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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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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8일 12시 47분 등록
<일과 사람 2>


칠순을 넘기고도 연애소설을 집필하는 작가 박완서는 마흔에 등단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내겐 매력적이다.

1970년, 마흔이 되던 해에 「나목」으로 등단한 이후 오늘날까지 대부분 비판의식에 의거한 작품들을 발표하며 철저한 이야기꾼으로 그의 위치를 확립한 작가로 6.25 전쟁과 분단문제, 기형적으로 파생된 한국 현실에 산재한 모순의 문제점들을 끈기 있게 다루어왔다. 그의 소설 세계는 전쟁의 상처와 분단 모순을 비롯하여 물신주의에 대한 비판, 여성해방의 올바른 방법에 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심세계를 나타낸다.

‘전업주부라는 직업이 더 고통스러웠다’며 ‘죽는 날까지 현역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던 작가는 일반적인 페미니즘과 차별적으로 여성의 삶을 표현하곤 한다. 작품에 스며있는 치밀한 내면묘사, 능청스러우면서도 소박한 익살, 섬세한 감수성은 닮고 싶을 뿐이다.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자 탐구요, 인간성에 대한 옹호,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억압하고 왜곡시키는 제도나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 박완서.

'제가 해온 작업이 어떻게 보면 그 시대의 삶의 모습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게 내 장기라면 장기구요. 어느 시대나 내가 살아온 것, 어떻게 보면 평균치의 한국 사람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요. 평균치보다 조금 나은지는 모르지만, 항상 거기에 내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작가의식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때 남아 있는 나를 견디게 한 힘 같은 것이 있었어요. 언젠가는 이걸 써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 예감도 있었으리라고 생각해요. 이건 나만이 겪은 거고, 나만이 겪은 것을 안 쓰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때 우리가 얼마나 무력하게 당했습니까? 여기에서 차이고, 저기에서 차이고, 한참 20세의 꽃다운 나이에 당하지 못할 고통을 당했을 때, 그때 꿈꿀 수 있는 복수가 뭐가 있겠어요? 저런 인간들을 한번 써서 글 속에서 복수해야지 하는 것밖에 없죠. 내가 만약 법대를 다녔다면 고등고시에 합격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다든가, 내가 부자를 꿈꾸었다면 큰 부자가 되어서 저런 것들을 어떻게 하겠다든가, 권력을 잡아서 저런 것들보다 잘 살아야지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에 대해서 꿈꿀 수 있는 것은 내가 저 인간들에 대해서 써야겠다는 것밖에 없었어요.'

작가 박완서는 ‘여성의 삶을 집필하는 역사가’로도 불리며 쉬지 않고 원고지 앞에 앉아 자기 자신과 시대, 역사와 마주한다. 특히, 가정주부의 삶과 심리에 초점을 맞추면서 중산층 적 삶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근대사회의 추세들을 냉정하면서도 비판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사실, 전업주부로서의 중산층 여성들은 중산층적 삶을 유지시켜주는 가족중심의 제도나 이데올로기에 보호받으면서 그 일정한 과실을 간접적으로 향유하는 한편 근본적으로는 그 과실에서 소외되어 있고 자기 나름의 주체적 삶을 봉쇄당하는 이중성을 띠고 있다. 그런 만큼 오히려 중산층 삶의 허위를 실감하고 폭로할 잠재력을 지닌 집단이기도 하다. 박완서는 바로 이런 잠재력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근대화해낸 것이다.

한 작가가 자신의 체험과 기억에 의지한다는 것은 때로는 작가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대단히 폭넓은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는 한, 작품의 외면적인 폭을 좁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이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개인의 절망적인 외침이라고 한다면, 사실 체험과 기억이란 작가로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소설의 깊이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언젠가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면 그런 나를 표현해보고 싶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 숲 속의 나무를 그려보고 싶다. 글을 통해 그 일을 하는 것이 작가라는 직업이라면 그 길을 가고 싶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나이가 마흔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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