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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5일 09시 06분 등록
홍승완

대학 때 조교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교수님의 업무를 도와주고 잔심부름을 하고 그러는 모습이 못내 좋아 보였다. 벌써 20년이 더 된 기억이니 아마 그런 것이 마음에 있었나 보다. 승완은 그런 조교를 자처했다. 멋있어 보이는 조교가 아니라 스승의 한 마디를 열 마디의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해석하여 연구원들에게 과제와 역할을 배분하고 해야 할 일을 체크해야 하는 스스로 즐겨 하지 않는 한 무척 귀찮은 역할이었다. 그러나 승완은 즐겨 그 일을 해 냈다.

승완은 스승의 곁에 가장 먼저 온 친구다. 아무도 스승의 존재를 알려 하지 않을 때 홀로 스승의 곁에 있었다. 배우고 익히고 묵묵히 주위에서 맴돌았다. 지금도 그는 그 역할에 충실하다. 삶이 가져다주는 연륜이라는 무게가 그를 더욱 성장하게 할 것이다.

그의 글은 가독성 뿐만 아니라 설득력이 있다. 내용에 힘이 실려 있다. 글 하나하나에 그런 흔적이 묻어 있다. 스승의 글처럼 유려하고 혼을 빼가지 못하는 대신 글에다 자신의 혼을 심어놓는 듯하다. 그의 장점은 책처럼 길게 이어지는 것이 아닌 짧은 단문이다. 한 페이지의 글에 자신의 생각의 불어넣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스승은 이런 그를 ‘그는 글을 잘 쓴다. 대중 앞에 공식적인 스피치는 잘 못하지만 글을 쓰면 모두 뛰어난 내용에 놀란다. 실제로 그의 글쓰기가 아주 많이 늘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책을 많이 읽고 자주 쓴 것이 주효한 것 같다. 예전에는 베껴온 것이 태반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생각이 녹아들어 진득한 맛이 있다. 그가 그다운 매력으로 반짝일 때는 좋은 글을 써 낸 다음’이라고 표현하실 정도였다. 공부는 독학이라고 하신 스승의 말씀을 실천한 첫 번째 제자이다.

또한 승완은 감상적이다. 삶에 지친 얘기를 들으면 눈물을 흘린다. 가슴 저미도록 아름다운 얘기를 들을 때도 눈망울이 붉어진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그때의 감정을 글로 만들어 얘기의 주인공들에게 돌려준다. 그가 가진 최고의 매력이자 장점이 아닐까.

요즘 승완은 왠지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의 눈은 아주 많이 지쳐있다. 우리 속에 갇힌 사자처럼 축 처져 있는 그가 스스로 일어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내가 보기에 그가 함박웃음을 짓는 날은 그의 책이 나오는 날일 것이다. 승완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쌓아온 내공을 풀어내는 장을 만들어야 나타날 수 있다. 난 그것이 책이라 믿는다. 그가 그답지 못한 것이 현재의 일에 빠져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스스로 채운 족쇄에 갇혀 일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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