렬적 구조로 인한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매 장 앞부분에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각 장의 주제에 맞게 쪼개어 배치해 두었다. 참신한 방법이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인과관계에 구애 받지 않은 병렬적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해당 테마에 대하여 저자에게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개인사(me-story) 작업을 통해 지난 10년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 살아갈 10년을 계획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러나 나처럼 저자가 꿈꾸는 미래의 10년에 대한 청사진을 궁금해 했던 독자라면 조금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드넓은 대지 위에 펼쳐진 파노라마 사진과 같은 풍광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저자의 미래 10년은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 곳곳에 흩어져 있어, 하나로 모아 감상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나 이 책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학습과 일' 부분에서 쏟아져 나오는 저자의 일과 삶에 대한 아포리즘들은 사자의 우렁찬 포효가 되어 독자들을 압도한다.

 

부드러운 그의 필치는 마치 그가 내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 그가 말하는 선비의 섬세함이 뭍어 났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삶에 관하여서는 결코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으려는 단호함이 엿보였다. 자신의 길을 휘적휘적 걸어가는 당당한 그의 모습에는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가 말한 대로 무사처럼, 그의 눈썹처럼 선이 굵었다. 이처럼 이 책은 저자의 삶과 모습을 닮아있다.

 

내가 저자라면

내가 저자라면, 저자처럼 '나를 닮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갈 것이다. 나의 꿈은 영웅이다. 10년 후에 쓰게 될 나의 자서전은 필부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은 '평범한 영웅'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의 구조를 11개의 테마로 구분된 병렬적 구조로 가져간 대신 나는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 나오는 '영웅의 여정'에서 모티프를 가져다 큰 틀을 구성할 것이다. 이미 저자는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에서 이런 구성(출사 → 입문 → 귀환)을 시도했었다. 또한 조셉자보르스키의 '리더란 무엇인가'란 책도 이런 구성(여행 준비 → 문턱을 넘다 → 영웅의 여정 → 선물 → 귀환)으로 되어 있다. 

 

'1부 출발 → 2부 영웅의 여정 → 3부 귀환'으로 큰 흐름을 만들고 그 아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서사성과 삶을 이루는 테마적 요소, 이 두 가지를 아우를 수 있는 제목으로 뼈대를 구성할 것이다. 각각의 제목과 내용의 배치는 그 자체가 '영웅의 여정'이란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를 가지게 될 것이므로 저자가 시도했던 '두 가지 방식'과 같은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을 위한 별도의 장치가 필요 없어 진다.

 

1 '출발'은 지난 10년간(2011~2021)의 삶을 넓게 조망하고, 기존의 '개인사'에 기록해 둔 지금까지의 삶의 변곡점들을 기록할 것이고, 지금의 나(10년 후의 영웅이 된 나)를 있게 한 터닝포인트가 되어준(궁극적으로 나를 모험으로 이끈) '새벽의 발견'에 관한 이야기를 배치할 것이다.

 

2 '영웅의 여정' 10년간 내 삶에 대한 기록이다. '영웅 여정'의 원형을 차용하여 '관문의 통과(연구원) → 여신과의 만남(사랑과 결혼) → 조력자(가족, 친구, 스승) → 시련(고독, 가난, 1만 시간) → 승리(, 태도, 사람)'의 단계로 구성할 것이다. 이 장의 묘미는 2010년에 그렸던 10대 풍광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이 될 것이다.

 

3 '귀환' '여행의 목적지는 결국 처음 출발한 그곳' 임을 보여준다. 여정을 통해 천복과 천직을 세상으로 가져왔고, 그것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 헌신하며, 다시 1만시간의 수련을 통해 전문가에서 사상가로 거듭나는 구도자의 길을 걷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마지막 장에는 새로운 10개의 풍광을 파노라마 사진처럼 펼쳐 놓아 독자가 나의 새로운 10년의 청사진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새로운 10년 후 바다(스승의 비유)에게 가르침을 받던 소년(제자의 비유)에서 바다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할 것이다.

 

◆ 재구성 한 목차

제목 : 소년(少年)에게서 해()에게 (가제)

○ 컨셉 : 조셉캠벨의 '영웅의 여정'을 모티프로 한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인 마흔 셋에 쓴 자전적 에세이

목차

 

프롤로그 : 바다가 내게 던져준 메시지

 

1부 출발 : 모험을 떠나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1. 서른 즈음에

      - 몇 가지 어린 시절의 추억

      - 지난 10년에 대한 단상

   2. 몇 개의 변곡점

      - 기존 개인사에 작성한 성취와 아픈 기억들

   3.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

      - 새벽과의 운명적 만남, 10대 풍광, 터닝포인트

 

2부 모험 : 영웅의 여정

   1. 관문의 통과

      - 연구원 생활, 첫 번째 책

   2. 여신과의 만남

      - 사랑과 결혼

   3. 조력자

      - 가족과 친구들

      - 스승과의 만남

   4. 시련

      - 직장인에서 1인 기업으로

      - 고독과 배고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에 두지 않으니)

      - 삶과 죽음 (건강,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 상실)

      - 학습과 배움 (1만시간이 무엇이길래,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다)

   5. 승리 (불로불사의 영약과 귀환)

      - (책과 강연, 천복과 천직을 얻다)

      - 태도 (나만의 관점과 철학을 장착하다)

      - 사람 (마음을 나누고 평생을 함께 갈 사람들을 얻다)

 

3부 귀환 : 처음 출발한 그곳으로 (낯선 곳에서의 아침)

   1. 전문가에서 사상가로 : 다시 1만 시간

   2. 길 위에서 : 구도(求道), 결코 끝나지 않을

   3. 더 큰 뜻을 위해 : 봉사와 헌신

   4. 새로운 10개의 풍광을 그리다

 

에필로그 : 바다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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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7 12:57:21 *.128.73.61
안녕하세요? 이번에 2차 레이스에서는 중도하차했지만~ 제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꿈을 꾸는 것 같아 좋은 인연 맺었음 해서 글 남깁니다^^ 전 말씀드린 것처럼 요즘에 회사 일이 폭증해서 하루에 5~6시간 잠깐 집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내내 회사에 머물러 있답니다~(제가 중앙부처 공무원인데여..인사이동으로 현안부서로 옮겼고 때마침 국회까지 겹쳐서 도저히 변경연 레이스 과제물을 수행할만한 시간적 여력을 낼 수가 없었답니다..ㅠㅠ)

그래도 제 가슴 속 꿈..의 불씨가 꺼진 건 아니구여~ 김경인님도 블로그나 웹페이지가 있으실 것 같은데 몇 개 검색어를 넣어봤는뎅 찾지를 못해서 이렇게 댓글 남겨여~ 제 블로그는 http://blog.naver.com/justina75 이구여~
요즘엔 회사 일로 독서일지를 비롯한 블로그 활동을 거의 못하구 있지만..일이 좀 정리가 되어 한 숨 돌리게 되면 독서를 비롯한 글쓰기도 재개해볼까 해여..아마도 이 달은 지나야 할 것 같지만여

전 <말과 글로 사람들에게 긍정의 회로를 설계>해주는 것을 제 삶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구여~작년에 402권의 책을 읽으면서 제 자신을 변화시켰고, 올해는 제 주변 이들(회사 동료 100명으로 목표를 잡았어여~)을 변화시키는 게 목표랍니다!!  이메일(tjskzkd@mest.go.kr) 주셔도 좋구여~ 블로그 댓글도 환영이예여~
 
잉클링스를 향한 인연..기대하면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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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13:03:27 *.227.22.57
힘들지만, 해볼만 하죠?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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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saint laurent
2011.05.31 17:01:07 *.111.182.3
Wear your high heels in a sitting position and around the gianmarco lorenzi shoes home first. After a period of gianmarco lorenzi pumps time they will become comfortable and you gianmarco lorenzi boots will probably forget you are even wearing them.If you are giuseppe zanotti shoes planning to wear heels outdoors or at a club on the weekend, wear giuseppe zanotti boots them around the house for a few hours first until they feel 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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