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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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때 친했던 쌍동이 친구가 있다. 동생이랑은 1학년 때 한 반을 했고 형과는 2학년 때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동생과는 그냥 그런 사이였고 형과는 친했었는데 3학년에 올라가서는 그다지 교류가 없다가 학력고사를 치를 무렵 우연히 같은 학과에 지망한 것을 알게 되었다. 둘다 합격해서 대학에서 다시 만나게 됐고 동생과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형 녀석이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일찍 군대를 갔다. 현실도피성의 군입대였기에 그곳에서도 제대로 적응했을리가 만무하다.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러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편지가 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가까이 했던 것들이 한 순간에 멀어진 것이 견디기 힘들었을테다. 객지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편지에서 드러나는 그의 말투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녀석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항상 옆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그의 새로운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조금이나마 위로를 주고자 편지가 도착하는 족족 답장을 보내줬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한 봉투와 편지지였지만 그 위에 쓴 글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만을 위해 쓴 글이었다. 한장 넘게 글을 쓰고 봉투에 담아 우체국에 들러 우표를 붙이고 우편함에 편지를 넣고 나서는 또 얼마 뒤에 보내질 그의 편지가 사뭇 기다려지곤 했다.
언제까지 서로 편지를 주고 받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녀석 군 생활이 조금씩 편해질 무렵부터 뜸해지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그 친구와 그렇게 편지를 주고 받은 이후로는 누구에겐가 친필로 글을 전해준 기억이 거의 없다. 요즘같은 세상에 친구들에게 그런 식으로 편지를 보낸다면 '너 왜 그래?' 라는 식의 답변만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가끔이나마 마음을 담긴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하지만 예전에 친구의 편지를 받았을 때의 그러한 감흥은 좀처럼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스팸메일, 상업성메일을 처리해야 하는 일과가 하나 늘었다. 그런 것들을 지우고 남는 메일들은 대부분 사무적인 내용의 메일이거나 카드명세서 같은 일종의 '독촉장' 같은 것들이다.
다양한 편지지를 이용할 수 있고, 예쁜 그림을 배경으로 쓸 수 있으며, 배경 음악도 삽입할 수 있을 정도로 이메일로도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업체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가끔씩 그렇게 예쁘게 포장된 메일을 받아보긴 하지만 역시나 대문 옆 편지함에 들어 있는 편지를 꺼내 읽을 때의 그 맛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상대방이 보내준 것과 똑같은 메일을 나도 그대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친필로 직접 쓴 편지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다.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설령 똑같이 생긴 종이에 똑같은 내용을 적는다 하더라도 먼저 쓴 것과 완전히 같지 않다. 더군다나 처음 쓸 때의 마음과 다시 쓸 때의 마음은 전혀 다르다.
디지털 시대의 편리함 중 하나가 원본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복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만드는 데에는 큰 노력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마우스 클릭 몇 번만 하면 그만이다. 편리하기는 한데 정감이 가지는 않는다. 아무리 예쁘게 꾸며진 이메일을 받는다고 해도 '예쁜 편지지가 많은 사이트에 가입을 했나보다' 혹은 '어디서 예쁘게 생긴 그림 잘도 찾았네'라는 마음이 먼저 생겨난다.
나이 탓인지 몰라도 설레임이라는 것을 느껴본지 오래이고, 가슴이 뭉클해져본 기억도 꽤나 오래전 일인 듯 하다.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친구들 마음이 모두 내 마음 같다면 모를까. 이런 공상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저 혼자 지니고 있다가, 가끔씩 이런 공간에 뱉어낼 뿐. 서로 이메일 주고 받는 것도 이젠 거의 하지 않는다.
편리함 때문에 희생 되어 버린 그러한 정감이 새삼 그리워진다.
IP *.38.214.85
형 녀석이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일찍 군대를 갔다. 현실도피성의 군입대였기에 그곳에서도 제대로 적응했을리가 만무하다.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러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편지가 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가까이 했던 것들이 한 순간에 멀어진 것이 견디기 힘들었을테다. 객지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편지에서 드러나는 그의 말투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녀석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항상 옆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그의 새로운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조금이나마 위로를 주고자 편지가 도착하는 족족 답장을 보내줬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한 봉투와 편지지였지만 그 위에 쓴 글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만을 위해 쓴 글이었다. 한장 넘게 글을 쓰고 봉투에 담아 우체국에 들러 우표를 붙이고 우편함에 편지를 넣고 나서는 또 얼마 뒤에 보내질 그의 편지가 사뭇 기다려지곤 했다.
언제까지 서로 편지를 주고 받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녀석 군 생활이 조금씩 편해질 무렵부터 뜸해지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그 친구와 그렇게 편지를 주고 받은 이후로는 누구에겐가 친필로 글을 전해준 기억이 거의 없다. 요즘같은 세상에 친구들에게 그런 식으로 편지를 보낸다면 '너 왜 그래?' 라는 식의 답변만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가끔이나마 마음을 담긴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하지만 예전에 친구의 편지를 받았을 때의 그러한 감흥은 좀처럼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스팸메일, 상업성메일을 처리해야 하는 일과가 하나 늘었다. 그런 것들을 지우고 남는 메일들은 대부분 사무적인 내용의 메일이거나 카드명세서 같은 일종의 '독촉장' 같은 것들이다.
다양한 편지지를 이용할 수 있고, 예쁜 그림을 배경으로 쓸 수 있으며, 배경 음악도 삽입할 수 있을 정도로 이메일로도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업체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가끔씩 그렇게 예쁘게 포장된 메일을 받아보긴 하지만 역시나 대문 옆 편지함에 들어 있는 편지를 꺼내 읽을 때의 그 맛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상대방이 보내준 것과 똑같은 메일을 나도 그대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친필로 직접 쓴 편지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다.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설령 똑같이 생긴 종이에 똑같은 내용을 적는다 하더라도 먼저 쓴 것과 완전히 같지 않다. 더군다나 처음 쓸 때의 마음과 다시 쓸 때의 마음은 전혀 다르다.
디지털 시대의 편리함 중 하나가 원본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복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만드는 데에는 큰 노력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마우스 클릭 몇 번만 하면 그만이다. 편리하기는 한데 정감이 가지는 않는다. 아무리 예쁘게 꾸며진 이메일을 받는다고 해도 '예쁜 편지지가 많은 사이트에 가입을 했나보다' 혹은 '어디서 예쁘게 생긴 그림 잘도 찾았네'라는 마음이 먼저 생겨난다.
나이 탓인지 몰라도 설레임이라는 것을 느껴본지 오래이고, 가슴이 뭉클해져본 기억도 꽤나 오래전 일인 듯 하다.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친구들 마음이 모두 내 마음 같다면 모를까. 이런 공상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저 혼자 지니고 있다가, 가끔씩 이런 공간에 뱉어낼 뿐. 서로 이메일 주고 받는 것도 이젠 거의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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