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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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달봉이’는 기약할 수 없는 먼 여행의 길을 떠났다. 예상은 했지만 온갖 어려움이 가득했다. 그래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기어갔다. 자신을 비웃었던 다른 달팽이들에게 바다를 보고 와서 보란 듯이 자랑하고 싶었다. 으스대며 이야기를 들려줄 자신을 생각하니 없던 힘도 생겨났다. 때로는 잠도 설쳐가고 휴식도 마다하고 부지런히 앞만 보고 갔다. 내리쬐는 태양아래 물기 없는 자갈밭을 기어갈 때의 그 고통, 얼마나 남았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목적지, 쉼 없이 자신을 노리는 천적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위장술 등 바다를 보겠다는 일념이 없었다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한계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허물어져만 갔다. 기약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가 위기였다. 특히, 고단함 때문에 등껍질은 십자가처럼 천근만근 무겁게만 느껴졌다. 등껍질만 벗어버리면 바다로 내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윗돌에서 수도 없이 뛰어내렸다. 하지만 껍질은 상처만 날뿐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아! 이게 무슨 천형이란 말인가! 방법만 알았다면 벌써 몇 번은 벗어 던졌을 텐데...’
등껍질이 저주받은 곱사등처럼 느껴졌고 그렇게 태어난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아름다웠던 등껍질도 하얀 속살도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만 갔다. 바다는 고사하고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아 여행을 자초한 자신이 미웠다. 그러다가 어느 숲 속에서 이상하게 생긴 달팽이를 만났다. 녀석은 희한하게 등껍질이 없는 민달팽이였다. 생긴 것은 묘했지만 ‘달봉이’에게는 여행 내내 그려온 이상적인 현자(賢者)의 모습이었다. 정말 자유로워 보였다. 저렇게 등껍질이 없는 달팽이는 세상 곳곳을 다 누비고 다녔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재촉하듯 물었다.
“집 없는 달팽이야! 바다를 본 적이 있니? 그리고 어떻게 하면 너처럼 집을 버릴 수 있니? 너처럼 되는 방법을 좀 가르쳐 줄래?” 하지만, 민달팽이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바다가 뭐지? 그리고 네 등에 근사하게 매달린 집을 버릴 수 있냐구? 내가 부럽다구? 하하! 내 말 좀 들어볼래. 난 말이야. 천적을 만나도 나를 숨길 곳이 없어! 힘들어도 아무데서나 쉴 공간이 없어. 그리고 맑은 날 조금만 다녀도 몸이 금새 말라버려 멀리 갈 수가 없어. 너보다 좀더 빨리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네가 가려는 바다같이 먼 곳은 감히 갈수가 없단다. 난 어떻게 하면 너처럼 멋지고 좋은 집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
‘달봉이’는 그때서야 알았다. 자신의 등에 올려져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왕관 같은 멋진 집이었다는 것을! 쉬면서 다시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는 마음의 집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니 여행을 떠나고 나서 오랫동안 껍질 속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뿌리 채 흔들어 놓은 그 파도소리를 들은 지 무척 오래되었음을 알았다. 달봉이는 오랜만에 껍질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점점 뚜렷하게 파도소리와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졸음이 쏟아져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오랜 여행으로 인한 피곤과 상처가 자신도 모르게 파도에 씻겨가는 모래알처럼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꿈결처럼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짠내음이 코끝을 찔렀다. 노래소리는 점점 강해졌다.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이 땅의 모든 달봉이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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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이’는 기약할 수 없는 먼 여행의 길을 떠났다. 예상은 했지만 온갖 어려움이 가득했다. 그래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기어갔다. 자신을 비웃었던 다른 달팽이들에게 바다를 보고 와서 보란 듯이 자랑하고 싶었다. 으스대며 이야기를 들려줄 자신을 생각하니 없던 힘도 생겨났다. 때로는 잠도 설쳐가고 휴식도 마다하고 부지런히 앞만 보고 갔다. 내리쬐는 태양아래 물기 없는 자갈밭을 기어갈 때의 그 고통, 얼마나 남았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목적지, 쉼 없이 자신을 노리는 천적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위장술 등 바다를 보겠다는 일념이 없었다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한계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허물어져만 갔다. 기약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가 위기였다. 특히, 고단함 때문에 등껍질은 십자가처럼 천근만근 무겁게만 느껴졌다. 등껍질만 벗어버리면 바다로 내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윗돌에서 수도 없이 뛰어내렸다. 하지만 껍질은 상처만 날뿐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아! 이게 무슨 천형이란 말인가! 방법만 알았다면 벌써 몇 번은 벗어 던졌을 텐데...’
등껍질이 저주받은 곱사등처럼 느껴졌고 그렇게 태어난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아름다웠던 등껍질도 하얀 속살도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만 갔다. 바다는 고사하고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아 여행을 자초한 자신이 미웠다. 그러다가 어느 숲 속에서 이상하게 생긴 달팽이를 만났다. 녀석은 희한하게 등껍질이 없는 민달팽이였다. 생긴 것은 묘했지만 ‘달봉이’에게는 여행 내내 그려온 이상적인 현자(賢者)의 모습이었다. 정말 자유로워 보였다. 저렇게 등껍질이 없는 달팽이는 세상 곳곳을 다 누비고 다녔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재촉하듯 물었다.
“집 없는 달팽이야! 바다를 본 적이 있니? 그리고 어떻게 하면 너처럼 집을 버릴 수 있니? 너처럼 되는 방법을 좀 가르쳐 줄래?” 하지만, 민달팽이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바다가 뭐지? 그리고 네 등에 근사하게 매달린 집을 버릴 수 있냐구? 내가 부럽다구? 하하! 내 말 좀 들어볼래. 난 말이야. 천적을 만나도 나를 숨길 곳이 없어! 힘들어도 아무데서나 쉴 공간이 없어. 그리고 맑은 날 조금만 다녀도 몸이 금새 말라버려 멀리 갈 수가 없어. 너보다 좀더 빨리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네가 가려는 바다같이 먼 곳은 감히 갈수가 없단다. 난 어떻게 하면 너처럼 멋지고 좋은 집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
‘달봉이’는 그때서야 알았다. 자신의 등에 올려져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왕관 같은 멋진 집이었다는 것을! 쉬면서 다시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는 마음의 집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니 여행을 떠나고 나서 오랫동안 껍질 속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뿌리 채 흔들어 놓은 그 파도소리를 들은 지 무척 오래되었음을 알았다. 달봉이는 오랜만에 껍질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점점 뚜렷하게 파도소리와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졸음이 쏟아져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오랜 여행으로 인한 피곤과 상처가 자신도 모르게 파도에 씻겨가는 모래알처럼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꿈결처럼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짠내음이 코끝을 찔렀다. 노래소리는 점점 강해졌다.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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