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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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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1일 21시 12분 등록

‘인간은 두 가지 이유로 노동한다. 하나는 임금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는 일자리를 잃을까 봐 두려워서다.’ -스튜어트 크레이너

[삽화 하나]

모든 '먹는다'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
모든 포유류는 어금니로 음식을 으깨서 먹게 되어있다.
지하철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자장면을 먹는 걸인의 동작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에이프런을 두르고 거위간을 먹는 귀부인의 동작은 같다.
그래서 밥의 질감은 운명과도 같은 정서를 형성한다.
전기밥통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릿한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모든 '먹는다'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
밥의 질감은 운명과도 같은 정서를 형성한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대체 나는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일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 김훈의 시론 ‘밥벌이의 지겨움’ 중에서

간밤에 마신 술이 채 깨기도 전에 까칠한 기분으로 일어나 억지로 몇 술을 입에 넣고 집안을 나서 본 적은 누구나 한번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래, 넘겨야 일을 하고 그래야 또 넘길 수 있다’. 어느 날은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넥타이를 매다가 문득 내가 넥타이로 조금씩 나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매일 나의 숨통을 조금씩 죄고 있다는 이 당혹스럽고 비참한 기분은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려 자기다움을 포기하는 있다는 것의 징후가 아닐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오직 밥벌이의 수단으로만 인식될 때 우리는 지겨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일이 품삯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었는가? 우리는 노동이 인간 생활의 가장 근본적인 활동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원시시대부터 산업시대 이전까지는 노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보다 인간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중세시대 그리스도교 달력을 보면 1년의 절반이 공휴일, 축일, 안식일 명목으로 노는 날이었다고 한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일이 놀이를 포섭하게 되고, 놀이는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일상생활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산업혁명의 핵심은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이다. 이전까지 생산은 ‘얼마나 많이 만들었느냐’는 개념이었으나, 산업혁명 이후에는 ‘주어진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만들었느냐’는 개념으로 바뀌면서 노동력의 착취와 일의 소외는 가속화된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민주주의의 확대와 근자의 디지털 혁명은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고, 일과 놀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다시 원점에서 일과 놀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내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구멍이 뚫린 것처럼 휑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정녕 일이 품삯으로 그치지 않고 놀이 같은 일처럼 흥분으로 가득찰 수는 없을까? 일을 통해 삶의 소중한 의미를 깨닫고 멋진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밥을 굶지 않을까? 밥벌이를 해결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이 기묘한 모순 속에서 우리 직장인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삽화 둘]

신께서는 인간과 모든 동물들에게 30년간의 삶을 정해놓았다.
당나귀나 개, 원숭이는 30년이라는 오랜 삶이 너무 고통스럽게 여겨져 각각 자신의 삶에서 당나귀는 18년, 개는 12년, 원숭이는 10년을 빼달라고 요청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인간은 30년보다 더 연장해주기를 요청했다. 그리하여 인간은 당나귀가 포기한 18년, 개가 포기한 12년, 원숭이가 포기한 10년을 얻어내어 자기 삶에 보탤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70년의 인생을 갖게 되었다. 처음 30년은 애초부터 정해진 인간의 삶이요, 또 그 30년은 빨리 흘러간다...... 그 후에는 당나귀의 18년이 오니 이 기간 동안 인간은 무거운 짐에 또 짐을 어깨에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먹을 밀을 방앗간에 가져다주어야 할 사람은 바로 그다...... 그 다음에는 개의 12년이 온다. 이 기간 내내 인간은 이 구석 저 구석 기어다니며 으르렁거린다. 왜냐하면 물려고 해도 이젠 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시절이 지나면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이라고는 마지막 원숭이의 10년밖에 없다. 이제 그는 정신이 없고 약간 우스꽝스러워져, 아이들이 보면 웃고 조롱하는 이상한 짓을 한다.
- ‘그림형제 우화’ 중에서

그림형제의 우화는 인생에 대한 통찰력이 있다. 인간의 노년이 동물들의 노년보다 더 길고, 더 고통스러운 것은 모두 인간의 책임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경솔한 탐욕스러움 탓에 그런 선고를 받은 것이다. 인간은 장수의 대가로 노쇠라는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인간이 원래 수명이 40년이 증가하여 70년의 인생을 갖게 되었지만 후반부 40년의 인생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당나귀, 개, 원숭이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우화는 절묘하게 현대인의 삶과 들어 맞는다. 개인의 평균 수명이 매우 급속도로 증가한 반면, 직장에서의 평균 존속 기간은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아니, 상황은 악화되어 당나귀처럼 뼈빠지게 일하고 싶어도 일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당나귀 같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남은 인생은 동물의 삶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이 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남은 인생의 후반부를 위해 새로운 경력을 쌓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며,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고, 더 많은 새로운 관계를 개발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해졌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평생을 걸만한 진짜배기 일인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더 늦기전에 모든 것을 다 걸어 인생의 전환을 시도하여 후반부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 나이 마흔은 새로운 인생을 위한 변곡점이 되어야 한다.


[삽화 셋]

“희망은 위험한 것이며 사람을 미치게 할 뿐이다. – 레드가 앤디에게
“희망은 좋은거에요. 아마도 최고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 앤디가 레드에게

내게 가장 감명깊게 보았던 영화를 하나 꼽으라면 주저없이 ‘쇼생크 탈출’을 추천한다. 내가 ‘희망’이라는 단어의 위대함에 무릎꿇고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든 유혹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유능한 회계사 앤디는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지옥 같은 쇼생크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앤디는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되는데 그가 감옥에서 유일하게 희망을 잃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앤디는 희망을 일상으로 데려온다. 그에게 있어서 희망은 운이 좋으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먼 미래의 꿈이 아니다. 그는 교도소 도서관 설립을 위해 주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한 주도 빠짐없이 편지를 쓴다. 드디어 주정부의 대규모 지원을 받게 되고, 주정부에서 보내준 책들 속에서 그는 한 장의 낡은 LP판을 발견하게 된다. 앤디는 LP판의 음악을 확성기를 통해 내보내고 교도소 전역에 울려퍼진다. 나는 아직도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저녁 바람은 부드럽게’라는 오페라의 음률을 잊을 수가 없다.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였지만 그 노래를 듣는 감옥안의 모든 수감자들은 새가 되어 비상하고 교도소의 벽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환상에 휩싸인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아주 사소한 몸짓 하나가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마침내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20년의 준비 끝에 탈출하게 된다. 탈출 장면은 감동을 넘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데 한 동안 넋이 나갈 정도였다.

영화에 나오는 감옥은 인생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챗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삶으로 유지되는 현실은 창살없는 감옥과 다를바 없다. 그렇다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쉽지는 않다. 50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장기수 브룩스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변화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은 겨울 내내 준비한 까닭이다. 봄에는 활짝 꽃이 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매일 조금씩 준비한 것이다. 앤디는 교도소의 도서관 설립을 위해 매주 편지를 썼고, 15센티미터의 돌 공예용 망치로 매일 조금씩 벽을 뚫음으로써 자유로운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희망을 잃지 않고 매일 조금씩 하다 보면 ‘피가로의 결혼’을 듣는 멋진 일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되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게 된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희망을 일상으로 초대하는 일이다.


직장인의 자화상

피터드러커는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지식 근로자가 처한 현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지식 근로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 지식 근로자는 자신이 살고 있고, 또 일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한 '일상업무'에 쫓겨 다닐 운명에 처해진다. 일상 업무에 있어서의 사건들은 지식 근로자에게 진정한 문제는 고사하고 문젯거리가 될 만한 어떤 것조차 알려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식 근로자에게 필요한 것은 어떠한 일이 자기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일, 즉 조직에 공헌하고 성과를 올리며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런데 이 판단 기준은 계속되는 일상 업무 속에서는 찾아낼 수가 없다.

3. 지식 근로자로 하여금 성과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세번째 현실은 그가 '조직'내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식 근로자가 조직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신이 공헌한 바를 다른 사람들이 활용하는 경우에만, 그때에만 비로소 실질적인 성과를 올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식근로자는 이렇게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과업에 공헌해야만 한다.

4. 마직막으로 지식 근로자는 조직 '내부'의 세계에 존재한다. 대체로 지식 근로자는 외부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지 못한다. 모든 결과는 조직의 외부에 드러난다. 예컨대, 기업의 유일한 결과는 제품과 서비스를 구입함으로써 기업이 투입한 비용과 노력이 기업의 수입과 수익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해주는 고객에 의해 창출된다.

위의 네가지 현실은 지식 근로자가 존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지식 근로자는 스스로 이 현실을 통제할 수 없고 또한 현실은 지식 근로자가 성과를 올리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 지식 근로자가 처한 현실을 요약하면 ‘일상과 조직’이다. 이 두 가지를 반드시 기억하라. 지식 근로자는 조직 내에서 성과를 올려야 자신의 유능함을 인정받을 수 있다. 즉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그렇지만 일상과 조직이라는 울타리에서 성과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제약이 따르게 되고, 성과를 내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현실은 우리를 아무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지식 근로자는 일상업무를 바쁘게 처리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일상업무라는 것이 그렇듯이 어떤 일이 성과에 기여하는 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바쁘게 지내다 보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리고 지식 근로자가 조직 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조직 내의 다른 사람과 조직 외부에 있는 사람들, 즉 고객에게 만족할만한 성과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성과를 올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끊임없이 목표와 연결시키려고 노력하는 실행력 정도의 차이이다. 실행력은 지속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것으로 일종의 습관이다. 지식의 감가상각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시기에 지식의 재충전을 습관화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투명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 일을 올바르게 잘하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재충전이 계속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일이 다른 사람(조직 구성원, 고객)에게 기여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관계지향적인 시대가 되었다. 바쁜 일상속에서도 일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니,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일이다.


Tip 1 일이 즐거우려면...
우리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 속에서 놀이처럼 재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해법은 간단하다. 일이 재미있으면 된다.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일이건 놀이건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은 오래 가지도 못하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해서 가슴 뛰고 피가 끓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재미는 저절로 오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일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회의나 발표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면 정기적으로 메일을 보내고 변화관리를 주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지 않는 데에 있다. 일하는 파트너를 믿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기업은 새로운 전략, 방식을 만들어내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는 우선순위를 가지고 일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이를 알고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급하고 바쁜 일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파레토의 80대 20법칙처럼 실제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20이다. 20에 집중한다면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몰입은 즐거움을 동반한다다. 우선순위를 정할 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행위 그 자체는 쉽다. 그러나 중요도가 낮은 것을 밀어내고 중요도가 높은 것을 위로 올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우선순위는 용기의 문제라는 것을 반드시 명심하라.

넷째는 일의 상황이 요구하는 것 이상의 정성을 쏟아붓는 것이다. 예기치 못한 일의의미와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는 일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이나 ‘총각네 야채가게’의 사례를 보면 똑 같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생각을 바꾸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사고방식과 실험으로 즐겁고 활력이 넘치는 직장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재미를 느끼고, 그 재미를 공유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여섯째는 일을 놀이와 대립적으로 보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놀이든, 일이든, 그 행위 속에 인간다움의 자랑스러운 특징인 자유로운 정신과 기쁨의 느낌이 어우러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놀이일 수 있다. 마크 포스터는 ‘일은 놀이의 개념으로 행해질 때 가장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고, 놀이는 일처럼 진지하게 할 때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같은 활동도 ‘고된 일’일 수도 있고 ‘즐거운 놀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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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6.05.22 09:17:22 *.116.34.217
이 사진과 피가로의 결혼에 뻑 간 시절이 있었다. 지금 봐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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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6.05.22 12:04:48 *.190.84.103
좋은글 그림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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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간디
2006.05.22 13:51:29 *.200.97.235
병곤님의 tip을 퍼갑니다. 좋은 글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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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거인
2006.05.22 15:43:08 *.103.178.48
사진속의 이미지가 병곤님과 무척 닮아 보입니다.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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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6.05.22 19:40:51 *.248.117.3
사부님이 뻑 가다는 표현을 쓰시니 제가 맛이 갑니다. ㅋㅋ
Me Story의 '씨X'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기원님, 간디님 댓글 너무 감사하구요.
천장거인님, 강렬한 이미지로 절 봐주시니 감사합니다만 저 머리에 비 맞으면 큰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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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동
2006.05.23 11:00:34 *.97.228.61
저의 경우는 자주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거라면 그렇다면 그리 사는건 무슨 의미인지, (좀 살벌하지만) 죽는 것보다 나은게 무엇이냐 하는 의문이 든다는 얘기죠. 답 안나오는 질문인지는 몰라도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지 않으면 어느 회사에서 일을 하든 의욕적으로 일하기는 어려울 듯 하니.. 이 딜레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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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6.05.23 23:43:45 *.75.166.29
병곤 회장님!
멋있습니다.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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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6.05.25 18:30:13 *.145.123.223
6일만에 켠 컴퓨터..제일먼저 이곳으로 달려왔습니다.
와~~~강추. 글 무척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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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남
2006.05.27 01:07:48 *.75.195.14
김훈의 저 시론의 내용이 발을 멈추게 하고 다시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우리는 그런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인가..

뭔가 가슴에 다림질을 해주고 싶은 그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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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6.05.28 13:06:26 *.51.68.79
내 의도가 딜레마를 느끼라는 거였는데 재동이 정확하게 읽었네.
성렬형님의 칼바람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쾌차하셨는지?
점점 더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귀자가 보기 좋다. 다음에 미술관 갈때는 나도 초대해줘.
오호~ 가슴에 다림질이라..멋진 표현이네요. 혹시 술 한잔하면서 댓글 단 건 아닌지? ㅋ~ 다음주에 점심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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