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북쩍 홉스굴 가는 비행기는 작다. 겨우 45명 정도 탄다고 한다. 몽골인은 왕복 5만원, 외국인은 왕복 17 만원 정도 받는다. 양날개에 프로펠러가 달린 비행기다. 아마 2차 대전 때 어딘가를 날아다니던 아주 늙은 노장인 듯 하다. 의자에 앉아 밖을 보자 불안감이 스쳐왔다. 날 수 있을까 ?

마침 기장으로 보이는 거대한 몽골인이 통로를 통해 조종실로 들어 가는 것을 보았다. 저 커다란 덩치를 태우고 ? 그러다 아프리카 상공을 나는 전용 경비행기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저 푸른 초원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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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오래된 비행기

작고 오래된 비행기는
먼저 한 쪽 날개의 프로펠러를 세차게 돌렸다
그리고 이어 왼쪽 날개의 프로펠러를 돌렸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기체로 전해지는 요동과 소음 때문에

활주로를 달려 안심의 한숨 속에 무사히 떠오르고
철컥 비행기 바퀴가 날개 속으로 들어갔다
기류의 흐름에 겨우 몸을 싣고
작은 비행기는 소리소리 지르며 떠가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비행기도 말처럼 달린다

밖은 구비구비 뱀처럼 흐르는 강물과
거대한 구릉들이 중첩되고
초원은 푸르고 푸러
군데군데 한 무리의 게르와 가축떼

서북으로 갈수록 구릉을 닮은 산들은 깡통 머리를 하고 있다
한 쪽은 곱게 밀어 올리고
다른 쪽은 수목이 빽빽하다
능선을 경계로 숲과 초원이 공존한다

왜 한쪽 사면은 침엽수림이고
왜 다른 사면은 빡빡 깎은 대관령 초원 같을까 ?
햇빛 방향 때문일까 ? 바람 때문일까 ?
비 때문일까 ? 토양 때문일까 ?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졸음이 되고
몽롱함 속에서 몽골의 대륙은 연이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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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

비행기는 무릉에서 잠시 내렸다. 거대한 판자촌이다. 무릉이라. 오래만에 기억하기 좋은 중국식 지명을 만나게 되었다.. 더욱이 어떤 뉴앙스가 묻어 나는 이름이다. 우리가 가려는 홉스굴 근처에 안개가 끼어 우리는 작은 간이 기차역 같은 무릉공항에서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림은 즐길 것을 찾게 했고
우린 역사를 어슬렁거렸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어떤 미세한 경이로운 발견을 위해서
눈을 빛내며

조촐한 흰색이 칠해진
남자 화장실에는
달랑 변기 하나만 있다
여러 개가 줄지어 있을 공간에
오직 한 개만 있다.
변기 하나의 공항, 그것이 무릉공항의 크기였다

매점에서는 물건을 쌓아 놓고 팔지 않는다.
맥주 한 캔, 과자 한봉지, 쥬스 한 병을 전시하듯 진열해 놓는다.
쵸코파이, 카스 맥주도 진열되어 있다.
그걸 팔면
팔려 나간 그 자리에 또 한 병 한 봉지가 메꾸어 올려진다.
빈한함인지 삶의 여백인지
나는 잘 알 수없다


승객들이 공항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 밖은 볼 것이 없었다. 무료함은 우리를 밖으로 몰아 냈고, 끼리끼리 어슬렁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아직 우리들은 친해지지 않았다. 밖은 넓은 초원이었는데 제철을 맞은 야생화들이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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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의 허브밭

누군가 속삭였다
이거 전부 허브야
그 넓은 초원은 모두 허브 밭이었다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잎에 고여있던 향기가 바람에 날렸다.
이파리 속 미세한 숨구멍 속에 가득 고여있던 유혹이
훨훨 바람을 타고 탱고처럼 휘감긴다

알 수 없는 힘이 우리를
저 멀리 방목하는
염소와 양떼로 접근하게 했고
그들은 우리가 다가 갈수록 멀리 도망갔다

메뚜기 떼가 소리를 내며 날고
갑자기 우리는 친해지기 시작했다.
말이 많아지고
웃음이 헤퍼지고
감탄이 늘었다

양떼 염소떼를 따라가던 어떤 사람 하나가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다
처음 우린 그가 그 가축들의 주인인줄 알았지만
그 사내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거닐던 또 다른 승객일 뿐
어떤 감흥이 그로 하여금 노래의 선율에 오르게 하고

조용한 초원은 갑자기 떠들썩한
즐거운 유희장으로 변했다
가이드가 커다란 소리로 모두 비행기에 타라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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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의 전봇대

누구라도 무릉의 전봇대를 보면 웃지 않을 수 없다
낮으막한 침엽수 전봇대가 귀엽게 줄지어 서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전봇대가 되어 바싹 마른 북어 같은 모습으로

모든 전봇대는 까치발을 집고 있다.
땅 속에 박혀 있지 않고
모두 철막대나 콘크리트 기둥에 철사로 묶여 있다.
누군가 물어 보았다.
왜 땅에 박지 않고 그렇게 띄어 놓았는지

그들은 대답하지 못한다
미투꾸
난 몰라

아마도 나무가 크게 자라지 못해
키 큰 전봇대는 귀하니까
그렇게 덧 댄 것이겠지

어린 소년이 가치발을 하고
성년이 되고 싶어하듯
무릉 초원의 전봇대는 키가 크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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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갈 꽃밭 활주로

정말 신기하지
비행기가 꽃밭에 내리다니
마치 말이 달리듯 요란하게

아스팔트의 활주로도 없이
허브꽃 야생꽃 즐비한 초원에
자욱한 먼지가 풀풀 날리고
비행기는 말처럼 질주하다 멈추어 선다
세상에, 멋져라 !

뚱뚱한 기장이 자켓 단추를 풀어헤치고
막 말에서 내린 기수처럼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웃어댄다
13 세기의 그 정복자처럼

작은 통나무 집 하나가 공항 터미날
빨간 바퀴의 작은 수레에 손님들 짐이 가득 실려 나오고
짐 무게에 겨운 한쪽 수레바퀴는 바람이 빠져있다

한 낮이 되어 가는
초원의 한 가운데 말뚝에
말 한 마리가 묶여있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갈 찝차를 기다리고 있다

햇볕이 무너지듯 쏟아져 내리는
시간이 정지한 정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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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꽃

초원의 구릉구릉마다
바이올렛처럼 파 꽃 가득하고
파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육계장 속 느른한 먹거리더니
정장을 하고 주사로 붉은 입술 그리니
무르익은 마지막 청춘처럼
이리도 고와지는구나

잠시 차에서 내려 꽃밭으로 달려 간
우리는 어디에 발을 놓을 지 몰랐다
꽃밭을 짓밟는 군화가 되지 않으려고
발도 옮겨들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서
꽃밭 속 나비를 부러워했다
훨훨 날 수 있다면
꽃에서 꽃으로 가비얍게
꽃대 밟지 않고

여름 한 철 이 때 밖에는 사랑을 나눌 수 없어
무수한 열정으로 피어오르고
수수한 흰 꽃일 수 없어
꽃잎마다 자주빛 연지 짙게 바르고
목숨 불태우며 저렇게 절정을 바라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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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굴 호수 가는 길

하트갈에서 홉스굴로 가는 길은
한 번도 와 보지 못한 길이다
지구의 어딜 가든
사람 사는 곳 비슷한 점이 즐비하건만
이곳은 내가 생전 처음 온 곳
내 상상의 밖에 선 공간이다

우리를 태운 차와
그 앞에서 잘난 척 먼지 일으키며 질주하는 앞차
그것이 움직이는 것의 전부였다.

지금은 바퀴 자국 난 곳이 길이지만
길은 원래 없었다
길이 파여 물이 고이고 다시 더 파여 팥죽 할멈처럼 주름 깊어지면
다른 새로운 길들이 자꾸 생기고
기분 나면 몇 대의 차가
앞 뒤로 줄서 달리는 대신
나란히 서로 랠리하는 곳

장애물을 넘는 야생마처럼 차가 달리고
덜컥거리는 찝차 속에서
머리를 꽝꽝 쥐어 박히며
우리는
박수치며 웃고 떠들었다

달리던 제 풀에 꺽여
차는 강원도 돌짝 계곡길로
드는 듯하다
홀연
푸른색 호수가
산 사이로 유토피아처럼 나타나고
다가갈수록 호수는 점점 푸르러지고
한낮인데도 멀리 물안개 자욱하다

안개 속에
몽골인들도 그 이름을 모르는
아니 물어 보는 사람마다 그 이름을 달리 말하는
신령한 백두산이 흰머리를 들고 서있고
우리는 바다처럼 넓은
투명한 호수 앞에 서서
탄식한다
죽이는구나
죽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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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노르

7월에
우리가 떠 죽을 만큼 더울 때
홉스굴 호수에는 뼈속까지 시원한
꽃샘바람이 아침저녁 분다

여름 홑옷이 추워
둥글고 납작한 돌을 들어 수면을 빗겨 물수제비를 뜬다
투명한 호수의 맑은 물방울들이 튀어 오르고
갑자기 놀란 새처럼 물 위를 몇 번 잽싸게 뛰어 달아나다
이내 물밑 가득 깨끗한 맥반석 돌처럼 가라앉는다.

물밑 저 둥글고 납작한 모든 돌들은
여름에 이곳을 다녀 간 사람들이
그 서늘한 뜻밖의 추위를 이기지 못해
호수에 서서 즐긴 물수제비 뜬 돌임을
돌을 던진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열 개쯤 던지고 나면
이 호수만큼 물수제비 뜨기 좋은 곳이
세상에 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돌들이 왜 그렇게 둥글고 납작한지
수면은 어찌 그리 조신하여
산그림자 구름그림자 가득 담아 거울 같은지
돌을 던져 본 사람은 비로소 그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호수 가에 앉아 있던 인생이지만
때로 물수제비 돌처럼 수면을 빗겨 날아
저 건너로 호쾌한 질주를 하고 싶은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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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호수에서 그 달이 뜨는 것을 보았네

아하 달이 그렇게도 뜨는구나
보름달만 그렇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구나

전혀 뜻하지 않았어
조금 전 진 듯한 달이
설마 이 새벽녘에 호수 건너편
그 낮으막한 검은 산 뒤에서
그런 모습으로 떠오를 줄이야

하현과 그믐의 사이 달이
커다란 상어의 등지느러미처럼
형형한 밝음으로 떠오르고
달빛은 호수를 건너
쏜살같이 우리에게 건너온다

차마 말할 수 없어
그리하여 외쳤어
저게 달이야
저게 호수를 건너 와
달빛을 타고 달이 건너와
거대한 은빛 상어처럼

세상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고
우리는 입을 벌리고
그 호수에 망연히 서서
다시 모닥불 가득 새로운 장작을 채워 넣고
차마 그 호수가 떠나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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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사람들

그곳 사람들은
무릎까지 오는 긴 외투를 입고
허리를 두꺼운 천으로 묶어준다
짧은 말장화를 신고
해로부터 결코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낮이 되어도
긴 옷을 벗지 않는 이유는
조금 있으면 추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겨울 옷을 입은 사람과 여름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같은 하루를 보낸다
아침의 옷을 입고 낮을 지낼 것인지
낮의 옷을 입고 아침을 날 것인지는
순전히 개인의 취향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이 키우는 야크와 양과 염소도
반은 털갈이를 했고 반은 겨울 털을 아직 가지고 있다
털 빠지다 만 짐승들은 유유히 초원의 풀을 뜯고
혹은 그윽한 눈으로 땅에 엎드려 되새김질을 하고
그곳 사람들도 똑 같은 자세로 땅에 엎드려 담배질을 한다
얼마나 심심초 담배를 좋아하는지

어머니 대지에 안겨
햇빛을 쬐며
검은 얼굴로
자신들의 가축들과
평생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