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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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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9일 13시 49분 등록

언제나 나는 내 글을 보고 당당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쓴 글을 해당 인터넷 싸이트에 올린 후 오타를 체크할 때 만이라도 말이다.

혹시 이 사이트에 올린 글을 스스로 지워버린 적이 있는가? 나는 정확히 다섯 번 그랬던 것 같다. 책을 읽고 쓴 글이 세 편이요, 칼럼을 쓴 것이 두 편이다. 올릴 때 나는 많은 사람이 호흡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많은 이들에게 ‘음- 정재엽은 이런 사람이군’, 이라고 끄덕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나 내가 지워버린 다섯 편의 글들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돌연변이들이었다. 내가 낳았지만, 나는 스스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채 비겁한 짓을 한 셈이다. 나는 내가 생산해낸 나의 아이들에 대해 책임을 지지 못했다. 그렇게 책임지지 못할 글을 올리고 보아주길 바라며, 보아주지 않은 후에 일말의 상처를 받은 채 del 키를 누르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럼, 아예 올리지도 말지 왜 글을 올려서 그런가? 일단 나는 숙제를 이행해야만 하는 연구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책을 내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쌓여 문득 지원했던 연구원 과정-. 아마 비단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 이다. 본인들이 쓰고 있는 글에 대해 자신감 게 내세울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지울 수 밖에 없었을까-

첫 번째, 책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경우.
솔직히 ‘금빛 기쁨의 기억’을 읽고 쓴 글 ‘은빛 슬픔의 상상’을 썼을 때, 나는 실랄한 비판을 가했다. 일단 책을 편집에서부터 사진과 글의 비대칭성에 대해서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공격했다. 아마 그 글을 보신 분들은 ‘정재엽 답다’ 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조회수는 13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책이나 작가에 대해서 외부적인 도움을 전혀 받지 않은 채, 내 자신만의 생각을 써서 쓴 글이었다. 그리고, 힘들게 힘들게 (왜냐하면, 그 책은 한국인의 미의식에 대해서 깊이 다루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글을 써서 올리고 난 후, 다른 연구원들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

오- 마이 갓.

그들의 글은 오히려 강영희가 쓴 글보다 더 아름다운 ‘금빛 찬란한 해석’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만 숨기고 싶었다. 내가 쓴 글은 그들의 통찰력을 따라가지 못해도 한참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한가지- 다른 연구원들의 해석이 너무나도 일관되게 ‘찬미일색’이었던 점은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찬미를 할만한 시선은 내가 미처 생각도 못했던 것이었다. 특히, 우리 연구원 중에 이런 평을 쓴 분이 계셨다.

“오늘날처럼 개인이 제각기 목소리를 내고 개인의 삶과 취향이 존중받던 때는 없었다. 애초에 객관화된 세상이나 기준은 없었고 보는 사람에 따라 N개의 세상이 있었던 것이다. 갈수록 장삼이사의 일상적인 감수성은 강조될 것이고, 따라서 일상과 취향의 혁명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자는 저자의 주장에 신뢰가 간다.”

나는 다시 올린다(?)는 명목하에 내 글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del 키를 눌러버렸다. 그만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지닌 것 같아 지.우.기.로. 결.심.했.다. 지우고 난 후, 더 커다란 내 마음속의 숙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느꼈던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두 번째, 글을 쓰다가 아- 다른 형식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을 경우.
화인열전,을 읽고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즉시 자판으로 글을 두드렸다. 그러나 자판으로 가야 할 나의 손들이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유홍준으로부터 다시 태어난 여덟 명의 화인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들은 내 머릿속에서 어느덧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대화를 담은 글을 적어내고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듯이 그들은 내 마음속에서, 내 가슴에서, 내 머리 속에서 숨쉬며 쉼 없이 벼룩을 갈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비록 유홍준처럼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드러낼 만한 자료가 없다 하더라도 내 머리 속에서 그들의 화혼들은 충분히 솟구쳐 버렸다. 어느덧 내 글들은 서평의 범주를 벗어나 버렸다. 이는 이전 ‘제인오스틴 북클럽’을 패러디한 나의 스타일을 벗어나도 아주 벗어난 글이 되어버렸다. 일단, 올리고 보자- 라고 시작된 나의 글이 어느덧 희곡의 수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 희곡!

나는 순간 무릎을 탁- 하고 쳤다. 그래! 이것을 희곡으로 써 보는 거야. 나는 서둘러 비겁하게 써버린 나의 서평들을 지워나갔다. 희곡이 무엇인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고등학교 국어책 이후에 본 적이 없는 희곡이라는 장르에 감히 도전하기로 했다. 더 이상 지저분하게 쓴 서평을 지우는 행위가 두렵지 않았다. 왜? 나는 이미 여덟 명의 화인이 되어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나는 이내 언젠가 내가 보았던 ‘에쿠우스’ 와 ‘아마데우스’의 희곡을 도서관에서 빌려와 어떤 식으로 형상화 할 것인지를 배워 볼 생각이다. 내가 만든 글이 무대 위에 올려진다는 것- 그리고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희곡’이라는 총알밖에 없이 ‘관객’이라는 전쟁을 맞게 한다는 것- 그것이 희곡이 가진 매력이 아닌가?

마지막, 감히 글쓰기에 도전했다가 낭패 본 경우.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고 글을 썼을 때 이다. 나는 이미 이 책은 학생 때 학교 교재로 썼기 때문에 그리 낯설지 않게 읽었다. 다만, 원어로 읽은 것과 한국어 번역본으로 읽은 것의 차이가 있었다면 있다고 하겠다.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책은 철저히 신화에 관한 책이다. 신화- 이 신화를 내가 한가지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을까. 신화라는 거대한 마법에 걸려 헥헥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 일단 글을 올릴 수 있는 대로 글을 올리자. 이왕이면, 신화의 영향을 받은 여러 장르들- 오페라, 문학, 영화, 미술까지도 넘나드는 글을 써보자, 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는 범주 내에서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신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 지인에 의해서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가 이야기 하는 신화의 세계는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데 ‘재미’와 ‘흥미’를 주는 이야기로서의 ‘신화’ 아닌, ‘삶의 필수요소’로서의 신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 것이다. 그 또한 나처럼 마케팅 부서에 일하고 있지만, 그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사랑은- 그리고 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나를 그만 얼게 만들었다.

순간, 오기가 치밀었다. 못해도 왠지 그 사람앞에서 폼잡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래. 적어도 넌 말은 그럴싸하게 하겠지만, 글로써 승부하자, 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다음날 내가 주로 글을 쓰는 다른 웹 싸이트를 통해 본 그의 글은 이미 한편의 장대한 대서사시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나 자신은 심히 위축되었고,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수업시간에 교재로 썼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쓴 글과의 단순비교 논리로 인해 내 글이 심하게 위축되어 보이고, 토할 것처럼 싫어진 경험이 있으신지?

나는 del 키를 누르는 대신 back space를 누르는 방식을 택했다. 커서가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면서 그간 쓴 글들을 쭉- 하고 지웠다. 처음의 두 편의 글들을 지웠을때는 무슨 숙제라도 얻은 듯한 기분이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달랐다. 그냥 딱- 다 놓아버리고 하산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내가 모르는 익명의 많은 분들에게 내 글을, 내 지적 수준을 이렇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개인적이고, 혼자만이 알고, 혼자만 향유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내 다 지워버리니 텅- 하고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신화- 이것은 나에게 절망이라는 송곳으로 내 마음을 사정없이 찔러버린 거대한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그래. 나는 처음에 이 글을 쓰면서 내 자신이 비겁했음을 변명하려는 의도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글을 써 내려가면서, 내가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정리해 나가면서, 오히려 내 자신에게 당당하고 소신있는 행동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숙제를 데드라인에 맞추어 내는 것에 만족한 내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내가 쓴 글에 대해서 가장 잘 평을 내려 줄 수 있는 정재엽,이라는 독자의 기분을 더럽게 망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내 글에 대해 영원한 객관적인 독자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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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승
2006.06.19 14:52:12 *.109.152.197
재엽님...그랬군요.
앞으로는 못난 자식도 잘 키울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웬지 부족하고 못나 보이는 자식도 다 똑 같은 생명이니까요.
해피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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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2006.06.19 16:15:40 *.62.107.130
지울 만한 용기조차 없는 사람도 있는데요 뭐...

그동안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으셨겠어요.

재엽님 글을 보니 전 아직도 멀었습니다.

숙제한 것에 안도를 느끼는 수준 ㅡ.ㅜ

글을 쓰실 때의 기분은 어떠셨는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 참 멋지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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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06.06.20 08:46:37 *.118.101.211
자유를 위해 글을 쓴다는것- 그리고 그 자유를 만끽한다는 것. 그러나 한가지, 그 자유를 위한 글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것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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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철
2006.06.22 08:30:34 *.117.238.98
정직을 표현한것 자체만으로도 신의 경지에 올라간거라 믿습니다..높은 용기에 경외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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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ier bracelet
2010.09.24 12:19:43 *.43.232.151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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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ier sunglasses
2010.11.01 13:15:23 *.41.223.216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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