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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9일 19시 24분 등록
어제는 호남과 충청지방에 이어 서울에도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언덕 위에 살고 있어 눈이 오면 꼭 할 일이 생깁니다. 몇 년 눈을 치워보다 보니 눈을 치우는 요령를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눈이 오고 있을 때는 눈을 치우지 마라.’ 이 말은 그동안 현명한 속담이었습니다. 쓸어도 쓸어도 돌아서면 수북히 쌓여있게 마련이니 일은 하고 그 성과는 별로 없는 비효율적 방법이지요. 그러나 오래된 속담입니다. 언덕 위의 집에 살 때는 이 말을 믿으면 안됩니다.

내가 터득한 눈을 쓸 적합한 시점은 눈이 와서 조금 쌓이기 시작할 때입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 눈이 까맣게 쏟아지는 느낌을 받으면 눈이 한참 더 쏟아질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 때는 눈이 펑펑 오고 있을 때 방수로 된 자켓을 입고 동회에서 나누어 준 염화칼슘을 언덕길에 뿌려두는 것이 좋습니다. 자동차 바퀴 너비의 간격으로 위에서 아래로 일정한 양을 뿌리면서 내려오면 아무리 눈이 와도 괜찮습니다. 오자마자 녹으니까요.

눈이 이미 쌓여 있을 때 염화칼슘을 뿌리면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염화칼슘의 양은 적고 눈은 이미 서로 결집하여 단단한 연합동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이 아직 겹겹이 쌓여 세력화하기 전에 염화칼슘을 뿌려 두면, 눈이 떨어지는 순간 다 녹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많이 와도 떨어지는 순간에는 모두 눈송이 한 개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한 개의 눈, 그것은 닿자마자 녹아 내리고 맙니다.

언덕 위에 살다보면 멀리있는 눈은 아름다움입니다. 진귀한 설경이니까요. 그러나 가까이에 있는 눈은 치워야 합니다. 계단과 문 앞 차도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종종 아름다움이 생활의 적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생활이 아름다움을 제켜 내기도 합니다. 산다는 것은 생활과 아름다움의 끈질긴 조화 과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염화칼슘처럼 차고 드라이 할 때는 눈송이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감탄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집에서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며칠 푹 쉴 수 있다면, 눈 속에 파묻혀 잠시 이 세상과의 격리를 완벽하게 즐길 수 있다면 서둘러 눈을 치워야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이 생활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생활 속에 아름다움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자신의 균형점을 늘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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