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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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원하는 것, 바라는 것 등을 그만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꺼라는 생각이 든다. 포기를 쉽게 하면 그 뒤에 이어질 후회 등이 두려워지는 것도 사람들이 포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포기했다고 밝힐 때 두루 알리기 보다는 몇몇 사랍들에게 '은밀히' 알리는 것을 봐서도 포기라는 것은 쉽게 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애초에 원하는 것을 쟁취한다는 이야기는 성공 스토리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류의 이야기다.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그만큼 크나큰 매력이 있다. 일종의 승리감이나 성취감을 느끼는 데에 그만이다. 반대로 포기를 한다는 것은 의지를 접는 것이고 해도 안될 것이라 판단하고 행하는 행동이기에 그것이 크던 작던 일종의 패배감이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은연 중에, 자연스럽게 무엇인가가 되도록 요구받은 경우 혹은 무언가를 쟁취하도록 요구 받은 경우에는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그것은 애초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왜 그것이 되어야 하고 왜 그것을 얻어내야 하는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용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되어야 하고 당연히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 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당연히 되어야 하는 것이 도저히 될 수 없는 것이고 당연히 얻어내야 하는 것이 도저히 얻어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일까. 내가 되지 못한 것이 된 사람들을 보고 혹은 내가 얻지 못한 것을 얻은 사람들을 바라본다면 그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잠시 혼자서 그런 상황을 상상해 본다. 역시나 유쾌하지 않은 기분. 왜 그런 기분을 느껴야 하나. 즐겁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우울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어떨 때는 술을 마셔 보는 등 가벼운 일탈을 시도해 보지만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 일탈에서 일상으로 되돌아 오면 모든 게 그대로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다. 그동안 내가 되고자 했던 것, 내가 얻고자 했던 것에 왜 그리도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였는지를.... 그리고 또 생각해 본다. 내가 그러한 것들을 이룰 수 있는지. 이룰 수 없다고 느끼면 한번 더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혹시 용기가 없어서는 아닌지, 게으름에 대한 유혹에 빠진 것은 아닌지, 그러한 것을 뒤에 숨긴 채 지레 불가능 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다. 진지하고 솔직하게 묻고 답한다. 그럼에도 불가능 하다고 여겨진다면 '과감히' 포기한다. 내게 은연 중에 주어진 요구사항들을 과감히 포기한다. 혹, 그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따른다면 그것은 감당해야 한다. 변명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러한 것을 될 자격이, 그러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인정하면 된다.
그것을 인정하는 대가로 나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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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고' 애초에 원하는 것을 쟁취한다는 이야기는 성공 스토리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류의 이야기다.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그만큼 크나큰 매력이 있다. 일종의 승리감이나 성취감을 느끼는 데에 그만이다. 반대로 포기를 한다는 것은 의지를 접는 것이고 해도 안될 것이라 판단하고 행하는 행동이기에 그것이 크던 작던 일종의 패배감이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은연 중에, 자연스럽게 무엇인가가 되도록 요구받은 경우 혹은 무언가를 쟁취하도록 요구 받은 경우에는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그것은 애초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왜 그것이 되어야 하고 왜 그것을 얻어내야 하는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용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되어야 하고 당연히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 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당연히 되어야 하는 것이 도저히 될 수 없는 것이고 당연히 얻어내야 하는 것이 도저히 얻어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일까. 내가 되지 못한 것이 된 사람들을 보고 혹은 내가 얻지 못한 것을 얻은 사람들을 바라본다면 그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잠시 혼자서 그런 상황을 상상해 본다. 역시나 유쾌하지 않은 기분. 왜 그런 기분을 느껴야 하나. 즐겁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우울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어떨 때는 술을 마셔 보는 등 가벼운 일탈을 시도해 보지만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 일탈에서 일상으로 되돌아 오면 모든 게 그대로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다. 그동안 내가 되고자 했던 것, 내가 얻고자 했던 것에 왜 그리도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였는지를.... 그리고 또 생각해 본다. 내가 그러한 것들을 이룰 수 있는지. 이룰 수 없다고 느끼면 한번 더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혹시 용기가 없어서는 아닌지, 게으름에 대한 유혹에 빠진 것은 아닌지, 그러한 것을 뒤에 숨긴 채 지레 불가능 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다. 진지하고 솔직하게 묻고 답한다. 그럼에도 불가능 하다고 여겨진다면 '과감히' 포기한다. 내게 은연 중에 주어진 요구사항들을 과감히 포기한다. 혹, 그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따른다면 그것은 감당해야 한다. 변명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러한 것을 될 자격이, 그러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인정하면 된다.
그것을 인정하는 대가로 나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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