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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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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6일 11시 44분 등록
『그 때 칼이 얘기하기 시작했지.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 모든 것을 다 파괴할 수 있다. 이 예리한 날로 모든 것을 베어버릴 수 있다. 나를 잡는 자는 힘을 얻지만, 나에게 대항하는 자에겐 오직 죽음뿐이지.”

“거짓말!”

나무가 말했지.

“내가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 나는 거센 태풍이나 사나운 폭풍우에도 끄떡없다.”

그렇게 칼과 나무가 서로 싸웠다네. 나무는 튼튼하고 단단했지. 그래서 칼에 대항했지. 그러자 칼이 나무를 토막내버리고 나무를 쓰러뜨렸다네.

“봐라. 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
칼이 거만한 목소리로 다시 주장했지.

“그건 거짓말이야.”

이번엔 바위가 말했다네.

“나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세다. 나는 아주 단단하고,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 게다가 아주 무거우며, 내 속은 꽉 차 있지.”

칼과 바위가 서로 다투었지. 바위는 튼튼하고 의연했다네. 그래서 칼과 맞섰지. 그러자 칼이 바위를 마구 내려쳤지. 그러나 칼이 바위를 깨뜨릴 수는 없었지. 대신에 바위를 조각조각 잘라낼 수는 있었지. 칼은 날이 부러졌고, 바위는 박살이 났지.

“비겼다!”

칼과 바위가 말했지. 그리고 서로 울었지. 자기들이 벌인 쓸모없는 싸움을 생각하면서 말이야. 거짓말들이지! 개울가의 물은 이 싸움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지. 칼이 그를 보면서 말했지.

“너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약한 놈이야. 너는 결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적어도 너보다는 강해.”

개울가의 물에 맞서기 위해 칼이 힘차게 몸을 던졌지. 순간 난장판이 벌어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네. 물고기들이 깜짝 놀랐지. 그러나 물은 칼의 공격에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물은 조금씩 형태를 갖추더니 칼을 감싸기 시작했지. 그러더니 강으로 강으로 계속 흘러갔다네. 그 강은 신들이 자신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큰 물’로 개울물을 데려갈 강이었지.

시간이 흐르자 물속의 칼은 낡고 녹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예리한 날을 잃고 말았지. 물고기들도 이젠 두려워하지 않고 칼에 다가가 놀려댔지. 개울물 속의 칼은 자존심이 푹 꺾여버렸지. 날도 잃고 패배하고 만 것이지. 그는 이렇게 탄식했다네.

“나는 물보다 강하긴 하다. 그러나 물을 해칠 수가 없었다. 물도 날 해치지는 않았다. 싸움도 없이 굴복하게 되었을 뿐.”

어느새 새벽이 지나갔고, 해가 동편을 비추며 남자들과 여자들을 깨웠지. 새로워지려면 피곤해져야 했던 남자들과 여자들을 말일세. 남자들과 여자들은 어두운 한 귀퉁이에서 칼을 발견했지. 조각조각 부서진 바위와 쓰러진 나무도 발견했다네. 그리고 노래하면서 흘러가는 개울물도.


우리의 조상들은 칼, 나무, 바위, 물에 대한 이야기를 끝냈지. 그리고 서로 말했지.

“동물들 앞에서 칼처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폭풍우에 맞서선 나무처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시간에 맞서선 바위처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칼, 나무, 바위들과 맞서선 물처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은 우리가 물이 되어야 할 때이다.

지금은 우리가 우리 길을 계속 가야 할 때이다. 위대한 신들, 세상을 창조한, 최초의 신들이 자신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큰 물’까지 우리를 데려다줄 강을 향해서.”

우리의 조상들은 그렇게 물이 되었다네.』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EZLN)의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지은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RELATOS DE EL VIEJO ANTONIO, 1998)’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칼, 나무, 바위, 물’ 이야기를 통해 마르코스에게 자신의 조상들이 폭력과 거짓말으로 무장한 침략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대항했는지를 비유적으로 설명해준다.

칼처럼 강렬하게 싸워야 할 때가 있고 나무처럼 단단히 싸워야 할 때도 있다. 때로는 무거운 바위처럼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때도 있다. 상황과 상대에 맞는 방법을 사용해야 되지만,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물이 되는 것’, 물처럼 매일 흐르고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물처럼 살고 싶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내가 되고 싶었다. 물이 한 순간도 멈추지 않듯이 나 역시 그러고 싶었다. 칼과 나무와 바위가 덤벼도 그것을 품고 매일 흐르는 물처럼 살고 싶었다. 작은 시냇물이든 조금 큰 강물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매일 흐르는 내가 되고 싶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이 되고 싶었다. 바다의 일부가 되는 강물이든, 강물에 더해지는 시냇물이든 위대하고 더 나은 것을 위해 힘을 보태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는 물이 아닌 칼, 나무, 바위처럼 살아왔다. 약한 사람을 칼처럼 대한 적이 있었고, 나아가야 할 때임을 모르고 나무처럼 버티고, 마음을 열어야 할 때 바위처럼 굳게 마음을 닫은 적이 있었다. 칼이 되어야 할 때 칼이 되지 못하고, 나무가 되어야 할 때 나무가 되지 못하고 바위가 되어야 할 때 바위가 되지 못했다. 물처럼 살고 싶어 했지만 흉내만 냈을 뿐이었다.

적합한 내가 되지 못했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럴 때면 무기력하거나 치졸한 나를 발견하고는 한숨지었다.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고, 남을 돕지도 못했다. 어제에서 배우지 못하고 내일을 준비하지 않았다. 오늘의 일이 되어야 하는 성찰과 준비를 내일의 일로 미뤄 두었다.


이제 나는 물이 될 것임을 다짐한다. ‘매일 더하고 매일 흐르는’ 작은 시냇물이 될 것이다. 수심은 깊지 못할 것이고 좁은 길목을 만나면 쉽게 요동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흐를 것이다.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로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이 있다. 이 말은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야 앞으로 흘러 간다’는 뜻이다. 강이나 바다에 이르기를 원하지 않는다. 구덩이를 채우면서 흐르는 물이 되길 원한다. 구덩이를 만날 것이고 그것을 채울 것이고 겪을 것이다. 그렇게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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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임
2006.02.12 13:00:09 *.208.4.230
"희망하는 나" 와 "현실의 나" 사이의 갭을 좁혀가는 일. 일상이란,
인생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성찰과 의지,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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