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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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살이 10년을 넘으면 꿈에도 교도소의 그 거대한 인력(引力)을 벗지 못하고 꿈마저 징역 사는가 봅니다. 우리는 먼저 꿈에서부터 출소해야 하는 이중의 벽속에 있는 셈이 됩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돌베개, 1998) 중에서
결혼해서 두 아이를 키우며 10년 넘게 살다보니 꿈에서도 '엄마'고, '마누라'다. 가끔은, 가뭄에 콩나듯, 꿈속에서나마 천정명이나 이휘재, 김래원과 결혼하고는 은밀하게 씨익 웃으며 달콤한 상상에 빠지곤 하지만 '아줌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결혼이 뭐길래 꿈에서까지 신랑과 함께 하는 신부가 되는 것인지, 스스로를 가둬놓는 정신의 감옥을 확인하는 순간 기겁을 하지만 그때 뿐이다. 왜 자꾸 벗어나려 하느냐는 자학만 없어도 낫겠다.
색다른 꿈조차 꾸지 못하다니, 문득 왜그럴까 싶다가도, 욕심도 많지 뭘 더 바라는거야 싶어지면 그만 다시 제자리다. 게다가 삼복더위에 얼음 씹어먹듯이 뱉어대는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남들은 뭐 특별한 거 있냐'는 주변의 애정어린 큰소리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가뭄 아닐 때 콩나듯, 독립을 꿈꾸곤 한다. '초라한 더블보다는 화려한 싱글'까지는 아니지만, 남편만 아니면 뭘해도 하겠다 싶어질 때가 바로 그때다.
'사랑한다'는 통쾌한 무모함으로 결혼식장에서 손잡고 나와서는 이리뛰고 저리뛰며 '남아일언은 중천금'을 외쳤지만 '호강시켜줄게'는 이미 물 건너가서 흔적도 없어진지 오래다. 속이나 썩이지 않으면 다행인 '웬수'자리를 확고히 다진 남편도 알고보면 불쌍하지만, 별로 알고 싶지는 않다. 알아봐야 내가 더 애처로워지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스스로를 슬프도록 불쌍하다 여기며 살게 되었을까? 여기가 바로 道의 시작이다. 그래서 가끔은, 출출할 때 땅콩 까먹듯이, 도를 닦는다.
'천사'라는 아이들과의 생활도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알려준다. 하루 세 끼 이상 밥상을 차리다보면, 어느날 문득, 성난 파도처럼 후다닥, 그야말로 느닷없이, 머리통을, 그것도 된통 얻어맞을 때가 있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말, "너 지금 뭐하고 있니?", 그 한마디면 거의 게임 끝이다. 그나마 승산이 있는 날에는 '道'라는 글자를 떠올리며 심호흡 세 번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싸울 태세를 갖춘다. 허구한 날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나? 나, 지금, 밥상 차린다. 보면 몰라? 애 둘을 거저 키우냐고. 밥 먹여 키우지."
"그래서 이제는 뭐할건데?"
"밥 다 먹으면 밥상 치워야지, 뭘하긴 뭘해. 설거지하고, 주방 정리하고, 그거지 뭐."
"그 다음은?"
"그 다음엔 식탁에서 책 읽을거다, 왜?"
"책은 읽어서 뭐하게?"
"그건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
"싫어, 안 가르쳐 줄거야."
거기까지 실랑이를 벌인 날은 승리의 기쁨으로 글을 쓰는 날이다.
그리고는 외친다. 감옥과 같은 부엌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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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돌베개, 1998) 중에서
결혼해서 두 아이를 키우며 10년 넘게 살다보니 꿈에서도 '엄마'고, '마누라'다. 가끔은, 가뭄에 콩나듯, 꿈속에서나마 천정명이나 이휘재, 김래원과 결혼하고는 은밀하게 씨익 웃으며 달콤한 상상에 빠지곤 하지만 '아줌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결혼이 뭐길래 꿈에서까지 신랑과 함께 하는 신부가 되는 것인지, 스스로를 가둬놓는 정신의 감옥을 확인하는 순간 기겁을 하지만 그때 뿐이다. 왜 자꾸 벗어나려 하느냐는 자학만 없어도 낫겠다.
색다른 꿈조차 꾸지 못하다니, 문득 왜그럴까 싶다가도, 욕심도 많지 뭘 더 바라는거야 싶어지면 그만 다시 제자리다. 게다가 삼복더위에 얼음 씹어먹듯이 뱉어대는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남들은 뭐 특별한 거 있냐'는 주변의 애정어린 큰소리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가뭄 아닐 때 콩나듯, 독립을 꿈꾸곤 한다. '초라한 더블보다는 화려한 싱글'까지는 아니지만, 남편만 아니면 뭘해도 하겠다 싶어질 때가 바로 그때다.
'사랑한다'는 통쾌한 무모함으로 결혼식장에서 손잡고 나와서는 이리뛰고 저리뛰며 '남아일언은 중천금'을 외쳤지만 '호강시켜줄게'는 이미 물 건너가서 흔적도 없어진지 오래다. 속이나 썩이지 않으면 다행인 '웬수'자리를 확고히 다진 남편도 알고보면 불쌍하지만, 별로 알고 싶지는 않다. 알아봐야 내가 더 애처로워지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스스로를 슬프도록 불쌍하다 여기며 살게 되었을까? 여기가 바로 道의 시작이다. 그래서 가끔은, 출출할 때 땅콩 까먹듯이, 도를 닦는다.
'천사'라는 아이들과의 생활도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알려준다. 하루 세 끼 이상 밥상을 차리다보면, 어느날 문득, 성난 파도처럼 후다닥, 그야말로 느닷없이, 머리통을, 그것도 된통 얻어맞을 때가 있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말, "너 지금 뭐하고 있니?", 그 한마디면 거의 게임 끝이다. 그나마 승산이 있는 날에는 '道'라는 글자를 떠올리며 심호흡 세 번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싸울 태세를 갖춘다. 허구한 날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나? 나, 지금, 밥상 차린다. 보면 몰라? 애 둘을 거저 키우냐고. 밥 먹여 키우지."
"그래서 이제는 뭐할건데?"
"밥 다 먹으면 밥상 치워야지, 뭘하긴 뭘해. 설거지하고, 주방 정리하고, 그거지 뭐."
"그 다음은?"
"그 다음엔 식탁에서 책 읽을거다, 왜?"
"책은 읽어서 뭐하게?"
"그건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
"싫어, 안 가르쳐 줄거야."
거기까지 실랑이를 벌인 날은 승리의 기쁨으로 글을 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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