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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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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9일 09시 28분 등록
날마다 달라지는 것이 산입니다.

올 봄부터 다니기 시작한 산입니다. 날마다 가지는 못하기 때문에 날마다 달라진다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못해도 한 주일에 두세번은 너머 가지 싶습니다.
마음속에 늘 산, 산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오르지 못하고 그리워 할 때도
산이 좋았는데 이렇게 가까워 지자 더 좋은 것이 산이군요.
좋아서 미치겠습니다. 미치게 산이 좋습니다.
(원래가 무언가에 잘 흥분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대단한 산악인이라도 되는 듯 싶네요.
실상은 늘 같은 산길을 중턱에 있는 약수터까지 쉬엄 쉬엄 다녀오는 수준입니다.
4월 연한 이파리들이 반짝이는 연두빛으로 산을 뒤덮어 가는 것에 매혹되었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새싹들을 지켜보면서 설레였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연두는 초록이 되고
몇번의 큰 비는 초록을 더욱 짙게 만들어 놓았더군요.
어제는 그랬습니다. 확연히 짙은 여름산이 되어 있었습니다.
약수터 위로 작은 폭포가 흐르고 그 아래로 계곡 물소리를 내고 개울이 흘렀습니다.

매일 깊어지고 매일 달라집니다
편지를 받고 답신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아, 어디선가 다른 산 다른 산길을 거니는 누군가도 날마다 달라지는 산빛을 보고 있구나 싶어 그랬습니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길가의 버찌는 오가는 사람들 덕분에 내몫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나무 꼭대기에나 겨우 새까맣게 매 달려 있을뿐이었습니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입니다. 버찌를 따려다가 툭 터지는 버찌 물이 손가락에 들었을 뿐입니다.
나는 늘 다니는 길만 다닙니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덜 다니는 길은 무서워서 들어서지 못합니다.
소장님이 가지고 있는 부와 여유와 ... 그런 것들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깨달음(?)이 들었지요.
높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은 산길을 산보처럼 흘러 다니는 내 게 산딸기 같은 건 보이지 않았습니다.

월드컵이 한창입니다. 사년이 흘렀습니다. 2002년은 잊을 수 없는 해가 되었습니다. 그 때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온 나라가 월드컵으로 흥분하고 있었고 슬픔을 다 흘려 보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년은 참 빨리 지나오는 군요.
사년 전 봄처럼 올 해 봄에 저는 새로운 변화를 위해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만 하던 내게 우습지만
여기 이 사이트에서 만난 한 권의 책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는
우물안 개구리에게 던져진 커다란 돌덩이였습니다.
참 부끄럽지만, 참 며칠동안 흥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고
공부가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고
그간에 내가 허비한 시간이 아까워 미치겠고
제대로 된 공부를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고....
그랬습니다.
내가 산을 다니기 시작한 것도, 영어공부에 마침내 올인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나 봅니다.
그 즈음에 나는 이 사이트에서 소개되는 책들을 읽고 있었고
몇권의 다른 책들은 내게 큰 감흥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밖에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습니다.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 내게 더 많은 시간이 생기고 더 많은 자유가 생기고 그러면 더 많은 "공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밖에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 즈음에 나는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무엇을 잘했었는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장님 말씀처럼 내가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빛나고 싶었습니다.
역사나 문학이나 철학이나.. 그런 돈이 안 되는 공부를 늘 마음 밖에 치워 놓았는데
빛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빛나는 것만으로 ... 다시 내 삶 한 가운데로 불러 오기로 했습니다.

지난 봄 어느날 내 꿈의 명함에 "나무와 숲" ... 어쩌구 저쩌구...를 만들었습니다.
나무와 숲.
봄날부터 초여름까지 내가 들었던 산길에서
만난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물소리
참으로 날마다 깊어지고 날마다 변하는 그 모습.

지금 나는 어디쯤 와 있는지 ..
이제 막 싹을 티우는 봄나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날마다 변하고 날마다 깊어지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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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6.06.19 11:33:47 *.85.148.187

저도 딱 나경씨와 비슷한 정도의 산책을 하는데요. 요즘 숲은, 실팍하게 자란 스물 두 살 청년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어서인지, 혼돈과 모색으로 보내기 쉬운, 지나봐야 얼마나 좋은 시절이었는지 알게 되는 20대!


일요일인 어제, 산책에서 돌아와 포도주와 옥수수빵을 먹은 뒤에 이 홈피 구소장님의 기고문 코너를 앞에서부터 훑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나경씨 글을 보고 연상되는 것을 메모해 둔 것이 있어 옮겨봅니다.

"뭘하면 먹고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빠지면 잘 먹고 살 수 없게 된다. 밧줄을 타는 자가 밧줄 위를 걷는 것에 생각을 집중하지 못하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쓸 때, 그는 이미 떨어질 운명인 것과 같다"

"자신의 기질과 재능과 경험을 연결하여 차별화하라. 그리고 그 일에 전력을 다 하고 즐겨라. 이렇게 이루어진 차별화는 아무도 모방할 수 없다. 준비된 자가 기회를 만나는 것, 이것이 성공이다."



언젠가 나경씨가 '절처봉생'이라는 말을 쓴 것같던데요. 절박함에서 나온 준비를 가지고 길을 떠나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나에게 하는 소리이기도 하지요.


이쯤에서 작가 김형경이 떠오르네요. 얼마나 절실했으면 집을 팔아서 세계여행을 떠난 그니가 여행 후에 펴낸 두 권의 책이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고, 무엇보다도 달라진 그녀의 모습이 신기할 정도예요.

마침 김형경이 '사람풍경'에서 걷기를 예찬하고 있는 것도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네요.

"이제 나는 우울증을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틀림없이 이런 상황 중 하나다. 일주일 이상 운동을 하지 않았거나, 너무 오래 사람을 만나지 않은 채 틀어박혀 있었거나, 심하게 추위에 노출되거나 햇빛을 적게 쬐었을 경우이다.

우울증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운동복을 갈아입고 20분 정도만 걷거나 달리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가라앉고, 40분 정도 지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한 시간쯤 지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솟아 오른다. 이렇게 사소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깨닫는데, 이처럼 손쉬운 대처법을 터득하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게 가끔 약오른다."


비슷한 기질과 치유책을 가진 것같아 주제넘게 말이 길어졌습니다.
사실 할 말이 없으면, 쓰지도 못하잖아요? ^^
좋은 하루, 좋은 일주일을 우리 모두에게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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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2006.06.20 21:45:46 *.100.66.133
이곳은 남쪽이라 스물 두살은 더 되어 보이는 걸요^^
오늘 문득, 이곳은 남쪽이라 봄이 일찍 오긴 하는데
가을은 북쪽에서 부터 오니
어디 산이 먼저 짙어지고 어디 산이 먼저 깊어지는지
뜬금없이 궁금해졌습니다

긴 답글 고맙게 읽었습니다.
제 시작이 한명석님의 독후감에서 비롯된 걸 기억하시는게지요?
좋은 글 늘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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