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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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학 칼럼 16>
잃어버린 눈물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말 한마디에 가슴이 후벼 파일 때. 문장 하나에 울고 웃던 때. 그런 시절에 이런 문장을 만났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그런데 무관심보다 더 나쁜 것은 관심을 가장한 무관심이다.’ 읽고 나서 순간 멍한 느낌이었다. 이게 뭔가 싶어 다시 살펴보았다. 뜻을 곱씹기도 전에 글자들은 하나하나 쇠꼬챙이가 되어 나의 급소로 날아와서 꽃혔다. 아니, 두개골을 꿰뚫고 총탄이 관통된 느낌이었다. 나는 아픔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이내 고꾸라졌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식과 허위 속에 살아왔다는 느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쓰러져 있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치유라는 것은 감정의 샘물에 흙더미를 쏟아 붓는 일이었다. 마른 흙을 붓고 또 부어 샘을 묻어 버렸다. 없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었고 머리로만 살 생각이었다. 이후 나의 삶에는 냉기가 뿜어 나왔다.
연예의 목적
흙더미 속에서도 때로 물줄기가 흘러 나왔지만 그럴 때면 재빨리 달려가 더 많은 흙으로 덮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본 마음이랴. 그 가운데서도 깊은 마음속에는 누군가 그 흙더미를 확실히 헤쳐주기를 바랬다. 아니, 깊고 맑은 수원(水源)을 가진 누군가와 근원에서 교통되어 풍부한 샘물이 흙더미를 뚫고 솟아나길 원했다. 그것이 연예의 목적이었다. 스스로 묻어버린 마음 샘의 흙더미를 파헤쳐줄 사람을 만나는 것! 잠겨버린 눈물샘의 빗장을 풀어줄 사람을 만나는 것! 그러나 이런 신경증적 욕망을 가지고 어찌 연예가 되랴! 그러다가 한 여인을 만났다. 무언가 가슴이 젖는 느낌은 들었지만 솟아나는 느낌은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이별여행을 떠났다.
둑이 무너져내린 날
거침없이 장맛비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 우리는 소백산으로 향했다. 희방폭포 바로 옆에 위치한 폭포여인숙에 여장을 풀었다. 빗물과 뒤섞인 폭포수는 소백산을 집어삼킬 것 같은 굉음을 토해냈지만 우리는 서울에서부터 아무 말이 없었다. 30여 미터 높이에서 지체 없이 떨어지는 폭포수만 마냥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폭포수의 물줄기가 팍 꺽이더니 내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 가슴 위를 후려쳤다. 몹시 아팠다. 흔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어 멈출 수 없는 통곡이 뒤따랐다. 내 속에서 그런 울부짖음이 나온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솟구치는 눈물을 애써 막고 싶지 않았다. 둑이 무너지면서 온 땅이 범람하였다. 나는 그 물에 그냥 몸을 내맡겼다. 넘치는 물 위에서 둥둥 떠다녔다. 장맛비가 그치더니 먹구름 속에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 부유감을 만끽하며 나는 모처럼의 편안함에 눈을 감았다.
눈물나는 날
이제 나는 가끔 훌쩍거린다. 아직 남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익숙하지 않지만 혼자서 훌쩍거릴 때가 많다. 극장에서도, 책을 읽다가도, 그리고 그냥 일상의 풍경 앞에서도 눈물을 마주할 때가 있다. 얼마 전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보았다. 갑자기 두 줄기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한 줄기는 지난 날 머리로만 살았던 애처로웠던 나를 위해 흘린 눈물이었고 또 한줄기는 아름다운 세상과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변화의 여정은 위기의식, 인센티브, 목표수립 등으로 시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머리로 하는 변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재미도 없고 머리만 아프고 목이 쉴 새 없이 타들어 간다. 늘 그만두고 싶은 마음뿐이다. 머리와 가슴이 만날 때 비로소 힘 있고 오래가며 촉촉한 변화가 만들어진다. 제대로 된 변화는 목이 타서 허덕이지 않는다. 자신에게서 솟아나는 샘물이 세포 하나하나까지 충분히 적셔주고 새로운 붉은 피로 만들어져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변화는 가슴에 흐르는 물줄기가 깊고 넓어지는 것이다. 가슴속에 귀를 기울여보자. ‘졸졸졸’ 물소리가 들리는가? 잔잔한 일상 속에서의 시작된 작은 변화의 생명체들이 그 물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가? 나에게서 너에게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가?
어제를 후회하고 오늘을 기뻐하는 눈물이 없다면 변화란 없다.
IP *.253.83.93
눈물나는 날
문 요한 (변화경영 연구소 연구원, 정신과 전문의)
잃어버린 눈물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말 한마디에 가슴이 후벼 파일 때. 문장 하나에 울고 웃던 때. 그런 시절에 이런 문장을 만났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그런데 무관심보다 더 나쁜 것은 관심을 가장한 무관심이다.’ 읽고 나서 순간 멍한 느낌이었다. 이게 뭔가 싶어 다시 살펴보았다. 뜻을 곱씹기도 전에 글자들은 하나하나 쇠꼬챙이가 되어 나의 급소로 날아와서 꽃혔다. 아니, 두개골을 꿰뚫고 총탄이 관통된 느낌이었다. 나는 아픔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이내 고꾸라졌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식과 허위 속에 살아왔다는 느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쓰러져 있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치유라는 것은 감정의 샘물에 흙더미를 쏟아 붓는 일이었다. 마른 흙을 붓고 또 부어 샘을 묻어 버렸다. 없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었고 머리로만 살 생각이었다. 이후 나의 삶에는 냉기가 뿜어 나왔다.
연예의 목적
흙더미 속에서도 때로 물줄기가 흘러 나왔지만 그럴 때면 재빨리 달려가 더 많은 흙으로 덮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본 마음이랴. 그 가운데서도 깊은 마음속에는 누군가 그 흙더미를 확실히 헤쳐주기를 바랬다. 아니, 깊고 맑은 수원(水源)을 가진 누군가와 근원에서 교통되어 풍부한 샘물이 흙더미를 뚫고 솟아나길 원했다. 그것이 연예의 목적이었다. 스스로 묻어버린 마음 샘의 흙더미를 파헤쳐줄 사람을 만나는 것! 잠겨버린 눈물샘의 빗장을 풀어줄 사람을 만나는 것! 그러나 이런 신경증적 욕망을 가지고 어찌 연예가 되랴! 그러다가 한 여인을 만났다. 무언가 가슴이 젖는 느낌은 들었지만 솟아나는 느낌은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이별여행을 떠났다.
둑이 무너져내린 날
거침없이 장맛비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 우리는 소백산으로 향했다. 희방폭포 바로 옆에 위치한 폭포여인숙에 여장을 풀었다. 빗물과 뒤섞인 폭포수는 소백산을 집어삼킬 것 같은 굉음을 토해냈지만 우리는 서울에서부터 아무 말이 없었다. 30여 미터 높이에서 지체 없이 떨어지는 폭포수만 마냥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폭포수의 물줄기가 팍 꺽이더니 내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 가슴 위를 후려쳤다. 몹시 아팠다. 흔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어 멈출 수 없는 통곡이 뒤따랐다. 내 속에서 그런 울부짖음이 나온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솟구치는 눈물을 애써 막고 싶지 않았다. 둑이 무너지면서 온 땅이 범람하였다. 나는 그 물에 그냥 몸을 내맡겼다. 넘치는 물 위에서 둥둥 떠다녔다. 장맛비가 그치더니 먹구름 속에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 부유감을 만끽하며 나는 모처럼의 편안함에 눈을 감았다.
눈물나는 날
이제 나는 가끔 훌쩍거린다. 아직 남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익숙하지 않지만 혼자서 훌쩍거릴 때가 많다. 극장에서도, 책을 읽다가도, 그리고 그냥 일상의 풍경 앞에서도 눈물을 마주할 때가 있다. 얼마 전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보았다. 갑자기 두 줄기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한 줄기는 지난 날 머리로만 살았던 애처로웠던 나를 위해 흘린 눈물이었고 또 한줄기는 아름다운 세상과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변화의 여정은 위기의식, 인센티브, 목표수립 등으로 시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머리로 하는 변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재미도 없고 머리만 아프고 목이 쉴 새 없이 타들어 간다. 늘 그만두고 싶은 마음뿐이다. 머리와 가슴이 만날 때 비로소 힘 있고 오래가며 촉촉한 변화가 만들어진다. 제대로 된 변화는 목이 타서 허덕이지 않는다. 자신에게서 솟아나는 샘물이 세포 하나하나까지 충분히 적셔주고 새로운 붉은 피로 만들어져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변화는 가슴에 흐르는 물줄기가 깊고 넓어지는 것이다. 가슴속에 귀를 기울여보자. ‘졸졸졸’ 물소리가 들리는가? 잔잔한 일상 속에서의 시작된 작은 변화의 생명체들이 그 물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가? 나에게서 너에게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가?
어제를 후회하고 오늘을 기뻐하는 눈물이 없다면 변화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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