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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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로 편지를 받지 못한 분들을 위해 남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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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소방 학교에 가서 강연을 하였습니다. 아주 더운 날이었지요. 그곳에는 소방서 파출소장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지금까지 119 구급대 신세를 세 번이나 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번은 스키 타다 다쳤을 때고, 또 한 번은 도랑에 빠져 가슴을 다쳤을 때고, 또 한 번은 싱크대 밑 좁은 공간에 들어가 작업하고 나온 후 갑자기 허리를 쓸 수 없어서 응급실에 실려 갔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왜 119 구급대원들은 어둠 속에서도 진심으로 고마워서 주는 약간의 감사의 표시조차 받지 않는지, 어떻게 한국에서 가장 깨끗한 조직이 될 수 있었는지 물어 보았지요.
약간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오래된 전통입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존중하고 지킵니다”
그러자 또 사람이 말했습니다.
“우린 열악한 상황에서 일합니다. 깨끗함마저 무너지면 우리에게 남는 자부심은 사라집니다. 우리도 무너집니다. ”
언제 어디서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르면 가야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고됩니다 ‘박봉에 힘든 일’은 누구도 원치 않습니다. 119가 119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위급한 상황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위급함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 이것이 그들의 자랑입니다.
또 하나는 자율성에 있습니다. 일을 당하여 그들이 믿는 것은 자신과 동료밖에 없습니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그들은 자신이 최선이라고 믿는 것을 합니다. 오직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 책임집니다. 자율성의 맛이 그들은 견디게 하고 자긍심을 가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일이 명예고 자랑인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좋았습니다. 한 여름 풀먹인 빳빳한 옷을 입은 사람들처럼 시원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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