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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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계절 오월이다. 연휴이지만 딸애가 고3이고 또 다음 주에 연구원 미팅이 있으므로, 가까운 오서산에나 다녀오고 욕심껏 책에 빠져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제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호우주의보까지 내린 모양이다.
아직 빗발은 거세지지 않고 있다. 뜰에 서니 비에 젖은 꽃나무가 더욱 맑게 빛난다. 80여 평의 작은 뜰에 하나하나 내가 골라 심은 꽃나무라 더욱 정이 간다.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며 눈길을 주다 보니, 저절로 몇 편의 시가 써지기도 하였다.
“소나무 가지에
어린아이 수백 명이 숨어 있다
뜻모를 재잘거림과
깔깔거림 만으로
하늘을 여는
어린아이 숨어 있다
---------
먼지묻고 탈색한 초록 위에
순록의 색깔 만으로 너는 시(詩)다
두 팔 늘어뜨린 지친 가지 위에
하늘향한 의지만으로 너는 사랑이다
순간 교향악으로 터지는
개구리 울음소리
환호작약,
살아있음을 자축하는 기립박수여 “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적단풍, 목련, 화살나무, 벚나무, 소나무, 라일락들이 한 그루씩 서 있다. 뜰에 그늘을 드리우고 싶어 3년 전 뜰 한 가운데 모과나무를 심었다. 모과나무는 둥치가 일품이다. 수령이 오래 되어야만 둥치에 골이 패인다는데, 나무둥치가 커지면서 더욱 깊은 골이 패어져 멋스럽다. 영험스럽지 아니한가. 나무도 세월을 사는 것이다.
게다가 모과나무는 제 껍질을 아메바 모양으로 떨구어 낸다. 해를 거듭하여 떨어진 자리가 겹치며, 그 모양과 색이 독특한 무늬를 이루는데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정말 아름답다. 녹색과 갈색의 계통색으로 변주되는 구성이 되는 것이다.
못보던 수국 꽃뭉치가 제법 크게 달려있다. 갈갈이 터진 껍데기 속으로 시침 뚝 따고 있던 능소화도 잎을 밀어올렸다. 거름을 주지 않으면 능소화 꽃을 못 본다. 꽃망울 째로 뚝뚝 떨어지고 만다. 선홍색 커다란 꽃이 휘어지도록 매달리는 것을 보려면, 거름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하고 있던 학원을 내놓았다. 매각이든 임대든 빠른 속도로 정리할 생각이다.
젊은 날에는 무슨 일을 정리하거나 새로 시작할 때, 참 홀가분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끝낸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떠난다는 것이다. 현재는 없고 기억만 남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열심히 살지 못했다. 마치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생이라도 있을 것처럼 데면데면하게 살았다. 이제 나는 가장 엄정한 자세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한 번은, 정말 한 번은 이것이 내 삶이다, 라고 말할 수 있도록 살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정말 이 곳을 떠나게 되면, 모과나무가 가장 서운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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