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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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
질주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말과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바람 같이 멋진 일이지
우리는 흥분하고
조금 두려워하며
말 잔등 위에 올라탔어
날 떨어뜨리지 말아라
날 걷어차지도 말아라
말잡이들은 고삐를 넘겨주고
또 하나의 긴 고삐를 쥐고
우리 옆에 섰지
말 잔등 위에서 우리는 가슴을 펴고
멀리 초원의 끝을 보며
“ 츄 - , 츄어 “라고 그들처럼 곧 외치게 되길 바랐어
그러면 말들이 쏜살 같이 달려나가거든
그들은 이랴 라고 하지 않아
말은 화살같이 달리고
말 잔등 위에서 다리로 버티고 서서
엉덩이를 살짝 뒤로 빼 들고
슬그머니 엎드려 굽힌 채
어느 덧 우리도 기수가 되어 있었지
배움과 시간은
우리가 달릴 수 있게 해 주었어
두려움을 없애주고
약간의 요령을 터득하게 하고
말을 어루만져 쓰다듬게 하고
목소리에 주인의 근엄함을 담게 만들었지
말들은 당당함에만 복종하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동안은
우리를 태워줄 뿐 따르지 않아
우리가 고삐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빡빡이 움켜 쥘 수도 강물처럼 풀어 흐르게 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면
네 굽을 놓아 달릴 때 오히려 바람 탄 새처럼 즐거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 비로소 우릴 따르지
그러면 그때 같이 놀 수 있지
바람을 가르는 바람갈이 놀이를 할 수 있지
승마 일지
그는 말을 타다
꽁지 벼를 다쳤어
엉덩이가 양쪽으로 동전 만큼씩 까졌어
너무 아파서 잠도 잘 수 없었어
그러나 그만둘 수 없었어
쪽도 팔리고 더욱이
너무 재밌어
어떻게라도 계속 타야만 했어
여자들이 그에게 가져 온 생리대를 다 줬어
난 생리대를 꽁지 뼈에 차는 사람은 정말 처음 봤어
그 위에 성인용 종이 기저귀도 찼어
그리고 웃으며 탔어
또 한 남자는 말에서 떨어졌어
그러나 아주 가벼운 낙마였지
말이 천천히 회전하는데
모래밭에 덜퍽 떨어졌어
아픈가 안아픈가 실험해 보기 위한 낙마 같았어
다음날 아침에 약간 허리가 결렸데
또 다른 한 남자도 말에서 떨어졌어
떨어질 때 이번엔 모두 놀랐어
말이 두더지 구멍에 앞발이 빠져 발굽이 꺾였어
기우뚱 놀란 말이 제멋대로 달렸어
그 바람에 균형을 잃고 떨어졌는 데
바닥이 하필이면 바위였어
큰일났다 모두 너무 놀랬어
다행히 머리를 다치지는 않았어
멀쩡한 것은 참 기적 같은 일이었어
여섯 명 여자들은 하나도 안 떨어졌어
참 이상한 일이지
말타기엔 여자들이 더 좋은 것 같아
가슴이 흔들려서 왕가슴 되고
(정말 몽골 여자 치고 작은 가슴 보질 못했어)
알이 없어 알도 끼지 않고
아, 초보 남자들은 말 잔등 위에서
엇박자 덜컥거릴 때 하마트면 알이 낄 뻔 하거든
조심하지 않으면 눈물이 찔끔 나거든
그리하여 여행이 끝날 때 쯤
우리들은 바람처럼 달릴 수 있게 되었어
참 재밌었어
테를지에서 비를 만나다
테를지는 땅이 좋아
초원이 비단 같아
뒤에 산을 등지고
구릉처럼 살짝 언덕진 초원 위에
둥근 겔들 모여있는 멋진 캠프장이 있어
짐을 풀자마자
말을 탔어
우린 승마여행을 떠나 온 것이니까
이젠 말 맛을 조금 알거든
모두 올라 타
기마병처럼 가슴 펴고 말과 함께 나아갔지
그만 그녀의 말 하나가
몽골 말잡이 앞을 건너 뛰어 달리기 시작했어
아, 저런 저런
그러나 그녀는 아주 침착했지
놓친 고삐를 다시 잡고
멋지게 말을 세웠어
그 후 그녀는 애마부인이라 불리게 되었지
거북 바위를 지나
멀리 사원이 보이는 산 속에서
갑자기 소나기 쏟아져
잎새 무성한 나무 아래
오르르 모여 떨고 있었지
그러나 모두 산 속 참새 떼처럼 지저귀고 있었어
왜 그랬는 지 몰라
그저 즐거웠거든
작은 일에 웃고
느닷없는 비에 몸을 맡기고
물론 처음엔 안 맞을려고 버티긴 했지만
그건 문명을 벗어난 일종의 탈출 과정이었어
우린 수없이 많은 감탄을 되찾았어
돈도 걱정도
사람 사이의 분노도
그리움조차도
어두운 미래도
그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우리 머리 속엔
지금 여기 밖엔 없었어
우리가 거기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 지 몰라
아마 애마부인 같은 시시한 이야기들이었꺼야
그러나 기억하는 것이 있어
그건 반은 웃음이었다는 거야
일상의 모든 유치함 속으로
또한 모든 진지함을 걷어내고
맑고 투명했어
우린 그곳 이름 없는 나뭇잎 아래 모여
간다라 불상처럼 웃고 있었어
웃음이 깨달음임을 깨닫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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