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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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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0일 14시 12분 등록
‘슈테판 츠바이크’의 (체스)라는 소설의 주인공 B박사는 심문을 기다리던 대기실에 있었습니다.

그는 나치 장교의 비옷 사이로 삐죽 나와 있는 한 권의 책을 발견 합니다.
한 권의 책이 목숨처럼 소중했던 B박사는 두려운 그 상황 속에서도 책을
훔쳐 그의 방으로 숨겨 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그 책을 꺼내 보거나 펼쳐 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허리춤에 들어 있는 그 책이 어떤 책일까? 가능하면 오래오래 음미하고 읽을 수 있는 수많은 편지가 들어 있거나 아름다운 시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면서 그 책이 주는 행복감을 오래오래 즐깁니다.

어떤 아가씨에게 오랫동안 혼자 존경하고 사랑했던 남자가 있습니다.
그 마음을 알리가 없는 상대가 이따금 사소한 안부를 전하는 전화에도 아가씨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 남자는 여행길에 샀다면서 작은 상자 하나를 아가씨에게 주고 갔습니다.

그 아가씨는 그 상자를 마치 양궁선수가 과녁을 바라보듯 그렇게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닷새가 지나고 아가씨의 마음이 압력밥솥의
내부처럼 팽창되었을 때 상자를 열어 보았습니다.

아가씨의 친정어머니도 결혼하면서 받았던 쌍가락지와 어머니가 주신 비단
한 필을 남루한 삼층장 구석에 넣어 놓고 어느 눈물 나는 날이면 꺼내어서 한 번씩 쓰다듬어 보곤 하셨답니다.

인생에서 그렇게 간절한 어떤 것과 마주치는 순간이 다시 올까?
요즘은 문득 그것이 궁금해진다고 그녀는 술회합니다. -샘터 8월호-

요즘 손석희씨의 “지각인생”이 장안의 화제입니다.

마흔 셋에 학교(유학)로 다시 들어가 20대의 팔팔한 미국 현역학생들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첫 학기 첫 시험 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까짓 석사학위의 종이 한 장보다 소중한 가치로 남았다고 토로 합니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그만큼 그것에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 되기에 소중한 기억이라고 하네요.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다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간절한 순간”, 혹은 “절실한 순간”을 경험하고 또 소유하고 있는지요?

어떤 형태, 어떤 내용이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각 개인의 가치관이 다른 이상 그것은 다양한 모습일 테지요.

제게는 올해 구순이 되는 노모가 계십니다.
직장에 다닐 때, 도시락이 마음에 들지않아 일부러 잊고 가는 척 살짝 도망쳐 버스 정류소에 서 있는데 먼데서 필사적으로 구르듯(키가 작음) 달려와서 도시락을 건네주시던 어머니.

시집가기 몇일 전 그렇게 얌전하시던 어머니가 두 다리를 뻗고 대성통곡을 하시던 모습이 제 내부에 깊이 각인 되어 있습니다.

학교가 온천장에 있었던 무렵, 학교 길을 눈물을 흘리며 다녔던 날 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제 내면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절망으로 심연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제게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게 손을
내밀어 주기도 했었지요.

존재감으로 충만했던 날들이 결국 감정의 수위조절을 잘못해 깨어지고 말았
습니다.

그때 벅스뮤직으로 들었던 윤미래의 노래나 박효신의 노래는 지금도 간절합니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상흔이 “씻김”의 카타르시스를 통해 한없는 충만과 순화를 가져다 주는 것 같습니다. 즉 사물화를 막아주는 것이지요.

“영화, 철학을 캐스팅하다”의 저자인 이왕주교수는 말합니다. 왜 그 많은 감동의 순간을 상실하게 되는가? 그것은 그 감동을 구조화 하지 못하는 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창고에 "간절한 그 순간"을 한 장의 명장면으로 저장하는 건 어떨까요?

그 체험을 추억으로 연결해 구조화 시켜서 무형의 재산으로 쌓아 언제나
충만한 서정성으로 생성되기를 바라며 긴 글 마칩니다.
IP *.208.9.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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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006.02.10 17:25:57 *.108.138.3
츠바이크는 인간 심리 묘사에 탁월한 것 같아요.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 감정에 완전 몰입하게 되죠..
체스는 못 읽어봤는데...찾아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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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2006.02.10 17:57:35 *.116.34.178
잠시 내 마음 어떤 여울을 타고 둥둥 떠다녔어요, 그대 글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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