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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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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25일 19시 43분 등록


경남 함안 소읍에 살던 열세 살의 전경린은 너덜너덜한 문고판 ‘변신’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 때 전경린은 ‘변신’의 두 번째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고 며칠 동안 첫 페이지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때 문학을 보았다고 단언하고 있다. 문학이 무엇인지 알아채는 데는 카프카의 첫 페이지를 보고 놀라는 것으로 충분했다는 것이다.


이미 열세 살 때 한지붕 밑에 잠드는 가족이란 것이 얼마나 머나먼 존재들의 섬인지, 얼마나 절망적인 단절이 걸쳐 있는지 스스로 체득했다니, 조숙했음에 틀림없는 시골계집아이는
서른 세 살에 이르러 무던하게 살아보려 했던 평범한 노력들을 단념하게 된다.


애초에 그녀는 자기 자신을 삶에 부적격한 체온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삶 자체로부터 욕구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불행뿐 아니라 행복의 구조조차 불편해하고, 아무것에도 탐닉하지 못하고, 습관이 없고, 질서의 우아함을 모르고, 긴 무기력과 단말마적인 열정의 궤적을 순환하며 타자라는 존재의 중량을 견뎌내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늘 문제적이다.” -붉은 리본 206쪽-


서른 세 살의 어느 봄날 세상이 눈앞에서 가만히 쓰러져 눕더란다. 현실이 모두 지워져버린 그 자리에 광활하고 막막한 사막이 펼쳐졌다. 그녀의 발밑 어디에도 당위의 길은 없었다.
조금 더 침울하고 예민해 보일 뿐 지극히 평범했던 한 여자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그것은 스스로에게까지 숨겨온 끔찍한 비밀을 누설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불과 1년의 습작기를 거친 후에 전경린은 가속도로 인기작가의 길을 굳히게 된다. 95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거의 매년 한국일보문학상이나 문학동네소설상 같은 굵직한 상을 석권하는 가파른 상승세였다.


이에 대해 전경린 본인은 90년대의 감수성과 자신의 욕망이 맞아떨어진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기성에 도전하는 삐딱하고 뒤틀린 문체, 영상적이고 실존적이며 심장에서 바로 튀어나온 문체, 심지어 귀기어린 마력을 가졌다는 평을 듣는 전경린의 문체.


모든 독자는 잠재적인 저자라고 한다. 만년독자에서 벗어나 나도 한 번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뒤로 작가들의 문체를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대단한 문체론이 나올 식견이야 없지만, 내가 왜 전경린에게 매혹되는지 따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전경린은 성장기 내내 지독한 허무주의자였노라고 토로하고 있다.
“우리는 놓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지나가버리고, 변질되며, 결국은 소멸한다는 일회적인 삶에 대한 인식은 일상에 대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지경으로 저를 묶어버렸습니다. ... 저는 변하지 않는 견고한 것을 꿈꾸었고 영원성에 가 닿으려는 욕망을 앓았습니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314쪽-


나는 허무주의에 탐닉한 적이 없다. 언제고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점수를 주었고, 내 마음이 가는 것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허무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에 널린 생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것을 굳이 표현하자면, 금생의 가치 어느 것에도 마음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단지 나는 허무에조차 게을러서 처절하게 부정한 적이 없고, 따라서 처절한 도약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20대 내내 생의 공허에 놀란 전경린은 신성에 가까운 평범함과 신성에 가까운 광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고 한다. 그녀는 광기를 택했고, 우리 독자들은 귀기어린 문장의 작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대강 허무하고, 대강 게으르게 현실에서 발 하나를 빼고 사는 사람은 제 마음도 표현할 줄 모른다. 전경린이 대신 표현해 주는 것에 밑줄 치느라 바쁠 뿐이다.


“지상을 넘어서는 표적이 아니면, 내 영혼에 자극이 되지 않는다.”
“살아지지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캄캄한 내부로부터 삶불능이라는 붉은 경고서를 받았다.”
“나는 삶이든 사랑이든 흉내나 내는 것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삶과의 통정은 이제 시작이다. 바다 끝까지 하늘 끝까지 열리고 싶다.”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247쪽-


세상의 가치를 넘는 자의 시선은 신랄해서, 전경린은 가차없이 우리네 일상생활을 해부한다. 다소 우울하지만 적나라한 분석에 나는 끌린다. 맞는 말 아닌가? 어느 수위에서 현실을 인정하고 승복하느냐의 차이뿐.


“이 나라에선 마흔이 넘으면 다른 삶이 없다. 다른 철학이 없으니까 솔직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스무 살엔 혁명을 했다 해도 마흔만 넘으면 모두 현실 속에 귀순해 버린다. 왜 이 땅에선 개인적인 모럴이 생기지 않는 걸까. 왜 젊었을 때는 다르게 반항한 사람들이 나이 들면서 똑같은 것을 추구하게 될까. ”-나비 161쪽-


“대부분의 남자와 여자는, 평생 하나의 대본의 틀 속에서 갇혀 살아간다. 같은 대사, 같은 동선, 같은 감정을 연기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정말 끔찍한 감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비 107쪽-

“지친 표류자가 다정한 얼굴로 잠시 올랐다가 손 흔들고 떠나는 섬들. 누구나, 우리는 조용히 흔들리며 소금 물살에 흘러가는 듯 보이는 작은 섬들이며 동시에 누군가의 등을 타고 올라 쉬고 싶은 지친 표류자들인 것이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170쪽-


모든 가식을 벗어버리고 생의 본질에 가 닿고 싶은 사람에게 열정은 당연한 것이다. 전경린의 매혹적이고 정열적인 문장들은, 그 솔직함 때문에 매력적이고 허무의 기미를 알고 있으므로 더욱 쓸쓸하게 아름답다. 막 배송된 그니의 산문집에서는 또 다른 연륜의 쓸쓸함이 배어 나온다.


“시간은 찬란하던 기쁨의 빛도 사위게 한다. 삶이 낯선 여자의 생애처럼 점점 객관화되는 기분이다. 그 상실감은 나를 평화롭게 한다. 이젠 좀체 흥분할일 같은 건 없을 것만 같다. ”


“이 질기고 무상한 삶은 욕구로 사는 것도 아니고 왜, 무엇을 위해서, 같은 질문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생명 가진 것들의 긍정적 체온과 기도와 인내로 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삶이란 소박하고 외지고 따스하고 그립고 힘겹다.”
-붉은 리본 235, 211쪽-


열세 살의 조숙함은 40대 중반인 그녀를 달관의 경지로 밀고 갔는지? 그니의 뜨거운 소설들과 또 다른 깨달음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인간으로서 또 여자로서 갖는 실존적인 한계와 삶의 조건을 ‘글쓰기’라는 욕망 하나로 돌파한 작가 전경린, 그니의 삶의 궤적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기에 그니의 조언이 더할 나위없이 소중하다. 되다만 허무와 되다만 부정, 되다만 절실함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아마 없겠지만, 일요일 오후 길어올린 소중한 아포리즘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지상의 것을 빌려 쓰고 지나갈 뿐이다. 생에 대한 겸손함과 순결성의 힘만 있다면 누구도 결코 가난하지 않다. 지금 어려운 시대에 힘겹다고 느끼거나 자신이 무너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직 남아있는, 어쩌면 자신이 이룬 몇 안 되는 진실의 알갱이인 최소한의 현실을 소중히 붙들고 빛이 나도록 닦는 일로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붉은 리본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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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둑
2006.06.26 09:39:33 *.72.66.253
카프카의 [城]을 읽었을때, 정경빈님의 일상에서 느끼는 무력감의 실체를 미리 본 카프카에 압도되었습니다. 어제는 남산도서관앞을 지나오면서 종달새라는 독서클럽을 함께 다니던 친구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그 종당새에서 소개받고 충격을 먹은 [변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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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6.06.27 12:28:49 *.57.36.34
한명석님 하고자 하는 일을 잘 진행되지요

전경린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작가이름인데
저서를 한번도 접한 적은 없네요

중요한 것은 열정이라는 단어지요
그녀도 아마 삶의 모든 여정에 이단어를
불살른 듯합니다.

그리고 한선생님도 이제 서서히
만혼의 여정에서 이를 지필준비를
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소중한 느낌과 소중한 시간속에서
멋진 결실의 꽃이 지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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