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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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학 칼럼 24>
'I am eye' or 'Eye am I'
I와 Eye는 모두 [ai]로 발음되는 동음어이다. 우리는 80% 이상의 정보를 눈을 통해 얻는다. 많은 경우 직접 눈으로 보고 나서야 믿는다. 물론 자라나면서 점점 믿는 대로 보게 된다. 과장하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삶을 결정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눈이 곧 나’이자 ‘내가 곧 눈’이라는 표현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게도 우리의 감각기관은 높은 곳에 위치할수록 먼 거리까지 지각할 수 있다. 촉각과 미각은 접촉, 후각은 짧은 거리, 청각은 중간 거리, 그리고 시각은 먼 거리 까지 지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상층부에 존재하는 뇌는 상상력을 통해서 거리의 제한 없이 광대무변한 우주를 날아다니고 보이지 않는 것도 본다.
여러분은 몇 개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릴 적 눈이 하나 더 달린다면 우리 몸의 어디에 있으면 좋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러 개의 눈이 있다. 제 1의 눈은 육안(肉眼)이며 생리적 지각기관으로서의 눈이다. 우리의 눈은 배경과 상황에 따라 왜곡과 착각을 수시로 일으킨다. 게다가 심안(心眼)에 의해 지배를 받아 자신의 가치 및 인지체계에 익숙하거나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지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으로 본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아래에 있는 유명한 그림을 하나 참조하시라. a와 b가 같은 색깔이라는 것이 믿어지는가!
제 2의 눈은 심안(心眼)으로서 판단과 해석의 눈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경험, 이데올로기에 따라 시각적 정보를 선택해서 편집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을 하는 눈이다. 우리는 같은 그림을 놓고도 얼마나 제 각각의 해석을 내리는가!
마지막으로 제 3의 눈이 있다. 이는 혜안(慧眼)으로서 관조와 지혜의 눈이다.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 가깝게 사물의 본질과 이면을 꿰뚫어 보고 역사성을 가지고 삶을 통찰하는 눈이다.
여러분은 지금 몇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까?
내 마음에 새가 살고 있다니!
우리의 마음속에는 새가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새는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존재한다. 만일 누군가 당신의 마음에 돌맹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켰다면 이 새는 하늘위로 날아간다. 그 순간, 당신도 새의 눈이 되어 상황을 내려다본다. 그것은 마치 산에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지금 자신이 겪는 일을 하찮은 일로 느껴지게 할 수도 있다. 혹은 갑작스러운 고통에 당신이 신음하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 새는 어느 틈에 당신의 마음에서 걸어 나와 고통의 상자를 부리로 열고 그 안에 담긴 선물을 꺼내 줄지도 모른다. 갈 곳을 몰라 방황하거나 무언가에 사로잡혀 붙잡혀 있다고 해보자. 그럼 이 새는 과거와 미래의 공간을 활공하며 당신이 가야할 방향을 가리켜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그 새의 이름이 혜안이자 ‘관찰 자아(observing ego)’이다.
보이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것
지금 당신에게 안 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엇이 없다고 정말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보고 나서야 믿는다. 그 말은 보이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이고 더 나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우리의 관심을 옮겨갈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지금 거울 속에 보이는 내가 나의 전부인가? 내가 보는 세상이 전체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본질도 아니고 전체도 아니다. 그 실체적 다양성과 전체성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다른 앵글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한걸음 물러나거나 위로 올라가서 나와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변화란 자기존재의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변화와 성장으로 나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넘어 패러다임의 확장이다. 우리의 눈에 줌(zoom)기능을 추가하여 당겨서 나무도 보고 넓혀서 숲을 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다르게 보는 것만이 아니라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진 더 큰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Paul Gauguin, 1848-1903
IP *.231.169.35
I & Eye
- 내 안에 새가 살고 있다-
문 요한 (변화경영 연구소 연구원, 정신과 전문의)
'I am eye' or 'Eye am I'
I와 Eye는 모두 [ai]로 발음되는 동음어이다. 우리는 80% 이상의 정보를 눈을 통해 얻는다. 많은 경우 직접 눈으로 보고 나서야 믿는다. 물론 자라나면서 점점 믿는 대로 보게 된다. 과장하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삶을 결정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눈이 곧 나’이자 ‘내가 곧 눈’이라는 표현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게도 우리의 감각기관은 높은 곳에 위치할수록 먼 거리까지 지각할 수 있다. 촉각과 미각은 접촉, 후각은 짧은 거리, 청각은 중간 거리, 그리고 시각은 먼 거리 까지 지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상층부에 존재하는 뇌는 상상력을 통해서 거리의 제한 없이 광대무변한 우주를 날아다니고 보이지 않는 것도 본다.
여러분은 몇 개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릴 적 눈이 하나 더 달린다면 우리 몸의 어디에 있으면 좋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러 개의 눈이 있다. 제 1의 눈은 육안(肉眼)이며 생리적 지각기관으로서의 눈이다. 우리의 눈은 배경과 상황에 따라 왜곡과 착각을 수시로 일으킨다. 게다가 심안(心眼)에 의해 지배를 받아 자신의 가치 및 인지체계에 익숙하거나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지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으로 본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아래에 있는 유명한 그림을 하나 참조하시라. a와 b가 같은 색깔이라는 것이 믿어지는가!
제 2의 눈은 심안(心眼)으로서 판단과 해석의 눈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경험, 이데올로기에 따라 시각적 정보를 선택해서 편집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을 하는 눈이다. 우리는 같은 그림을 놓고도 얼마나 제 각각의 해석을 내리는가!
마지막으로 제 3의 눈이 있다. 이는 혜안(慧眼)으로서 관조와 지혜의 눈이다.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 가깝게 사물의 본질과 이면을 꿰뚫어 보고 역사성을 가지고 삶을 통찰하는 눈이다.
여러분은 지금 몇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까?
내 마음에 새가 살고 있다니!
우리의 마음속에는 새가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새는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존재한다. 만일 누군가 당신의 마음에 돌맹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켰다면 이 새는 하늘위로 날아간다. 그 순간, 당신도 새의 눈이 되어 상황을 내려다본다. 그것은 마치 산에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지금 자신이 겪는 일을 하찮은 일로 느껴지게 할 수도 있다. 혹은 갑작스러운 고통에 당신이 신음하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 새는 어느 틈에 당신의 마음에서 걸어 나와 고통의 상자를 부리로 열고 그 안에 담긴 선물을 꺼내 줄지도 모른다. 갈 곳을 몰라 방황하거나 무언가에 사로잡혀 붙잡혀 있다고 해보자. 그럼 이 새는 과거와 미래의 공간을 활공하며 당신이 가야할 방향을 가리켜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그 새의 이름이 혜안이자 ‘관찰 자아(observing ego)’이다.
보이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것
지금 당신에게 안 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엇이 없다고 정말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보고 나서야 믿는다. 그 말은 보이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이고 더 나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우리의 관심을 옮겨갈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지금 거울 속에 보이는 내가 나의 전부인가? 내가 보는 세상이 전체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본질도 아니고 전체도 아니다. 그 실체적 다양성과 전체성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다른 앵글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한걸음 물러나거나 위로 올라가서 나와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변화란 자기존재의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변화와 성장으로 나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넘어 패러다임의 확장이다. 우리의 눈에 줌(zoom)기능을 추가하여 당겨서 나무도 보고 넓혀서 숲을 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다르게 보는 것만이 아니라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진 더 큰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Paul Gauguin, 1848-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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