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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24일 07시 05분 등록

늘 처음처럼

마실을 시작한지가 벌써 4개월이 다 되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했는지조차 기억에 잘 남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첫 달은 사람을 구하고 현장을 익히고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맞을지 고민하다 시간을 보냈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워 보였고 힘이 들었습니다. 날마다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지요. 새벽처럼 시장에 나가서 음식을 만들 재료를 사러 돌아다녔습니다. 더구나 3월은 무척 추웠습니다. 동아마라톤 때는 너무 추워 완주하는 데만 5시간이 걸린 것을 기억하면 제게만 유달리 추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월은 조금씩 꽃이 피더군요. 아직도 추운 날이 계속되었지만 확연히 달라진 날씨는 삼월의 추운 기억보다는 새로운 방식의 요리시스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했습니다.

고객을 돕는 것이 경영이라고 배웠습니다. 과연 무엇을 해야 고객을 돕는 것인지 무척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예전의 마실은 ‘한상차림 토속한정식’을 기본 아이템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좋을지 솔직히 판단이 잘 서지 않았습니다. 의례 그랬듯이 길이 막히면 책을 찾게 됩니다. 식당비즈니스와 음식트렌드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답을 찾아내려 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변화를 준 메뉴가 준비되고 손님들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기다렸습니다. 그로부터 약 보름동안의 마실은 혼란이었습니다. 만족한 손님, 불만인 손님, 높아진 가격, 적어진 양, 삐거덕거리는 주방과 홀, 조금만 손님이 많아도 바로 흐트러지는 시스템. 어려운 과정이었고 그래도 나도 전문가라고 자칭하는데 ... .

다시 바꿔야만 했습니다. 애초 잡았던 개업일을 20일 동안이나 연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메뉴도 하나하나 레시피를 작성하고 조리법을 꼼꼼하게 교육시켰습니다. 아무리 좋은 메뉴라 하더라도 조리과정에서 성의가 없는 요리는 맛이 없어지는 법이거든요. 식당비즈니스에서 고객을 돕는 것은 손님이 잘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식당을 나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목적으로 식당을 왔던 의도했던 목적이 잘 이루어지도록 식당은 애초의 마음을 잘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손님이 스스로 찾아오는 식당이 고객을 돕는 식당이라고 여겼습니다. 드디어 개업일이 다가왔고 손님들도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개업식을 하는 날 아침에 예전보다 일찍 출근하였습니다. 창문을 다 열고 대문도 열어놓고 혼자 식당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108배를 드렸습니다. 마실에 있는 땅과 하늘의 기운들에게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정직하게 장사할 거라고, 그래서 더 많은 좋은 기운들이 모여들게 할 거라고. 마실을 한 달 정도 운영할 동안 한 분의 스님과 또 한 분의 역술을 하시는 분 한테서 저의 사주와 마실의 기운이 맞지 않다고 들었거든요. 가능하면 빨리 마실을 정리하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믿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고작해야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기운들과 화해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108번 동안 되새겼습니다. 돈 벌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지 않을 테니까 잘 봐달라고요.

식당을 하면서 잡았던 몇 가지 원칙들이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중심의 운영을 첫 번째 원칙으로 잡았습니다. 좋은 경영이란 고객을 돕는 경영이라고 배웠고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두 번째 원칙으로 잡았습니다. 바로 가격대비 최고의 만족도를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것이죠. 마지막 기준은 제 스스로가 즐겁게 일하자는 겁니다. 재미가 없으면 하기 싫은 법이잖아요. 생각한 만큼 실천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잊어먹을 만하면 다시 되새긴 곤 합니다. 가을 쯤 돼서 이 세 가지 경영원칙을 분석한 글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6개월 정도는 지나야 잘 한다 못 한다 분석이 나올 만 하니까요.

식당을 하는 이들에겐 1년에 대목이 두 번 있습니다. 5월과 12월이죠. 12월은 송년모임 등으로, 5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날, 석가탄신일 그리고 겨울에서 봄이 활짝 핀 계절적 영향 등으로 장사가 잘 되는 시기입니다. 반면 추석과 설 두 번의 명절때는 아주 장사가 어렵습니다. 명절 전후 1주일씩은 손님이 줄어드는 과정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이때는 먹고 살기 참 힘들죠. 5월 내내 마실은 손님이 많았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거의 2배 정도 팔았으니까요. 덕분에 한두 달이면 끝날 것 같았던 마실 체류는 6월 들어서야 시간여유를 낼 수 있었습니다.

1주일에 평균 3, 4일은 웨이팅이 걸립니다. 자리는 적은데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서 걸리는 웨이팅이 마실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마실은 압도적으로 두 분의 손님 그러니까 연인, 부부, 친구 등 2명이 오는 손님이 압도적입니다. 테이블이 부족하니까 6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비워놓을 수 없으니 그 분들한테 주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떨 땐 90여명이 앉을 수 있는 17개의 테이블이 50여명 정도의 손님으로 꽉 차버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손님 입장에서는 아주 좋지만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입맛만 다실뿐입니다. 가끔 테이블을 좀 좁게 만들어서 손님을 더 받아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내 욕심만 차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 주저하게 됩니다. 이렇게 웨이팅이 걸리는 날은 우리들뿐만 아니라 손님들도 덩달아 바빠집니다. 바깥에서 대기하는 손님, 일부러 자리를 일찍 파해주는 손님, 비워준 테이블을 재빨리 치워야 하는 직원들하며 어수선하지요. 그래도 이 맛에 식당비즈니스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요. 내가 만든 음식에 반해 즐겨 오는 손님들을 보고 있을라치면 힘든 와중에도 새로운 의욕이 솟아납니다.

[ 경쟁력은 남들이 이쯤에서 포기하거나 돌아설 때 묵묵히 앞으로 걸어가는 힘에 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혁신의 방법에서 찾아지는 것입니다. 배우고 익히는 것을 게을리 해서도 안 되지만 자신만의 무엇, 선생님께서는 자신을 회통하는 변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무엇을 찾아내는 것이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드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가장 자기다운 방식이 차별적 우위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신저 ‘공익을 경영하라’는 책의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9부 능선을 넘어가는 한 끗 높은 고수들만의 비결이죠.

‘어제의 자신과 경쟁하는 것, 어제보다 나아지는 것, 이 끊임없는 여정, 이 줄기찬 탐험이 곧 위대함의 조건인 것이다. ······ 진정한 프로페셔널은 처음 시작하는 자의 흥분과 정신적 자세를 견지하는 사람이다.’ ]

‘9부 능선’이란 제목으로 올렸던 글의 일부분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비결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공한 많은 사람들의 전설같은 비결을 담은 책들이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합니다. 그들의 비결 역시 다를 바 하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성공의 비결은요,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입니다. ‘손에 익고 머리와 가슴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이 자연스러운 강줄기가 흘러갈 때 우리의 것’이 되고 성공은 우리의 특징이 됩니다. 가장 자기다운 방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요? 어제의 자신과 경쟁하는 것, 어제보다 나아지는 것, 이 끊임없는 여정, 이 줄기찬 탐험이 바로 성공의 비결입니다. 늘 처음처럼 어제보다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자세, 처음 시작할 때의 흥분과 정신적 자세를 견지하는 초심을 유지하려는 것이 성공하는 비결일 것이라 믿고 삽니다.

잠시 얘기가 옆길로 빠졌지만 연구원이 되었을 때의 첫 마음처럼, 마실을 시작하였을 때의 그 마음처럼 살자고 되 뇌이곤 합니다. 힘들어도 괴로워도 지쳐 쓰러질 때도 처음 가졌던 마음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 다잡곤 합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류의 글들은 말한 대로 살아지지 못할 때 자신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종종 쓰기도 합니다. 그러면 한 동안은 반성하면서 열심히 삽니다. 그러다 또 어긋나면 다시 반성하면서 돌아오고 하기를 반복합니다. 반성만 하다 인생 종치는 것은 아닌가 몰라요. 그래도 다시 반복합니다. 늘 처음처럼 살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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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당팔
2006.06.24 08:32:04 *.150.69.182
날로 발전하는 <마실>!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큰 발전이 있길 바랍니다.
자로님의 글은 날로 성숙하고 깊어갑니다.
내공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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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6.06.26 00:21:18 *.51.77.144
내 누구처럼 빈말이 아니고 마실 한번 갈께.
가서 형이랑 '처음처럼', '소곡주'한잔 합시다.
참, 책 나오기 전까지는 절주라고 했지?
그럼 갈 수가 없네. ㅜㅜ
이를 어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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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6.06.26 22:15:36 *.118.67.80
이런 바보!
나는 곡차만 먹으면 되잖아. 고오옥~차 말이야.
샘 금방 눈치 채겠네. 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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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철
2006.07.07 09:00:32 *.117.238.217
구본형 선생님 만큼 무언가 강한 힘을 느낍니다. 열심히 읽고 배우고 깨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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