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이미경
  • 조회 수 1701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06년 6월 18일 17시 07분 등록
이웃한 건물에 볼 일이 있어서 사무실을 나온 나는 순간 멈칫했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억수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작은 우리 사무실은 바깥과 단절이 되어 있어서 몰랐는데 비온지가 한참인 듯 땅이 다 젖어 있었다. 쉼 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은 굵고 내 덩치는 크다. 저쪽까지 ‘비사이로 왔다갔다’는 아무래도 어려울 듯싶어서 잠깐 하늘을 보다가 건물 관리실로 발길을 돌렸다. 관리실 문을 빼꼼히 열고 ‘우산 좀 빌려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마침 관리실에는 장우산이 한 개 덩그라니 놓여있어 슬그머니 우산으로 쏟아지는 시선을 거둘 수가 없는데 관리자가 난처한 듯 말한다.

“맡겨 논 우산이 한 개 있기는 있는데, 주인이 온다카는 시간이 다 되었어요.”
“어 그래요? 그럼 여기서 잠깐 비 잦아들 때까지만 있을께요.”

그렇게 잠깐 앉아있을 생각이었다. 작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빗발이 가늘어지면 후다닥 뛰어갈 생각이었으니까. 그 조그만 간이의자를 당겨 앉을 때만해도 장장 한시간 동안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서 유리창 밖 풍경은 안중에도 없이 관리자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게 될 줄 몰랐다.

“그런데 어떻게 살을 빼셨어요? 비법 좀 가르쳐 주세요.”

이미 안면이 있는 건물관리자에게 말을 건넸다. 30대 중반의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山만한 덩치와 함께 얼굴 및 이목구비 모두가 둥글둥글하여 ‘곰돌이 푸’가 자연히 겹쳐지던 그가 어느 날 부터인가 얼굴에 남아있던 poor를 지우고 ‘슈퍼맨리턴즈’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으므로 건물 내에서는 그의 살 뺀 이야기가 단연코 화제였다. 궁금하던 차에 마침 잘 되었다 싶어서 나는 그것부터 물었다. 그러자 관리인은 어금니가 다 보이도록 시원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아무리 운동해도요, 먹는 것 조절 안하면 말짱 소용없어요.”
“헉~ 그래요? 난 먹는 것은 절대 조절 안되는데.... 다른 방법은 없구요?”
“내가요, 운동을 진짜 많이 했어요. 그런데요, 운동 만으로는요, 절대 안빠지더라구요.”

그가 다음 말을 이으려는 찰나, 관리실 문이 열리더니 우산주인이 장우산을 들고 갔다. ‘거봐요. 내말이 맞죠?’ 라는 관리인의 눈빛과 ‘빌려갔으면 재미있었겠는데요.’하는 나의 눈빛이 서로 마주쳤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우산주인이 문을 닫고 나가자 다시 그가 말을 이었다.

“음식을 먹을 때요, 가급적이면 오래 씹어야 해요. 사람들이요, 습관이 되어서 밥 한숟가락 먹고 김치 하나 먹고 또 밥 한숟가락 먹고 김치 하나 먹고 하는데요, 사실 밥 한 숟가락에 그 김치, 1/3만 먹어도 안 싱거워요. 오래 꼭꼭 씹다보면 밥 자체에서 간이 나와요. 얼마나 꼬소한데요. 근데 그냥 습관적으로 먹는 거에요. 싱겁지도 않은데.... 많이 씹어먹는 게 포만감을 느끼게 해서 좋아요. 그런데 나도, 습관이 안된기라, 처음에는 오래 씹어야카는데 싶다가도 먹다보면 목으로 다 넘어가요. 씹을라고 해도 없어, 다 넘어가서. 그 되새김질이 가장 힘들어요. 그래도 어떻게요, 빼야 하는데. 그래서 안 넘길라고 노력하면서 계속 꼭꼭 씹었어요. 그렇게 오래오래 씹으면서 한 세 숟가락 먹으면요,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먹고 나를 쳐다보거든요. 그럴 때는 미련 없이 남은 밥은 짬을 시켜야 해요. 그래야지 안 그러면 미련 남아요.”

배가 안 고프냐고 물었다. 난 배고프면 짜증부터 내니까.

“저도요, 처음에는 배 고플까봐, 그게 제일 걱정 되었어요. 겁났죠. 그런데요, 그렇게 배고픈지 모르겠어요. 우선 아침 먹고 점심 먹은 후에 저녁은 아예 안 먹어요. 그리고 조금 허기진다 싶으면 물 먹고요. 물이요, 참 좋은 거에요. 이거 보세요. 여기 물통 있죠. 이거 갔다 놓고 내가 먹는 거에요. 물은 많이 먹을수록 좋아요. 원래 하는 운동을 하면서 그렇게 하니까, 매일 일킬로그램씩 줄더라니까요. 몸무게를 재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선 몸무게부터 재고 시작하는데 한참 동안 그렇게 하니까 매일 일킬로그램씩 빠지는 거에요. 그런데 이제는 선식 먹어요. 하루는 걷는데 우와, 길이 흐르는거라, 깜짝 놀랬지. 잠깐 이었는데 길이 차도쪽으로 흐른다는 느낌이 살짝 들더라고요. 아차, 내가 이러면 안되겠다싶어서 선식으로 저녁을 먹어요. 선식은 녹차랑 율무 섞은 것으로 먹는데 율무가 그렇게 좋대요. 율무가 왜 좋은지 아세요? 율무는요..............”

이렇게 시작해서 나와 그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는 삼천포로도 잘 빠졌지만 또 이내 제자리를 찾아서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그가 이렇게 재담꾼이라는 사실을 이제껏 몰랐던 내 자신이 신기할 정도로 그는 이야기꾼이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비법이라는 것이 내가 알고 있던 다이어트 상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 상식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경험담에는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요약정리한 그의 비법은 다음과 같다.

그는 적게 먹는다.
적게 먹기 위해 천천히 식사하고, 오래 씹으며 간은 싱겁게 한다.
예전에는 밥보다 반찬을 많이 먹었다. 지금은 적은 반찬과 밥 세숟가락이 고작이다.
아침과 점심은 꼭 먹고 저녁은 생식을 물에 타서 마시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틈틈이 2L 이상의 물을 마신다.

그는 많이 움직인다.
좁은 공간에서 그가 택한 운동은 줄넘기였는데 300개로 시작하여 하루에 100개씩 늘려가다가 요즘은 매일 2000개씩을 한다. 줄 없이 하는 것이라 줄이 걸릴 일 없어서 좋고 옆구리에서 흔들리던 살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오후에는 건물을 걸어서 오르내린다. 10층짜리를 3회 왕복한다. 운동 이전에는 3층만 되어도 꼭 엘리베이터만을 고집하였지만 막상 걷고 보니 층을 걸어다니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는다. 비상계단은 이제 그의 헬스장이다.
퇴근후 집은 걸어서 간다. 속보로 열심히 집에 가면 그게 정확히 45분 정도 걸린다. 주의할 점이라면 ‘걷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빨리 걷는다’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둘러볼 것 다보고 천천히 걷는 산책은 살빼는 데에 있어서는 전혀 그리고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숨이 조금 가쁘게 빨리 걸어야 한다.

혼자하는 산행을 즐긴다. 혼자서 시간이 날 때면 산을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른다. 그리고 그렇게 정상을 오르면 기념사진을 찍듯 휴대폰을 꺼내 산을 배경으로 자신의 사진을 찍는다. 시작할 때의 사진과 매번 오를때의 사진을 보면 전혀 다른 누군가가 서있다.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째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 사진을 보면 흐뭇하다.

이렇게 해서 작년말부터 시작한 그의 다이어트 결과-그는 그것을 ‘나의 신체 기록’이라고 불렀고 휴대폰에 꼬박꼬박 저장해 두었다-는 슬럼프와 정체기 등의 온갖 상황을 거쳐 136kg에서 현재 106kg의 스코어를 보이고 있다. 그의 달라진 모습 뒤로 숨어있는 변함없는 의지가 놀라웠다. 운동에 대해, 식습관에 대해, 생활패턴에 대해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계속 느낄 수 있는 것은 편안한 자신감이었다. 스트레스나 해야할 어떤 것이 아니라 잘 자리잡은 습관과 그 반복이 가져다 주는 큰 힘이 그에게서 풍겨져 나왔다.

시간에 쫓겨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우선 선식이라도 사다놔야겠다’며 내가 말했다. 준비 다 해놓고 안하면 소용없으니 운동부터 천천히 시작하라며 그가 말했다. 밥은 이미 많이 줄였는데 술은 차마 줄이지 못해서 회식이라도 있을라치면 다음날 아침에는 영락없이 1~2kg 정도가 는다며 멋쩍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얼핏 본 것은 곰돌이 푸의 얼굴이었을까? 문을 열고 나오는 나에게 유리창 너머로 손을 흔들어주는 그의 모습을 다시 뒤돌아 보았다. 각진 턱과 날렵한 콧날을 가진 그는, 역시 슈퍼맨이었다.
IP *.73.136.88

프로필 이미지
미 탄
2006.06.18 21:21:59 *.225.18.160

- 내가 다이어트를 못 하는 두 가지 이유

책읽다가 지치면 먹는 것으로 기분전환을 한다. 엑셀런트 아이스크림을 에이스크래커에 끼워 먹는다든지, 포도주와 옥수수빵을 먹는 이 기막힌 퓨전간식의 기쁨!

'식욕은 의욕이다' , 맛있게 먹고 열심히 살자!

- 내가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나의 낭랑한 목소리에 어울리는 외모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전화상담 후 내방한 학부형 왈, "굉장한 미인인 줄 알았어요~~"

구소장님께서 수시점검에 관한 레터를 보내신 이후, 은연중에 모두 챙겨서, 나 혼자 과체중의 미개인으로 남을 위험이 있음.
프로필 이미지
귀한자식
2006.06.19 08:32:17 *.145.120.228
다시한번 의욕을 다지게 하네요...
글 재밌었어요.
미경님 글에는 차분하지만, 익살스럽고 진솔한 느낌이 있어요.
자주 올려주세요^^
프로필 이미지
자로
2006.06.20 14:25:27 *.118.67.80
아주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