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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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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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7일 11시 5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저자는 현재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대표이사이며, 그 전에는 한국 IBM 영업관리부의 부장으로 20년간 재직했다. 학부 때는 사학을, 이후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변화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려는 사람을 돕는 것, 이것이 그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다. 나는 이 세줄의 이력과, 내가 읽은 그의 책들을 토대로, ‘구본형은 무엇으로 특별해지기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함으로써 거꾸로 저자의 특성을 재구성해보려고 한다.

그의 커리어상에서 나는 세 가지 특징을 본다. 첫째, 인문학적 감수성이다. 학부 때의 전공이 직업인으로서의 삶에 생각보다 큰 영향은 없다는 것을 사회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게 된다. 그가 지금처럼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학부 때의 전공보다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자신의 세계를 가꾸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저자의 책<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접하게 되었을 때, 나는 자기계발서라는 장르에 진절머리가 나 있었다. 뻔히 아는 내용을 포장하는 기술, 자신의 생각은 없고 인용문과 끼워 맞추기로 점철된 불쌍한 글이 바로 자기계발서 류라고 생각했다. 이런 평가를 내리는 내 자신도 참으로 지적 허영에 가득 차 있는 시기였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깊이 없는 자기계발서에 실망한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책에는, 맥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예화나 인용이 잘 섞여 있었고, 충분히 자신의 문제의식으로 사유의 덩어리를 잘 녹여낸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생각의 소개가 아니라, 생각과 생각의 만남을 주선할 줄 아는 것이 나는 인문학에 기반한 역량이라고 보는데, 나는 저자의 이러한 역량을 담고 싶다.

두 번째, ‘남을 이롭게 함으로써 나를 이롭게 한다’. 나는 저자가 남에게 영감을 줌으로써 자신이 더욱 고양될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에서 그는 스스로를 나무에 비유했다. 생각의 씨앗들을 멀리 퍼뜨려, 그것이 여러 장소에서 움틀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했다. 사실 요즘 시대는, 있는 씨앗도 뺏고 없애며, 남의 싹을 잘라버림으로써 자신이 이롭게 되겠다는 사람이 많은 시대다. (어쩌면 항상 그래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장기적으로 큰 싹을 피워내는 사람들은 함께 이로워질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저자의 주무대인 강연과 글쓰기에서도 경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가 가진 키워드인 변화와 그에 걸맞는 특성과 기질들로, 자신의 씨앗을 품어내면서 남에게 그 씨앗들을 보낼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세 번째, 가진 것에 집중하고, 없는 것을 얻으려 애쓰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세 번째 이유에서 나는 1년 전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 저자의 팬이 된 것 같다. 나의 (고정)관념 속에서 자기계발서는, 가진 것을 지키고없는 것도 만들어내라는 메시지를 주는 책이었다. 내성적인 사람도 외향적 기질 발전을 위해 맹렬히 노력해야 하고, 회사 생활 시 개인기가 없으면 열심히 연습하고 트렌디한 유머는 항상 몇 소절 구비하고 다니도록 요구하는, 모든 면에서 평균은 맞출 것을 요구하는 책이었다. 나는 저자의 글과 사고가 자연스러움을 따라가는 것이 좋다. 굳이 없는 것을 애써 만들어내도 되지 않고, 가진 것에 에너지를 집중하자는 것이 마음에 든다. 대신 그 가진 것에 집중할 때는 여유나 안정은 잊고 사력을 다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저자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내게로 온다.  

그래도 일단 회사를 다녀라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회사 생활 자체도 나에게 맞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그것 외에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집중하는 게 맞다는 무서운 확신, 이것은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의 책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일시적인 위로가 아니라, 잊고 살았던 내 안의 목소리를 복원시킬 수 있는 힘을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에서 나는 찾을 수 있었다. 구본형의 책을 참고하여, 특별함을 찾고자 한 영역에서 이미 어느 정도 나는 특별해졌다고 설명하는 데서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특별함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도록 하는, 나는 이런 책을 쓰고 싶다.

 

 -참고- 
<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41514458195326&outlink=1
  http://blog.aladin.co.kr/culture/2689800
 


  

 

2.     내 마음에 무찔러든 글귀

 

책을 펴내며

6.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인생을 한 개인의 역사라고 인식했으면 한다. 평범한 개인의 미시사는 본인이 남기지 않으면 유실된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기록의 형태는 일기여도 좋고, 메모여도 좋고, 홈페이지여도 좋고, 사진첩이어도 좋고, 이 책 같은 자서전이어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 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지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사라진 문명이 되지 않는 것, 나아가 남은 시간을 찬란한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 프로젝트가 절실한 이유이다.

 

(30) 남자는 여자가 길들인 마지막 가축이다. 그러나 반밖에 길들여지지 않아 늘 울타리 밖으로 튀어나가고 싶어한다. 자유는 빛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확실한 것, 굳건히 서 있는 것들의 질서 안에서 자유는 끝나고 만다. 절실하게 바라지만 자유가 주어지면 우리는 자유를 두려워한다. ‘이내 스스로를 함부로 던져 망가뜨리고만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것을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모든 만족을 얻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함께 그녀를 배신한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사랑은 다른 애인을 찾아냄으로써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감정으로 위장된 반복 속에서 소모될 뿐이다. 사랑은 늘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증식되는 능력이다. 그것은 영혼의 갈망 같은 것이다. 모파상은 진실한 사랑은 영혼이 육체를 감싸안는다라고 표현했다.

 

(37) 나이와 더불어 인간의 경제적 쓸모도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40대의 10년은 급격한 감가상각이 이루어지는 시기다. 완숙한 성취의 시기가 아니라 정리의 시기가 된 것이다. 이때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은 먹고사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것이 우리에게 명령했다. 그러나 마흔이 넘으면 그것이 모든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40대 최대의 위기를 불러온다. 과거가 사라진 상태에서 미래조차 만들어낼 수 없다면 갈 곳이 없다.

 

(44)나는 그런 그를 싫어했다. 그러나 내가 혐오하는 그가 나와 동질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든가, 동질성을 인정하고 적어도 그를 혐오하는 것을 중단해야 했다.

 

(47) 직업을 통해 이루어야 할 내면적 발전이 없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나는 이미 중년이 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아직 활력이 넘쳤지만 인생 깊숙이 자리잡은 피로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49) 이상과 비전으로 상징되는 젊음의 마법이 사라진 후에 다가오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일만이 생산적인 것이고, 지루한 일상을 견딜 수 있는 탈출구이다. 이리하여 일은 일상과 실제의 삶이 된다.

 

(52) 위대한 인생의 그림이 마흔이 되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내적인 관심이 자신에게서 가족에게로, 자식에게로 전이되는 것이다. 어쩌면 마흔 살은 여성적인 특성의 수용이기도 하다. 그동안 자신을 움직였던 힘과 지위와 성취에 대한 경쟁심리를 옆으로 치워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대신 좀더 감성적이 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여성적인 특성을 받아들인다.

(53) 마흔 살은 남녀 모두에게 운명이나 숙명의 힘을 깨닫게 해준다.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속수무책이거나 극히 제한적인 통제력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통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도 엷어진다. 어떤 책임이나 비난을 짊어지기에는 그저 연약한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냉정한 통찰력은 결국 과거를 용서하게 해준다.

(54)마흔 살이 되면 이성은 서서히 죽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칼날은 빛을 감추고 무뎌지기 시작한다.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은 추상적 사고의 정점은 젊었을 때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서른 살 이전에는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젊은이들의 창조성은 발작적인 불꽃과 같다. 그들의 창조성의 99퍼센트는 영감에 의한 것이다. 모차르트의 창조성과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 자유롭고 미친 듯하며 순수하고 유치하고 경박한 뜨거운 창조성이다. 그러나 마흔이 넘어 나타나는 창조성은 발작적 불꽃이 진화되고 성숙하여 하나의 습관과 태도로 변한 일종의 믿음직한 기술로 바뀌게 된다. 이때 에디슨의 말이 적용된다.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땀이란 말은 중년의 창조성에 대한 명언이다. 마흔 살 너머의 창조는 학습과 훈련과 가벼운 정신적 태도의 산물이다.

(61) 내게 마흔은 각성의 시기였다. 나는 40대의 10년 사이에 이루어지는 위대한 종결과, 똑같이 위대한 새로운 인생에 대해 말하고 싶다. 40대는 사회적 폐기물이 된 자신을 구해내어 빛나는 삶으로 창조하는 시간이다.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이 가능한 시기다. 어쩌면 반전만이 이 시기를 사는 교훈일지 모른다. 전환과 변곡, 이 두 단어야말로 40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이다.

(62)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다만 내가 거는 것은 돈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건다. 나는 이 길을 택했다. 내가 도박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길밖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익어가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계획했다. 나는 비장했다. 나의 40대는 죽음과 친근해진 10년이었다.

 

(72)나는 다른 청년과 마찬가지로 꿈꾸는 존재였다. 과감하고 명쾌하며 단박에 뒤집히는 화려한 가난의 전복……나는 그 때 혁명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수 없으나 나는 몇번 시위대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학생운동에 빠져들지는 않았다. 대학원을 다니다 그만두고 나는 회사에 들어갔다. 초봉이 많은 외국인 기업인 IBM은 좋은 직장이었다. 나는 4년 동안의 영업관리 경력을 끝으로 그후 줄곧 변화경영의 분야에서 조직의 개선과 혁신을 담당하게 되었다. 개선과 혁신, 그것은 혁명이라는 단어의 현실적 대체 용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IBM에서 가장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이 그 일이라는 것을 나는 뼛속부터 알고 있었다.

(78) 어느 조직도 필요한 사람은 떠나보내지 않는다. 어려울 때일수록 잡아두고 싶은 사람이 이런 사람들이다. 이것이 필요의 원칙이다. 필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늘 그 처신에 특별한 공유점이 있다. 온갖 종류의 구조 조정에도 상관없이 한 조직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성장하고 싶다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중략)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중략) 셋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중략) 마지막으로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고 있다.

 

(84)나는 세일즈 대신 나를 마케팅할 방법을 모색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찾아내는 방법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과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설득했다. 수동성을 능동성으로 전환시키는 일은 어려운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쉽게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효과적인 일이 아니다. 유전자는 바뀌지 않는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은 괴로운 과정에 비해 지극히 평범한 성과를 돌려줄 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수동성이다. 나는 능동성이라는 유전자 코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수동성을 강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말하자면 수동성을 적극적 수동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적극적 수동성, 즉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경영학은 유혹이라는 싱싱한 단어를 죽은 단어, 즉 마케팅이라고 불러왔다.

 

(89) 경영 컨설팅 같은 지식 산업은 사기와 진실의 경계를 걷는 것이다. 끝없이 학습하는 사람은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계속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사기꾼들처럼 달변의 사기꾼으로 전략한다. 나는 내가 경계선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배움을 멈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학위와 자격증은 과거와 영광의 흔적일 뿐이다. 미래를 평가의 잣대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확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물로 된 항아리 속에 물을 담으려는 발상이다. 반대로 미래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바닷물 속에서 식수를 찾는 것과 같다. 온통 가능성의 물로 채워져 있지만, 아직 한 컵의 마실 물도 되지 못한다. 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사람뿐이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112) 만일 내가 한쪽 눈을 감고 거리로 나가면 사람들은 나를 애꾸눈이라고 부를 것이다. 누군가 그런 생각으로 나를 쳐다볼 때 내가 감았던 눈을 뜨고 웃으면 그 사람은 내가 정상인지를 의심할 것이다. 내 얼굴은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의 한계 속에 머물면서 겨우 몇 가지의 모습으로 고착되어 있었다. 고착의 패악은 정신을 경직시킨다는 점이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마음대로 변형시켜본다는 것은 내게도 익숙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 나도 날 무서워했고 밀실에서도 내 의식은 갇혀 있었다. 사회적 기준은 나의 몸을 짜부라뜨린 후 침투했고, 나에게 허용된 개인적 밀실은 끊임없이 감시받고 있었다. 나는 내 속에서조차 옷을 벗고 편하게 쉬기 어려웠다.

미셸 푸코의 말들이 생각났다. 인간은 권력에 오염되어 있다. 물질적 권력이 아니라 지식을 통한 훈육권력에 매여 있다. 건강한 개인과 부강한 국가라는 거부하기 어려운 모토를 앞세워 개인의 삶을 규격화하고 통제하려는 권력이 우리를 묶어두고 있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만들어지며 조작되며 인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117)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다운 것이 천착하고 매달렸다. 니체가 말한 거리에 대한 파토스를 추구했다. 이것은 차이에 대한 열정이었다. 차이는 다름이다. 그것은 다른 것, 다른 사람의 것을 자신의 것과 구별짓는 다름에 대한 열정이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어설픔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감과 긍정의 표상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더 다르게 만들려는 열정이다. 더 많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 차이를 끊임없이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125) 아름다운 가정이라는 것이 갈등이 없는 가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싸우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어울려 밤낮을 함께 하니 갈등도 없고 싸움도 없이 지낼 수는 없다. 나는 갈등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갈등은 마음이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나침반이 북쪽을 찾고, 그곳을 가리키는 순간 부르르 떨리는 것, 이것을 나는 갈등이라고 부른다. 갈등 없는 판단이란 반복하여 익숙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새로운 것에는 갈등이 따라다닌다. 흥분과 두려움 속에서, 세상의 기대와 자연의 기대 사이에서, 이익과 마땅함 사이에서, 꿈과 현실 사이에서,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편함과 배려 사이에서 우리는 늘 잠시 망설이게 된다.

(137) 나는 마음껏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올 때 자신과 한 약속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일하는 시간은 얼마든지 뒤로 배정한다. 일은 언제고 하면 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남은 시간에 하면 된다.

(138) 사람들은 가끔 내게 팔자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나는 팔자가 좋은 운 좋은 사람이다. 나는 이 행운에 늘 감사한다. 그러나 그 전에는 나도 20년동안 직장인으로 살았으며,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해왔다. 현실이라고 불리는 똑 같은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마치 빠져나올 수 ㅇ벗는 고가도로에 줄지어 서 있는 차들의 정체 속에 갇혀 있는 듯 했다. 나는 내 마음속으로 들어가 물었다. 왜 나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것일까?

(147) 삶의 어둠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160) 우리가 왜 변화해야 하느냐고?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작은 세포가 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그리고 죽는 것이 삶이다. 순수한 아이의 생각이 야망으로 가득한 젊은이의 생각이 되고, 이내 세상의 한계에 지쳐버린 장년이 되고, 노회한 노인이 되고, 이윽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변화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다. 생명이 주어진 순간 삶은 시작되고, 삶이 주어진 순간 죽음의 시계도 카운트되기 시작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165)내가 회사를 나와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실행하려고 할 때, 나를 위로해준 것은 자연이었다. 그것은 예상치 않았던 일이기도 했지만, 이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던 20년을 떠나와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곳은 그곳이었다. 나는 그때 치유가 필요했다. 내가 보낸 20년을 돌아보고 다시 새로운 인생 20년을 기획해야 하는 시기에 들어서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져야 했다. 여기서 새로운 전환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근본적인 변화 지점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을 오래된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시작하기도 전에 좌초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나는 자연의 방식을 추구했다. 자연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방식을 나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데려왔다. 나는 다시 사람들의 세계로 돌아가야 했다.

(173) 나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나는 날마다 내게 귀화한 생각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육에 담아 수천개씩, 수만개씩, 수백만개씩 퍼뜨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들은 그 씨앗을 마음속에서 키우면서 자신의 생각으로 귀화한 생각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도처에서 번영할 수 있는 전략이다. 인간의 진보는 사고의 혁명에 의해 이루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변화에 대한 생각들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날려보내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들 역시 아주 특별한 인간으로 스스로를 탄생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188) 문명은 인류가 여성화되는 과정이었다. 문명의 역사 대부분의 주인공은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화려하고 빛나는 존재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따지면 남성은 자궁, 즉 인간이라는 종족의 주류인 여성에게 조공을 바치는 존재였다. 여자들은 가축을 길들였고, 마지막으로 남자를 길들였다. 남자들이 가족에 대한 사랑, 절제, 협동, 공동체 활동이라는 사회적 특질을 배우고 익히도록 했다.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다.

(200) ‘죽음이 명함을 남겨놓고간 다음 적절한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서, 참을 수 있을 만한 짧은 통증 속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 것이 좋은 일이다. 삶은 죽음을 향해 달리는 시계의 초침을 뒤로 돌리려는 부질없는 노력이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천천히 삶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이다. 두루마리의 앞부분, 즉 젊은 시절의 그림이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싱싱하고 발랄하며 모험적인 것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짜놓은 인생의 직물은 은은하고 통찰력에 차 있으며 완숙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의 부름에 따라 모두 놓아두고 낡은 껍데기만 남기고 떠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208)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과거시제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일을 과거시제로 쓰는 순간 내게 이미 일어난 일이 된다. 미래를 과거로 인식하는 것은 정신적 작업의 하나이다. 나는 나를 정신적 여행자라는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날개 같은 것이다.(중략) 내 인생의 결말, 그것은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다.

 

(211)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그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산다. 그것이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는 책을 쓴다. 글쓰기는 꿈을 현실로 데리고 오는 나의 방식이다. 나에게 책이란 꿈과 현실을 잇는 통로이다. 매일 조금씩 책을 쓰는 것은 나의 일상이며 현실이다. 책을 쓰며 상상하는 모든 것 역시 나의 일상이라는 점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화되었든, 아직 생각으로 남아있든, 저술가에게 생각과 상상은 이미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분명한 현실이다.

(217) 나는 가끔 인생은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예쁜 그릇에 맵시 있게 얹어 아름다운 식탁보를 깐 식탁 위에 먹기 좋은 온도를 맞추어 차려놓는다. 초를 켜고 싱싱한 장미꽃 화병 하나를 놓아둘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식사를 한다. 술을 곁들이고 웃고 떠들며 식사를 끝내면, 수북한 설거지 그릇이 쌓이게 된다. 먹고 나면 뼈만 남은 허망한 것을 그렇게 공을 들여 하루 종일 장만한단 말인가?

삶은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잠시 즐기고 다시 깨끗하게 복원하여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먹고 살 수도 있지만, 정갈하고 아름답게 먹고 살 수도 있다. 먹고 나면 다 똥이 되는 것이지만 아름다운 식탁을 차리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손님이 돌아간 만찬처럼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잔치를 준비하는 것은 늘 마음 설레는 일이었다.

 

(242) 나는 마흔이 넘어 내가 키우려고 마음먹은 작물을 선택하게 되었다. 여전히 다른 작물들에 대해 미련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의 작물을 선택했다. 해야 할 일은 잡초를 뽑고, 자양분을 제공하며, 훌륭한 밭을 제공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욕망이 자랄 수 있도록. 하나의 욕망, 가장 나다운 내가 되는 것. 그저 생긴 대로 자라 가장 아름다운 내가 되는 것, 내가 만일 소나무라면 아름다운 소나무로 자라는 것, 만일 느티나무라면 아주 정정한 느티나무가 되는 것. 이것이 내 욕망이었다.

(243) 나도 늦게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다. 나는 어디서나 만나는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그러다 우연히 글 쓰고 강연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인지 정체를 잘 모르는 식물이 자라나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자 비로서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처럼, 나도 잎만 가지고는 내가 어떤 나무인지 판별하기 어려웠다. 이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46)어쩌면 밝고 화려한 성격을 오래도록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신적 불활성이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거나 재치 있고 다소 수다스러운 밝은 벚꽃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조용한 사람이고 무거운 사람이며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고 진지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지만, 세상을 밝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무거움의 대칭점에 서 있는 벚꽃의 화사함을 좋아하나 보다.

(253) 우리의 육체가 거리낌없이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아이들은 커서 집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세상에서 지쳐 집으로 돌아오려 한다. 숱한 상처들을 치유하고 고달픈 일에서 벗어나 몸을 눕혀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어느 경우든 집은 우리의 아늑한 밀실이다. 특히 나처럼 홀로 1인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에게 집은 작업장이고, 직장이며, 사무실이고, 일상이 이루어지는 훌륭한 세계이기도 하다.

(263) 나는 사라지는 것들에 내 성공을 의존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기란 사라지게 마련이다. 사라지는 것 위에 성공을 쌓아올려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이다. 학습은 성공을 오랫동안 빛나게 해준다. 나는 학습이 의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의무이다. 이 짐을 견디지 못하면 더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짐을 견딘다고 해서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무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의무란 재미없는 것이다. 의무감이란 일상화되는 것이고, 지겨운 것이며, 반복되는 것이고,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무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취미가 여전히 취미일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면서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를 잃어버린 전문가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경계해야 했다.

 

(265) 바쁘다는 것은 지우개와 같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그리움을 지우며 의미를 지우고 생각을 지운다. 바쁘다는 것은 사람을 그저 움직이게 한다. 먹이를 나르는 개미처럼 한없이 움직이게 한다. 경제라는 본능에 따라 프로그램이 된 것처럼 낮도 밤도 없이 움직이기만 한다. 똑같이. 이 지겨운 반복적 소모를 일한다고 부른다.

니체는 노동은 최고의 경찰이라고 말했다. 노동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억제하고 열망을 줄이며, 독립의 욕망을 피하는 현명한 자제의 방법이었다. 그래서 사회는 노동을 통해 안전해지곤 했다. 우리는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다가 죽는다. 한번도 살기 위해 일을 버린 적이 없다. 놀기 위해 산적도 없다 .그래서 살기 위해 산적이 없는 것이다.

(271)경제적으로 학습은 자신을 자본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교육과 훈련, 그리고 끊임없이 학습을 통해서만 포인트가 누적되는 자본이 바로 인적 자본이다. 자신을 자본화할 때는 전략적 배려를 해야 한다. 인생은 길지만 또한 짧고 유한하기 때문이다. 전략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학습은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274) 학습은 어느 순간 이질적인 삶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배움은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역사든 또는 과학이든, 배움은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고 가슴에 안는 것이다.

(283)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만일 하루를 춤추듯 보낼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매일 그럴 수 있으면 자신의 행복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길 위에 있다. 한 곳에 짐을 풀고 편히 쉬더라도 그것은 길 위에서의 숙박이다.

(285) 학습의 문화 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좋은 전문가의 필수적인 수련 과정이다. 학습은 종종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 냉정하고 감정이 배제될 때 잘 배우는 영역이 있다. 그러나 학습의 또 하나의 얼굴은 뜨겁다. 혼이라든가 열정, 모링ㅂ, 감성, 직관 같은 단어들이 중요한 개념이 되기도 한다. 학습은 뜨거운 무엇이고,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것이며, 인문학적인 감수성을 건드려야 하는 것이다. 목욕탕의 온탕이나 열탕과 같다.

 

(297)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는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가는 무의미한 질문이다. 눈부신 삶을 살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

(297) 어떤 이론도 어떤 조언도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설득하기는 어렵다. 변화는 오직 스스로 시작할 때만 효과적이며 그때에만 비로소 행복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변화경영이라는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스스로의 변화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자격요건이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통렬한 아픔이었다.

 

(301)세상을 살며 그것이 보내는 신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 사회가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그 안에 키워내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훌륭한 사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배움과 학습은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자아경영은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나를 위해서 먼저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나아지는 수련이다.

 

(304)자신의 강점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기질이다.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재능의 배합을 가지고 있듯이 기질 역시 다르다. 이것도 타고난다. 나는 매우 내향적이며 직관적 기질에 가깝다,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느끼는 것이 우선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판단보다는 인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의미와 내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며 믿음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감수성이 강하고 사려가 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능란하다. (중략) 느끼는 기능이 강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며, 모든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일이 많다. 공격을 받으면 반격하기보다는 마음속에 깊이 분노를 간직하는 기질이다.(중략)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은 바로 지금의 나처럼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나는 개인에게 있어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 강점을 계발하여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다움으로 돌아가는 좋은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307)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는 것은 세상과의 싸움을 의미했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은 처음에는 규제하고 강압하며 표준을 바라는 세상과의 싸움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원칙이 통용되는 자신의 세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 세계를 침범하려는 일반의 세계, 군중의 세계와의 오랜 싸움을 전제로 했다. 자신의 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309)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비결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싶어한다. 그 비밀은 니체가 아곤적 행동이라고 말한 경쟁의 행동에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선조들과 경쟁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과 경쟁한다.

(312) 유일한 사람이 되는 길은 신의 쪽지, 자신에 대한 기록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자신만이 유일함의 원천이다. 자신을 활용하지 않고는 유일함에 도달할 수 없다. 유일함을 수련하는 방식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깊숙한 곳에서 잠에 취해 있는 자신을 깨워내는 것이다.

(334) 불행한 사람들만이 변화에 관심이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지금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행복을 가장한 사람들 역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도 때때로 변화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뼛속 깊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이 지루하고 반복적이며 별 의미와 보람도 없는 불안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일상이라고 엄살을 떠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인생은 그런 것이려니 하는 사람들이다. 변화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과 당위성을 찾아냄으로써 그들은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변화를 꿈꾸지만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 나는 그들 속에서 불행을 감지한 치열한 사람들을 찾아내야 했다.

(337) 나는 변화의 대상이 되면 필연적으로 공격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변화의 주체가 되는 것, 상황의 먹이가 되어 쫓기기 전에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는 주인이 된다는 것이 변화의 요결임을 강조한다.

(340) 정신적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늘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정신을 새롭게 닦아놓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인간은 모두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밀리면 정신적 타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다른 것을 잘하지 못할 때 자존심을 상하지는 않는다.그러나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실수하거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불쾌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 때 나의 분야가 나를 찌르는 비수가 된다. 그러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3.     내가 저자라면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의 대부분의 내용은, 마흔 살의 나의 이야기이다. 사회인으로서의 나, 가족으로서의 나, 고유한 내면을 가진 개인으로서의 나. 크게 책을 세 부분으로 나누자면, ‘직장인으로서의 외적 자아나를 둘러싼 이야기 내적 자아로 나눌 수 있다. 1~3장까지가 직장인으로서의 내가 새로운 결정을 내릴 때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4~9장이 나를 둘러싼 환경 하지만 나와 항상 교감하는 외부 이야기, 10~11장이 저자의 가장 깊숙한 내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저자의 외적 자아-환경-내적 자아에 대한 이야기로 책이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독자는, 저자가 말하는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할 것이므로, 마흔 살의 내가 어떤 시작을 하고자 했는지 책의 서두에서 설명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함께하고픈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갔어야 할 것이다. 다만, 내가 저자였다면 학습과 일, 내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어떻게 느꼈는지를 보다 자세하게 썼을 것 같다. 물론 책 속에서 저자도 회사 내 여러 직무와 자신의 일에 집중한 이유를 적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저자였다면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내 세계를 가꾸기 위해 했던 노력을 보다 자세히 서술할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나의 새로운 결정의 토대가 되었고, 이후에 어떻게 그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외면-내면의 이야기 후에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그리고 나와 소통하는 외부 환경을 살펴볼 것이다. 사실 나는 현재 그 가치의 우선순위를 정립하는 단계이므로 그 순서를 정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어떤 것이 먼저인지, 그리고 왜 그렇게 정하게 되었는지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 또한 자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저자라면, 씨앗을 날려보냄으로써 내가 어떻게 풍요롭게 되었는지 조금 더 설명할 것 같다. 책의 후반부에는 강연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의 각기 다른 특성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강연 뿐만 아니라 그의 책을 통해 싹을 틔운 사람들의 이야기도 (할 수 있다면) 조금 덧붙였을 것이다. 남이 싹을 피우도록 돕는 사람,이 저자의 핵심적인 특성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특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실을 맺었는지도 기회가 된다면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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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saint laurent
2011.05.31 16:58:40 *.111.182.3
Wear your high heels in a sitting position and around the gianmarco lorenzi shoes home first. After a period of gianmarco lorenzi pumps time they will become comfortable and you gianmarco lorenzi boots will probably forget you are even wearing them.If you are giuseppe zanotti shoes planning to wear heels outdoors or at a club on the weekend, wear giuseppe zanotti boots them around the house for a few hours first until they feel 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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