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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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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7일 16시 03분 등록
옛날 옛적 약 오 만년 전, 나는 스스로 자신이 우유부단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었다. 예를 들어,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 ‘자기 성격의 장∙단점’에 대해 기술하라는 말이 나오면 나는 고지식하게도 내 성격의 단점은 “내성적이며 우유부단한 성격..운운..” 하는 말로 꼬박꼬박 그 난을 채우곤 했다.

자신이 우유부단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꽤 오랫동안을 살아온 셈인데, 물론 나는 자신이 스스로 규정해버린 이런 우유부단함을 싫어했다. “내가 두려워하고, 지겨워하고 언제나 차마 말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나 “라는 말은 맞는 얘기라고 여기며, 나 자신의 우유부단함도 그 속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우유부단한 사람일까? 스스로 규정지은 자신의 성격에 대한 이러한판단은 올바른 것이었을까?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나는 그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었다.

나는 순간 순간 변하는 상황 속에서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후 그 판단의 옳고 그름을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그런 성격의 일로서 밥벌이를 삼고 있다.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행동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두고 우유부단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적절치 않은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스스로 우유부단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을까?
두 가지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첫째는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해 어떤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때, 둘째는 어떤 일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하거나 또는 결정을 재촉 받았을 때, 잘 몰라서 그 일을 결정하기가 어려워 주저하고 망설였을 때.

생각해보면, 전자의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후자의 경우, 그것은 지식이나 앎과 연관된 문제인 것이지, 사람의 성격과는 무관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뭘 몰라서 판단할 수 없을 때, 그 결정을 유보하고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현명한 일에 속하는 일일 수 있다. 모르는 일이 있으면 올바른 판단을 위해 책을 보거나 연구를 하고, 그도 아니면 그 일을 잘 아는 사람을 찾아 물어본 연후에 판단하고 처리하는 것이 옳은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금방 결정짓지 못하고 망설이게 되었을 때, 특히 주위의 독촉이나 재촉이 있는 경우, 스스로 자신을 우유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보면,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 쉽게 결정하지 않고 선택을 유보했을 때, 그것이 오히려 잘한 일이 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워렌 버펫은 투자와 관련하여 “현금을 깔고 앉아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현금을 가지고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보다는 백 번 낮다”는 얘기를 했다. ‘백 번’을 생각해도 옳은 얘기다. 투자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스로 내린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유행을 쫓아서, 남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혹은 타인의 평가에 의지해서 알지 못하는 일을 섣불리 결정하고 행한다는 것은, 열에 아홉은 어리석은 일로 판정 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때로 인생에 있어 꽤나 위태로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뭘 몰라서, 알지 못해서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것 뿐이다. 그것은 무지(無知)와 관련된 문제이지, 성격과 관련된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이런 사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갈 때 나는 사는 게 재미있다는 걸 느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렇게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행복이란 자신을 바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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