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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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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3일 22시 42분 등록
일점호화주의(一點豪華主義)

6,70년대의 일본 문화계를 종횡무진으로 질주한 전위예술가가 있다. 작가, 연극연출, 영화감독, 아마츄어 권투선수에 경마평론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다 47세로 요절한 데라야마 슈지, 국내에서는 2004년에 그의 영화 ‘전원에 죽다’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그가 남긴 200여권의 책 중에서 처음으로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가 2005년에 소개되었다.

독설과 냉소, 역설과 위트를 휘두르며 일본인의 평균주의와 무사평온주의를 비웃는 그의 책은 상당히 도발적이고 치기만만하다. 여기에서는 그의 책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그가 만들어낸 신조어 일점호화주의(一點豪華主義)가 촛점이다. 일점호화주의에 대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월급을 양복이나 아파트, 식사 등에 일정하게 배분한다면 우리도 금방 '거북이' 무리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지 말고 자기 존재 중 쏟아부을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한 점(一點)을 골라 그곳에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아버지는 양복파나 미식가, 스포츠광과 같은 젊은이들을 한심한 놈으로 여기겠지만, 사실 이렇게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것은 지극히 사상적인 행위이다.’

나는 일점호화주의가 사상적인 행위라는 슈지의 의견에 공감한다. 인생의 여러 행위 중에서 어떤 행위에 집중할 것인가는 철학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자신의 인생철학에 기초한 우선순위에 의해서 <일점>을 선택하는 것이다. 게다가 일점호화주의는 실행력에 기초하고 있기도 하다. 아파트와 자동차와 평균적인 안락에 의례적으로 수입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나 스포츠 음악 기타 문화행위에 집중하려면 기획과 집행, 향유가 반복,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벼룩 문화기획자라고 부름직하다.

철학과 실행력이 있는 인생에는 강약이 있다. 멋이 있다.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들은 일점호화주의의 기미를 아는 사람들이다. 시인이자 방송인인 김갑수와 사진작가이자 오디오 전문가인 윤광준은 음악애호가로서 오디오의 소리를 좋게 하기 위해 공사장에서 석판을 훔친 적도 있다고 한다. 오디오 위에 석판을 올려놓으면 음질이 훨씬 좋아진다는 것이다. ‘책이 밥이다’라고 선언한 작가 장석주의 장서 2만여권은 유명하다. 미쳐야만 살 수 있었던 동서고금의 예술가들이 모두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가.

상당히 성실한 동료가 있었다. 성실한 사람들이 자주 그렇듯 상상력은 좀 빈곤한 편이었다. 그녀는 ‘변기를 닦기 싫어서’ 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가끔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그녀의 인생목표가 ‘변기를 닦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녀는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넓은 집을 사고 차를 바꿔가며 안정된 삶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단코 ‘성공한 거북이’는 부럽지 않다. 아무런 잇속없이 몰입하고 즐기고 위로받다가 ,연륜이 쌓여 모종의 성취를 하면 좋고, 못해도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에 집중투자하는 일점호화주의에 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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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빈
2006.03.24 13:36:48 *.217.147.199
매력적인 단어를 하나 배웠습니다. 일점호화주의.^^
일점(一點)의 무모함에 한번 끌리고
호화(豪華)의 화려함에 한번 더 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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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6.03.24 14:56:34 *.57.36.18
멋진 글입니다.
결국은 벼룩이가 되겠다는 거네요

전반적으로 잘하는 사람은 성공하지 쉽지 않습니다.
어느 한 곳에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죠

이것이 경영학에서는 집중과 선택이라 표현하잖아요
일반적으로 직장생활인의 대부분이 집중과
선택이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성공이란 잣대로 보면 대부분 실패한 삶이죠
그렇기에 한 곳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부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벼룩으로 사는 삶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고
끈기를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저도 한명석님이 주장하는 일점호화주의에 편승하여 멋진
벼룩의 삶을 일구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참, 방금 아드님 만나서 영적 비즈니스 받아왔습니다.
듬직한 아드님을 두어서 무척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책 돌려주기 위해 만나면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했는데...

즐겁고 기분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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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6.03.24 20:50:29 *.225.18.6

경빈님, 끝 문장이 마치 하이쿠처럼 찔러들어오는, 아주 맘에 드는 댓글입니다.

명수님, 절대로 부담갖지 마시고 반납만 잘해주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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