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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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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3일 22시 53분 등록

1.

스무살적 종로거리
신호등이 바뀌면
건너편에서 몰려오는 인파들이
나처럼 살아라, 나처럼 살아라
부추기는 것 같았지
사실 그 길은 넓기도 했어
8차선 도로를 가로지른
종로바닥 건널목처럼
수많은 사람이 그 길로 몰려갔지
스무살적 그 시절엔
나보다 남이 더 소중했어
삼십년이나 사십년 쯤을
내 울타리 넓히는 일에 쓸수는 없었지
나는 조용히 등돌려 걸어갔네



20대엔 마음 하나면 되었다. 아직 젊으신 부모님의 천방지축 둘째딸은 완전히 자유로웠다. 나는 20대에, 두 군데에서 농사를 지었으며, 강원도에서 2년 정도 중학교에 근무했으며, 조교생활을 하기도 했고 달동네 빈민활동을 들여다 볼 기회도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는 백수생활을 했으며, 몇 달간의 공장 생활도 해 보았다.

그 때는 지금처럼 자폐적이거나 소극적이지 않았다. 분석해보자면, 나의 정서가 80년대 농촌, 지방과 맞아 떨어진 듯, 생각하는대로 움직였으며 뒤돌아볼 겨를도 습관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의 젊음을 관통한 것은 농촌이었다. 80년대를 풍미한 운동권적 시각에서가 아니라, 내 본연의 측은지심이 날아가 박힌, 농촌과 농민의 삶, 미탄면!



2.

팽나무 그늘 수려한 작은 마을도
양지말 음지말로 나뉘어
갈등 심심치 않다
더펄이 승진이가 허리춤에 비닐을 묶고
고추밭 고랑을 내달리면
바람맞아 부풀어 오른 비닐이 아름다워
출렁이던 시간들,
제 뿌린내린 곳에서 그대로 얼어죽은
고랭지 배추의 처절한 싸움에
발목이 시큰거리도록 붉은 흙 밟았지
아침이면 물안개 환장하게 피어오르고
거룻배 붙잡고 올라가던
아름다운 여울과 꼬부라진 물길에
심어둔 내 한시절



보호어종인지도 모르고 작살로 찍어 구어먹고, 튀겨먹고, 매운탕 끓여먹던 열목어~~
산딸기 꺾어오고, 미개발 동굴을 안내하던 동네 머스매들도 인생의 중반기를 넘어 유턴하고 있으리라. 지금은 동강 줄기로 래프팅의 명소가 된 것같으니, 엄청 변했을 것이다.
한 번은 가 봐야 할텐데, 가게 되면 관광객처럼 스으윽 ~~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올 것인가, 기억에 남는 얼굴을 찾아 볼 것인가, 그것은 다음에 또 올릴 기회가 있겠지.
천하를 주유하는 것에 지칠 때쯤, 월간지에서 P대안학교의 개교이념을 보고 반하여 지금 살고 있는 소읍으로 내려오면서, 나의 20대는 끝난다.

“사람이 일만 하면 짐승이요, 공부만 하면 도깨비다”



3.

아침이면 신호보내는
사십견이 무색하게
소나무 새순만 보아도
노래하나 터진다
나 그 노래가 고마워
또 하루를 버티고,
사분오열로 갈가리 찢겨진
일상에서 길어올린
싯귀하나가 눈물겨운 나는 누구인가
불현듯 찾아왔어도
전혀 낯설지 않게
내 시간을 점령한 노래여
우리 만나지 못한 시간에도
어디에선가 그 씨앗 자라고 있어
이리도 흔연히 몸 담글 수 있는 것이니
내 여생의 집을 너로 채우리라
노래여, 너에게로 가는 길은
또 어디로 뻗어있느냐


아이들을 키우고, 생업에 매너리즘을 느끼게 되면서, 서서히 지치고 자신감을 잃게된 것같다. 그 즈음에 詩가 위안이 되어 주었다. 피곤하거나 우울할 때면 詩를 읽고 싶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게 변화경영연구소를 알게 되었다. 언어와 감성이 비슷하여, 사우(師友)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창조하는 자가 찾고 있는 것은 친구다. 무리나 추종자가 아니다. 창조하는 자는 더불어 창조할 자, 새로운 가치를 새로운 판에 써넣을 친구를 찾는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에서-

이 세상의 좋은 만남은 얼핏 보면 우연인 것같지만, 사실은 착한 일을 한 데 대한 보상이라고 풀이하는 사람이 있었다. 착한 일이라곤, 20대에 농민을 향해 사정없이 열렸던 가슴밖에 없는데,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받는 보상이라니, 지금부터라도 어린애처럼 흥겨운 마음으로 선(善)을 쌓을 일이다.

낮에 간단한 볼일로 병원에 갔는데, 두 세 걸음 앞에 아주머니 한 분이 기운이 하나도 없이 걸어가고 계셨다. 오후 일로 시간이 빠듯한 나는, 빨리 걸어서 추월해 놓고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병원 문을 열고 아주머니가 들어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그 때, 병색이 든 아주머니의 의아해 하는 표정이라니! 그만한 친절이 놀라운 우리네 일상.


4.

모두가 가야할 단 하나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


길은 천지사방으로 열려 있다. 모두가 가야할 단 하나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니체가 말했다. <자꾸 생각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니체를 제대로 읽어야 할 것같다>
문제는 무디어진 마음, 약해진 용기, 현실이라는 이름의 중력의 영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산만한 나는, 지역으로 따지면 소읍, 중소도시, 서울, 동남아<바람쐬고 싶은데 생활비가 만만해서>의 네 군데를 놓고 망설인다.
하는 일로 따지면 현상유지, 연구와 저술, 모색기간 갖기, 보리밥집을 놓고 몇달째 망설인다.
생각을 하다 하다 지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 내가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일부터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발견한다. 구소장님의 라이프스타일에 하나의 모델이 숨어있음을. 프리랜서 강연과 저술로 생업을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나도 잘할 수 있다. 나는 꿈벗 프로그램에 가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


또 다시 원점이다.




IP *.8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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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6.07.04 01:17:04 *.51.69.246
사실 진작부터 궁금했는데 미탄의 의미를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누님의 20대 젊음의 열정과 긍휼함이 함께 한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동강이 있군요. 저도 꼭 한번 가고 싶네요.

20대부터 지금까지 삶의 궤적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합니다. 그 동안 걸어온 길에 대한 연민과 약간의 후회,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한 두려움이 살짝 느껴집니다. 제 느낌에는 앞으로 잘 풀어가실거라 믿습니다. 왜냐면 지금까지도 잘 풀어오신 모습이 행간행간에 보입니다.

작년에 재동씨가 소개해 준 책 '아직도 가야할 길'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인생이란, 뒤돌아보며 후회하는 "가지 않은 길"이 아닙니다. 당신이 막다른 골목에 서 있을 때 혹은 절망의 벼랑 끝에 서 있을 때라도, 바로 그 순간,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길은 지금 내 앞에 있습니다. 보일 듯 말 듯 안개처럼 희미한 길이지만 내가 감내하고 간다면 서로 길을 터줄 수 있을겁니다.

저도 훈련이 안돼서, 아니 절박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꿈을 그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리고 돌고 또 돌아 원점같지만 용수철처럼 한발 앞으로 전진해 있는겁니다.
올해 가기 전에 분명 가닥을 잡고(절대 장님 문고리 잡기 아님.ㅋ~)뚜벅뚜벅 가시리라 믿습니다.

뵌지 꽤 오래됐네요. 보리밥집에서 만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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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탄
2006.07.04 02:17:19 *.81.61.90

이 시간에 술냄새도 안 나는 덧글로,
누군가 원하는 때에, 바로 원하는 '그것'을 말해줄 수 있는,
오~~~~~~~~ 달자, 그대에게서
상담자의 재능이 팍팍 느껴짐.

나의 강점.기질에 대해서는 내가 파악하면 되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객관적인 제 3자가 귀뜸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드네요.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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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승
2006.07.04 09:42:00 *.109.152.197
장마비가 또 다시 기지개를 펴는 아침입니다.
존 레논의 이메진 안에서 한선생님의 20대와 지금을 읽습니다.
그리고 상상을 해봅니다.
이해하기 그리 어렵지 않은 한선생님의 삶의 궤적들을.
누구나 한 때는 가슴 깊이 품었을 생각들을.

모두가 가야할 단 하나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

그렇게 모두가 자기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알든 모르든 단 하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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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6.07.06 07:18:30 *.118.67.80
첨엔 댓글을 올리지 않고 읽기만 하려 했지요.
미탄님이라 부르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은데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또는 누님이라 부르는 것은 어색해서요.
편하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지난 몇 달간 본 미탄님의 장점은 '연구와 저술'입니다.
글을 쓰는 양과 글속에서의 놀이가 전혀 수고로움의 인위적인 노력을 느낄 수 없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글의 흐름에서 읽어온 책의 양과 기억을 알 수 있으며,
흐르는듯한 글의 내용에서 삶의 흔적도 같이 느끼게 합니다.

저라면 네 가지 길중에서 '연구와 저술'에 매진하겠습니다.
강연은 그에 더해지는 덤이지요.
굳이 강연을 더해야 할 이유가 따로 있나요?
현상유지는 이미 지쳤을 테고,
보리밥집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밥집이니 도시락 싸들고 말려야 할판이고, 모색기간을 갖는 것은 장고끝에 악수두는 경구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커뮤니티'란에 올린 원잭의 출사표를 한 번 조용히 감상하심이...

거듭 생각해 보아도 미탄님의 장점은 '연구와 저술'에 있습니다.
나중에 잘못 되면요?

...
까짓거 책임지지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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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탄
2006.07.06 09:31:01 *.199.135.131

하하, 그렇다면 자로님의 장점은 '이웃에 대한 애정'과 '공동체의식'으로 보이네요.
맞습니다. 자로님의 분석이 기가 막히네요. 복채 드리게, 주말 모임에 꼭 오세요 ^^
오로지 '현실적인 분별력'이 가로막을 뿐이지요. 내가 밤새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읽고 끄적거리는 일밖에 없더라구요. '죽으면 갈 곳도, 할 일도 없다'고 고미숙이 그러던데 한 번 가 볼까요?


종승님, 발표준비 다 하셨어요?
저는 이제 겨우 주제를 좁혔네요. 큰일났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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