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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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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5일 11시 10분 등록
현대인에게 휴대폰은 가장 밀착된 개인용 전자제품이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그리고 외출할 때 휴대폰은 반드시 지참하는 필수품이다. 최근에는 휴대폰의 기능이 전화통화 이외에 카드결제, 버스나 전철 요금 지불, 위치 추적, 디지털 카메라, MP3, PDA 등의 기능과 융합(컨버전스)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그 진화의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휴대폰은 기능이 다양화되면서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문명의 이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야말로 휴대폰은 소유자의 신체의 일부분이요, 나아가 아바타인 셈이다.

휴대폰은 말 그대로 휴대하기 편리하고 언제 어디서나 (유비쿼터스 환경)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휴대폰의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다. 유해한 전자파가 발생되고 스팸 광고로 인한 사생활 침해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휴대폰 중독’ 증상이다. 휴대폰을 집에 놔두고 출근한 날이면 왠지 불안하고 허전하다. 일을 하다가, 회의를 하다가 문득문득 휴대폰을 습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전화가 안 오는 날이면 ‘왜 이렇게 전화가 안 오지? 나의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작년에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이 관내 B고등학교 1학년 재학생 3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휴대폰 소지자 276명중 29%(80명)가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등의 심각한 휴대폰 중독증세를 보였다. 또 60%(160명)가 휴대폰이 오랫동안 울리지 않으면 벨이 제대로 설정 됐는지 확인하거나 휴대폰이 꺼져있으면 누군가에게 문자메시지가 와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사람들은 손바닥보다 작은 휴대폰에 꼼짝도 못하는 노예가 되어 버렸다. 과연 우리는 휴대폰 없이 제대로 하루를 살 수 있을까?

휴대폰과 관련하여 나를 짜증나게 하는 일 중의 하나는 회의 중에 휴대폰 통화를 하는 사람이다. 분명 그런 사람은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한가지 일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데 두 가지를 동시에 하려고 하니 천재가 아닌 이상 둘 다 별볼일 없이 일이 진행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정녕 통화하는 일이 급한지도 의문이고 그렇다면 회의를 왜 들어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엇이 그렇게 급한 것인지, 과연 휴대폰 없는 시절에는 일이 어떻게 진행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또한 회의에 참석한 다른 사람의 집중을 빼앗는다. 비즈니스로 포장된 휴대폰의 위력 앞에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윤리의식마저 상실된 모습을 나는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휴대폰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항상 나를 감시하는 통제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점이다. 휴대폰은 노동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도구로도 24시간 활용된다. 가끔 휴대폰이 잘 안 터지는 ‘버뮤다 사각지대’ 공간에 있으면 사정권에서 벗어난 사냥감처럼 안도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유비쿼터스의 가장 큰 역기능은 바로 ‘통제와 감시’이다. 이 거대한 모니터링 도구에 유일하게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휴대폰을 꺼버리는 소극적인 대응밖에 없다. 그나마 다시 라이브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질문이 날아온다. ‘무슨 일 있었어?’ 휴대폰이 나의 대변인 구실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휴대폰의 기종과 기능이 다양해지면서 소위 ‘휴대폰 매니아’ 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다 문자 메시지를 쉼 없이 보내는 엄지족들을 보는 것은 이제는 흔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매니아란 좋은 말로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미칠 정도로 빠져있다는 말이고 나쁜 말로 하면 중독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위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들 중에 매니아들이 많다. 현실 인간관계에서 방전된 관념적인 사람은 인간관계를 통한 세상보다 물리적 세상에서 더 편안함과 설레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소위 '매니아'의 세계를 살펴보면 생명이 없는 어떤 물체에 열정적으로 빠져드는 '매니아'들은 거의가 남자들이라는 점은 퍽 흥미로운 사실이다. 아마 여자의 뇌는 감성기능을 맡는 변연계가 발달한 반면, 남자의 뇌는 논리적인 사고와 분석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이 더 발달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상의 삶은 여자보다 남자가 더 피곤하게 느껴진다.

인간과 인간의 교류는 컴퓨터, 휴대폰의 전송과 수신, 인터페이스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제러미 리프킨이 말한 것처럼 가장 깊은 인간의 교류는 언제나 지리적 공간에서 일어난다.

몇 해 전에 보았던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면 길거리 입간판들이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광고물들이 특정 사람을 인식하면 컴퓨터에 저장된 인물정보에 맞춰 그가 좋아하는 제품을 선전하는 일종의 ‘맞춤형 광고’다. 사람의 홍채인식을 통해 특정 인물을 인식하는 광고판들은 “고객님의 짙은 검정색 머리와 핸섬한 취향에 어울리는 우리 XX사의 신제품을 써보세요” 라고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말을 건넨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쇼핑을 하는 것인지, 제품들에 의해 쇼핑을 당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벌써부터 휴대폰에 의해 우리의 생활과 사고를 지배당하고 있는 지 모른다. 멀지 않아 인간의 주체성은 상실되고 인간의 로봇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TV, 인터넷, 알코올, 담배에 이어 휴대폰 중독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한탄한다.
휴대폰 줄에 매달린 부처님 손바닥의 삶에서 부자유를 떠올린다.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사실에서 고단한 삶이 연상된다.
패스트푸드적인 편리함 속에서 소통과 가치의 부재를 경험한다.

주어진 정보에만 수동적으로 길들여진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더 이상 독서나 사색을 통해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인내가 너무 부족하다. 이제 성찰을 통해 방전된 삶을 충전시켜야 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휴대폰을 꺼놓을 수 있는 과감한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휴대폰이 없는 자유를 만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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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5.06.15 22:55:11 *.190.172.240
병곤님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매니아"라는말을 참 좋게생각했는데...^^* 요즘 저는 무소유를 생각하며 무소유의 삶은 어려울지라도 좀 단순하게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중입니다. 소유에서 벋어나는 자유를 찾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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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5.06.16 10:50:16 *.248.117.5
기원님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항상 가까이 계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소유는 출가해야 가능하고 저도 단순무식과격(단무지)하게 살렵니다. 내가 깨닫고 내 몸으로 자릿하게 퍼지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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