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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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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7일 20시 56분 등록
도대체 무슨 뜻으로 이런 제목이 쓰인 거지? 짧은 의문을 뒤로 하고 <<책임감중독>>이라는 책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그냥 읽고 싶었다. 선홍색의 책표지, 방금 뽑아낸 듯 아찔한 그 핏빛의 색이 마치 미처 드러내지 못한 강렬한 메시지를 대신하고 있는 듯해서였을 것이다.


책의 처음 몇 장을 넘기지 않아서 피에르라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실망하지 않기로 결심한 피에르는 경제분석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신경을 쏟았다. 그는 자신의 꿈을 잃은 것 같아 아주 냉소적이 되었다. 피에르는 자신이 조직의 관료주의에 의해 희생양이 되었다고 느끼면서 국제개발기구의 국제 사회에 대한 기본 책임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은혜도 모르고 게으른 제3세계 국가들을 위해 돈이 되는 직업을 포기할 정도로, 자신이 그렇게 바보스럽고 순진한 사람인지 고민했다. 피에르는 국제개발기구가 외부에서 능력이 없고 하나만 아는 조직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사랑하는 조직을 절망스럽게 바라볼 뿐이다. p70


요즘 들어 부쩍 주변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채 냉소적으로 반응하고, 해치워야 할 일에 대해서는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과 걱정으로 일을 미적거리며, 정작 중요한 사항은 손을 놓고 관심의 영역 밖으로 밀어낸 채 오직 사내보고서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의 모습이 이들 위로 겹쳐졌다.

놀랍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한 상태에서 책장을 넘기는데 이러한 일련의 일이 발생하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하는 두 원칙이 제시되었다. 책임감보존의 제1법칙과 책임감보존의 제2법칙이 그것이었다. 1법칙은 일정한 시간 동안 두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책임의 균형 작용이며 2법칙은 일정한 시간 동안 한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책임의 균형작용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일견 대단할 것도 없는 것 같은 이 두 원칙은 그러나 한 가지 현상을 분명하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즉 개인이 조직 내에서 어떻게 슬럼프에 빠졌다가 스스로 동기부여 되는지, 그리고 왜 또다시 슬럼프에 빠져드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책임감의 보존 때문에 개인은 지치게 되고 조직은 쇠퇴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인데, 그래서인지 저자는 1부에서 책임감이 개인에게 강력한 부작용으로 작용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그리고 2부에서는 이러한 책임감 바이러스로 인해서 쇠퇴하는 조직의 모습을 전달한다.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와 함께, 책임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 그들(바이러스 감염자들)은 과거에 어떻게 느꼈었는지, 그리고 미래에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 결국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고 왜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는지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1부와 2부에서 개인과 조직의 피해에 대해 언급한 책은 3부와 4부에서는 그 처방전을 제시한다. 3부에서는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처방전이, 4부에서는 분야별 극복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사실, 3부와 4부는 그다지 쉽게 읽히지 않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몸이 아파도 실제 병원가기가 두렵거나 약 먹기가 싫은 것처럼, 원인을 진단하였지만 처방이 그리 쉽게 이행되지 않는 것처럼. 게다가 이 처방전이라는 것이 단계별로 개연성을 가지고 진행되기 때문에 집중하며 읽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기가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득부득 진도를 나가면서 읽는 이유는 요즘의 나 때문이다.


요즘 들어 나는 부쩍 웃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유독 진지해졌으며(안타깝게도 내면보다는 표정만), 말수가 많이 줄었다. 하는 일에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만사에는 의욕상실이다. 예전에는 시키지 않아도 이것저것 일을 만들어 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요즘 같아서는 가급적 일을 벌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 아니어도 마감을 다투는 일이 하필 두 개나 맞물려서 거의 죽어났던 지난달을 생각하면 입이 쓴데, 이번 달은 또 무슨 연유에서인지 준비해야 할 일들이 새록새록이니 가슴이 답답하다.


이 비슷한 무력감을 연 초에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때는 그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누구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와 지금의 참담함이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인다. 아침에는 누구보다 잘하겠다고 다짐하고 그 결심이 점심을 못 넘어서니 나의 박약한 의지가 한스럽고 변화무쌍한 심기가 탐탁하지 않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업무에서 느끼는 이러한 의지력의 변화가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말을 지배하고 행동을 지배하여 결과적으로는 나의 생활 전반에서 영향력을 표출한다는 것이다. ‘일영역’ 만으로 나의 ‘삶영역’ 전반이 휘청휘청한다. 좀 더 단단한 뿌리를 가진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역시 대책 없는 바램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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