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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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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26일 08시 39분 등록


>
> 휴일 없이 3주째 출근하다보니...
>급기야는 날짜 감각도 요일 감각도 없어지나 봅니다.
>오늘이 벌써 수요일인데...
>그러니까... 메일을 두번 씩이나 빼먹고 보내드리지 못했네여...
>지난 주말부터 태풍 온다고 설치다가...
>볕 들자... 느닷없이 이라크 김선일 씨 사건이 터져버렸네요...
>사건 터지면서 온통 가슴이 답답하면서...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정말 안타깝고 가슴 아픈 데까지 사건이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군요...
>살아있다는 사실이 미안하기까지 하고...
>가슴에 미움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이처럼 세상을 암흑천지로 몰아넣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 그런 부질 없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암튼... 저항세력에 대한 미국의 증오와... 미국에 대한 저항세력의 증오...
>애초에는 정말로 사소했을... 미움의 싹에서 그것이 비롯됐을 거라구 생각하니까...
>지지고 볶고 사는 우리네 삶이 매우 위험스럽고...
>마치 칼 날 위를 걷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
>그래서 오늘은...
>미움과 사랑을 소재로 한 두편의 글을 보내 드립니다.
>조그만 미움이 광기로 표출되는 증오로 발전할 수 있지 않겠어요?...
>미움은 조그만 관심과 사랑으로도 치유되지만...
>커다란 증오는 커다란 사랑이 아니면 치유할 수 없겠지요?....
>
>
>
>(첫번째 글)
>내가 겪은 미움... 일촉즉발
>
>저는 결혼 8년차에 접어드는 남자인데요..
>저는 한 3년전쯤에 이혼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었습니다.
>그 심적 고통이야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 못하죠...
>저의 경우는 딱히 큰 원인은 없었고
>주로 와이프 입에서 이혼하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더군요..
>그리고 저도 회사생활과 여러 집안일로 지쳐있던 때라 맞받아쳤구요.
>
>순식간에 각방쓰고 말도 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갔구요..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밉게만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암묵적으로 이혼의 타이밍만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도 눈치가 있는지 언제부턴가 시무룩해지고
>짜증도 잘내고 잘 울고 그러더군요..
>그런 아이를 보면 아내는 더 화를 불같이 내더군요..
>저도 마찬가지 였구요..
>계속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러는 것이 우리 부부때문에 그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요..
>가끔 외박도 했네요..
>그런데 바가지 긁을 때가 좋은 거라고 저에 대해 정내미가 떨어졌는지
>외박하고 들어가도 신경도 안쓰더군요..
>아무튼 아시겠지만 뱀이 자기꼬리를 먹어 들어가듯이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었답니다.
>
>그러기를 몇달..하루는 늦은 퇴근길에..
>어떤 과일아주머니가 떨이라고 하면서 귤을 사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남은 귤을 다 사서 집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주방탁자에 올려놓고 욕실로 바로 들어가 씻고 나오는데,
>와이프가 내가 사온 귤을 까먹고 있더군요..
>몇개를 까먹더니 하는 말이
>"귤이 참 맛있네"
>하며 방으로 쓱 들어가더군요.
>순간 제 머리를 쾅 치듯이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
>아내는 결혼전부터 귤을 무척 좋아했다는 것하고,
>결혼후 8년동안 내 손으로 귤을 한번도 사들고 들어간 적이 없었던 거죠..
>알고는 있었지만 미처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순간 먼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예전 연애할 때에 길가다가 아내는 귤좌판상이 보이면
>꼭 1000원어치 사서 핸드백에 넣고
>하나씩 사이좋게 까먹던 기억이 나더군요..
>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져서 내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답니다.
>시골집에 어쩌다 갈때는 귤을 박스채로 사들고 가는 내가 아내에게는 8년간이나
>몇백원도 안하는 귤한개를 사주지 못했다니 맘이 그렇게 아플수가 없었습니다.
>
>결혼 후에 어느덧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전혀
>쓰지 않게되었다는걸 알게 됐죠..
>아이문제와 내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말이죠..
>반면 아내는 나를 위해 철마다 보약에 반찬한가지를 만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신경 많이 써 줬는데 말이죠..
>
>그 며칠 후에도, 늦은 퇴근길에 보니 그 과일좌판상 아주머니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또 샀어요.. 그리고 저도 오다가 하나 까먹어 보았구요..
>그런데 며칠전 아내말대로 정말 맛있더군요..
>그리고 들어와서 살짝 주방탁자에 올려놓았구요..
>마찬가지로 씻고 나오는데 아내는 이미 몇개 까먹었나 봅니다.
>
>내가 묻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않던 아내가
>" 이 귤 어디서 샀어요? "
>" 응 전철입구 근처 좌판에서 "
>" 귤이 참 맛있네 "
>몇달만에 아내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도 몇알 입에 넣어주구요...
>그리고 직접 까서 아이 시켜서 저한테도 건네주는 아내를 보면서
>식탁위에 무심히 귤을 던져놓은 내모습과 또 한번 비교하게 되었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
>뭔가 잃어버린 걸 찾은 듯 집안에 온기가 생겨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아내가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보통 제가 아침일찍 출근하느라 사이가 안좋아진 이후로는 아침을 해준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그냥 갈려고 하는데, 아내가 날 잡더군요..
>한 술만 뜨고 가라구요..
>
>마지못해 첫술을 뜨는데, 목이 메여 밥이 도저히 안넘어가더군요..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같이 울구요..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다는 한마디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부끄러웠다고 할까요...
>
>아내는 그렇게 작은 한가지의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작은일에도 감동받아 내게로 기대올수 있다는걸 몰랐던 나는
>정말 바보중에도 상바보가 아니었나 싶은게 그간 아내에게 냉정하게 굴었던
>내자신이 후회스러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
>이후, 우리부부의 위기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가끔은 싸우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
>귤이던 무엇이든 우리사이에 메신저역할을 할수 있는것이
>주위를 둘러보면 아주 많다는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
>
>
>(두번째 글)
>누구에게나 사랑은 찾아온다
>
>안녕하세요? 저는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서른아홉살 주부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저의 다리가 되어주는 고마운 남편에게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한살때 열병으로 소아마비를 앓은 후 장애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에 멋진 글귀로 글을 쓰지는 못합니다.
>
>제가 남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방송을 통해서입니다.
>지난 1983년 우연히 라디오의 장애인 프로그램을 통해 문밖 출입을 못하며 살고 있는 저의 사연이 나갔습니다.
>그 당시 제주도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던 지금의 남편이 제 이야기를 듣다가 들고 있던 펜으로 무심코 저의 주소를 적었답니다.
>
>남편은 그 다음날 바로 저에게 편지를 했지만 저는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글을 잘 몰랐던 탓도 있었지만 남자를 사귄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남편은 답장도 없는 편지를 1년 가까이 1주일에 한번씩 계속 보내왔고, 저는 여전히 답장 한통 보내지 않았습니다.
>
>그러던 어느날 남편은 주소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그 먼 곳에서 서울 금호동의 저희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장애자인 제 사정상 반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먼 곳에서 저를 찾아온 사람이기에 손수 정성껏 식사 대접을 했습니다.
>
>그렇게 저를 만나고 제주도로 돌아간 남편은 그날부터 1주일에 한통씩 보내던 편지를 거의 매일 일기처럼 적어 보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포가 하나 왔는데 종이학 1,000마리를 접어 걷지도 못하는 저에게
>1,000개의 날개를 달아 이 세상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게 해주고 싶다며 보내온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남편의 청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결국 직장을 포기하면서 저를 보기 위해 서울로 이사를 왔고, 3년에 걸친 청혼 끝에 저는 남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85년 7월17일, 저희는 마침내 부부가 되었습니다.
>
>
>다음은 글쓴이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
>-내 삶의 날개가 되어주는 당신께.-
>
>여보, 지금 시간이 새벽 5시30분이네요.
>이 시간이면 깨어있는 사람보다 아직 따뜻한 이불 속에서 단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더욱 많을 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이미 집을 나서 살을 에듯 차가운 새벽 공기에 몸을 맡기고 있겠지요. 그리고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당신.
>그렇게 열심히 뛰는데도 늘 힘겹기만 한 우리 생활이 당신을 많이 지치게 하고 있네요.
>
>내가 여느 아내들처럼 건장한 여자였다면 당신의 그 힘겨운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질 수 있으련만,
>평생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는 그럴 수가 없기에 너무나 안타까워 자꾸 서러워집니다.
>자동차에다 건어물을 싣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당신.
>그런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 한 방울, 전기 한 등, 10원이라도 아껴쓰는 것이
>전부라는 현실이 너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
>불편한 나의 다리가 되어주고, 두 아이들에게는 나의 몫인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 하고,
>16년 동안이나 당뇨로 병석에 누워계신 친정어머니까지 모셔야 하는 당신입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어머니께 딸인 나보다 더 잘하는 당신이지요.
>이런 당신께 자꾸 어리광이 늘어가시는 어머니를 보면 높은 연세 탓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속이 상하고 당신에게 너무 미안해 남 모르게 가슴으로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답니다.
>
>여보, 나는 가끔 깊은 밤 잠에서 깨어 지친 모습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생각합니다.
>“가엾은 사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한평생 걷지 못하는 아내와 힘겹게 살아야 할까?”라구요.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북받치지만 자고 있는 당신에게 혹 들킬까봐 꾸역꾸역 목구멍이 아프도록 서러움을 삼키곤 합니다.
>
>비를 좋아하는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가끔 당신을 따라 나섰지요.
>하루종일 빗속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게 되지요.
>그런데 며칠 전 겨울비가 제법 많이 내리던 날, 거리에서 마침 그곳을 지나던
>우리 부부 나이 정도의 남녀가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서로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게 하려고 우산을 자꾸 밀어내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당신이 비를 몽땅 맞으며 물건 파는 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 내가 느꼈던 아픔과 슬픔은 어떤 글귀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의 가슴을 아리게 했어요.
>그때 나는 다시는 비 내리는 날 당신을 따라 나서지 않겠노라 나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답니다.
>
>그리고 여보, 지난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당신은 결혼때 패물 한가지도 못해줬다며
>당신이 오래도록 잡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나에게 조그마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었지요.
>
>그때 내가 너무도 기뻐했는데 그 반지를 얼마 못가 생활이 너무 힘들어 다시 팔아야 했을 때,
>처음으로 당신이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도 가슴이 아팠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신은 그때 일을 마음 아파 하는데, 그러지 말아요. 그까짓 반지 없으면 어때요.
>이미 그 반지는 내 가슴 속에 영원히 퇴색되지 않게 새겨놓았으니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해요.
>
>3년 전 당신은 여덟시간에 걸쳐 신경수술을 받아야 했었지요.
>그때 마취에서 깨어나는 당신에게 간호사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나를 가리키며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요,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사랑할 사람인데요”라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에게 나는 바보처럼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한없이 눈물만 떨구었어요.
>그때 간호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세요”라고.
>그래요, 여보. 나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예요.
>건강하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늘 나의 곁에 있기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
>어린 시절 가난과 장애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에
>나는 지금 이 나이에 늘 소원했던 공부를 시작했지요.
>적지않은 나이에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야학까지 데려다주고,
>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어머니 저녁 챙겨주고 집안청소까지 깨끗이 해놓고
>또다시 학교가 끝날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와주는 당신.
>난 그런 당신에 대한 고마움의 보답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할 겁니다.
>어린 시절 여느 아이들이 다 가는 학교가 너무도 가고 싶어 남몰래 수없이 눈물도 흘렸는데 이제서야 그 꿈을 이루었어요.
>바로 당신이 나의 꿈을 이루어주었지요.
>여보, 나 정말 열심히 공부해 늘 누군가의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예요.
>
>여보, 한평생 휠체어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나의 삶이지만
>당신이 있기에 정말 행복합니다.
>당신은 내 삶의 바로 그 천사입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늘 감사의 두 손을 모으며 살 겁니다.
>
>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
>
>다음은 이 사연을 취재한 경향신문 기자의 취재수첩입니다.
>[취재수첩]“다시 태어나면 제가 당신을 도울께요”
>
>17년째 자신의 발이 되어준 남편에게 ‘사부곡’(思夫曲)을 보내온 임영자씨(39)는
>서울 금호동의 조그만 주택에서 남편 김석진씨(45)와 중3인 딸 한나,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 호세아와 함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집안 거실로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싱크대입니다.
>소아마비로 항상 앉아있거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임씨가 설거지를 할 수 있도록
>싱크대의 다리를 없애고 바닥에 붙박이로 만든 것입니다.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병든 어머니와 남편,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는 주부로서의 알뜰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
>그런데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해진 사연만으로 알게 된 임씨에게 어떻게 3년에 걸쳐 변함없이 구애를 펼 수 있었는지,
>참으로 남편의 천사같은 마음씨가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김씨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고 오히려 이를 묻는 기자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장애자와 비장애자를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까.
>육체적으로 불편하다고 그게 장애자는 아닙니다.
>장애자 역시 따뜻한 마음이 있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어요.
>저는 아내에게 처음 편지를 쓰고 또 만났을 때도 아내가 장애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아내를 장애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내가 있어 더 행복합니다”.
>
>현재 임씨는 매주 3일 정립회관에서 운영하는
>‘노들장애인 야학’에 나가 하루 4시간씩 공부를 합니다.
>30년이 지난 이제서야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초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내친 김에 대학까지 진학하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
>임씨와 결혼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제주에서 아내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
>12년째 봉고차를 몰며 행상을 하고 있는 김씨.
>바쁜 와중에도 남편은 뒤늦게 ‘초등학생’이 된 아내가 안쓰러워 늘 아내의 발이 되어준답니다.
>정말 이런 남편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그런 남편을 위해 아내는 늘 사랑을 받고만 있는 자신이 미안하다며 울먹입니다.
>“여보, 나의 소원이 무엇인지 모르지요?
>내 소원은 높은 구두신고 당신 팔짱을 끼고 걸어보는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이 많지 않아 힘겹게 살고는 있지만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랍니다.
>다만 한가지 유일한 소망은 우리 부부가 이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 나는 건강한 사람, 당신은 조금 불편한 장애인으로 만나 다시 부부가 되는 거예요.
>그때는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예요”.


슬프고 아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우리네 인생이지요.
욕심덜채우고 사랑으로 이세상을 살아간다면 더없는 낙원일 텐데
상대방의 처치를 사랑으로 감싸면 전쟁도 이혼도 처절한 복수도
없을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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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29.1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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