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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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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19일 18시 48분 등록
연구원들께서 쓰신 밀리언달러 베이비 리뷰를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 이야기 같은 부분이 있어 공감을 얻을 수 있었고,
옛날을 정리하다보니 오히려 새로운 힘이 생기기도 하네요.
오늘 이 영화를 보려 합니다.

구선생님 늘 감사드립니다.
제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는지를 표현할 수 있는 빈약한 방법 중 하나로
선생님 홈피에 제 이야기를 올려 놓는것, 이것을 선택했습니다.

어떤 구절은 정말 밝히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그걸 숨기면
제 이야기는 더이상 살아있을 수 없기에 솔직히 적었습니다.
.................


19살, 부푼 기대를 품고 교보에 입사했다. 다닌지 한 석 달 쯤 됐을까.

죽고 싶었다. 이대로 죽어도 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내 눈앞에 있는 직장 선배들 모습을 보니, 10년 쯤 뒤의 내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저렇게 그대로 나이 먹어가겠구나. 지금도 이렇게 시시하고 재미없는 일에 시달리고 있는데, 한 10년쯤 지나도 역시 시시한 일로 시달리겠구나. 영업주임은 끊임없이 쪼아대고, 나이를 좀 더 먹으면 영업소장을 해야 하겠지. 내 자신의 노력에 의해 성과가 나타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독려함으로써만 성과가 나타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사람들의 영업성과에 따라, 국장한테 인정을 받거나, 쪼다가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는 것. 그것은 내 눈에 종살이의 다름 아니었다.



5월 어느 날,

유난히 아름답게 햇빛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아, 햇빛은 이렇게 찬란하게 빛나는데, 열 아홉 살 나의 인생은 잿빛이었다. 열 아홉 살은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아닌데, 이런 우울한 기분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이인데, 라는 생각을 했다. 그 때 나는 불행했다. 자신의 생각에 함몰되어 있을 때, 가끔 나는 현실을 잊는다. 아니나 다를까 가파른 경사 길을 내려가다 돌부리에 채어 제대로 넘어졌다. 초등학교 4학년쯤 되는 남자 꼬마애가 달려와서 괜찮냐며 물어본다. 그 아이 눈에도 내가 위태로워 보였나 보다.



주말마다 목포 집에 다녀왔다. 직장이 있었던 광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숨을 쉬고 싶었다. 주말에도 광주에 있다간 그대로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 주말에도 어김없이 목포에 내려갔다. 월요일 새벽, 그 날은 다른 때와 달리 고속버스 안에서 깨어 있었다. 또 다른 한 주가 시작되었고,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는 중압감에 머리가 무거웠다. 멍하니 창 밖 풍경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내 인생을 바꾼 그 특별한 날은 내게 우연히 찾아왔다.
차창 밖으로 양영학원...이 보였다. 그래, 대학에 한 번 가보자. 어쩌면 책 속에서만 보던 멋진 세상을 만나게 될 지도 몰라. 살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던 때였다.



그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야간대나 전문대가 아닌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진학해야 할 것 같았다. 수학과 영어 실력이 필요했다. 특히 수학이 문제였다. 맹목성을 강요하는 제도나 학교 교육방침에 무척 반항적이었던 나는 수학을 암기과목처럼 가르치는 중학교 수학시간을 무시했다. 눈을 감고 피타고라스의 사인, 코사인, 탄젠트의 각도별 수치를 외울 것을 요구하는 그 무섭기로 소문난 수학선생을 늘 우습게 여겼다. 그 결과 기초수학은 엉망이었다. 상고에 진학한 후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부기, 타자, 주산을 중심으로 성공적인 취업이 가장 중요한 교육 목표인 그곳에서 대입준비과정의 기본기가 쌓일 턱이 없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고등 학생들 틈에서 집합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창피했다. 그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늘 부담스러웠다. 하루종일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다. 언젠가, 내가 여유가 생길 그 날이 오면, 나처럼 가난하지만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을 위해 장학재단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수업시간 만큼은 최선을 다해 그 과정에 참여했다. 워낙 기초가 없는 상태 였기에 같은 내용을 몇 번 들어야만 겨우 그 의미를 아는 것이 태반이었지만, 학원 끝나고 회사 기숙사에 와서도 새벽 두시가 다 되도록 공부 했다. 회사에서 마련해준 기숙사에는 다섯 명의 동료가 함께 살고 있었다. 내 방에는 세 명이 함께 지냈다. 동료들이 TV보고 음악 듣고, 데이트 나갈 때도 나는 내 방에서 수학문제를 풀었다. 몸은 늘 피곤했다. 회사에서는 15분 이내에 점심을 먹고 나머지 45분간을 빈 사무실에서 수학문제를 풀었다. 출근하는 버스, 학원가는 버스에서도 수학문제를 풀었다. 마감이 걸려 밤 늦게 끝나는 날에는 저녁식사를 거르고 택시를 타고 학원에 다녀왔다.



그 해 겨울 대입시험을 치뤘고, 난 전남대에 들어갈 성적을 얻었다. 원서를 넣지 않았다. 서울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통장 잔고를 확인해보았다. 몇 푼 없었다. 재수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1년간 회사에 더 다니기로 결심했다. 학원비와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저축했다. 교육방송을 녹화해놓고, 회사와 학원 시간이 끝난 뒤 그 테잎을 보았다. 학원에 다녔지만 고3을 위한 수학방송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른 과목 역시 암담했다.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과목들 투성이었다. 돌에 새겨 넣다는다는 생각으로 포기하고픈 마음을 다잡곤 했다.



1년 뒤, 회사를 그만 두고 기숙사를 나왔다. 잠자리 해결이 문제였다. 양영학원 뒤, 숙식이 가능한 독서실이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었다. 조그마한 책상 위에 의자를 올려놓고 자야 했고, 1년간 김밥만 먹으며 지내야 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기에 힘들지 않았다. 행복했다.


시간은 빨리 흘러갔고, 또 다시 대입을 보았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필요한 점수보다 낮은 점수였다. 전국 상위 8.5%였다. 낙방했다. 부모님께 1년 더 공부해보겠다고 말씀 드린 후 광주로 올라갔다.



종합학원으로 옮겼고,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독서실에서 나와, 나만의 방을 구했다. 한 겨울이었는데 난방이 안 되는 방이었다. 창문도 없었다. 부엌도 없었다. 그래도 나 혼자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이사하는 날, 나는 너무 행복했다. 새로 옮긴 종합학원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내 실력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우수한 반에 들어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내 주위에 있는 빛나는 별처럼 똑똑했지만 다소 운이 없었던 그 아이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내 실력은 나날이 향상되어갔다.



머리가 너무 아파 마지막 영어시험을 엉망으로 치뤘다. 결과는 상위 1%의 성적이었다.원하는 대학 경영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 할 수 있게 되어, 학비문제를 해결 하였다.


그렇게 나의 대학생활은 시작되었다.

……………………
그 후 몇년뒤.



2004년 1월 1일

전 날 늦은 밤부터 달리기 시작하여 속초에 도착한 것은, 깊은 어둠에 싸인 새벽의 한가운데쯤 이었다. 그 때 나는 숨 쉴 기운도, 눈 뜰 힘도 없을 만큼 절망하고 있었다. 지난 11년간 지나치리만큼 청교도적인 엄격함 속에서 내 자신을 단련시킨 결과가, ‘레디메이드 인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라는 배신감과 허탈함은, 스스로를 냉소와 독소로 비틀어 놓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어둡고 무거운 기운의 새벽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여전히 바람은 드세게 불어 하루를 남보다 먼저 시작하는 사람들이 준비해 놓은, 생존의 터전인 포장마차의 비닐을 거세게 흔들고 있었지만, 깊은 검정에서 남청색의 기운으로 조금씩 주위가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날 나는 하루가 시작되는 모습을 온몸으로 알아가고 있었다. 짙은 어둠에 싸여 있을수록 바람은 거칠게 불어, 서있는 것조차 힘들게 했다. 영원할 것 같은 그 칠흑의 순간이 조금씩 조금씩 흩어지자, 그와 함께 거칠기만 하던 바람 역시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 때…나는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어둠이 짙을수록 살을 에는 듯한 바람 역시 강했다... 어두움을 견뎌내는 것,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순간이지 않는가. 하루의 가장 어두운 순간은 휘몰아치는 폭풍과 함께 있듯, 그 때 내 젊음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칠흑 같은 인생의 이 고통도 점차 사그라들 날이 올 것이다. 그 때가 언제쯤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더 이상 어두울 수 없는 한밤중이야 말로 새벽이, 또 다른 내일이 시작되는 순간이 아닌가. 그래, 다시 한 번 살아보자.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지만, 다시 한 번 떠날 차비를 해보자.

……………..



그런 마음으로 2004년 1월 1일을 보냈고, 몇달 뒤 아주 우연한 인연으로
원하는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직장에 취직했다.

그리고 2005년 1월 1일 나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포스코 지하 카페에서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IP *.152.20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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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
2005.03.21 10:34:07 *.254.184.126
'아주 우연한 인연으로...'가 아닌, 아주 지극한 자신의 노력과 정성으로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신 것을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힘들었을 때 자신을 놓치지 않은 그 마음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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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영
2005.03.23 22:26:31 *.123.123.211
님께... 저는 님께서 잠깐 다니신듯한 회사에 10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결코 아닙니다. 아마 대개가 님처럼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치를 알고, 미션을 알고 그 일의 의미를 조금씩 발견해 가다보면 하루 하루가 너무도 소중한 의미입니다. 하여,, 저는 늘 제가 지금도 몸 담고 있는 -님께서 잠깐 스쳐간- 이 곳을 너무 사랑합니다. 이 곳을 잠깐 거쳐간 것이 저와 인연일진데,,, 그렇다면 꼭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처절하게...기회가 되신다면 다시한번 그 곳을 꼬옥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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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옥
2005.03.24 00:24:26 *.152.203.83
아. 박성영님, 제 표현이 조금 미숙했던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 하느라, 그 스트레스를 잘 이기지 못한 탓이 커서였을거에요.지금 저는 교보생명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교보는 저를 받아주었고, 제가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준 친정같은 곳이지요. 광화문 근처를 갈 때마다, 교보문고에 들를 때마다, 그리고 지금도 근무하고 있는 동기를 만날 때마다 늘 따뜻함을 느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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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2005.03.25 15:00:59 *.233.169.34
퍼가도 될까요 . 제 개인 홈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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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eekim
2005.03.29 12:11:27 *.163.235.23
행복은 소망하는 것의 충족이 아니라 본연의 자아와 일치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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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2005.04.18 08:49:03 *.120.162.227
훌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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