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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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학 칼럼 21>
옛집, 새벽시장, 산, 그리고 응급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도 슬럼프가 참 많았다. 녀석과 마주치기 싫었지만 그럴수록 자주 만났다. 그럴 때 나름대로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식(儀式)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옛집을 자주 찾았다. 어린시절의 기억을 더듬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등학교 시절에 삶이 고달프게 느껴지면 새벽시장에 나가 이른 아침 장터의 에너지를 느끼고 돌아왔다.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기운이 솟구쳤다. 대학시절에는 산을 자주 찾았지만 고백하건데 응급실도 찾아 갔다.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를 꾸짖었다. 응급환자 분들께는 참 죄송할 따름이다. 지금은 특별한 의식을 취하지는 않지만 슬럼프가 찾아오면 무엇보다 잘 대접하려고 한다. 그리고 무슨 얘기를 하러 온 것인지 귀 담아 들으려고 한다. 그는 나의 깊은 마음에서 보내 온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슬럼프가 찾아오는 이유
슬럼프에 빠지는 것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렇기에 슬럼프를 벗어나는 것도 ‘더 열심히!, 하면 된다!’로 밀어 붙여서는 안 된다. 간단히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첫째, 비전의 불투명성으로 앞이 잘 안 보이는 것이다. ‘조금만 더 가볼까?’라는 마음에 왔지만 점점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불안감이 뒤섞여 갈팡질팡 하는 것이다.
둘째, 에너지 고갈이다. 많은 이들이 페이스 조절을 못해서 중도에 탈진(burn-out)이 되고 만다. 급제동이나 과속도 많아 에너지 소비도 많았고 제 때 주유소에 들러야 하는데 기름 넣을 시간이 아깝거나 잊어버려 예상보다 빨리 에너지가 고갈된 것이다. 길 한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셋째, 단순 반복과 비효율적인 방식 등의 기술적인 문제이다. 목표를 향해 가는 방식이 지나치게 단조롭고 비효율적인 것이다. 우직함만으로 슬럼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때로는 우직함이 슬럼프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바닥에 닿을 때 차고 올라라
슬럼프는 바닥을 치게 되어있다. 슬럼프란 심연의 바다나 끝없이 빠져드는 늪이 아니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수영장이라고나 할까? 슬럼프에 빠졌다고 느낄 때 허우적거리지 마라. 몸을 내맡겼다가 바닥에 닿는 순간 미련 없이 박차고 솟아 올라라. 2004년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한 보스톤 레드삭스의 매니 라미레즈는 ‘슬럼프에 빠질 때는 내 여동생도 나를 삼진 먹일 수 있죠.’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12-18게임 지나면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동요하지 않는다. 그는 이치로와 함께 메이저 리그에서 3할대의 타율을 유지하는 자기관리가 투철한 타자이다.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법
1. 슬럼프는 내부에서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라는 시그널이다. 일단 말뜻을 알아 들을 때까지 듣고 또 들어라. 자신이 바람 빠진 축구공마냥 축 쳐져 있다면 구멍부터 막아야 한다. 입을 닫고 내면으로 들어가라. 어디서 바람이 빠지고 있는지 확인해보라. 구멍은 뚫려 있는데 바람만 주입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슬럼프를 벗어나는 정답은 슬럼프 안에 들어 있다.
2. 비전이라는 현악기를 조율해야 한다. 너무 팽팽해서 소리가 끊어지면 풀어주고 너무 느슨해서 소리가 쳐지면 조여 주어야 한다. 현실역량과 잠재역량의 검토 속에 비전을 조율하라. 그리고, 미래상이 막연하게 여겨지면 비전이라 할 수 없다. 비전은 단계적 목표를 통해 구체화되어진다. 사다리에 기둥만 있고 발판이 빠져 있다면 어디에 쓸 것인가! 발판을 차곡차곡 그려 넣을 때야 비로소 밤하늘에 별도 딸 수 있는 법이다.
3. 당구실력이나 바둑 등 취미나 운동의 실력이 늘지 않는 경우는 늘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며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고수에게 배워라. 그리고 그들과 시합을 하라. 그리고 가르침과 꾸짖음을 청하라.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자신이 목표로 하는 길을 먼저 걷고 있는 전문가의 책을 보라.
4. 비전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에너지의 소비가 아닌 에너지가 순환되고 상승하는 자기완결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에너지가 떨어질 때 주유소를 찾아가 급유를 받는 시스템이 아니라 자가 발전소(self-power station)를 갖추는 것이다. 변화의 여정에서는 늘 지쳐버리고 외부에 나가 충전을 해오는 식이면 변화할 이유가 없다. 소비만 있는 곳에는 단연코 변화란 없다. 에너지가 쓰면서 동시에 만들어질 때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가 우선 필요하다. 비전속에 지금의 일을 조응시키고 오늘과 내일을 연결시키는 것, 삶의 미세한 정서의 결들을 일깨워 긍정적 감정으로 충만 하는 것, 목표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지족(知足)을 통한 목표의 지향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5. 익숙하던 방법과 기술을 바꾸어본다. 늘 같은 코스에서 마라톤 연습을 했다면 코스를 바꿔볼 수도 있고 물속에 들어가서 달리기 연습을 할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탈 수도 있다. 변화의 화두는 ‘열심히’가 아니라 ‘효과적으로’ 이다. 기술적 진전이 없으면서 변화한다고 느끼면 자기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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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려고 하지 말아라. 생각을 많이 하렴. 아픈 일일수록 그렇게 해야 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잊을 수도 없지. 무슨 일에든 바닥이 있지 않겠니. 언젠가는 발이 거기에 닿겠지. 그때! 탁 치고 솟아오르는 거야.
- 신경숙, <기차는 7시에 떠나네> 中에서-
IP *.98.168.115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법II
문 요한 (변화경영 연구소 연구원, 정신과 전문의)
옛집, 새벽시장, 산, 그리고 응급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도 슬럼프가 참 많았다. 녀석과 마주치기 싫었지만 그럴수록 자주 만났다. 그럴 때 나름대로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식(儀式)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옛집을 자주 찾았다. 어린시절의 기억을 더듬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등학교 시절에 삶이 고달프게 느껴지면 새벽시장에 나가 이른 아침 장터의 에너지를 느끼고 돌아왔다.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기운이 솟구쳤다. 대학시절에는 산을 자주 찾았지만 고백하건데 응급실도 찾아 갔다.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를 꾸짖었다. 응급환자 분들께는 참 죄송할 따름이다. 지금은 특별한 의식을 취하지는 않지만 슬럼프가 찾아오면 무엇보다 잘 대접하려고 한다. 그리고 무슨 얘기를 하러 온 것인지 귀 담아 들으려고 한다. 그는 나의 깊은 마음에서 보내 온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슬럼프가 찾아오는 이유
슬럼프에 빠지는 것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렇기에 슬럼프를 벗어나는 것도 ‘더 열심히!, 하면 된다!’로 밀어 붙여서는 안 된다. 간단히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첫째, 비전의 불투명성으로 앞이 잘 안 보이는 것이다. ‘조금만 더 가볼까?’라는 마음에 왔지만 점점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불안감이 뒤섞여 갈팡질팡 하는 것이다.
둘째, 에너지 고갈이다. 많은 이들이 페이스 조절을 못해서 중도에 탈진(burn-out)이 되고 만다. 급제동이나 과속도 많아 에너지 소비도 많았고 제 때 주유소에 들러야 하는데 기름 넣을 시간이 아깝거나 잊어버려 예상보다 빨리 에너지가 고갈된 것이다. 길 한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셋째, 단순 반복과 비효율적인 방식 등의 기술적인 문제이다. 목표를 향해 가는 방식이 지나치게 단조롭고 비효율적인 것이다. 우직함만으로 슬럼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때로는 우직함이 슬럼프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바닥에 닿을 때 차고 올라라
슬럼프는 바닥을 치게 되어있다. 슬럼프란 심연의 바다나 끝없이 빠져드는 늪이 아니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수영장이라고나 할까? 슬럼프에 빠졌다고 느낄 때 허우적거리지 마라. 몸을 내맡겼다가 바닥에 닿는 순간 미련 없이 박차고 솟아 올라라. 2004년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한 보스톤 레드삭스의 매니 라미레즈는 ‘슬럼프에 빠질 때는 내 여동생도 나를 삼진 먹일 수 있죠.’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12-18게임 지나면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동요하지 않는다. 그는 이치로와 함께 메이저 리그에서 3할대의 타율을 유지하는 자기관리가 투철한 타자이다.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법
1. 슬럼프는 내부에서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라는 시그널이다. 일단 말뜻을 알아 들을 때까지 듣고 또 들어라. 자신이 바람 빠진 축구공마냥 축 쳐져 있다면 구멍부터 막아야 한다. 입을 닫고 내면으로 들어가라. 어디서 바람이 빠지고 있는지 확인해보라. 구멍은 뚫려 있는데 바람만 주입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슬럼프를 벗어나는 정답은 슬럼프 안에 들어 있다.
2. 비전이라는 현악기를 조율해야 한다. 너무 팽팽해서 소리가 끊어지면 풀어주고 너무 느슨해서 소리가 쳐지면 조여 주어야 한다. 현실역량과 잠재역량의 검토 속에 비전을 조율하라. 그리고, 미래상이 막연하게 여겨지면 비전이라 할 수 없다. 비전은 단계적 목표를 통해 구체화되어진다. 사다리에 기둥만 있고 발판이 빠져 있다면 어디에 쓸 것인가! 발판을 차곡차곡 그려 넣을 때야 비로소 밤하늘에 별도 딸 수 있는 법이다.
3. 당구실력이나 바둑 등 취미나 운동의 실력이 늘지 않는 경우는 늘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며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고수에게 배워라. 그리고 그들과 시합을 하라. 그리고 가르침과 꾸짖음을 청하라.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자신이 목표로 하는 길을 먼저 걷고 있는 전문가의 책을 보라.
4. 비전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에너지의 소비가 아닌 에너지가 순환되고 상승하는 자기완결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에너지가 떨어질 때 주유소를 찾아가 급유를 받는 시스템이 아니라 자가 발전소(self-power station)를 갖추는 것이다. 변화의 여정에서는 늘 지쳐버리고 외부에 나가 충전을 해오는 식이면 변화할 이유가 없다. 소비만 있는 곳에는 단연코 변화란 없다. 에너지가 쓰면서 동시에 만들어질 때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가 우선 필요하다. 비전속에 지금의 일을 조응시키고 오늘과 내일을 연결시키는 것, 삶의 미세한 정서의 결들을 일깨워 긍정적 감정으로 충만 하는 것, 목표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지족(知足)을 통한 목표의 지향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5. 익숙하던 방법과 기술을 바꾸어본다. 늘 같은 코스에서 마라톤 연습을 했다면 코스를 바꿔볼 수도 있고 물속에 들어가서 달리기 연습을 할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탈 수도 있다. 변화의 화두는 ‘열심히’가 아니라 ‘효과적으로’ 이다. 기술적 진전이 없으면서 변화한다고 느끼면 자기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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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려고 하지 말아라. 생각을 많이 하렴. 아픈 일일수록 그렇게 해야 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잊을 수도 없지. 무슨 일에든 바닥이 있지 않겠니. 언젠가는 발이 거기에 닿겠지. 그때! 탁 치고 솟아오르는 거야.
- 신경숙, <기차는 7시에 떠나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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