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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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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23일 11시 34분 등록
5. 草衣여! 草衣여!

올해 초 변화경영연구소 응시를 위해 지난 40년 개인사를 정리하면서 평생의 지기를 꼽아본 적이 있었다. 평생 살면서 세 명의 친구를 가질 수 있다면 그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을만큼 진정한 벗의 의미는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돈이 세상의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어 버린 자본의 시대에 살면서 우정과 신의가 그에 가려져 더 더욱 믿고 기댈 수 있는 벗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난 세 명의 친구가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이 내가 필요로 하는 만큼 나를 필요로 하면 언제고 그들의 손과 발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것에는 그들에게 바라는 내가 아니라 나 스스로 그들에게 보내는 믿음과 신뢰가 그 바탕이 되는 것이라 지금에도 믿고 또 믿는다.

제주에 유배를 가면서 완당은 해남 대둔사 일지암에서 초의를 만난다. 아마 유배길에서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기쁨이었으리라. 초의를 만나 차를 나누며 기막힌 억울함과 아픔, 막막한 앞길에 대한 걱정을 하소연하였고 초의는 묵묵히 들어주며 완당을 위로했다. 그 와중에 완당은 초의에게 원교 이광사의 현판 글씨를 떼내게 하고 자기 글씨를 걸게 했다. 초의는 친구의 부탁 아닌 명령을 말없이 들어 주었다. 10여 년후 유배를 벗어나 다시 그 자리에서 만난 두 친구는 기나긴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완당은 10여년 전 자신이 떼내라고 한 원교의 현판을 다시 걸게 하였다. 초의는 동자승을 시켜 창고에 먼지가 잔득 낀 현판을 가져와 친구의 의견대로 다시 걸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전해지는 전설이지만 유배의 긴 시간동안 인생의 많은 풍파와 삶의 새 길을 배웠을 완당보다 언젠가 친구의 손으로 그 글씨를 다시 걸게 될 날을 기다리며 묵묵히 기나긴 세월을 이겨온 초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초의는 그런 사람이었고, 완당에게는 유배지에서 반년, 강상 시절 2년을 같이 지낸 ‘그저 곁에만 있어도 좋은’ 금란지교를 맞은 명선茗禪(다선일치의 뜻)이었다. 완당과 초의 사이에 오간 서신을 살펴 보노라면 초의는 과묵한 사람인 듯하다. 왜 그런 친구들이 있잖은가? 한 명은 촐랑대고 까불고 명랑방자한 성격인데 반해 또 다른 한 명은 깔아준 멍석도 마다하고 빙긋이 웃어 피하는 목석같은, 그래서 두 사람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도 잘 어울리는 친구들 말이다. 아마 초의와 완당은 심하게 표현하자면 아마 이런 사이였을 게다. 완당은 이런 초의를 ‘다반향초茶半香草’(차가 익어 비로소 첫 향기를 내다는 뜻) 같고 ‘수류화개水流花開’(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 같다는 뜻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을 일컫는 말) 같다고 하였다. 아마도 이러한 완당의 초의를 지극히 아끼는 마음은 예산 화암사 병풍바위에 천축고선생댁(석가모니 집 다시 말해 절집이란 뜻)이란 각자를 새겼을 정도로 불교를 이해하고 탐닉한 사상적 기초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란 해석도 있지만, 어쨌던 완당은 초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동갑내기 친구가 갖는 믿음과 신뢰가 밑바닥에 있었기에 가능한 평생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초의선사는 완당을 논할 때 없어서는 않되는 인물이었지만 중의 신분이 갖는 천대로 인하여 완당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완당 사후 2년이 되는 1858년, 철상하기 직전에 홀로 찾아와 통곡의 제문을 바친다. 그 유명한 초의의 완당추모제문이다.
“무오년 2월 청명일에 방외方外의 친구 초의는 한잔의 술을 올리고서 김공 완당 선생 영전에 고하나이다. ······ 슬프다! 선생은 ······ 글씨 또한 조화를 이루어 왕희지·왕헌지의 필법을 능가하고 ······ 금석에서는 작은 것과 큰 것을 모두 규명하여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치셨나이다. ······ 슬프다! 선생이시여, 사십이 년의 깊은 우정을 잊지 말고 저 세상에서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읍시다. 생전에는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어쩌다 나는 이다지 늦게 선생의 영전에 당도했는가. ······”
이 글이 그토록 말없던 초의가 완당에게 남긴 유일한 목소리이다. 죽은 친구를 문상하지 못해 아니 잊지 못한 회한을 안고 2년이나 지난날에서야 친구의 영전에 그토록 듣고 싶어 하던 자신의 목소리를 통곡하며 들려주었던 완당의 사모하던 벗 초의선사. 이 글을 읽는 분도 선사와 같은 벗을 두고 싶지 않은지.

6. 글 빚과 공부 복

완당의 칠십이구초당(사물의 많음을 나타내는 뜻으로 만년에 완당이 즐겨 사용한 아호)시절 현판 글씨 중에 <일독一讀 이여색二女色 삼음주三飮酒>라는 작품이 있다. 내용이야 첫째는 독서(공부), 둘째는 여자(섹스), 셋째는 술이라는 뜻이다. 우리 연구원 중 된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술 좋아하는 호인이 이를 제식대로 해석하여 “책 한권 읽을 동안에 섹스를 두 번하고 술을 세 번 마신다”고 하여 미소짓게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이다. 완당을 말년까지 지켜준 힘은 공부하는 행복, 제자를 가르치는 즐거움, 예술하는 열정이었다고 한다. 그 중 공부하는 것의 행복이 제일 컸다고 말한다. 그래서 “평생조지력平生操持力 ······ 방지학위복方知學爲福” 이란 자작시도 남겼다. 평생을 버티고 있던 힘이 공부하는 복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뜻이다.

장인적인 연찬과 수련속에 평생 10개의 벼루와 천개의 붓을 마르고 닳게 만든 완당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임모작(쉽게 습작이라고 이해해도 될 듯)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그 만큼의 다작을 볼 수 있다. 소위 명필이라 함은 작품의 양, 작가적 개성, 작가 정신, 대중적 인지도 등을 판단의 기초로 삼는다 하는데 완당은 여기에 모두 해당되는 조선 최고의 서예가이다. 이런 완당의 작품은 위로는 헌종과 철종으로부터 아래로는 사대부에서 중인, 스님들에게까지 그리고 멀리 중국 연경에서까지 끊임없는 글씨 요청을 받았다. 특히 그의 제자들 그중에서도 제주 시절의 허소치, 이상적, 강상시절의 조면호, 북청시절의 유오선, 그리고 과천시절의 김석준은 완당이 아끼고 좋아한 애제자들이었다. 이 제자들은 본인이 필요로 했던 타인의 부탁으로 했던 아니면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건 또는 완당의 필요한 서책을 구하기 위해서였건 많은 글씨와 작품을 요구했고 완당은 제자들에 대한 가없는 애정으로 그들의 요구에 일일이 답해 주었다.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원숙한 경지의 작품을 무수히 창조했으니 완당의 제자들이 이룩한 또 하나의 공은 완당의 명작들을 무수히 도출해낸 숨은 공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완당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써야 하는 글빚, 글씨빚”을 지고 평생을 살아야 했던 운명일까. 팔이 아프고 눈이 침침해 괴로운데도 글씨 독촉을 받는 심정을 두보의 ‘능사부재상촉박能事不在相促迫’으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요즘 세상에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스스로 PR 세일즈를 하는 판국인데 완당의 경우 쉼 없이 몰려드는 글씨 요구를 보면 스승이신 구본형님의 ‘적극적 수동성’이라는 마케팅이론을 생각나게 한다. 스스로 찾아 나서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거기 서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식물적 특성, 즉 세상이 나를 찾아낼 수 있도록 곳곳에 향을 피우고 향기와 매력을 뿌려두는 일이 적극적인 수동성이라는 내용이다. 아마도 완당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어쨌던 완당은 그런 저런 글 빚과 마천십연 독진천호의 장인적 연찬과 수련의 공부 복으로 인하여 스스로 동양 서예사에서 남북조의 왕희지, 당나라의 구양순, 송나라의 소동파, 원나라의 조맹부, 명나라의 동기창, 청나라의 완당 김정희로 이어지는 대맥의 당당한 주체가 되었다.

7. 史野를 그리며

‘사야史野’현판은 완당이 병조판서 권대정에게 써준 것으로 그 내용은 논어에서 군자를 설명한 “세련됨과 싱싱힘”이라는 뜻이다. 글씨가 워낙에 대자인지라 웅혼한 힘이 절로 가득한데 글자의 구성에서 대담하게 크고 작음 굵고 가늚을 혼용하여 울림이 강하게 일어난다.(유홍준의 완당평전에서)

여름 추사고택에서 완당에 대한 연구원 모임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 글자가 주는 의미를 먼 산 바라보듯 지나쳤을 것이다. 스승께선 이 자구에 대한 별도의 연구를 말씀하셨고 그 연구의 내용을 읽고 나서야(아니 한참이나 지난 시점에) 그 의미를 생각했었다. 따로 자료를 찾지 못하고 변화경영연구원 이선이님의 史野에 관한 연구자료로 대신하고자 한다.

【 雍也第六(옹야제육) -17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 彬彬, 然後 君子,”

“바탕이 겉차림보다 두드러지면 야하게 되고, 겉차림이 바탕보다 두드러지면 형식적인 것이 된다. 바탕과 차림이 잘 어울려야 군자인 것이다.”

“文과 質은 서로 상대가 되는 것이다. 인.의.충.신 같은 덕이 質이라면 예.악은 文이 될 수 있고, 사람의 학문이나 교양이 質이라면 말과 행동은 文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이러한 실질적이고 기본적인 質과 함께 형식적으로 드러나는 文이 잘 갖추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 [논어] 김학주님 역주

質勝文(질승문) : 바탕이 文飾문식을 이기다.
바탕이 겉치례보다 두드러지다.
野(야) : 야하다, 야비하다.
史(사) : 史官처럼 생각은 없이 文辭문사만 많이 늘어놓는 것,
곧 형식만 요란한 것.
彬彬(빈빈) : 잘 섞여져 어울리는 모양

<해설>
고대 도시 성벽 밖의 먼 곳을 '야(野)'라 한다. 또 거기 사는 사람, 즉 농민이 야인의 원래 뜻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문헌을 다루는 직책은 모두 사(史)라고 불렀다. 원래는 신을 제사할 적의 제문, 종묘의 연대기, 복사(卜辭) 따위를 기초하고 필사하고 기록하는 직책이었으나, 일반의 서기 구실을 두루 부르는 말이 되어 버렸다. 이런 서기들의 문장은 자칫 형식화, 유형화되는 경향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기 마련이어서 이 경향을 공자는 사(史)라 한 것이다.
질(質)이란 선천적인 소박, 성실로 꾸밈 없는 바탕이요, 문(文)은 후천적인 문화를 말한다. 質과 文은 서로 일체가 되어 인간의 생활을 성립케 하는 기본적 요소이다. 생활에 소박한 것이 문화의 요소보다 너무 앞서게 되면 野에 가깝게 된다. 생활에도 형식과 기교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너무 무시되면 자연 그대로의 바탕만 드러나서 야만스럽다. 반대로 문화면의 형식이라든지 문화 생활에 있어서 으레 따라야 하는 기교면이 인간의 바탕 즉 자연적인 순박성을 압도하면 건전성을 잃게 된다. 자연성과 문화성은 어느 한쪽이 더 많으면 생활에 조화를 잃게 된다. 質과 文은 잘 섞여 혼연일체로 고르게 각 자가 설자리를 얻어서 균형이 잡혀야 군자의 완성된 인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빈빈(彬彬)'은 물건이 섞여서 고른 모양을 뜻한다.

완당평전을 읽으면서 p.723에 소개된 작품속 이 두 글자를 논어에서 찾고 읽기 시작했다. 이 두 글자의 의미가 논에 나오는 군자의 모습으로 ‘세련됨과 싱싱함’이라는 설명에 쉽게 수긍이 갔다. 좁은 내 생각에는 왠지 史하면 세세히 꼼꼼하게 집어내는‘역사’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野라 하면 도심에서 떨어진 자유 분방함, 대범함이 주는 싱싱한 벌판의 이미지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어 원전에서는 상징적 의미가 압축되어 있다. 내가 보기에는 質에서는 野가 文에서는 史가 유도되어 나오는 두드러진 관계를 드러내는 것 같다. 그것은 [강의]이란 신영복선생님의 글 중에서‘내용과 형식’이라는 생각 거리를 일컫는 말이다라고 생각했다. 】

史野를 이렇게 길게 인용함은 지금 시기 우리는 이 史野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야 좋을까 하는 고민에서였다. 군자의 모습이 지금 우리에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는 걸까? 단정할 수 없지만 나는 ‘學人'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순히 공부하는 사람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닦아 선비와 같고 무사와 같아지는 그래서 세상에 유익한 좋은 전문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지나친 비약은 아닐까?

[완당을 마치며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정리한 글의 대부분은 완당평전을 기초로 해서 정리한 것이며 나의 창작물은 절대 아니다. 그저 올 여름 나의 가슴속으로 들어온 완당을 어떻게든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뿐 타인의 창작을 카피하고자 할 의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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