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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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요즘 봄은 너무 짧기도 하거니와, 봄인지 여름인지 애매할 때가 많다. 봄이라고 느끼면 어느 새 여름이 다가 와 있다.
인생에 있어 귀중한 또 하나의 봄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나는 올 봄을 제대로 보고 느끼고 즐겼던 것일까?
‘가장 어여쁜 나무’라는 영국 시가 있다.
가장 어여쁜 나무
- A. E. Housman
가장 어여쁜 나무, 벚나무는 이제
가지에 만발한 꽃을 달고
숲 속 승마 길 둘레에 섰네,
부활절 무렵이라 흰 옷을 입고
이제 내 칠십 평생에서
스무 핸 다시 오지 않으리.
일흔 번 봄에서 스무 번 봄을 빼면
남는 건 오직 쉰 번의 봄.
꽃 핀 것들을 바라보기엔
쉰 번의 봄도 잠깐 동안.
숲 속을 돌아돌아 나는 가리라,
흰 눈을 걸친 벚나물 보러.
꽃 핀 것들을 바라보기엔 쉰 번의 봄도 잠깐이라고 그런다.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려 애쓰고 나무와 꽃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건 아마 저 시를 읽은 다음부터일 것이다. 그 이전에는 계절이나 자연의 변화에 무심했던 편이었다. 봄이 오면 오나 보다, 가면 가나 보다 했다.
내 인생에 있어 봄은 이제 몇 번 남은 것일까?
어릴 적 살던 할아버지 댁에는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어 봄이면 눈 같이 하얀 꽃을 피웠다. 이제는 말라 죽어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그 살구 나무는 봄이 되면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황홀하게 했다. 바람에 나부끼며 흩날리던 순백 꽃들의 환희와 황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살구나무는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영상을 아로새겨놓았다. 하도 생생한 기억이라 때로 나무의 정기(精氣)가 내 안에 남아있는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내 안에서 나와 함께 할 것이기에 그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그가 내 안에서 다시 피어날 때 나는 그가 고맙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기에. 감흥과 감동, 느낌, 아름다운 기억...살아있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잊혀지지 않고 내 안에 남아있는 거,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거, 그래서 나에게 위안을 주고 힘을 주는 거...그것이 나를 나이게 하고 나를 유일하게 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그것이 또한 타인과 나의 ‘차이(다름, 異)’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 봄은 몇 번 남지 않았다. 고작해야 쉰번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현재, 오늘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순간을 느끼고 즐길 일이다. 애써 주위를 둘러보고 들여다봐야 한다. 순수한 지각으로서. 그것이 세상과 나의 소통이자 나를 살아있게 하는 그 무엇일 것이다. 오늘을 잡아야 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 사냥꾼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추억이라는 감정을 이용하여 복제인간을 가려내고 제거한다. 안드로이드, 즉 로봇에게는 추억이 없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리플리컨트 ‘룻거 하우어’는 마지막 순간 자신이 보고 경험한 행성에서의 전투와 아름다운 노을 풍경 등 추억을 되새긴 후, 자신을 죽이려 한 데커드를 살려주고 눈을 감는다.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그 모든 순간들은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곧 시간 속에서 사라져 가겠지.
죽을 시간이야.
< 올 봄에 만난 꽃과 그림 >













IP *.237.200.230
인생에 있어 귀중한 또 하나의 봄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나는 올 봄을 제대로 보고 느끼고 즐겼던 것일까?
‘가장 어여쁜 나무’라는 영국 시가 있다.
가장 어여쁜 나무
- A. E. Housman
가장 어여쁜 나무, 벚나무는 이제
가지에 만발한 꽃을 달고
숲 속 승마 길 둘레에 섰네,
부활절 무렵이라 흰 옷을 입고
이제 내 칠십 평생에서
스무 핸 다시 오지 않으리.
일흔 번 봄에서 스무 번 봄을 빼면
남는 건 오직 쉰 번의 봄.
꽃 핀 것들을 바라보기엔
쉰 번의 봄도 잠깐 동안.
숲 속을 돌아돌아 나는 가리라,
흰 눈을 걸친 벚나물 보러.
꽃 핀 것들을 바라보기엔 쉰 번의 봄도 잠깐이라고 그런다.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려 애쓰고 나무와 꽃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건 아마 저 시를 읽은 다음부터일 것이다. 그 이전에는 계절이나 자연의 변화에 무심했던 편이었다. 봄이 오면 오나 보다, 가면 가나 보다 했다.
내 인생에 있어 봄은 이제 몇 번 남은 것일까?
어릴 적 살던 할아버지 댁에는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어 봄이면 눈 같이 하얀 꽃을 피웠다. 이제는 말라 죽어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그 살구 나무는 봄이 되면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황홀하게 했다. 바람에 나부끼며 흩날리던 순백 꽃들의 환희와 황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살구나무는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영상을 아로새겨놓았다. 하도 생생한 기억이라 때로 나무의 정기(精氣)가 내 안에 남아있는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내 안에서 나와 함께 할 것이기에 그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그가 내 안에서 다시 피어날 때 나는 그가 고맙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기에. 감흥과 감동, 느낌, 아름다운 기억...살아있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잊혀지지 않고 내 안에 남아있는 거,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거, 그래서 나에게 위안을 주고 힘을 주는 거...그것이 나를 나이게 하고 나를 유일하게 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그것이 또한 타인과 나의 ‘차이(다름, 異)’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 봄은 몇 번 남지 않았다. 고작해야 쉰번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현재, 오늘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순간을 느끼고 즐길 일이다. 애써 주위를 둘러보고 들여다봐야 한다. 순수한 지각으로서. 그것이 세상과 나의 소통이자 나를 살아있게 하는 그 무엇일 것이다. 오늘을 잡아야 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 사냥꾼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추억이라는 감정을 이용하여 복제인간을 가려내고 제거한다. 안드로이드, 즉 로봇에게는 추억이 없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리플리컨트 ‘룻거 하우어’는 마지막 순간 자신이 보고 경험한 행성에서의 전투와 아름다운 노을 풍경 등 추억을 되새긴 후, 자신을 죽이려 한 데커드를 살려주고 눈을 감는다.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그 모든 순간들은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곧 시간 속에서 사라져 가겠지.
죽을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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