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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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2년 전 봄에 건강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다. 2주일 후 결과를 알아보러 가서는 당뇨가 있다고 했다. 그것도 평상치보다 훨씬 높다는 말과 함께 당장 약물치료를 받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친절한 충고를 받았다.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믿지도 않는 하느님을 원망했다. 하필이면 내가 이런 평생 질환에 걸리게 되었냐고. 다른 사람 많고도 많은 이들 중에서 하필 나냐고.
20여 년 전 다니던 대학이 맘에 들지 않아 재수를 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일주일가량을 친구 자취방에 숨어 지내고 있는데 갑자기 사라진 막내 때문에 한 걱정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찾아온 사촌형제의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간 기억이 있다. 그 때에도 그랬다. 왜 하필이면 나만 떨어지냐고. 내가 지망한 그 과가 미달만 되었어도 난 합격할 수 있었는데 왜 다른 많은 미달과는 놔두고 하필이면 그 과만 경쟁률이 그렇게 높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달 전 경영대학원 원서를 냈다가 미역국을 마셨다. 서울에 있는 대학이었고 공부를 많이 시키는 대학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내심 자신 있었다. 발표일 인터넷을 확인하니 수험번호는 틀린 내 이름이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확인전화를 해 보니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동명이인입니다.” 하필이면 내가 떨어지냐. 다른 탈락할만한 많은 지원자들 중에서 왜 나냐고. 그것도 같은 이름의 두 명중에서 하필이면 나냐고.
이런 ‘하필이면’의 부정적 상황이 유달리 내겐 많았다. 하필이면 나한테만 음치이고, 숏다리이고, 배불뚝이냐고. 수일형처럼 키도 크고 노래도 잘하고 얼굴도 잘 생기면 안 되냐고 원망도 많이 했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잘못된 일상이 있는 거냐고요.
그러다 어느 책을 보다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부정적 상황에 대한 반전의 의미. 난 바로 컴퓨터를 켜고 이 반전을 이렇게 적어보았다.
하필이면 그 때 당뇨가 발견되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하여 위험한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고,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나. 불어만 가던 내 몸도 조금씩 줄어가고 술과 담배도 줄이거나 끊을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말이다. 덕분에 마라톤도 시작하게 되어 풀코스를 두 번이나 완주할 수 있게 되었고 건강한 몸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일로 인하여 책을 많이 보게 되었고 지금 나는 변화경영연구원으로 살아가고 있고 내년에는 내 이름으로 된 책도 준비하고 있다.
20년 전 재수에 실패한 후 곧바로 군대를 갔다. 36개월 만땅 채우고 제대한 나는 빌빌거리다 복학하였다. 그리고 몇 년 후 내 평생 최고의 보물을 만났다. 평생의 반려자 나의 아내는 재수에 성공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이었다. 하필이면 그 때 재수에 실패해서 처음의 학교에 복학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평범한 샐러리맨의 애환에 짓눌려 퇴근길 소주 한 잔에 처자식 걱정이나 하는 보잘것 없는 중년이 되었으리라.
한 달 전 하필이면 내가 미역국을 먹어 버린 바람에 8개월 가량의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어 피아노와 붓글씨를 배우기로 하였다. 대학원에 붙었으면 아마 생각하지도 못하고 영어공부에만 끙끙대고 있었을 것이다. 이왕 놀기로 한 몇 년, 삶의 재미를 붙일 재주 한 두 가지 정도는 익혀야 되지 않겠나 싶어서였다. 여유와 즐거움과 바꾼 미역국이 아닌가. 하필이면 내가 떨어져야 하는가라는 억울한 생각에서 이것조차도 즐거운 마음으로 바꿔보자는 발상의 전환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IP *.118.67.206
2년 전 봄에 건강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다. 2주일 후 결과를 알아보러 가서는 당뇨가 있다고 했다. 그것도 평상치보다 훨씬 높다는 말과 함께 당장 약물치료를 받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친절한 충고를 받았다.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믿지도 않는 하느님을 원망했다. 하필이면 내가 이런 평생 질환에 걸리게 되었냐고. 다른 사람 많고도 많은 이들 중에서 하필 나냐고.
20여 년 전 다니던 대학이 맘에 들지 않아 재수를 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일주일가량을 친구 자취방에 숨어 지내고 있는데 갑자기 사라진 막내 때문에 한 걱정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찾아온 사촌형제의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간 기억이 있다. 그 때에도 그랬다. 왜 하필이면 나만 떨어지냐고. 내가 지망한 그 과가 미달만 되었어도 난 합격할 수 있었는데 왜 다른 많은 미달과는 놔두고 하필이면 그 과만 경쟁률이 그렇게 높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달 전 경영대학원 원서를 냈다가 미역국을 마셨다. 서울에 있는 대학이었고 공부를 많이 시키는 대학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내심 자신 있었다. 발표일 인터넷을 확인하니 수험번호는 틀린 내 이름이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확인전화를 해 보니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동명이인입니다.” 하필이면 내가 떨어지냐. 다른 탈락할만한 많은 지원자들 중에서 왜 나냐고. 그것도 같은 이름의 두 명중에서 하필이면 나냐고.
이런 ‘하필이면’의 부정적 상황이 유달리 내겐 많았다. 하필이면 나한테만 음치이고, 숏다리이고, 배불뚝이냐고. 수일형처럼 키도 크고 노래도 잘하고 얼굴도 잘 생기면 안 되냐고 원망도 많이 했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잘못된 일상이 있는 거냐고요.
그러다 어느 책을 보다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부정적 상황에 대한 반전의 의미. 난 바로 컴퓨터를 켜고 이 반전을 이렇게 적어보았다.
하필이면 그 때 당뇨가 발견되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하여 위험한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고,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나. 불어만 가던 내 몸도 조금씩 줄어가고 술과 담배도 줄이거나 끊을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말이다. 덕분에 마라톤도 시작하게 되어 풀코스를 두 번이나 완주할 수 있게 되었고 건강한 몸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일로 인하여 책을 많이 보게 되었고 지금 나는 변화경영연구원으로 살아가고 있고 내년에는 내 이름으로 된 책도 준비하고 있다.
20년 전 재수에 실패한 후 곧바로 군대를 갔다. 36개월 만땅 채우고 제대한 나는 빌빌거리다 복학하였다. 그리고 몇 년 후 내 평생 최고의 보물을 만났다. 평생의 반려자 나의 아내는 재수에 성공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이었다. 하필이면 그 때 재수에 실패해서 처음의 학교에 복학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평범한 샐러리맨의 애환에 짓눌려 퇴근길 소주 한 잔에 처자식 걱정이나 하는 보잘것 없는 중년이 되었으리라.
한 달 전 하필이면 내가 미역국을 먹어 버린 바람에 8개월 가량의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어 피아노와 붓글씨를 배우기로 하였다. 대학원에 붙었으면 아마 생각하지도 못하고 영어공부에만 끙끙대고 있었을 것이다. 이왕 놀기로 한 몇 년, 삶의 재미를 붙일 재주 한 두 가지 정도는 익혀야 되지 않겠나 싶어서였다. 여유와 즐거움과 바꾼 미역국이 아닌가. 하필이면 내가 떨어져야 하는가라는 억울한 생각에서 이것조차도 즐거운 마음으로 바꿔보자는 발상의 전환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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