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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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특히 대학 재학시절 성격에 관해 숱하게 들은 말이 있다.
"너는 성격 좀 고쳐야 해"
그렇게 말이 없어서야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릴 것이며 연애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걱정이었다. 더불어 나중에 사회생활 할 때에도 어려움이 있지 않겠느냐는 식의 애정 어린 충고였다.
실제로 내성적인 성격은 일상 생활에서 불편함을 주는 요소였다. 뭔가 부탁을 하고 싶어도 망설였고,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하지 못했고, 사귀자고 말하고 싶어도 그리 말하지 못했고,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고 싶어도 타인의 뜻에 따라가곤 했다.
한참을 그렇게 행동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은 이런데 나는 왜 내 뜻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매사에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일까? 희생정신이 강해서? 택도 없는 소리다. 겉으로는 그리 보일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전혀 그럴 의사가 없다. 지금은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왜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지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곰곰이 속을 들여다보니 '고독'이라는 것이 보였고, 그에 대한 '두려움'이 보였다.
'고독에 대한 두려움'
행여 나의 주장이 타당치 않은 것일 경우 혹은 상대방이 그렇게 평가할 경우, 상대방이 영영 나에게 등을 돌릴지 모른다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나에게 등을 돌리는 것에 대해 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학교 내에서 '혼자'라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성격에 뭔가 결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추측들은 타당한 것인가?
여러가지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단 친구들의 대화, 행동을 주시해 보았다. 어떤 의견을 제시할 때 항상 그것이 타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때때로 그것은 수용되었고 예상 밖으로 큰 무리 없이 상황은 진행되어 갔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 들여지지 않아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들이었다. 그럼 나도 그 친구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되는 것일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차이점에 주목해 보았다. 상대적으로 매사에 완벽하기를 원하며 다른 친구들에 비해 예민하기에 상처를 잘 받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한 특성들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일단 원인이 보이니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것을 고치고 어느 것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할지가 문제였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를 놓아주자'
더 이상 속박을 견디기 힘들었다. 내 행동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당분간은 덜 완전한 사람으로 지내야 했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어떤 이들은 성격을 고치라고 애정 어린 충고를 해주기도 했지만, 그 사람들 말대로 하다보니 그것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성격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설령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지더라도 내 모습대로 살아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소수이지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왜 그 사람들은 나를 따르는지 궁금했고, 오랜 시간 함께 지내댜 보니 그 이유도 파악이 되어 갔다.
............................................................................................
그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렸지만 지금도 말 수가 적은 편이다. 가끔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그 미안한 마음 때문에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애썼는데 지금은 그런 시도도 없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다만 내가 말을 해야할 상황이라면 다소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라도 - 어색함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 말을 하곤 한다. 그리고 여럿이 함께 있을 때보다는 적은 사람들과 한 자리에 있을 때 비교적 말문이 트이는 편이다.
한때 대인기피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 한적도 있었다. 우선은 두려움의 원인부터 찾아 보았고, 그 두려움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 따져 보았다. 당장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렸고, 수용해야 하는 것은 수용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나와 맞는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늘렸다. 그러는 와중에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도 대인관계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만일 길거리에서 얼굴에 철판 깔고 낯선 이들에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또 '깊은 실의'에 빠질 것이다. 그저 그러한 상황이 오지 않게 미리 피할 뿐이다.
또한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아직까지도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편이다. 예전에는 그것이 무척 못마땅했는데 지금은 그저 내 모습이려니 한다.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상황이면 양해를 구할 뿐이다.
"제가 좀 주변머리가 없습니다"
라고....
IP *.38.214.85
"너는 성격 좀 고쳐야 해"
그렇게 말이 없어서야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릴 것이며 연애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걱정이었다. 더불어 나중에 사회생활 할 때에도 어려움이 있지 않겠느냐는 식의 애정 어린 충고였다.
실제로 내성적인 성격은 일상 생활에서 불편함을 주는 요소였다. 뭔가 부탁을 하고 싶어도 망설였고,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하지 못했고, 사귀자고 말하고 싶어도 그리 말하지 못했고,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고 싶어도 타인의 뜻에 따라가곤 했다.
한참을 그렇게 행동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은 이런데 나는 왜 내 뜻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매사에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일까? 희생정신이 강해서? 택도 없는 소리다. 겉으로는 그리 보일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전혀 그럴 의사가 없다. 지금은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왜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지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곰곰이 속을 들여다보니 '고독'이라는 것이 보였고, 그에 대한 '두려움'이 보였다.
'고독에 대한 두려움'
행여 나의 주장이 타당치 않은 것일 경우 혹은 상대방이 그렇게 평가할 경우, 상대방이 영영 나에게 등을 돌릴지 모른다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나에게 등을 돌리는 것에 대해 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학교 내에서 '혼자'라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성격에 뭔가 결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추측들은 타당한 것인가?
여러가지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단 친구들의 대화, 행동을 주시해 보았다. 어떤 의견을 제시할 때 항상 그것이 타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때때로 그것은 수용되었고 예상 밖으로 큰 무리 없이 상황은 진행되어 갔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 들여지지 않아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들이었다. 그럼 나도 그 친구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되는 것일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차이점에 주목해 보았다. 상대적으로 매사에 완벽하기를 원하며 다른 친구들에 비해 예민하기에 상처를 잘 받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한 특성들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일단 원인이 보이니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것을 고치고 어느 것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할지가 문제였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를 놓아주자'
더 이상 속박을 견디기 힘들었다. 내 행동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당분간은 덜 완전한 사람으로 지내야 했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어떤 이들은 성격을 고치라고 애정 어린 충고를 해주기도 했지만, 그 사람들 말대로 하다보니 그것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성격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설령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지더라도 내 모습대로 살아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소수이지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왜 그 사람들은 나를 따르는지 궁금했고, 오랜 시간 함께 지내댜 보니 그 이유도 파악이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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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렸지만 지금도 말 수가 적은 편이다. 가끔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그 미안한 마음 때문에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애썼는데 지금은 그런 시도도 없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다만 내가 말을 해야할 상황이라면 다소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라도 - 어색함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 말을 하곤 한다. 그리고 여럿이 함께 있을 때보다는 적은 사람들과 한 자리에 있을 때 비교적 말문이 트이는 편이다.
한때 대인기피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 한적도 있었다. 우선은 두려움의 원인부터 찾아 보았고, 그 두려움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 따져 보았다. 당장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렸고, 수용해야 하는 것은 수용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나와 맞는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늘렸다. 그러는 와중에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도 대인관계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만일 길거리에서 얼굴에 철판 깔고 낯선 이들에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또 '깊은 실의'에 빠질 것이다. 그저 그러한 상황이 오지 않게 미리 피할 뿐이다.
또한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아직까지도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편이다. 예전에는 그것이 무척 못마땅했는데 지금은 그저 내 모습이려니 한다.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상황이면 양해를 구할 뿐이다.
"제가 좀 주변머리가 없습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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