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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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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5일 09시 02분 등록
내가 근무하는 IT업계에서는 '납기는 생명, 품질은 자존심'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고객과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적시에 만들어 내는 것은 비즈니스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일이며, 이렇게 만들어 낸 제품의 품질은 바로 제조회사의 명예와 엔지니어의 자존심을 표현한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내가 만든 제품을 검사해서 내가 형편없는 일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참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앞다투어 품질경쟁에 뛰어 들고 있다. 수많은 신제품들이 하루에도 수만 건씩 쏟아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고객들은 웬만하면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고객의 제품 선택 기준이 가격에서 품질, 고객서비스 등으로 점차 옮겨 가고 있다. 차별화된 마케팅, 품질 요소가 없으면 출시 제품이 하루 아침에 사장되어 버리는 냉혹한 현실이다. 반면에 품질을 고객에게 선사하면 그것은 최고의 광고가 된다.

소프트웨어 품질을 미국방성은 '요구사항을 만족시키는 소프트웨어 능력의 총량'이라고 하고, IEEE에서는 '소프트웨어가 지닌 바람직한 속성의 정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ISO/IEC 9126-1(품질모델)에서는 소프트웨어 품질의 특성을 기능성, 신뢰성, 사용편의성, 효율성, 유지보수용이성, 이식성의 6가지로 구분한다. 제품 생산자는 고객의 비즈니스 요구사항은 물론 위에 언급한 품질의 6가지 속성을 달성하여 사용자 만족을 얻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납기와 예산에 품질이 희생되는 사례를 자주 목도하게 된다.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주어진 일정과 비용을 맞추기 위해 품질을 희생한다. 품질은 상황에 따라 변경이 가능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한 손에는 동기부여와 방법론, 한 손에는 일정 압박이라는 반 품질적 요소를 적용한다.

또한 품질을 신경 쓰게 되면 '일정을 못 맞춘다', '생산성이 떨어진다', '문서작업이 많아진다.'라는 오해를 하고 있다. 일단 작성하고 나중에 고쳐보는 개발에 젖은 사람들은 이런 것이 불필요한 부담이라고 간주한다. 품질을 이야기 하는 건, 그야말로 여유 있는 자들의 행복한 비명이라고 푸념한다.

그러나 품질을 신경 쓰면 오히려 일정을 단축시킬 수 있다. 제품개발 프로젝트는 적은 결함을 가질수록 빠른 시간에 완성된다. 대부분의 모범적인 프로젝트는 초기에 결함을 잡는데 주력함으로써 개발 일정을 단축시키려고 한다. 지금부터 25년 전 IBM은 빨리 끝나는데 초점을 두고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오히려 비용과 일정이 증가한다는 사례를 발표했다. 품질에 무신경하고, 결함제거보다 진척에만 관심을 갖게 되면 프로젝트 후반부에 결함 제거 활동이 대량으로 일어나 납기가 지연되고, 고객에게 제품 인도 후에는 유지보수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제품 개발 과정은 초기의 모호한 고객의 요구사항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면서, 공기와 같은 위험과 결함을 조기에 식별하고 대응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비단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인생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화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자기 계발하는 모습이 이와 닮아 있다. 아무튼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품질을 계획하고 결함을 제거하는 활동이 진행될 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예방할 수 있다.

품질과 생산성은 공존이 가능하다. 품질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부가된 또 하나의 과부하가 아니다. 품질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품질 프로세스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을 때 귀찮은 일로 여겨진다. 좋은 제품은 잘 만들 수 있는 프로세스를 준수할 때 나올 수 있다. 처음에는 늦고 미흡한 것 같으나 나중에는 심히 창대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품질 때문에 가능하다. 고품질이 궁극적으로 값이 덜 드는 법이다. '우리 사업의 가장 확실한 기반은 품질이다. 그 다음, 그것도 한참이나 다음에 비용이다.'라고 앤드루 카네기는 이미 품질의 중요성을 갈파했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품질 중시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먼저 고객의 의식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직도 어떤 고객은 터무니 없는 것을 요구한다. 현실성이 없는 일정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저가금액으로 고품질을 요구한다. 티코 견적으로 그랜저의 성능을 요구하는 격이다. 아무리 고객이 왕이라 하지만 내부 고객(직원)을 희생시키면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진정한 고객만족은 내부 직원이 만족되면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것이라 믿는다.

품질을 중요시하는 기업은 '품질을 신경 쓰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말이 안 나온다. 품질은 제품을 만들어 낸 생산자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 기업문화로 정착되면 직업 만족도가 올라가고 이직률이 줄어든다.

형식적인 품질 캠페인과 포상으로 품질은 절대 향상될 수 없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말은 기업과 개인(특히 엔지니어)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름없다. 실제 사용자가 요구하는 것 이상의 품질을 추구해야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오직 완벽한 제품에만 우리는 만족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음식의 품질을 결정하고 배달하는 사람이 배달 서비스의 품질을 결정한다. 물론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표준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준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설령 프로세스를 정립 한다 하더라도, 그 프로세스의 질은 마찬가지로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좋은 품질을 만들려면 우선 좋은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품질도 생산성과 마찬가지로 오직 사람에 의해서만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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