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이선이
  • 조회 수 214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5년 3월 19일 09시 25분 등록
13일 일곱시 20분경 영화를 보려고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를 기다리기 싫어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와 만나려고 걸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가 혜화동에 가기 싫어한다는 사실조차 잃어버리고.
농심가가 있었던 자리, 지하3층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스크린을 마주했다.

어제 다시 보니 참 느린 영화인데 13일날 볼 때는 굉장한 속도감을 느꼈다.
일요일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긴장감과 표현하기어려운 충격에
이웃집 평강이네 전화를 걸었다. 차마시러 가도 돼냐고. 뭔가 분위기를
바꾸지 않고서는 괴로울 것 같아서였다.
영화속의 작은 모티브들은 나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일요일 아침 나는 예이츠의 시[늙은 어부의 명상]을 정성들여 B5지에
쓰고는 시집에 있던 백조들과 보이지 않는 하늘로 뛰어오른 물고기들을
그려 넣었다. 마침 슬라이고에서 토요일밤 십여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를 환영하는 마음에서. Tough ain't enough 라 벽에 새겨놓은
체육관 사무실에서 프랭키가 그것도 게일어로 예이츠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눍은 어부와 같이 명상하는 듯한, 예민한 소년의 눈동자로. 청년의 변덕으로..
손으로 뜯는 키타와 활로 켜서 음이 이어지는 첼로소리같은 대화와
스크랩의 독백들. 편지를 종이박스에 넣어둔 프랭키의 옷장,
어찌보면 키가 큰 고흐의 초상화같이 보이는 프랭키의 주름진 얼굴과 눈동자,
서른 하나, 곧 서른 둘이 될 매기의 절대포기할 수 없는 절박함과
아버지에 대한 고운 기억을 간직한 귀, 그리고 귀한 보스를 마침내 만난 것,
프랭키의 단절된 가족관계,
응급지혈사에서 트레이너로 멋지게 변신한 프랭키는
초급장교에서 무역회사원으로 지금은 한의사로 활동하며 후학을 기르는
여든을 바라보는 포천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훌륭한 선수였던, 또는 한때 유망한 화가였던, 키타를 애인으로 여겼던,
내안의 정원에 들어와 살고 있는 그녀와 그들이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109번째 마지막 시합이 된 후 쓸쓸히 청소부로 살아가는 스크랩,
화면보다 먼저 닿은 기타소리, 첫장면부터 나를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연구원으로 동참하게 된 현실의 내모습이 어떤부부은
매기같이 보였다. 낮에는 꿈을 꿀 수 밖에 없는 그녀, 아까운 낮이 그렇게
사그라든 후에야 전기불 아래서 펀치볼을 칠 수 있는 그녀.

마지막 매기의 경기장면 이 후 피아노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
뭘 위로하고 감싸안겠다는 말인가. 점점 치밀어오는 홧김에 평소와는 다르게
아직 자막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휙 나와버렸다.
정말 그 피아노곡을 만든 사람에게 펀치를 날리고 싶을 정도였다.
장식에 지나지 않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감독이었다고.

hit pit이었던가 ..체육관 이름이. 스크랩은 권투는 열정만 가지고 되지는
않는다는 나래이션과 함께 쫄바지 남부사투리 미래의 미들급 챔프의 질문,
얼린 물병을 신기해서 어쩔줄 모르고 정말 몰라서 묻는 얼굴로,
어떻게 이 조그만 구멍으로 얼음을 넣지요?

그건 차라리 내가 하는 질문이었다. 신앞에 비젼이 뭐냐고 묻는 나같다.

EVERLAST의 E가 새겨진 빨간 펀치볼을 사려고 세어둔 동전을 쏟아붓는
매기와 당황한 스포츠가게 주인. 아마 그도 TV를 보며 모쿠슈라를
외쳤을 것이다.

스크랩 체육관에 갑자기 나타난 그녀가 샌드백과 싸우고 있자.
머, 여자?
빨리 가봐, 저렇게 치다간 손목이 나간다구.


스크랩에게 사과하러 치즈버거를 주러와서 핀치볼 소리에 놀란
프랭키가 매기에게 [그렇게 치니까 숨이 가쁜거야.]
[너는 발을 전혀 움직이질 않아.]- 이건 탁구를 배울때 누군가 내게
한 말과 같아서 정말 놀랬다.

프랭키의 제의가 계속되는데 불쑥불쑥 떠오르는 기쁨을 주체못하고
자기말에 끼어들자 첫째도, 둘째도 명심할 것, 질문하지 말 것,
you say only yes, franky.
'you look pitty'라는 프랭키의 솔직한 말에
매기가 처음으로 격렬하게 화를 내며
[진실이 아닌 바에는 절대로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마세요]

이젠 대전해도 되냐고 묻는 말 대신 매기가 한말
[이젠 호흡이 잡혔죠?]

뒤에서 첫 경기를 치루는 매기를 보며 주문하는 프랭키
your left, keep your left up!
결국 내려와 새 매니저에게 화가 나서 던진 말
매기가 너의 미끼냐..
심판이 다가와 당신은 누구냐고 묻자 어렵게 꺼낸 대답
yea, she's my fighter.


매기가 식당에서 서빙을 하면서 운동화속의 발을 꼼지락거리며
자세를 잡는 연습을 마음속으로 그릴 때,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저녁에 한시간정도 탁구를 배웠는데
나중엔 욕심이 생겨 거리를 걸으면서도 드라이브를 날리고,
발끝으로 달려보곤 했던 것이다. 쫄바지 남부사투리 데니즈처럼
열정하나는 봐 줄 만 했다. 실패하고 다시 돌아올 만큼.
그러나, 내가 배운 것은 실패해도 그 운동이 싫어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체급을 올리기전 마지막 경기에서 마음속 매기에게 하는 프랭키의 혼자 말..
[모.쿠.슈.라 - mochushura?]

코뼈가 부러지고서 병원복도, 프랭키 새겨놓으려 한 질문에
매기의 대답..
always protect myself !

첫번째 푸른 곰 빌리-챔피언의 도전장를 거절한 프랭키의 변
네가 조금만 네 얼굴을 잘 막았어도 수락 했을거야.
지지않는 매기의 답,
그렇게 얼굴을 막지 못했다면 이 얼굴 남아있지도 않겠죠.

푸른곰의 비열함이 전이되 같이 반칙을 저지르고 이긴 게임처럼
매기가 등을 돌렸을 때 환호하며 모쿠슈라를 외치던 관중들.

병원에 찾아온 스크랩에게 냉정하게,겸손하게 게임의 실패 원인을
찾고 있었던 복서의 말 ... 왼손을 내리지 말아야 했었는데
그떄 등을 보이지 말아야 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집중해서 보기에 마음이 무거워 눈을 감아버렸다.

프랭키가 그날 받아본 편지는 딸에게서 온 것이었을까.

중절모에 트레이너복이 어울리는 스크랩,
청소할 떄도 중절모를 쓰는 복서 스크랩.
사람마음의 저편을 읽어내는 나름대로 핸섬하고
인텔리젠트한 스크랩의 눈동자.
그의 나래이션... 너의 아버지는 그런분이다.

---------------------------------------------------------------

내가 감독이라면 우선 음악을 바꿀 것이다.
그 장식적인 피아노곡을 키타와 활로 켜는 악기들과 섞을 것이다.

그리고 프랭키가 자신을 버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것이 상황에 걸맞는 얼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매기는 제 2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거기서부터 영화의 시작을 하겠다.

[IRA'S RIDESIDE DINNER]

그 밤, 손으로 만든, 통조림이 아닌 레몬파이를 먹는 프랭키

숲으로, 들어가 온 밤을 지새우다
이른 아침 그 숲에서 차를 몰고 나온 프랭키는
마취제와 주사기를 숲에 묻었다.

감히, 매기가 제 2의 생을 살아갈 것을 감독으로서 주장하겠다.




IP *.42.252.14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759 성장 가능성 100% 직업은? [5] 직업의기원 2005.03.01 2172
3758 -->[re]성장 가능성 100% 직업은 출처와 자세한 안내입니다. [1] 기라성님의펜 2005.03.04 1719
3757 琢玉 [1] 김미영 2005.03.04 1983
3756 나무=사랑 이고 숲은 하느님입니다. [5] 숲의기원 2005.03.17 1683
3755 밀리언 달러 베이비 영화 감상기 [1] 오병곤 2005.03.17 2492
3754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 2004) [1] 홍승완 2005.03.17 9591
3753 [영화] 밀리언 $$$ 베이비 [1] 강미영 2005.03.17 1948
3752 밀리언달러 베이비 소감 [1] 신재동 2005.03.18 1852
3751 치유를 낳는 관계의 힘 -밀리언달러를 보고- [1] 문요한 2005.03.18 1967
3750 밀리언달러 베이비 감상문 [1] 오세나 2005.03.18 3567
»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선이 2005.03.19 2144
3748 영화 밀리언달러베이비 이익상 2005.03.19 2131
3747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 박노진 2005.03.19 2446
3746 밀리언 달러 베이비 -비극적 정신 [2] 손수일 2005.03.19 2820
3745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권유하는 구선생님께 감사드리며 [6] 섬옥 2005.03.19 2584
3744 연금술 유관웅 2005.03.23 1656
3743 주간칼럼1-2005 로드맵:연구원,쓰기,매일 [4] 박노진 2005.03.26 1615
3742 너에게... 김세화 2005.03.28 2211
3741 [강의 외전外傳1]논어論語 [3] 손수일 2005.03.28 2152
3740 [강의 외전外傳2]노장사상老莊思想 [5] 손수일 2005.03.28 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