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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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햇병아리 시절의 한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당시는 군대용어로 말하면 사수와 조수의 위계질서가 뚜렷한 시절로 나의 사수는 절대적인 신(神)으로 불릴 정도로 일을 참 잘했다. 내가 몇시간에 걸쳐 작성한 보고서, 작업계획서, 프로그램 소스 등을 사수에게 가져가면 사수는 단 10초도 안 걸려서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을 펜으로 정확히 집어내는 것이었다. 사실 그 순간 속에서는 불길이 노도처럼 일어났지만 귀신같은 솜씨에 어찌할 재간이 없었다.
직장 봉급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나는 사수의 행동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수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1층부터 18층까지 계단을 담배를 물며 오르락 내리락하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직장선배는 일에 착수하기 전에 계단을 어슬렁거리면서 그 일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일이 도대체 필요한 것인가?', '일을 어떤 방향에서 추진해야 하는가?' 등등 일의 청사진을 그려보는 것이다. 밑그림이 그려지면 그 다음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를 한다. 1차적으로 작업이 완료되면 주위 동료의 의견을 듣고 본격적인 작업을 진행한다. 일의 원리와 목적, 방향을 내재화하는 습관이 쌓이다 보니 내공이 깊어지게 된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일해봤자 사수의 손바닥 안에서만 일하게 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파킨슨 법칙에 의하면 업무는 그에 할당된 시간만큼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회사 일정에 쫓겨 일을 해야 할 때 직원들은 근무 시간만 채우도록 일을 늘이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IT 서비스 분야는 초과근무가 많은 편이다. 저가수주, 표준 프로세스 부재 등 비즈니스 환경의 열악함이 주 요인이다. 물론 시스템 오픈이 눈앞에 있고 불가피한 경우에 초과근무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초과근무를 안하면 이상하게 여기는 풍토가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굳이 초과근무가 필요없는 상황이어도 관리자가 고객사의 눈치때문에, '열심히 했다'는 면피 구실을 만들기 위해 잔특근을 지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는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방법들을 권하기도 한다. 이러할 때 실제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동기부여가 안되기 때문에 시간을 때우게 되는 것이다.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일을 진행하다 보면 처음에는 신속하게 진행되는 듯 하나 나중에는 시간에 쫓기게 된다. 일의 방향이 수정되거나 고객의 요구사항이 변경되면 처음부터 다시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계획없이 일단 부딪혀 보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 일을 해치우는데 집착하게 된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것(work hard)에만 매달리는 건 산업화 마인드에 다름아니다. 오늘날 같이 일을 하는데 고도의 창의성이 요구되고 비즈니스의 변화가 심한 환경에서는 일을 효율적으로(work smart)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성이란 단위 노동시간 동안 얼마나 더 많은 노동력을 착취해낼 수 있는가가 아닌 얼마나 더 많은 결과물,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가의 의미로 사용되어야 한다.
일을 잘하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개선점을 찾기 위한 아이디어 능력을 키워야 하고,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어야 하고, 시간관리를 잘해야 하고, 선배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을 잘 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은 일에 대해 생각하는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근자에 새삼 논어의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경구를 보면서 불현듯 직장선배를 떠올리는 것은 일에 대해 먼저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연히 알면서도 쉽게 지나쳐 버리는 나의 조급함을 지적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공자에게는 죄송스럽지만 위 논어의 경구를 이렇게 슬그머니 한번 바꿔 보는 것이다.
'勞而不思則罔 思而不勞則殆'
일(勞)하되 사(思)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思)하되 일(勞)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IP *.51.78.4
직장 봉급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나는 사수의 행동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수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1층부터 18층까지 계단을 담배를 물며 오르락 내리락하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직장선배는 일에 착수하기 전에 계단을 어슬렁거리면서 그 일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일이 도대체 필요한 것인가?', '일을 어떤 방향에서 추진해야 하는가?' 등등 일의 청사진을 그려보는 것이다. 밑그림이 그려지면 그 다음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를 한다. 1차적으로 작업이 완료되면 주위 동료의 의견을 듣고 본격적인 작업을 진행한다. 일의 원리와 목적, 방향을 내재화하는 습관이 쌓이다 보니 내공이 깊어지게 된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일해봤자 사수의 손바닥 안에서만 일하게 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파킨슨 법칙에 의하면 업무는 그에 할당된 시간만큼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회사 일정에 쫓겨 일을 해야 할 때 직원들은 근무 시간만 채우도록 일을 늘이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IT 서비스 분야는 초과근무가 많은 편이다. 저가수주, 표준 프로세스 부재 등 비즈니스 환경의 열악함이 주 요인이다. 물론 시스템 오픈이 눈앞에 있고 불가피한 경우에 초과근무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초과근무를 안하면 이상하게 여기는 풍토가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굳이 초과근무가 필요없는 상황이어도 관리자가 고객사의 눈치때문에, '열심히 했다'는 면피 구실을 만들기 위해 잔특근을 지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는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방법들을 권하기도 한다. 이러할 때 실제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동기부여가 안되기 때문에 시간을 때우게 되는 것이다.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일을 진행하다 보면 처음에는 신속하게 진행되는 듯 하나 나중에는 시간에 쫓기게 된다. 일의 방향이 수정되거나 고객의 요구사항이 변경되면 처음부터 다시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계획없이 일단 부딪혀 보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 일을 해치우는데 집착하게 된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것(work hard)에만 매달리는 건 산업화 마인드에 다름아니다. 오늘날 같이 일을 하는데 고도의 창의성이 요구되고 비즈니스의 변화가 심한 환경에서는 일을 효율적으로(work smart)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성이란 단위 노동시간 동안 얼마나 더 많은 노동력을 착취해낼 수 있는가가 아닌 얼마나 더 많은 결과물,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가의 의미로 사용되어야 한다.
일을 잘하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개선점을 찾기 위한 아이디어 능력을 키워야 하고,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어야 하고, 시간관리를 잘해야 하고, 선배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을 잘 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은 일에 대해 생각하는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근자에 새삼 논어의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경구를 보면서 불현듯 직장선배를 떠올리는 것은 일에 대해 먼저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연히 알면서도 쉽게 지나쳐 버리는 나의 조급함을 지적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공자에게는 죄송스럽지만 위 논어의 경구를 이렇게 슬그머니 한번 바꿔 보는 것이다.
'勞而不思則罔 思而不勞則殆'
일(勞)하되 사(思)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思)하되 일(勞)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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