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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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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6일 00시 34분 등록
◎ 본격적인 유랑길

이제 남은 과제는 이 분야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배움의 문제가 아니라 응용의 문제이다. 학원에서 통했다고 현장에서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분명 의미 있는 길을 걸어 왔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기업에서는 점점 신입사원보다는 경력사원을 선호하는 추세로 가고 있었다. 다른 분야가 모두 그랬지만 IT 분야는 그 정도가 특히 더했다. 나에게 경력이라는 것은 6개월 간의 직업훈련이 전부이다. 나이도 이쪽 분야에서는 적지 않은 편이다. 오로지 잠재력 하나로 어필해야 하는 상황이다.

구직사이트에 들어가 이력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과거에 다녔던 회사 이름을 적는데 지금 하려고 하는 일과 회사 이름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나마 학원 경력을 강조해서 소개서를 작성하고 그 나이 들어 웹프로그래밍을 하려고 하는 사연을 설득력 있게 적으려 했다. 다행히 교육 수료 후 얼마 되지 않아 취업이 된다.

서예원(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구직 사이트 뒤져보면 나올지도 모르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기억을 되새기고 싶지는 않다). 이 분야에서는 새내기이니만큼 근무조건을 따질 여유가 없다. 일단 어디든 들어가서 경력을 쌓아야 했다.
다행히 그 서예원의 사무 담당자가 내가 쓴 소개서를 괜찮게 봐줬고 그래서 함께 일하게 됐다.

업무를 부여받고 일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낯설음. 뭔가 자연스럽지가 않다. 처음이라 그랬을까? 모르겠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나의 문제였을까? 그간 직장생활에 너무 염증을 느껴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사이트가 너무 엉성하게 만들어져서 어디부터 손을 봐야 할지 몰라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무난하게 일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이 한달 정도 흐를 무렵.. 황당한 일을 겪는다.

나를 뽑아줬던 사무 담당자가 어느 날 술 한잔 하잔다. 술 마시면서 흔히 하는 얘기들 줄줄 하더니.. 미안하지만 서예원 운영이 어려워져 더 이상 나를 고용할 수 없단다. 정말 정말 미안하단다.

.............

그 사람 얼굴이 떠오른다. 나보다 세살 정도 많았고 내가 취업할 당시에 막 새장가 들었던 사람. 마음 넓어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유순하고 순수한 인상이었던 기억. 그래서 비교적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 그런 사람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

뭐라 따질 수가 없었다. 너무 어이가 없는 상황이라서..
그곳에서는 새로 취업될 때까지 사무실에 나와서 구직활동을 하라고 했다.
나름대로 배려해 준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며칠만에 그 배려는 정중히 사양해야 했다.

이제 또 다시 악몽의 시작인가. 누군가를 한껏 원망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원망할 수 없었다. 아니.. 원망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원망을 하다 보면 그 원망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 아직도 뭐가 부족한 걸까?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잘 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먼지 하나에 불과하다는 말을 씁쓸히 체험하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래도 어쩌겠어...... 또 문을 두들겨봐야지....

한달 일한 거.. 이력서에 넣지도 못한다. 그나마 한달 전에는 의욕이라도 있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확 꺾여 버렸다. 이력서를 읽고 소개서를 읽으니 한숨만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취업이 될리 없었다. 구인 기업을 열람하는 것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무언가는 해야 했기에 하는 행위였을 뿐. 그저 넋나간채로 '입사지원' 버튼을 마우스로 클릭해 댔을 뿐..

삭히지 못하는 원망을 가슴에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 취업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서예원에 근무할 때 직업훈련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생에게서 같이 일하자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자기 친구가 사업을 하는데 프로그래머가 필요하다며..

이렇게 지내느니 거기 가서 업무 경력이나 쌓자. 그렇게 하는게 적어도 지금 이 상황보다는 덜 비참하겠지.
이제까지 몇 군데를 거쳤나..
양돈장, 유업체, ○○○ 컴퓨터 교실, ○○정보처리학원, 그리고 서예원..
이번에 가면 6번째 직장이군.. 내 참.....

그렇게 무작정 찾아갔다. 갔더니 새로이 사업 시작하는데 쇼핑몰을 만들지 못해 사업계획이 엉망이 된 상황. 나에게 전화를 줬던 그 동생은 이미 자리에서 물러나 있었고 내가 그 자리에 대신 앉았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이력서에 이 분야의 경력을 추가할 수만 있다면...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일이 전척되기 시작했다. 사이트에 들어가야 하는 기능을 하나하나씩 추가해갔다. 나보다 나이 어린 그 사장 이제 나를 좀 믿는 눈치다. 믿건 안믿건 상관 없었지만....
하지만 아무래도 초보이다 보니 중간에 종종 막히는 부분이 있었고 온라인 상에서 도움을 받고자 프로그래밍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모임에도 참석하곤 했다.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시켜 결국 사이트를 완성해줬다. mp3 플레이어를 파는 쇼핑몰이었다. 테스트 해보니 이상 없는 듯하다. 얼마 후에 첫 매출도 발생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나이 어린 사람이 열정 하나만으로 사업을 시작했었나 보다. 무리한 업무 일정을 계속 제시하면서 서로 감정이 안좋아지더니 결국 서로 못볼꼴 다보고 결별한다. 얼마 못가 그 회사도 결국 문 닫아 버린다.

그곳에서 일한지 3개월만에 벌어진 일..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걸보니..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긴 있나보다..
그런데 그걸 인정하기 싫다. 인정하려니 억울하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이 세상이 잘못됐을 확률보다는 내가 잘못됐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어떤게 정답이든간에.. 적어도 다른 사람들 중에는 후자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많겠지..

어느 것이 정답이든 상관 없이... 나는 또 '왜 사는가' 하는 '철학적 물음'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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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거인
2006.01.16 09:46:03 *.238.210.46
프로그래머의 탄생과 성장, 그러한 과정에 필수적으로 겪게되는 일들이라고 생각됨- 역쉬 다른사람들 중의 한사람.
그러나 꿈벗님의 앞날에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하겠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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