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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5일 22시 43분 등록
<변화를 위한 우화 6>

아름다운 짐승


문 요한 (변화경영 연구소 연구원, 정신과 전문의)





둥근 보름달이 자작나무 숲에 걸려있는 매서운 겨울밤, 늑대 ‘마니투’는 사냥을 나섰습니다. 벌써 몇 끼를 굶었는지 모릅니다. 사냥감을 잡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데 죽은 아들 생각에 번번이 마음이 흐려집니다. 오늘도 토끼 한 마리를 쫓다가 결국 잡지 못하고 헛고생만 했습니다. 혼자만의 사냥이라 그런지 더욱 외롭고 쉽게 지쳐 버립니다. 6개월 전 인근 마을 사람들이 대대적인 늑대사냥에 나섰습니다. 마을의 가축들이 사라진 이유를 모두 늑대의 짓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정말 늑대의 씨를 말리려는지 어린 새끼마저 남김없이 쏴 죽였습니다. 그 광란의 늑대사냥에 ‘마니투’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슬픔은 마음속의 칼로 자라나 마음 이곳 저곳을 쑤셔댑니다.

겨울밤의 바람은 살을 저미며 파고듭니다. ‘마니투’는 얼어붙은 작은 샛강을 지나 아들 늑대의 자취가 남아있는 언덕으로 달려갑니다. 그곳은 녀석이 즐겨 올랐던 너른 바위가 있는 곳이지요. 아들 대신 바위에 오른 늑대 ‘마니투’는 보름달을 보며 눈시울을 적십니다. ‘오~우!’ ‘오~우우우!’ 목을 빼어 우는 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지네요.

아들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집니다. ‘마니투’는 엄마가 일찍 죽어 힘겹게 자라나야 했지만 마니투의 아빠는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마을의 용맹스러운 전사였습니다. 그러나 ‘마니투’가 5살 경에 아빠는 곰과의 싸움에서 목과 다리를 크게 다쳐 짖지도 못하고 잘 걷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마니투’는 결국 아빠대신에 일찍부터 사냥의 선두에 나서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먹을 것도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아빠의 몫까지 챙기다보니 몸에서는 크고 작은 상처가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늘 배가 고팠고 삶은 늘 고달프기만 했습니다.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 품어서는 안 될 생각들이 맴돌았습니다. 아빠를 두고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아빠도 그 마음을 읽은 것일까요? 어느날부터 아빠는 마니투를 머리로 자꾸 밀어내어 집밖으로 쫓아내었습니다. 절대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의지는 너무 강하여서 꺽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어느 날 마니투는 사슴 한 마리를 잡아 아빠의 집 앞에 두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집을 나온 지 벌써 5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고향 소식은 전혀 듣지를 못했습니다. 늘 마음 한 켠에 아빠가 걱정되었지만 이웃의 늑대들이 보살펴 줄 거라고 생각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눌러 앉혔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아빠 생각이 더 많이 납니다.
‘아빠는 살아 계실까? 살아 계신다면 많이 늙으셨겠지!’ 여러 가지 생각이 이어지면서 온통 불행으로만 이어지고 있는 자신의 삶이 너무나 원망스럽게 느껴집니다. 아들이 죽은 것이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죄 값이라고 여겨집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제는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살더라도 더 큰 불행만이 자신을 기다릴 것만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마음이 진정이 안 됩니다. 절벽까지 뛰어가서 떨어져 죽어버리고 싶어졌습니다. ‘마니투’는 미친 듯이 들판을 뛰어갔습니다. 단숨에 산등성이를 하나 넘었습니다. 저 앞에 절벽이 보입니다. 속도를 더 늘려 뛰어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길 어디에선가 사람냄새가 납니다. ‘마니투’의 가슴에서 원한의 칼바람이 일어납니다. 두 눈에서 초록색의 인광이 뿜어져 나옵니다. 냄새나는 곳을 찾아 달려갑니다. 하지만 그 곳에는 사람이 아니라 웬 보자기가 하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마니투’는 보자기를 찢어 발겼습니다. 그 속에 동그란 물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니투’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섭니다.

그 동그란 물체(거울)위에 놀랍게도 아빠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옛날 모습보다 훨씬 야위고 늙어버린 얼굴이지만 아빠임에 틀림없습니다. 반가움에 ‘컹컹’ 소리를 내며 짖습니다. 놀랍게도 물체 속에 담긴 아빠는 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아픈 다리가 나았는지 마니투처럼 잘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다. ‘살아계셨구나!’ 용기를 내어 거울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빠 늑대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눈물이 쏟아집니다. ‘아빠! 정말 정말 죄송해요!’ 아빠의 체온을 느낄 수는 없지만 아빠를 보며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마음속의 말들을 다 털어놓습니다. 온갖 슬픔과 고통도 하염없이 흘러내립니다. 얼마나 울었을까요? 다시 거울을 봅니다. 거울속의 아빠는 어린 시절의 모습처럼 달빛을 받아 은빛 털을 반짝이며 절대 물러섬이 없는 강한 눈빛으로 마니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빠의 기운이 그대로 마니투의 마음속으로 스며듭니다.

* 인디언 종족의 하나인 라코타 시오 족은 늑대를 “셩크-마니투 탕카”라고 부른답니다. 그 뜻은 ‘개처럼 생겼지만 매우 강인한 정신을 가진 동물’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늑대는 개의 조상이면서도 결코 길들여지지 않고 야생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였습니다. 일부일처제의 대표적 동물이고 가족애가 뛰어나며 사냥의 명수이고 혹한의 추위를 잘 견뎌내는 강한 동물입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인간의 학살로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멸종의 위기에 설만큼 그들이 인간에게 잘못한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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