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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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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3일 11시 43분 등록


“뷰티풀 몬스터” 의 저자 김 경은 10년간 이런저런 잡지를 거쳐, 패션 전문지 <바자>에서 문화 전반에 대한 읽을거리를 다루는 피처기자였다. 2003년 5월경 <한겨레 21>의 특집 기사에 ‘스타일’에 대한 조언을 해 주다가 전격적으로 <한겨레 21>의 컬럼을 맡게 된다.
그녀의 엽기적인 솔직발랄 글쓰기는 꽤 성공적이어서, 잡지쟁이에서 컬럼니스트로 자리이동을 하게 된다.

이름하여 ‘스타일 앤 더 시티’, 이름만 들어도 모 인기외화의 분위기와 같이 가려고 한다는 의도를 느끼게 된다. 김 경이 컬럼을 쓰겠다고 결심할 때의 변이 재미있다.

“대체로 패션을 좋아하는 인간들은 정치에 무지하고, 시사에 밝은 인간들은 패션 감각이 엉망이니, 그 두 세계의 속성을 웬만큼 간파하고 있는 나 같은 여자가 수다스러운 중매쟁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이다. 실제로 그녀는 예전에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로 민주당 경선을 치를 무렵, 너는 패션에 무지하고 우리는 정치에 무지하니 한 번 만나서 서로 알아보면 어떻겠느냐 식의 맹랑한 인터뷰 청탁서를 써서 성사시킨 일이 있다고 한다.

‘왜 쓰는가’에 대한 명분이 분명했으므로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도 쉽게 풀렸단다. 패션이나 스타일에 대해 다루되, 개성있게 다루고 싶었단다. 당연히 그 개성이란 전적으로 김 경의 스타일로 빚어진다.

본인도 인정하듯 김 경의 스타일은 ‘대책없는 솔직함’이다. 김 경은 애초부터 자신의 취향이 선택하지 않은 객관적 세계에는 하등의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오로지 나의 레이더에 포착된 세계만이 의미가 있고 존재한다. 그녀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충실하게 살고자 했고, 그녀의 문체는 고스란히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다. 뻔뻔스러울 정도의 자기노출을 통해, 독자의 관음증적인 취미를 만족시키고, 동시에 취재원도 발가벗긴다. 그래서 김 경의 글에는 도무지 ~~하는 척이 없다. 나는 이렇게 생겨 먹었다, 당신도 별 인간은 아닐 것이다,하는 입장은 의외의 편안함을 준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뭐가 있는 척, 폼을 잡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김 경의 솔직함이 어느 정도인지 보자. 음주와 흡연은 물론, 타투와 동거 같은 경험을 두루 거친 ‘나쁜 여자’임을 밝히고, 자신의 오감에 걸려드는 모든 스타일을 자기 식대로 해부한다. 자기 자신을 조금도 미화하지 않고 드러낸 후이기 때문에, 그녀의 언급에 신뢰가 간다. 그녀의 스타일을 좋아하느냐, 혐오하느냐의 차이이지, 그녀의 언행에 거짓이 없다는 것은 즉각 수용된다.

먼저 김 경의 복장은 오랫만에 만난 동창에게서 “ 너 요즘 ‘약’하니?” 라는 질문을 듣는 수준이다. ‘강하고 막 나가는 여자’처럼 보이는 옷차림 때문인지 비교적 쉽게 남자들이 꼬이긴 하는데, ‘강해 보이기 때문에’ 어느 남자도 끝까지 김 경이라는 여자를 돌보지 않는단다.
장기간 서로 바라만 보며 애태우던 남자와의 첫 여행을 위해 마음에 드는 속옷을 찾아 헤매는 김 경, 모피에의 유혹에 빠지는 자칭 동물애호가...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모임에 나가 알코올에 대해 자제력을 잃었음을 인정하는 그녀.

이런 솔직함을 무기로, 강남이나 홍대 앞의 레스토랑과 클럽문화에 대해 쓴 글들을 보면, 와! 여기가 우리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이질적이다. 그럼에도 김 경의 문체가 저급한 유행병과 자기노출에서 끝나지 않는 것은 그녀가 언뜻언뜻 보여주는 만만찮은 ‘성찰의 순간’ 때문이다.

8장짜리 컬럼 한 편을 쓰기 위해 김 경은 숱한 자료를 읽고 만났다. 이 세상에 넘쳐나는 정보를 자기 식으로 걸러낼 수 있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패션과 인생을 연결시킬 수 있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젊을 때는 시간을 즐기고, 공간은 나이 들어 즐기는 것”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제 ‘자연’만큼 사치스럽고 요원한 꿈은 없다” “삶을 선택하기 위한 명분이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 “함께 와인을 마시면 상종 못할 인간이 없다” 같은 김 경이 말했거나 선택한 귀절들을 보면 그녀의 스타일 자체가 “우울한 생애를 위한 도금” 인 것을 알게 된다.

스타일에 대한 그녀의 결론 두 가지를 소개하며, 글을 맺도록 하자.
첫째, 천박한 스타일이라도 스타일이 없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글이든 옷이든 자기만의 무엇이 없다면 결코 다른 사람에게 어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자기만의 스타일’ 이라는 것도 너무 오랫동안 밀고 나가면 자신도 독자도 지겨워지는 때가 온다는 것. 그럼 망한다고. 그럴 때는, 자신이 수백개의 정체성을 가졌다고 믿었던 니체처럼 자신의 ‘다른 자아’들과 상의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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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라
2006.06.07 15:56:04 *.46.15.12
제도권을 벗어나본적이 없어서인지 사람들이 말하는 어떤'선'을 넘나드는 인물들에 끌리더군요. 자기철학이 없는 가벼움이라면 상대방에게 한시간도 못가 물릴텐데 김 경이라는 분은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는듯 해요. 스타일에 대한 그녀의 결론은 여타 삶의 진리에 대한 명제들처럼 특이할게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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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탄
2006.06.07 20:18:08 *.225.18.247
소라님 후각이 대단하시네요. 저역시 제도권 안에서는 숨도 못 쉴 자유인이거든요. ^^ 전에 인상깊게 읽은 책을 윗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들추어보았더니, 강영희와 승효상에 관한 언급이 있어서 반가웠어요.

깜짝 놀랄 정도로 대담하고 솔직한 라이프스타일과 문체가 꽤 많은 암시를 주었어요. 한 번 읽어보세요. 좋은 저녁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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