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크르 온천

칭크르 온천은 뜻밖의 호강이었어
별 쏟아지는 시원한 밤에
따뜻한 물 속에서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

고개를 돌리면
여탕도 있어
여자들은 처음에 물 속에 머리만 내 놓고
숨어있더니 나중엔 다 일어섰어
낮으막한 담장 너머로
맥주를 마시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어

한 남자는 연신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자정이 넘어서 주인이 그만 부르라고 할 때까지
쏟아져 나오는 노래줄기를 아무도 막을 수 없었어
그건 감겨있던 그의 영혼이 풀려 나오는 소리이기도 했으니까

물이 너무 매끄러워 온몸에 스며들었지
움직일 때조차 소리 없이 미끄러지는 듯했어
몸이 물 속에 풀리 듯
모든 넋과 맥을 놓아두고 푹 쉬었지
내가 아득히 사라진 듯 했어
간혹 그 남자 노래 소리만 간간히 들려 왔지

한 사람 두 사람 자러 가고
그 사이 하늘의 별들은 하나 둘 늘어갔어
이윽고 밤이 아주 깊어진 후
우리 모두 가벼운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지

캠프장 안 공터에선 사람의 키를 넘는 모닥불이
불꽃을 튀기며 타오르고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실루엣이 보였어
둘이란 이상한 숫자여서 사이에 끼어 들기 조심스러워
아직 아무 것도 아닌 사이거나
이미 아무 것도 아닌 사이가 되었다 하더라도
둘 사이에 낀 무엇이 될까봐
멀리 떨어져
하늘로 치올라 타오르는 장작더미의 불길 모습 한참 쳐다보았지
불타는 모습을 보면
가슴 속 마른 장작 속에 불길 지피려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게 되지
지금도 그때인지 물어 보았어












칭크르에서 말타기


칭크르에서의 말타기는
꽃 가득한 들판을 달리는 거지
부드러운 구릉에서 산들바람을 안고
구름같이 사는 이야기 나누는 거지
침엽수 하늘까지 솟구친 숲 속 거닐며
말이 작은 나뭇가지 밟는 소리를 듣는 것이지
옹갇힌 마음 부러지는 경쾌한 단절음

모르는 길을 걸을 때
여행은 갑자기 삶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잃어버린 길 어딘가로 되돌아 갈 용기를 주지

칭크르에서의 말타기는
말잔등 위에서의 흔들림을 통해
약간 느긋하게 휘파람 불며 삶을 보는 것이야
어디에 있건 광활한 초원의 한 가운데
360도 어디로건 맘만 먹으면
언제고
당장
달려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지

즐겨야할 꽃 가득한 삶의 초원은
뜨겁고 아득한 먼 길이 아니야

지금 이 황홀한 아름다움이여











칭크르에서 그가 어떤 사랑을 스쳐간 사건

우린 모여 밥 먹고 있었어
한 테이블 가득 둘러앉아
저녁 만찬을 즐기고 있었지
남들은 갈수록 힘이 딸려 조용해진다는데
우리는 갈수록 즐거워졌어
사뭇 이상한 일이라고 가이드가 그러더군
떠날 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어
우리가 좀 이상한 사람들인 줄

그 날도 웃음 풍성한 즐거운 만찬이었지
그때 그 즐거움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어
날렵한 그녀가 다가와 말을 걸었어
사분사분한 목소리였어
우리의 즐거움에 걸려든 것이지
테이블의 한쪽 끝에서 조용조용 시작된 그 이야기는
식탁 전체로 퍼져 나갔지

그녀는 우리가 다녀 온 곳들을 물어 보았어
하라호른은 지나왔고 체첼렉 거쳐 차강노르 호수까지 다녀왔다 했지
그곳에서 하얀 호수와 검은 화산을 보았다 했지
멋지더냐고 물었어
그래서 누구하고 왔냐고 되물었지
남자 친구하고 같이 오면 어딘들 싫겠어
사랑이 함께 다니는 곳은 다 좋지
손잡고 다닌 모든 곳을 잊을 수 없지
그러자 그녀는 식당의 다른 한 곳을 가르치며 여동생과 함께 왔다 했어
어두운 저쪽 테이블에서 그녀의 동생이 흰 손을 흔들어 보였지

그때였어
그가 번개 같이 되물었어
What's your room number ?
우리도 그녀도 순간 숨을 꺾고,
이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어
감탄사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지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뒷모습에는
서운한 여운이 잠시 남아 있었지

이 남자 분주해 졌어
어떻게 작업에 들어가야 할 지 야단이 났지
꽃, 포도주, 그리고 시가 괜찮을 것 같았지
그게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이고
그리고 다수의 여인에게 유효한 방법이기도 하지
더욱이 그녀에게는 진지함과 멜랑꼬리가 섞여있는 듯 했거든

헤어진 그녀가 창문 밖으로 사라져 가다 어느 겔의 문을 열고 들어갔어
누군가보고 얼른 알려 주었지
저 둘째 줄 첫 번째 겔
그는 그녀의 룸 넘버를 알게 된거지
그가 드디어 먼저 자리를 떴지
아, 조용히 생각해 봐야겠어요

밤에 우린 다시 온천에 모여
하늘 가득한 별을 보며 놀고 있었지
그는 온천에 나타나지 않았어

초원에서 막 꺽어 든 싱싱한 야생화다발 들고
그녀의 겔 문 앞에 서 있겠지
붉은 포도주 같은 마음으로
벌써 그녀의 흰 손 잡고 예이츠의 시를 들려주고 있을 지 몰라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s
나무에 잎이 나듯 사랑은 쉬운 것인데
Take life easy, as the grass grows on the weirs
뚝방에 풀 자라 듯 쉬운 것이 삶인데

다음 날 아침 모든 사람들이 식탁에 앉은 다음
그를 기다렸지
그가 뒤늦게 나타나자 우린 환성과 박수를 보내주었어
제 2의 간스끄를 보라 위대한 그를 보라

그가 시무룩하게 말했지
그냥 잤어요
누구랑, 그대의 사랑과 ?
그 남자 망설이다 그녀에게 가지 못하고 뒤척이다
홀로 잠들고 말았지
시도 붉은 포도주도 꽃도 밤사이에 시들어 사라지고
그녀 역시 동생과 함께 아침 일찍 날아가 버렸다네

But he was young and foolish, now is full of tears
그때 그는 젊고 어리석어 지금 눈물 가득하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