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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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 전 TV 드라마 앞에 그만 무릎꿇고 말았다. ‘헤어진뒤 시작된 연애’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드라마 ‘연애시대’였다.
이혼한 뒤에 이런저런 이유로 만남을 계속하는 남과 여. 여전히 감정을 남아있고, 다시 되돌리기에는 뭔가 가슴 한구석에 계속 걸려있는 상태. 그래서 각자 다른 상대를 만나고, 진지하게 사귀어볼 결심도 하고, 그러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그렇듯 드라마 ‘연애시대'는 일상의 다사다난함으로 진행된다.
그 드라마가 지닌 장점을 적어보라면, 이 페이지를 가득 매워도 모자랄 것이다. 감독의 안정된 연출력과 숙련도, 그리고 물오른 배우들의 연기력. 시청률에 구애받지 않고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의 ‘사전제작제’의 기특함부터, 언제나 동동 발을 구르는 선남선녀들의 알콩달콩한 연애담. 출생의 비밀, 이복남매의 짜증나는 사랑, 불치병, 유년의 첫사랑도 ‘절대’ 없고 인물들도 선/악 대립이 아니다. 그 밖에도 많다. 가슴을 적시는 절절한 대사, 감정을 배가시키는 영상, 의미를 담은 소품들….
하지만 내가 드라마 ‘연애시대’ 앞에 처절하게 무릎을 꿇었던 이유는, 아마도 전체를 흐르고 있었던 '쓸쓸함'과 '외로움'의 정서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은호와 동진의 어울림, 엇갈림에는 묘한 쓸쓸함이 깔려 있다.
결혼을 했지만, 어디서부턴가 조금씩 엇갈리면서, 결국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실체를 남겨둔 채로 이혼을 했다. 그들이 여전히 서로의 주변을 맴도는 이유도 잡히지 않는 쓸쓸함,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깨달은 것은, 아무리 진심을 다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무엇인가 쓸쓸함의 실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을까.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맹세했던 사랑은, 변하지 않았지만 돌아오지는 않는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그 사이에 존재한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여전히 건너다보게 된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오래 전, 흔들리는 20살 시절에 보면, 30대란 뭔가에 뿌리를 박은 어른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나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따스하게 안아줄 수 있는 나이. 하지만 그건 공상에 불과했다. 서른이 되어도, 변하는 것은 없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정을 이루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별다르게 변하는 건 없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세상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스무살 시절에 성립된 ‘나’는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다. 다만 알게 되는 것은, 이 세상이 무척이나 견고하다는 것. 무엇에든 도전하면 즐거웠던 젊은 날과는 달리, 이미 온몸에 피로가 쌓여 있다는 것. 그래서 부딪치기보다는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 그저 내 껍데기 속으로 쌓아놓는 다는 것. 게다가 바라보는 것이 더 행복한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점점 지배적이 된다.
드라마 ‘연애시대’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더 쓸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비 그친 하늘을 보면서, 아직 비 맞을까 두려워 우산을 가져가야 할지 망설이는 듯한 느낌이다. 아니 기꺼이, 아직은 웃으면서 비 온 뒤 하늘을 맞으려고 뛰어들어간다. 그 웃음도, 서늘한 수온 때문에 돋은 소름도, 한없이 싱싱해 보인다.
드라마 ‘연애시대’를 즐겁게, 한껏 웃으며 보았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래서 보고 나면, 아니 보면서도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과거에 두고 온 것이 저렇듯 새파랗던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마 그건 내 것이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타인의 ‘연애시대’를 보는 것은 여전히 즐거운 일이다. 그것 또한, 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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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뒤에 이런저런 이유로 만남을 계속하는 남과 여. 여전히 감정을 남아있고, 다시 되돌리기에는 뭔가 가슴 한구석에 계속 걸려있는 상태. 그래서 각자 다른 상대를 만나고, 진지하게 사귀어볼 결심도 하고, 그러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그렇듯 드라마 ‘연애시대'는 일상의 다사다난함으로 진행된다.
그 드라마가 지닌 장점을 적어보라면, 이 페이지를 가득 매워도 모자랄 것이다. 감독의 안정된 연출력과 숙련도, 그리고 물오른 배우들의 연기력. 시청률에 구애받지 않고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의 ‘사전제작제’의 기특함부터, 언제나 동동 발을 구르는 선남선녀들의 알콩달콩한 연애담. 출생의 비밀, 이복남매의 짜증나는 사랑, 불치병, 유년의 첫사랑도 ‘절대’ 없고 인물들도 선/악 대립이 아니다. 그 밖에도 많다. 가슴을 적시는 절절한 대사, 감정을 배가시키는 영상, 의미를 담은 소품들….
하지만 내가 드라마 ‘연애시대’ 앞에 처절하게 무릎을 꿇었던 이유는, 아마도 전체를 흐르고 있었던 '쓸쓸함'과 '외로움'의 정서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은호와 동진의 어울림, 엇갈림에는 묘한 쓸쓸함이 깔려 있다.
결혼을 했지만, 어디서부턴가 조금씩 엇갈리면서, 결국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실체를 남겨둔 채로 이혼을 했다. 그들이 여전히 서로의 주변을 맴도는 이유도 잡히지 않는 쓸쓸함,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깨달은 것은, 아무리 진심을 다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무엇인가 쓸쓸함의 실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을까.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맹세했던 사랑은, 변하지 않았지만 돌아오지는 않는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그 사이에 존재한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여전히 건너다보게 된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오래 전, 흔들리는 20살 시절에 보면, 30대란 뭔가에 뿌리를 박은 어른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나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따스하게 안아줄 수 있는 나이. 하지만 그건 공상에 불과했다. 서른이 되어도, 변하는 것은 없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정을 이루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별다르게 변하는 건 없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세상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스무살 시절에 성립된 ‘나’는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다. 다만 알게 되는 것은, 이 세상이 무척이나 견고하다는 것. 무엇에든 도전하면 즐거웠던 젊은 날과는 달리, 이미 온몸에 피로가 쌓여 있다는 것. 그래서 부딪치기보다는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 그저 내 껍데기 속으로 쌓아놓는 다는 것. 게다가 바라보는 것이 더 행복한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점점 지배적이 된다.
드라마 ‘연애시대’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더 쓸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비 그친 하늘을 보면서, 아직 비 맞을까 두려워 우산을 가져가야 할지 망설이는 듯한 느낌이다. 아니 기꺼이, 아직은 웃으면서 비 온 뒤 하늘을 맞으려고 뛰어들어간다. 그 웃음도, 서늘한 수온 때문에 돋은 소름도, 한없이 싱싱해 보인다.
드라마 ‘연애시대’를 즐겁게, 한껏 웃으며 보았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래서 보고 나면, 아니 보면서도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과거에 두고 온 것이 저렇듯 새파랗던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마 그건 내 것이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타인의 ‘연애시대’를 보는 것은 여전히 즐거운 일이다. 그것 또한, 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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