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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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학 칼럼 26>
자신을 옭아매는 뿌리
어머니 덕분에 어린시절의 나는 분갈이 광경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조심스레 화분 속의 흙을 쏟아내고 난이나 식물을 뽑아든다. 보나마나 갇혀 있던 뿌리는 어지럽게 꼬여 있다. 특히, 난의 뿌리는 화분이 작아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다. 좁은 화분에서 자라다보니 뿌리라는 녀석은 빙글빙글 맴돌며 스스로를 옭아맬 수밖에 없었으리라. 어머니는 흙을 털어내고 썩고 병든 뿌리는 잘라내어 숨통을 트이게 한 다음 고운 흙과 함께 새 화분에 옮겨 심는다. 정성스럽게 분을 갈아주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노라면 기도에 잠겨 있을 때처럼 편안해 보였다. 마치 당신의 숨통이 트이는 것처럼 여유로움 같은 것이 배어 나왔다. 분갈이는 문자대로 단지 화분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뿌리를 손대지 않고 분만 바꾸는 것은 ‘분 바꾸기’라고 한다. ‘분갈이’는 오래된 흙을 털어내고 토양과 화분을 바꾸고 낡은 뿌리를 잘라내서 새로운 뿌리가 잘 자라나도록 하는 것이다. 안과 밖을 함께 바꾸어주는 것이다.
화병 안에 꽃혀 있는 삶
몇 년 전에 자신의 어머니와 관계문제로 힘들어하는 여자환자와 상담을 하였다. 그림에 자질이 뛰어난 그녀는 어느 날, 그림을 그려왔다. 그림 속의 그녀는 발은 없고 얼굴과 손과 절반의 몸통만이 표현되어져 있었다. 그녀의 상반신은 화병 속에 꽃혀 있었는데 비록 생기는 없었지만 꽃처럼 자신을 그렸다. 그녀는 어떤 움직임조차 허용될 것 같지 않는 아주 좁고 가느다란 화병 속에 갇혀 있었다. 그림을 보여주며 화병에서 벗어나 넓은 들판에서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름 없는 들꽃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화병이 깨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결국 택한 선택은 유학이었다. 머나먼 이국의 땅이 그녀가 꿈꾼 들판이 되었을지 아니면 또 하나의 화병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당신의 삶을 분갈이하라!
사람도 분갈이가 필요하다. 성장이 지연되고, 땅이 힘을 잃어가며, 너무 좁은 화분 안에 갇혀 있다는 답답함이 느껴진다면 당신의 삶도 분갈이가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1. 낡은 뿌리를 잘라내자.
새 뿌리가 자라나도록 낡은 뿌리를 잘라내야 한다. 성장의 동력이 되지 못하고 공간만 차지하여 수족(手足)을 옭아매고 있는 낡은 뿌리는 쳐내야 한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우리의 마음들이 지나버린 시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은 단순한 비생산적 사고가 아니라 에너지의 낭비이고 생명의 소실이다. 어제와 같은 생각으로는 오늘의 내가 달라질 수는 없다.
2. 서로의 젖을 빨자.
흙도 나이가 들면 딱딱해지고 물이 빠지지 않으며 지력이 쇠한다. 젖이 흐르는 흙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그러면 뿌리는 젖을 온 뿌리로 빨아들여 줄기와 잎을 키운다. 사람에게 좋은 토양이란 좋은 만남이다. 글 속에서, 관계 속에서, 강연에서, 영성훈련에서 우리는 좋은 젖을 만나 자신을 흠뻑 적실 수 있다. 혼자서 책을 읽는다고 혼자가 아니다. 그 속에도 만남이 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의 모든 것은 결국 만남이다. 참 만남을 통해 서로의 젖을 빨아들일 때 변화는 자라난다. 단언컨대 단절은 변화의 반대이다. 그리고 변화의 싹이 아직 어리다면 보호받아야 한다. 격려의 수분과 지지의 햇살이 잘 스며들고 맛있는 젖이 흐르는 토양에서 자라나야 한다. 처음부터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하여 시련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3. 걸어다니는 나무가 되자.
우리는 자신의 성장을 제한하는 틀을 스스로 벗어내야 한다. 그 틀의 변화란 더 큰 화분으로의 미시적 변화일수도 있고 때로는 척박한 들판에 뿌리를 내리는 거시적 변화일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내 삶의 푸르름을 남김없이 피워낼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화분 안에서만 자란다면 평생 분재로 돌보아지겠지만 들판에서 자라난다면 우뚝 선 소나무로 자랄 수 있다. 때로는 직장의 변화가 필요하지만 자신의 사명을 깨달았다면 직종의 전환도 필요하다. 변화하는 사람이란 비유하건대 ‘걸어다니는 나무’일지도 모르겠다.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면서 더 큰 성장을 위해 뿌리를 들어 올리고 다른 곳으로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삶이 아닐까 싶다.
자, 분갈이 한번 하시지 않으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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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나무
문 요한 (변화경영 연구소 연구원, 정신과 전문의)
자신을 옭아매는 뿌리
어머니 덕분에 어린시절의 나는 분갈이 광경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조심스레 화분 속의 흙을 쏟아내고 난이나 식물을 뽑아든다. 보나마나 갇혀 있던 뿌리는 어지럽게 꼬여 있다. 특히, 난의 뿌리는 화분이 작아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다. 좁은 화분에서 자라다보니 뿌리라는 녀석은 빙글빙글 맴돌며 스스로를 옭아맬 수밖에 없었으리라. 어머니는 흙을 털어내고 썩고 병든 뿌리는 잘라내어 숨통을 트이게 한 다음 고운 흙과 함께 새 화분에 옮겨 심는다. 정성스럽게 분을 갈아주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노라면 기도에 잠겨 있을 때처럼 편안해 보였다. 마치 당신의 숨통이 트이는 것처럼 여유로움 같은 것이 배어 나왔다. 분갈이는 문자대로 단지 화분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뿌리를 손대지 않고 분만 바꾸는 것은 ‘분 바꾸기’라고 한다. ‘분갈이’는 오래된 흙을 털어내고 토양과 화분을 바꾸고 낡은 뿌리를 잘라내서 새로운 뿌리가 잘 자라나도록 하는 것이다. 안과 밖을 함께 바꾸어주는 것이다.
화병 안에 꽃혀 있는 삶
몇 년 전에 자신의 어머니와 관계문제로 힘들어하는 여자환자와 상담을 하였다. 그림에 자질이 뛰어난 그녀는 어느 날, 그림을 그려왔다. 그림 속의 그녀는 발은 없고 얼굴과 손과 절반의 몸통만이 표현되어져 있었다. 그녀의 상반신은 화병 속에 꽃혀 있었는데 비록 생기는 없었지만 꽃처럼 자신을 그렸다. 그녀는 어떤 움직임조차 허용될 것 같지 않는 아주 좁고 가느다란 화병 속에 갇혀 있었다. 그림을 보여주며 화병에서 벗어나 넓은 들판에서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름 없는 들꽃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화병이 깨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결국 택한 선택은 유학이었다. 머나먼 이국의 땅이 그녀가 꿈꾼 들판이 되었을지 아니면 또 하나의 화병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당신의 삶을 분갈이하라!
사람도 분갈이가 필요하다. 성장이 지연되고, 땅이 힘을 잃어가며, 너무 좁은 화분 안에 갇혀 있다는 답답함이 느껴진다면 당신의 삶도 분갈이가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1. 낡은 뿌리를 잘라내자.
새 뿌리가 자라나도록 낡은 뿌리를 잘라내야 한다. 성장의 동력이 되지 못하고 공간만 차지하여 수족(手足)을 옭아매고 있는 낡은 뿌리는 쳐내야 한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우리의 마음들이 지나버린 시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은 단순한 비생산적 사고가 아니라 에너지의 낭비이고 생명의 소실이다. 어제와 같은 생각으로는 오늘의 내가 달라질 수는 없다.
2. 서로의 젖을 빨자.
흙도 나이가 들면 딱딱해지고 물이 빠지지 않으며 지력이 쇠한다. 젖이 흐르는 흙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그러면 뿌리는 젖을 온 뿌리로 빨아들여 줄기와 잎을 키운다. 사람에게 좋은 토양이란 좋은 만남이다. 글 속에서, 관계 속에서, 강연에서, 영성훈련에서 우리는 좋은 젖을 만나 자신을 흠뻑 적실 수 있다. 혼자서 책을 읽는다고 혼자가 아니다. 그 속에도 만남이 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의 모든 것은 결국 만남이다. 참 만남을 통해 서로의 젖을 빨아들일 때 변화는 자라난다. 단언컨대 단절은 변화의 반대이다. 그리고 변화의 싹이 아직 어리다면 보호받아야 한다. 격려의 수분과 지지의 햇살이 잘 스며들고 맛있는 젖이 흐르는 토양에서 자라나야 한다. 처음부터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하여 시련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3. 걸어다니는 나무가 되자.
우리는 자신의 성장을 제한하는 틀을 스스로 벗어내야 한다. 그 틀의 변화란 더 큰 화분으로의 미시적 변화일수도 있고 때로는 척박한 들판에 뿌리를 내리는 거시적 변화일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내 삶의 푸르름을 남김없이 피워낼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화분 안에서만 자란다면 평생 분재로 돌보아지겠지만 들판에서 자라난다면 우뚝 선 소나무로 자랄 수 있다. 때로는 직장의 변화가 필요하지만 자신의 사명을 깨달았다면 직종의 전환도 필요하다. 변화하는 사람이란 비유하건대 ‘걸어다니는 나무’일지도 모르겠다.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면서 더 큰 성장을 위해 뿌리를 들어 올리고 다른 곳으로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삶이 아닐까 싶다.
자, 분갈이 한번 하시지 않으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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