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2004년 11월 26일 13시 47분 등록




다음이야기는 제가 존경하는 이은숙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아서 글을 타이핑하여 님들에 보여드리고 싶었고, 함께 행복해하며 그 행복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안입양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미 이것을 실행하여 본보기를 보여주셨습니다.




-다음-




[키다리 아저씨]를 언제 처음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결혼하고 아마 아이들 어렸을 때, 큰애가 초동하교 다닐 때쯤 되지 싶다.


그때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었는데 한 구절이 남아서 내 가슴 한 귀퉁이에 계속 걸려있었다. 오래되어 주인공 이름도 자신 없지만 ‘주디’인가 하는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가씨가 후원자인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구절이다.


자신의 절실한 소망 중에 하나는 보통의 가정집에 한번 가보는 일이라고 하였다. 일반가정에서는 어떻게 아침을 맞고, 식구들끼리 어떻게 부르며, 어떤 모습으로 식사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생활하는지 너무도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난 시어른들 모시고 남편과 아이 셋과 바쁘게 정신없이 사느라 감사한 줄 도 모르고 그냥 무심하게 살았는데, 그 무심하고 평범하게 사는 일상을 한번 들여다보기만 하는 것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작은 일에 금방 감동하고 작심을 잘하는 나는 그때, 큰일은 못하지만 나중에 기회가 오면 보육원을 방문해 한명이라도 후원하자고 결심했다. 집에도 데리고 와서 일반 가정집 마음껏 보여주고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누릴 수 잇도록 조금은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삼년 뒤 성탄절에 남편이 나가는 단체의 부인회에서 지역에 있는 보육원을 방문하여 처음으로 따라갔다. 원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이 생활하는 방을 둘러보며 아이들과 말을 나누었다.


그리고 깍듯하고 밝게 인사하는 한 남중생의 학교와 이름을 외워왔다. 얼마 뒤에 학교로 찾아가서 그 중학생의 후원자가 되어 주말이면 집에 데려오기도 하고, 어릴 적 내가 가보고 싶어 했던 제과점, 서점, 영화관, 연극 공연장을 같이 찾아다니며 내가 더 즐겁고 신났던 것 같다.




어느덧 그 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보육원을 나와야 하는데 기거할 곳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 시동생한데 그 학생이 독립할 때까지 방을 같이 쓸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승낙해서 우리는 한 3년쯤 한집에 살았다.




한집에서 한솥밥 먹으며 우리는 정말 식구가 되었다. 사람 사이의 정은 한솥밥 먹은 밥그릇 수에 비례하여 드는 것 같다. 그때 시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안계셨지만 생전에 그 학생을 귀히 대접하셨고, 시어머님은 할머니로 나는 이모로 남편은 이모부로 아이들은 동생으로 그렇게 한 가족이 되어 살았다.




지금은 뒤바뀌어 두 초등학생의 아빠인 그 중학생이 나의 후원자인양 명절 날, 어버이 날, 생일에는 일가족이 찾아오며, 짬만 나면 전화 안부하고 틈틈이 이모 맛있는 것 사주고 말벗해주러 온다.




명절 아침에 혹 시동생 네는 빠질 데가 있어도, 아이 둘과 예쁜 마누라 앞세우고 이 네 식구는 우리 집에 오는 것 빠져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늙는 걸 제일 안타까워하며 마음 아파 해 한다. 나이든 지금의 내게는 얼마나 든든한 후원자인지........




가볍게 재미있게 읽은 한 권의 책에서 한 구절이, 내 삶에 작용하여서 아름다운 인간관계 하나를 내게 큰 선물로 주었다고 생각하며 고마워한다.


카톨릭 다이제스트 2004년11월호에서 펌




IP *.190.172.50

프로필 이미지
김춘옥
2004.11.27 09:41:07 *.253.185.82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실천한 훌륭한 이야기네요.
프로필 이미지
김형우
2005.02.16 07:58:33 *.94.41.89
바쁘게 생활하는 삶속에서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글이네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